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성막의 메시지 / 강정규 목사 (2021.10.17) - 1부

2021-10-17 · 출애굽기 25-29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출애굽기 아홉 번째 말씀입니다. 지난주 설교를 통해서 나눴듯이, 언약식을 맺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율법을 지키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 또한 그런 언약 백성들 안에 거하시기로 결정하시고, 그들 안에 살아가실 수 있도록 성막을 짓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성소라고 하는데, 광야시대는 천막 형태의 공간이었으므로 ‘성막’이라고 부릅니다. 후에 정착한 이후에는 건물 형태로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상 성경을 읽다 보면 그 외에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단어들이 더 존재합니다. ‘증거막’, ‘회막’ 등의 단어가 그렇습니다. 추가로 ‘장막’도 있습니다. 우선 장막부터 해결해보면, 장막은 말 그대로 모든 텐트(tent)를 의미하는 성경적 표현입니다. 성막도 장막의 형태로 지어진 것이지요. 그러니까 장막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고 그중에 하나님이 지으라고 한 것이 예배의 처소를 성막/증거막/회막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예배의 처소에 위치한 기물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붙는 표현은 ‘증거’입니다. 증거궤, 증거판 등이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는 ‘증거막’이라는 표현이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증거, 무엇에 대한 증거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대해 증언을 하는 막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었기에 증거막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담아 표현하면 ‘성막’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막’은

만남을 갖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의미상으로 구분하자면,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거룩한 장소의 의미로서는 ‘성막’이 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난다는 의미에서는 ‘회막’이라는 표현이 됩니다. 용어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성막 = 증거막 = 회막’ 모두 사용가능하며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동일한 표현입니다. 본질적 의미로서는 ‘증거막’이라는 표현이 좋으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표현은 ‘성막’이 되겠습니다. 혹시 제가 향후에 용어를 섞어 쓰더라도 이러한

이해를 갖고 계시면 우리가 소통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 성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좀 더 큼직한 구분을 살펴보고, 출애굽기 마지막 설교 때 내부 기구들의 의미를 한번 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막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배워보신 분들도 있겠으나, 어떤 분들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예배 처소의 구조와 특징을 살펴보며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을 깨닫고 따르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성막의 메시지를 4가지로 정리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성막 건축의 원칙 :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다. 출애굽기 25장부터 나오는 성막을 만드는 기록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첫 번째 원칙입니다. 성소를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이스라엘 자손이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제가 헌금을 가르칠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입니다. 마침 얼마전 헌금봉투를 다시 제작했는데, 제가 봉투 접는 부분 디자인을 이렇게 넣었습니다. ‘자원함과 기쁨으로.’ 헌금은 봉헌자도 억지로 내지 말아야 하고, 목회자도 억지로 걷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심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일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지을 때도, 이스라엘이 이 일에 자원함과 기쁨으로 헌신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지속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어느 누구도 물질을 드리지 않는다면 성막 건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헌금하지 않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생존하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의 물질을 통해 일하십니다. 성막도 하나님은 그렇게 지으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두 번째 원칙입니다. 성소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곳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를 위해 성소를 짓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모양대로 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지극히 부정한 사람 중에 찾아오시기로 결정하신 결과이며, 그 뜻대로 성소의 모양을 직접 설계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소는 여호와의 이러한 결정과 방법에 순종함을 통해서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방법까지 알려주셔도 그것을 순종하며 행할 사람들이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우리의 마음대로 지은 곳에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과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무시하고 우리 방법대로 행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따르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초점은 언제나 주님이고 주님이 교회의 머리라면,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2. 성막의 배치 :

