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세례예배 설교] | 갈라디아서 3장 27절 _ 세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다 | 인터뷰 설교 | 옥정 사귐의교회 주일예배 | 강정규 목사 | 2025.10.26

2025-10-26 · 갈라디아서 3장 27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2025년 하반기 세례 예배를 하나님 앞에서 드릴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한 순간입니다. 세례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한 사람의 인생이 ‘내가 주인이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자리’로 옮겨지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훈련을 마치신 후, 파송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 사귐의교회에서 회심을 결단한 분들의 새로운 탄생을 나눌 수 있는 이 세례의 시간을 감사드리며, 오늘의 설교는 세례자들의 삶과 결단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세례자들 : 각자 인사 오늘 세례 예배의 주제는 ‘세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다’ 입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먼저 나눌 것은, 이제 우리가 버려버린 옷. 옛사람의 옷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A 형제님에게 여쭤볼게요. 불교적 환경에서 자라며 교회를 거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요? A: 네, 저는 살면서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불교와 친숙한 가정에서 자랐고, 절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불교책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교회는 거부감이 있었던 곳입니다. 누군가를 제 위에

놓는다는 것, 구속당한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그것 자체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헌금하는 거, 예배하면서 노래 부르고 손뼉 치는 거 어느 한 부분도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왜 저렇게 하나? 자기만 믿을 수 있는데 인생의 주도권은 오직 나에게 있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살아온 30년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그래서 진짜 자유로운 삶을 살았을까? 주도적인 삶을 살았을까?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불완전하고 무력했습니다. 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계기는 군대에서 생긴 공황장애였습니다. 공황장애와 합병된 질환들은 제 삶을 바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 당시엔 그냥 살고 싶었습니다.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삶의 진리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 걸까? 진리를 찾아 여러 책과 종교를 기웃거리고, 한때 이념의 언어에 기대기도 했지만 공허했다고 하셨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살아보려 할 때,

사랑하는 어머니를 먼저 보내드리는 아픔까지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그때가 여러 방황을 하다가 마음먹고 이제 막 잘살아 보려는 때였습니다. 삶에서 저를 가장 위로해 주던 분이 어머니였는데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끝없는 허무와 도피로 빠져갔습니다. 어떤 철학적 위로도, 절에 들어가서 사는 것도 저를 구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성경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을 사고, 간증들을 찾아보며 작년 여름 도서관에서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는 내내 신약이 어떻고 구약이 어떻고보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에 형광펜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어두운 모습들도 보였고, 제가 그토록 바뀌고 싶은 모습도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 정말로 나를 지켜보고 나에게 말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살았어도, 너는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고, 너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게 된 것이죠? 그러다 저희 교회를 알게 되었다고요. 유튜브로 설교도 듣고, 제 블로그의 글도 꽤 읽은 후 왔다고 들었습니다. A: 네. 이 교회는 한번 가봐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나 미루고만 있었죠. 아, 낚시 한 번 더 가고, 아 술자리 한 번 더 가고. 낯선 곳에 그냥 가는 것도 내키진 않았습니다. 교회 가면 헌금도 해야 하고 매주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젤 좋아하는 게 주말에 낚시 가는 건데 고기 잡는 베드로한테 그물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한 것처럼 나도 낚싯대 버리고 교회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그건 좀… 그날 목사님이 설교 후에 〈이 세상을 본받지 않으며〉라는 찬양을 기타 치며 부르셨습니다. 그 노래가 뭔지도 몰랐고 예배도 이해가 안 됐어요. 근데 기타 치시며 계속해서 “이 세상을 본받지 않으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되게 하소서”라는 가사를 부르시는데 그때 교회를

나가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양이란 것을 그렇게 길게 들어본 적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내서 발걸음한 사귐의 교회는, 첫날부터 “아 그냥 여기 다니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분위기가 저를 평온케 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 읽은 목사님의 글은, 단상에서 말씀하시는 말씀과 그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그렇게 사시는구나. 그냥 여기 다니고 싶다. 형제님이 지난 1년간

보여준 변화들이 떠오르며 감사한 마음도 드네요. 그리고 이렇게 세례까지 받게 되었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이번에는 B 자매님께 여쭤볼게요. B 자매님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그 교회가 오히려 상처의 공간이었다고 하셨죠? B: 맞아요. 저는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성이 강하셔서 폭언을 자주 일삼으셨고, 술에 취해 화를 이기지 못해 물건을 부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기에 부모님은

