설교 · 주일

"출애굽기 톺아보기" with 출애굽기의 결론 / 강정규 목사 (2021.10.31) - 1부

2021-10-31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출애굽기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출애굽기를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은 설교를 통해서 만나보지는 못할 수도 있기에 지금까지 나눴던 메시지를 한번 정리하며 흐름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1) 당신도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출 2-3장)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한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를 위한 주님의 비전은 창세기를 넘어 출애굽기에 이어집니다. 바로 애굽에 노예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사실 큰

그림에서 보자면, 애굽에서의 400년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을 민족으로 만드시는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 마지막은 노예생활 속에 힘겨웠지만, 야곱의 가족이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울타리 안에서 급속한 시간 안에 민족을 이룰 숫자로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때를 위하여 준비시키셨죠. 주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장면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원래 그곳은 모세가 양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평범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시니 그 땅은 거룩한 땅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주가 임하시면 우리는 연약하나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첫 메시지가 있던 날 마지막 찬양은 상징적으로 모세와 같이 신을 벗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신을 벗는 것은 내가 주님을 모시는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그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출 4-5장) 모세가 바로를 만나서 담판을 짓는 그러한 내용이죠. 바로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게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막아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할 때, 혹은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할 때 사탄은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막아설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킬 때, 예배가 우리를 지켜준다.” 우리가 믿음의 여정 가운데 찾아오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그것을 이길 힘은 ‘소유격’에 대한 고백입니다. 모세의

지팡이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었을 때, 그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지팡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바뀌었냐면 지팡이의 소유가 바뀌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것이 되니, 모세의 지팡이도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는 애굽에서 열 재앙을 행하고, 홍해를 가르게 됩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에서 미디안 목자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나니,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히브리 민족은 바로 앞에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고백했지만, 이제 그들의 고백이 우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바뀌는 순간 그들은 노예근성을 벗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무엇인가 묻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3) 열 재앙 : 완고한 마음을 다스리심 (출 7-11장) 하나님이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모세를 통해 뜻을 전하지만, 그들을 통해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바로 사이에 영적 대결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애굽에 나타난 10가지 재앙입니다. 1. 피 (나일강) 4. 파리 (곤충류) 7. 우박 강가에서 바로에게 2. 개구리 5. 악질 (가축 전염병) 8. 메뚜기 왕궁에서 바로에게 3. 이 (모기류) 6. 독종 (악성 종기) 9. 흑암 불분명(왕궁 암시) 바로의 술사들 흉내 3번째 실패 : 하나님 고백 아론의

손이나 지팡이로 시행 바로의 술사들도 심판 애굽과 고센 땅에 구분 하나님이 직접 시행 바로 신하들의 동요 바로의 협상과 고집 모세의 손이나 지팡이로 시행 10. 장자의 죽음 이것은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창조의 역행’의 마지막 단계이죠. 창조가 생명이라면 심판은 사망임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바로는 항복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9번의 경고를 통해서 바로는 돌아왔어야 한다는 것이죠. 경고를 해도 깨닫지 못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는 법입니다. 죄에는 항상 임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계점(Critical Point)에 다다르면 하나님의 심판은 나타납니다. 열 가지 재앙을 해석할 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모두 애굽에 성행하던 신들에 대한 심판으로 보곤 합니다. 바로가 10 재앙까지 가게 된 것은 그의 완고한 마음, 즉 고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완고한 마음을 버리셔야 합니다. 나의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부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리십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맞추고,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순종의 무릎으로 주님 뜻 구하는 자입니다. 4) 애굽, 홍해, 하나님 나라 (출 14장) 우리교회의 신학적 기반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이 문구를 보고 있습니다.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출애굽 사건은 성경 전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후에 바벨론 포로로 가 있던 백성들에게도 현실적 소망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모델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이미와 아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시작하셨고, 지금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 완성은 주님의 재림 때에 성취됩니다. 아직은 이 세상의 시대와 하나님의 시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갈등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 ‘홍해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홍해를 건넌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세례는 내가 하나님 모르던 삶을 이제는 중단하고, 하나님 안에 거듭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고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영적으로