하나님 중심적인 삶 우선 성막은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광야에서 이동하다가 하나님이 멈춰 선 곳에 짓는 것입니다. 모두 분해해서 들고 다닐 수 있고, 정해진 장소에 머물 때, 성막을 건조하고 그 주변으로 이스라엘 12지파가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출 40: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출 40: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출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러한 성막의 배치는 언약 백성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God-Centered Life입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 Self-Centered life가 있고자 하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자기중심적 삶은 죄입니다. 그러나 자기사랑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어요. 자기사랑을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사랑은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배울 때 가능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이 이스라엘 온 백성의 가장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는 레위지파가, 또 그 주변으로는 모든 지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초점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었다는 것, 이것이 성막의 배치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하나되어 갈 수 있는지를 보여드렸던 도표 기억하시지요? 주님을 우리 공동체에 중심으로 모시고 그분의 모습을 향해 각자가 닮아가며 한걸음씩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때 마땅히 우리 서로는 더욱 사랑하고 용납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다가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우리는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두 번째 메시지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중심에 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성막의 구조와 예배자의 옷 : 거룩과 성결 성막의 구조는 크게 삼중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모형을 보시면,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다시 작은 집 같은 모형이 있습니다. 저 울타리 안의 공간을 ‘성소 마당’(뜰)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작은 집을 ‘성소’라고 부릅니다. 성소 바깥 공간과 성소 안의 공간으로 나눠지는 것이죠. 그리고 성소도

다시 둘로 나눠집니다. (출 26:33)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이렇게 성소 안의 공간 중에 더 작은 공간이 안쪽에 있는데 이곳을 ‘지성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좀 더 넓은 공간을 ‘성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성소는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기에 이 공간을 ‘내성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가장 바깥쪽부터 ‘성소 마당/내성소/지성소’ 이렇게 삼중구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의 언약식 장면을 설명할 때, 시내산 전체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되어서 가장 높은 곳이 모세가 올라갈 수 있는 지성소, 중간이 아론을 비롯한 리더들이 올라갈 수 있는 내성소, 그리고 산 아래쪽에 모든 백성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구분을 함부로 넘어가면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성막의 삼중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의 등급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당연히 가장 거룩의 등급이 높은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입니다. 각

등급별로 사용되는 재료도 모두 구분이 됩니다. 지성소는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휘장의 재료 또한 최고급입니다. 거기에 놓는 ‘수’도 최고의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출 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내성소의 모든 기물들도 순금입니다. 그리고 둘러친 널빤지 벽들은 금칠을 합니다. 그러나 마당의 기물들은 ‘놋’으로 만듭니다. 마당의 기둥들도 그렇습니다.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죠. 출애굽기

28장부터는 성막에서 사역할 제사장의 옷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대제사장의 옷에도 거룩의 등급을 보여줍니다. (출 28:6)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이 재료는 성막 가장 안쪽의 휘장에 사용한 재료와 같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성막의 일부였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대제사장의 의복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출 28:33)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 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출 28:34)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첫째로 옷에 달린 방울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정하신 의복을 입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래서 가슴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는 열두 보석을 달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도 지성소에는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고,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의 속죄를 위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거룩의

규정을 준수하지 못한 대제사장은 죽임을 당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죠. 확인하기 위해서 누군가 들어가면 무조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옷에 방울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출 28: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전승에 따르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발목에

밧줄을 묶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방울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있다가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면 죽은 것으로 알고 끌어내는 것입니다. 둘째로 ‘순금 패’입니다. (출 28: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출 28: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출 28: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순금패에 기록된 단어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대제사장은 모든 백성을 대표하고 있기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여호와께 성결함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삼중구조와 대제사장의 의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성결함’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거룩. 성결. 비슷한 단어입니다. 그럼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갈 때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종교성 있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룩이라고 하니 고상하게 거룩한 척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러면 우리를 이렇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시대의

언어로 거룩과 성결을 표현하면 ‘구별됨’입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란 여호와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으로 구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공간을 나누고, 의복을 구분하고, 음식도 구분해서 먹는 그러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신약시대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가 되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제는 우리의 겉모습이 중요하지는 않아요. 우리의 내면의 연약함은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자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를 닮은 삶입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육신의

것을 도모하지만,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로워진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 구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셨는지를 묵상해보면 됩니다. 그는 세상과 다른 사랑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과 다른 사랑을 할 때 세상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우리는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 속에 홀로 있으면 세상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사람들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할 수 없는 사랑을 행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면... 가장 먼저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눈여겨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구별되고, 그렇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증거궤와 속죄소 : 하나님의 함께하심 마지막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증거궤입니다. (출 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출 25: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출 25: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출 25: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출 25: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출 25: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먼저 여기서도 언어 정리가 좀 필요합니다. 증거궤는 다른 말로 언약궤, 법궤라고도 부릅니다. 모두 같은 용어입니다. 또한 증거궤 위에 위치한 ‘속죄소’는 다른 말로 ‘시은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속죄소라는 표현은 ‘죄를 덮다’라는 의미가 있다면, 시은좌라는 표현은 ‘죄를 용서해주는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증거궤 위에 속죄소가 올라가