돈 문제로도 자주 다투셨습니다.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아버지께 반항하는 저에게 “너만 조용히 하면 이 집안이 평안할 텐데”라고 하시며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어머니까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마치 이 집안의 불순물이 저인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셨기에 저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제게 교회는 가식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이던 어머니는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집에서는 저에게

부정적인 언어를 쏟아내셨습니다.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 또한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장할수록 교회가 싫어졌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지옥에 갈까 봐 무서워서 억지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말을 툴툴거리면서도 맏딸로서 해야 할 일은 성실히 했지만, 돌아오는 건 “당연히 네가 해야지”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관계를 통해 메우려 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주변에 친구들이 늘 가득했고, 함께 있을 때는 즐겁고 공허함이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다시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며 그 허전함을 달래려 했습니다. 20대 초반까지도 술을 마시며 지냈지만 주일 예배는 꾸준히 나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년이 되고 교회 일에 너무 많이 불려 다니면서 불만이 쌓였고, 교회 간사님과

부딪히며 결국 ‘가나안 성도’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는 더 이상 다니기 싫었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자니 마음에 찔려 다른 큰 교회로 옮겼지만, 일본 유학을 가면서 신앙생활을 완전히 놓아버렸습니다. 결국 그 방황의 끝에서 우리 C 형제님을 만났다고요. B: 네. 결혼으로 도망친 것이었죠. 하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남편이 채워주길 바랐고, 신앙적으로도 이끌어 주길 기대하기도 했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불만은 쌓여갔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깊어졌습니다. 피폐해진 저의 삶에는 아이들을 예뻐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이 힘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동두천으로 이사 오는 과정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저의 마음의 상처도 커서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귐의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말씀이 좋았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 길이 설레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예배의 설렘이 회복되었다니, 하나님이 오랜 시간 B 자매님을 기다리셨던 것 같네요.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고요. B: 네.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어릴 때 교회 안에서 겪었던 인간관계의 상처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불편한 표정을 짓는 제 모습을 보며 ‘이게 맞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풍삶초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깨어진 세상, 그리고 나의 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내가 이렇게 공허한 삶을 살아온 이유가 ‘자기 중심성’ 때문이었다는 깨달음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풍삶초를 할 때만 해도 저는 ‘탐구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진지한 신앙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가족공동체’도 궁금했습니다. 과연

그런 공동체가 실제로 가능할까? 내가 손해 보는 삶이 가능할까? 여태껏 내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 손해 보는 삶을 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반신반의했지만 자매님들을 알아가면서 서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공동체 안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풍삶초에서는 ‘탐구’였는데, 이제 이렇게 회심의 결단을 모두 앞에서 고백하며 세례를 받게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이번엔 C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C 형제님은 오랜 신앙인이셨죠. 조금 쉽지 않은 시간도 걸어오셨습니다. C: 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혼 후 어머니는 돈을 벌러 일본에서 장사를 시작하셨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동생과 같이 자전거로 신문배달도 했습니다. 저는 동네 목사님 전도를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 찬양 율동도 하고 청년 때부터는 성가대 활동도 하였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찬송가를 부를 때면 내가 거룩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대 이후, 이사를 가게 되었고 교회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지만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성가대 연습과 11시 예배, 점심시간 후에 2시 오후 예배, 성가대 연습하고 저녁에는 교회 목사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멀리까지 교회를 다닌다는 칭찬, 신실하고 믿음이 좋은 청년으로 보이기를

즐긴 것 같습니다. 신앙이 좋은 청년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제 안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교회를 가면 죄인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결국 주님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동유럽 여행을 준비하다가, 유럽의 문화를 즐기려면 댄스를 배워야 한다고 해서, 홍대 클럽에서 살사 댄스를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C: 네. 살사 댄스의 매력에 빠져서 살사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밤에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삶을 살면서 주일에 교회를 빠지는 날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한 동안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살사댄스를 알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8개월 만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살사 댄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교회와 멀어졌는데, 거기서 신앙생활을 하던 아내를 만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된 것이죠? C: 결혼 후 처가댁에서 4년간

같이 살면서, 서울에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보험회사 콜센터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감정노동으로 일이 힘들어서 잠시만 일하고 다른 일을 해야지 생각하면서 입사했는데, 지금까지 12년째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지금은 팀장이 되었습니다. 집 문제와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던 중 동두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는 적극적으로 교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발견한 교회가 사귐의교회였습니다. B 형제님 부부가 성탄절에