출애굽하여 나의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홍해를 건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여,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내 삶은 땅을 벗하여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살기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 5) 하나님의 편으로 살아가는 법 (출 15-16장) 역시나 홍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하나님이 홍해로 그들을 이끌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불기둥을 보고 따라갔을 뿐인데, 홍해라는 고난을 만났어요.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데 말입니다. 광야의 시간을 우리는 신앙적 이해 안에서 이렇게 부릅니다. ‘광야 학교’ 누구나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홍해 사건을 바라볼 때면 늘 이렇게 질문을 해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왜, 하나님은 홍해로 이들을 인도하셨을까?” 우리의 삶에 대입하자면, 이 사건을 내가 왜 마주하게 되는가? 우리는 홍해 사건을 지난 후의 시점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질문을 해보면 그 답은 선명해집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가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홍해는 마주하기 싫은 고난이었으나, 이들은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모세를 통해 일하셨기에 백성 가운데 모세의 리더십은

세워지고, 이곳에서 애굽의 군대가 몰살되며,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 삶에도 계속 우리는 자라가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훈련입니다. 만나 사건이 대표적이죠. 만나를 먹을 때에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순종이 필요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에게는 주일에 예배하는 것도 시험이 될 것입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들은 대부분 코로나 기간에도 온라인으로나

오프라인으로나 그래도 예배가 무너지지 않고 잘 통과해왔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코로나의 기간은 예배를 잃어버린 기간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현장 예배가 가능한데, 누군가에게는 온라인이 주던 편안함을 버리고 다시 현장에서 매주 예배하는 것조차도 훈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편으로 살아갈 때, 항상 주님이 내 편이심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6) 조율(調律) (출 17-18장)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학교의 여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 안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생깁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 ‘갈등’도 생깁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결하며 자라갈 수 있습니다. 부부 안에 갈등이 없는 부부가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을 해결해가며 더 깊고 성숙한 관계가 되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잘 용납하고 이해하며 지켜주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 생겨난 틈을 사탄은 노리고 있습니다. 분열시키려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 있으십시오. 진리로 무장하시고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시오. 서로를 붙들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승리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되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하나님의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모세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여호수아가 필요했고, 아론이 필요했고, 훌이 있었으며, 수많은 리더들이 그를 도왔습니다.

이 공동체를 위해서 여러분이 함께 도와야 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상생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조율을 기억하시죠. 모두 각기 다른 음을 내는 것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준음을 따라서 모두 정렬이 되었을 때 함께 하모니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A음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습. 그분을 나의 기준 삼아 내 삶을 조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맡길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을 사용하시고,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 비전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7)

디테일 (출 19-22장)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서 가장 먼저 부르신 목적지는 ‘시내산’입니다. 그곳까지 이끌어 가시는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곳에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명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디테일하게 우리를 가르치고 양육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짜 예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시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야 그 삶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로 안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규정들과, 특별히 종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들, 그리고 약자에 대한 보호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상과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교회 안의 거짓말, 기억하십니까? “교회는 사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 보고 오는 거야”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드러나십니다. 교회는 사람 보고 오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해도 부분적으로는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새롭게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8) 언약, 삶의 성소에서 지키라 (출 24-25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맺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고대 근동의 봉신 조약에 나타난 형식을 통해서 성경의 언약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종주로 섬기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봉신으로 받아들여 그들을 지키고 돌보겠다는 상호 간의 약속입니다. 이 언약식을 맺음으로 약속의 관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시죠. 바로 율법과 성막입니다. 율법(십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한 지침서입니다. 성막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거하시며 교제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피를 언약의 증표로 삼아서, 그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혹 삶의 여러 어려움이 여러분을 낙담하게 하고 있습니까? 그 바람을 피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함부로 그러한 풍파 앞에 좌절해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세상 가운데 인정받지 못하고 무가치해 보이십니까? 그때마다 말씀을 보면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존재는 가벼울지 모르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나는 세상 어떤 존재보다 가치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9) 성막의 메시지 (출 25-29장) 출애굽기의 상당 부분은 성막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성막을 단순히 건축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막 건조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는 성막의 배치를 통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의 삼중구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거룩과 성결’이 필요함을 나눴습니다. 또한 가장 안쪽에 있는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거룩과 성결, 즉 구별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늘 말씀드리지만 완벽함을