있는 형태이고, 바로 이것이 지성소 안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증거궤는 조각목으로 짠 상자인데,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입니다. 한 규빗을 대략 45cm 정도로 보면 길이가 약 1.2M, 너비와 높이는 약 70cm 정도가 되는 상자입니다. 이 상자는 중요한 물품 3가지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1) 십계명 두 돌판 2) 만나 항아리 3) 아론의 싹난 지팡이 하나님이 언약을 하시면서 언약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이 율법이고,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16절에 나오는 ‘증거판’이 바로 십계명 두 돌판을 의미합니다. 십계명이 두 돌판으로 이뤄진 것에도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눠서 두 돌판에 기록했다는 의견이 있고, 각각 열 계명이 동일하게 적힌 두 돌판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정답을 모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야기 모두 가능성이 있는데요. 전자는 가장 큰 두 계명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고, 후자는 언약의 증표라는 측면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언약의 증표가 십계명 돌판인데, 이것을 증거궤에 담아서 보관한 것입니다. (출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그리고 광야 생활 가운데 주시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여기에 보관합니다. (출 16:33)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만나는 기적의 양식이죠. 하나님께서 직접 광야에서 공급자가 되어주신 것을 상징하는 만나를 보관합니다. 그리고 후에 아론의 지팡이까지 보관하게 됩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이유는 민수기 17장에 나오는 리더십 논쟁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의 결과입니다. 즉, 이것들을 보관하는 증거궤가 지성소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증언하는 목적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베푸신 은혜와

기적들을 담은 물품들이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언약대로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돌보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언약의 양식에서도 문서의 보관에 관한 규정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 이것을 잘 보관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행함으로 언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또한 증거궤의 덮개로 사용되는 속죄소에는 ‘그룹’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천사의 모양을 의미합니다. (출 25: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출 25: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출 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증거궤 위에 위치한 속죄소가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용서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성막이 가진 의미가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속죄소가 가진 의미가 성막을 주신 의미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이 언약궤(증거궤)가 주는 메시지는 더욱 강렬해집니다. 증거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후에 백성은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 물이 마르는 기적을

봅니다. 또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아갑니다(수 6:4, 8). 일시적으로 언약궤를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으나(삼상 4장),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소망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다가 이 언약궤를 보관합니다. 성막의 기능을 성전이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언약궤는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성궤’를 찾는 여행을 하는 내용을 다루는 등, 사라진 증거궤의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이상 그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십니다. 이제는 언약궤라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으니, 그 모형에 불과했던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구약의 백성들이 경험할 수 없던 그 은혜가 신약에 있었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증거궤와 속죄소. 이곳이 바로 하나님은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계신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안에 거하시는 것.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 이것은 주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이고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막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성막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성막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모든 신자를 성전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면 우리가 모형에

불과한 성막을 만들 필요는 당연히 없겠죠. 그러나 성전 삼아주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성전의 첫 모델인 성막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막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1. 사람들의 자원함과 기쁨의 순종을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 오늘도 우리들의 그런 예배와 헌신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2.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삶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그 자리, 왕의

자리에서 주님이 통치하셔야 합니다. 3. 거룩과 성결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교회입니다.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으로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4.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 주신 은혜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 안에 더욱 깊이 찾아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출 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출 29: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 29:44)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출 29: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출 29: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오늘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처럼, 오늘 예배하는 우리들도 우리 안에 거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부르셨고 우리가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주님. 우리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 우리를 통해 모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 오늘도 우리가 주의 사랑을 받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가 되었으니, 그 사랑으로

주님을 높이고 서로 사랑하며, 그리고 세상에 그 주님 전하고자 나아갈 수 있는 주님의 귀한 언약의 백성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여호와께 성결!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교회로서 함께 찬양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