댄스를 보여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머나먼 곳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이렇게 함께 예배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D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번 세례를 신청하고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또 신학을 공부하고 사역도 하셨던 삶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절을 “가장 교만했던 때”라고 고백하셨어요. D: 네. 저는 신학도 공부했고, 오랜 기간 교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보다 ‘나은’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나은 신앙의 중심에는 ‘개인’의 신앙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란 공동체로 모이고, 움직이지만 오히려 신앙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심 이전의 제 신앙은 정죄와 교만, 위선, 거짓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개인의 감정과 얕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전부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얕은 지식으로,

겉으로는 웃음으로, 선한 모습으로 사역하고, 마음으로는 수많은 정죄와 비난,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습니다. 감정과 개인의 경험 위주의 사역은 저를 마음대로 뒤흔들고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마음과 지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에 대한 표징으로 저는 죄 속에서 살면서 기분에 따라 회개하고, 그 기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잘못된 예배를 오랜 시간 드려왔습니다. 결국 저의 이기적인 신앙, 표면의 행위와 감정 중심의 신앙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는 점점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무너져 내려갔다.” 굉장히 힘든 개인적 시간들을 보내면서 가졌던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D: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마음이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마음 또한 있습니다. “정말로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렇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두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고 사람들의 눈빛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스스로 엄청난 정죄감과 상처 속으로 도망가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계속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올해 교회에서 진행한 풍삶첫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D: 네, 사실 ‘풍삶첫’도 아내의 권유로 조금은 억지로 시작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라도 해야 다시 공동체 안에서 잘 소속되겠다.’ 그런 마음이었죠. 그런데 그 시간이 하나님이 저를 만지시는 시간이었어요. 10분 묵상·10분 말씀·10분 기도의 10-10-10을 매일 지키는 것은 신학생 시절 ‘사람 앞에서’ 하던 긴 기도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이전에 저의 신앙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일에만 열심을 냈거든요. 그런데 조용히 하나님과만 마주하자 조금씩 제 안이 바뀌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좋은 것 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을 선택하며 내 인생의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꽤나 많은 비중이 ‘하나님’으로 선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분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던 시절을 지나, 하나님께 마음이 열렸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서 옛사람의 옷을 벗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만지셨는지 이어서 듣겠습니다. 먼저 C 형제님부터 나눠볼까요.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깨달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C: 오랜 교회 생활 중 겉모습의 신앙인이었구나! 깨닫게 된 말씀이 있습니다. 최근 요한계시록 말씀을 들으면서 에베소교회를 책망하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말씀에 찔림이 컸습니다. 겉으로는 늘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형식적인 신앙에 빠진 그 교회의 모습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지만, 또한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랑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교회 생활 중 겉모습이 신앙인으로 교회를 다녔던 제게 주시는 말씀과 같았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C: 전에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보다는 나 중심적인 태도와 욕심이 컸습니다. 제힘으로만 살아가려고 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불평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지만, 말씀을

배우면서 제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형제 자매님들과 교제하고 나누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매일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한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C: 네. 저는 저를

믿지 않습니다. 예전 경험으로 볼 때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에 놓인다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변 환경이 내가 원하는 것대로 살아가다가는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 중심적인 대로 사는 게 편하고 육신대로 사는 삶이 즐겁고 내 몸이 원하니까요. 하나님과 멀어지면 말씀도 은혜도 행복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아내에 대한 부분도 간증에서 중요했습니다. C: 주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죄를 짓는 환경이 아닌, 믿음 안에 있는 환경으로 살라고 아내를 주셔서, 항상 아내의 입을 통해 찔림을 주시고, 사랑하는 자녀를 주셔서 책임감을 길러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니 사람을 통해서 만나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그렇게 해석하고 바라보는 눈이 생기신 것이죠. C 형제님의 모습이 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B 자매님께 여쭤볼게요. 가족과의 관계에 먼저 변화가 생겨났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엄마 먼저’ 양육 과정에 대해서 언급해 주셨어요. B: 네. ‘엄마 먼저’ 교육을 받으며 원망만 하던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망의 대상이 아닌 함께 걸어갈 배우자로 바라보며, 엉킨 관계의 매듭을 풀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주님은 고쳐 쓰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도 남편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종종 느낍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자녀는 내 소유물이 아닌, 주님이 주신 선물’임을