말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진실한 결단은 필요합니다.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거기서부터 결단하는 그 마음이 필요해요. 그러한 우리 안에 주님이 임재하시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막은 지금 우리가 다시 고증해서 지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시대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시대가 있었고, 건물 성전의 시대가 옵니다. 양식은 변화되었지만, 의미는 같아요.

그리고 이제 우리 마음을 성전 삼아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분 앞에 서는 제사장의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가 ‘여호와께 성결!’ 여러분이 그 주님을 마음 열고 초청할 때, 그분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10) 변화입니까, 변질입니까? (출 32장) 모든 사람은 자라납니다. 변화하는 것이죠. 영적으로도 ‘영적 아이 – 영적 청년 – 영적 부모’로 자랍니다. 우리가 네 가지 밭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옥토에 뿌려진 씨는

자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대로 붙어서 영적 공급을 받으면 자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세라는 한 인물만 하더라도 그의 삶에는 40세까지, 80세까지, 120세까지의 삶에 확연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40~80세 구간은 오히려 변질되어 버린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는 다시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끝내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그 모세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만나던 때, 언약 백성으로 삶이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황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또한 아론은 그들 가운데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오히려 악의 일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언약에 불순종하고 다른 신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심판을 당하게 될 순간,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백성 가운데 우상숭배의 주동자를 가려서 악을 도려내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기를 힘씁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백성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성숙함이 빛나는 장면이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도 이 실패를 딛고 성숙으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모세에게도 이 성숙을 위한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이 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 2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지도자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모세 옆에서 모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는 것을 보며, 그것을 열망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자입니다. 여호수아의 집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흘러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향해 내가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 걸음이 쉬지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여러분을 통해 누군가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거쳐서 출애굽기는 드디어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출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과 40일을 함께 있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 두 돌판을 다시 받아서 내려옵니다.

그때 모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그런 모세를 보자 ‘두려워 떨게’ 됩니다. 이 표현 많이 보셨죠. 바로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그럼 이 본문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고 그것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 후에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런데 아론이 모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기까지 모세는

자신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위적이지 않은 꾸밈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스도와 가까이 머무는 자. 그리스도와 충만한 사귐을 누리는 자.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꾸미려고 꾸밀 수 없고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그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돌아온 모세와 함께 본격적인 성막 건설에 들어갑니다. 하나하나 주님이

알려주신 대로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출 39: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출 40:19)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드디어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고자 하셨던 가장 큰 은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삶이 ‘성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칩니다. (출

40:33b)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출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 40: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 40: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출 40: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출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출애굽기를 마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출애굽기 안에는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과 그것의 성취가 나타납니다. 좌충우돌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끝내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았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하고 계심을

그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모세가 40주야를 밤낮으로 여호와 앞에 머물 때, 그에게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안에 낮이나 밤이나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영광의 빛을 온 세상에 비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곳에 달이 빛을 내어 길을 밝혀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습니다. 바로 태양의 빛을 반사하여 세상에 비춰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내가 선하고 잘나고 뭔가 드러낼 것이 있는 존재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 바라보고 따라갈 때, 주님의 빛이 우리를 채우고, 우리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또 세상에 비취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결론에서도 그 빛남이 깃들어 있기를 언제나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