매일 스스로에게 상기합니다.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아이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통제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화를 많이 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화를 냈는데도 아이들은 단지 ‘엄마라서’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었다는 사실을 주님을 알아가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과 숙제였던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복음이 영향을 미쳤다고요. B: 사랑하기로 결단했기에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어머니를 안아드렸습니다. 정말 못할 것 같았는데 결단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안아드리는 것이 어색하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저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결단하고 나서 신기하게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종종 제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제가 결단하면 그 결심을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부모님이 조금씩 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손주들에게서 웃음을 찾으셨고, 아버지도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요. 그 모습을 보며, 주님이 제 과거의 상처를 회복하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관계에 대한 마음이 바뀌고 노력하고 계시는 모습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재정에 대한 태도의 변화도 이야기하셨죠. B: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결혼 후에는 더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그 속에서 무시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돈이 곧 힘이고 권력’이라 믿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회심했다면 내 지갑의 소유권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을 배우고, 고민 끝에 십일조를 드리기로 결단했습니다. 모아두었던 돈도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통장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안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유 없는 달에는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풍삶초, 풍삶첫, 풍삶기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배우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달았기에 불안해도 나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우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진짜 삶의 변화가 확인되는 순간이죠. 그리고 그 여전한 고민도 우리의 실제 모습이지만, 저는 주님을 따르는 삶이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준다고 믿습니다. A 형제님은 어때요? 형제님은 신앙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를 경험하셨다고요? A: 그렇게 10월 27일이 되면 저는 정확히 1년을 교회에 출석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10월

26일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 우려와 다르게 베드로처럼 고기 잡는 일보다 주님을 따르는 일을 선택해서 꾸준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1년밖에 안 되는 초보 신앙인이지만, 적어도 저는 왜 계속 내 발걸음이 친척 중에 믿는 사람이 없는데, 불교 집안이라면 집안인데 그 이유를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를 다니고 공동체 덕분에 제 삶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이란 게 생겼습니다. 처음으로 끝까지 붙잡아야 할 한가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삶에서의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이제 그 고통 안에서의 의미를 그 안에서의 인내를 진실로 살아보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제가 타인을 위해 기도해 보려고 하게 된 것이고, 제가 이 삶을 다시 부정하기보다 기쁘게 받아들이고, 견뎌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회피했던 제가 일을 하고 있고 또 이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게 가장 큰 챌린지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그 일이 저에겐 큰 변화입니다. 죽도록 고통을 회피하던 제가 고통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며 정말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체감합니다. 더 이상 이 삶이 고통으로만 가득 찬 허무한 세상,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너무 감사한 고백입니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감사가 참 많았습니다. A: 저는 하나님을 믿을수록 제가 연약하고 무력하고, 제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 혼자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며 더 느낍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서 가끔 제가 다시 돌아서고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다시 주일에 이곳으로 발걸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여기 형제자매분들 덕분입니다. 저의 여정을 도와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지만, 당장 생각나는 분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하는 목사님, 청년들의

모범이 되어주시고 삶으로 보여주시는 전도사님과 간사님, 초반에 교회를 떠나려고 했던 저를 먹여주고 마시게 해주며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고 도와줬던 청년 리더 장태준 형제, 그리고 항상 진심으로 따뜻한 말과 얼굴의 위로해 주는 팸 리더 태희. 다 말씀은 못 드렸지만,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던 사귐의교회 형제 자매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회는 하나님 보러 오는 곳이라고 누군가 그랬지만, 저는 여기 있는 분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저의 간증은

여기 계신 모든 형제자매 분들입니다. 너무 감사한 고백입니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감사가 참 많았습니다. 개인주의였던 제가 이제는 공동체에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기도해달라는 것도 약해 보이고 민폐 끼치는 거 같아서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려는 제 약한 마음이 다시 있는데요. 그래서 세례식이 저에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제 새로운 삶을 다시 태어남을 하나님께만 고백하는 게 아니고 여기 계신 공동체 형제 자매님께 고백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저를 축복해 주세요. 제가 가는 이 길이 사실 가족도 크리스천이 아니고, 크리스천 지인도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 서게 된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교회와 공동체를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함께하는 저의 여정을 이끌어 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진솔한 A 형제님의 이야기,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부탁까지 잘 들었습니다. 이제 다른 삶의 이야기를 만나봅시다. B 형제님은 최근의 금요설교에서 세례에 대한 결단의 확신을 얻었다고 하셨죠. 그날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려주세요. D: 세례를 신청하고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세례를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하였던 시간 직후에, 금요설교를 통해 사단이 내게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나안 입구만 빙빙 돌게 하려고 하는구나, 내가 어떠한 결단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구나.’ “감동은

위험하지 않아, 결단만 하지 못하게 해라”, “믿음도 중요하지만, 현실도 걱정해야지.” 모두 제가 맞닥뜨린 문제였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들이 사단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목소리가, 사단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기쁨과 깨달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속에서는 기도의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혼란하고 고민하는 제 마음을 뒤로하고,

세례를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네. 형제님의 고백이 정말 귀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그 한 걸음이 바로 믿음이죠. 네 분 모두,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공동체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 이제 하나님이 네 분에게 새 옷을 입히셨습니다. 세례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건 ‘이제부터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살겠다’는 삶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예배의 끝이 아니라, 인생의 새출발이죠. 이제 네 분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세례 이후,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C 형제님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C: 직업의 특성상 사망진단서를 접수하고 유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반복되고 처음에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전도서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음을 모든 사람이 마음에 두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통해 죽음의 현장 속에서도 생명의 의미를

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자녀를 만난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 생각됩니다. 내 욕심으로 인해 물질만을 쫓아서 부동산 투자와 주식 등으로 투자를 잘해서 돈이 많아졌다면, 저는 주님을 찾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기질을 잘 아는 주님은 물질 대신에 아내를 주셨고, 예수님이 양을 인도하듯이 저 또한 인도함을 받는 삶인 것 같습니다. 삶을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소중한 가정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는 주님.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라는 성경 말씀처럼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품고, 내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서, 내가 주인이 아닌 하나님의 주인 된 삶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네, “삶으로 예수를 드러내는 신앙.” 그게 바로 진짜 예배자의 삶이죠. B 자매님은 어떠세요? 주님을 만나고, 관계 속에서 많은 회복을

경험하셨잖아요. 이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B: 풍삶기에서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인격과 인생이 바뀐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회심 후 주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했고, 말씀을 읽고 기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자주 넘어지고, 때로는 일어서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회심한 사람일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크게 넘어질 때마다 주님이 다시

길 위로 인도하심을 느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했고, 그 삶을 살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작은 습관들이 비록 별것 아닐지라도, 그것이 있기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의 불행했던 과거도 주님이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주님은 누구보다 저를 사랑하시고, 저는 마땅히 사랑받을 소중한 존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 주님이 자매님의 삶을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A 형제님은요? 앞으로 어떤 믿음의 길을 걷고 싶나요? A: “너도 받고 싶어 하는 대로 똑같이 남들에게 먼저 대하라”는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정말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내가 이미 사랑을 받았음을 깨닫고, ‘더’를 외치지 않고 내가 받고 싶은 대로 주변에 따뜻한 말 한마디, 기도라도 해주는 것,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 역시 주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믿으며 공동체로 살겠습니다. ‘다른 이에게 먼저 사랑을 베푸는 삶.’ 그것이 예수님 닮은 삶의 시작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D 형제님. 앞으로 어떤 결단으로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D: 솔직히 지금도 완벽하게 새로워진 건 아닙니다. 아직 흔들리고, 부족하고, 두려움도 많아요. 그런데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도망치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겁니다. 세례 교육을 받으며 “세례는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전의 저라면 제 기준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이 아니면 절대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매일 고백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죄 중에 살아가는 시간도 있고, 갈등하며 고민하는 시간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이 저의 주인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저의 회심의 시간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게 바로 세례의 고백입니다. 완전한 사람보다는 매일 주님을 고백하는 삶. 오늘

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A 형제님은 세상의 옷을 벗고, 말씀의 옷을 입었고, B 자매님은 상처의 옷을 벗고, 사랑의 옷을 입었고, C 형제님은 형식의 옷을 벗고, 진심의 옷을 입었고, D 형제님은 교만의 옷을 벗고, 겸손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네 옷은 결국 한 옷, “예수 그리스도”로 향합니다.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옷은 완벽한 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닙니다. 넘어지는 우리를 덮어주고, 수치와 두려움을 가려주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는 옷입니다. 오늘 세례는 그 옷을 입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옷은 평생 입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례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매일의 삶 속에서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혹시 오늘, “나도 다시 새 옷을 입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십니까? 다음 세례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라면, 오늘은 주님 앞에서 다시 세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으로 옷 입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