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조율 / 강정규 목사

2021-09-26 · 출애굽기 17-18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목회자를 상담하는 사역을 하는 ‘지미 도드’와 ‘래리 맥누선’ 두 분이 공동으로 쓴 책이 있는데요, 영어 제목으로는 ‘Pastors Are People Too’라고 합니다. 한글 제목이 우리에게는 더 와닿게 번역이 되었는데 <목사도 사람이다>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고, 설교를 준비하다가 관심이 생겨서 일부분을 살펴봤는데요. 도서 소개란에 보면 “목사에게도 ‘내 편’이 필요하다!”라고 되어 있고, 그 밑에는 “목사들은 말하지 못하는,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해보면, “교인들은 종종 그들의 목사를 슈퍼맨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심하게는 예수님 대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목사는 영적인 지도자인 동시에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 행정가이기도 하며, 상담가, 봉사자이기도 하다. 결국 교인들의 도움 없이 목사 혼자 그 사명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와 평신도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목사 혼자서 할 수 없고, 또 목사에게 그런 기대를 가져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 또한 교회의 사역에 있어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죠. 제가 공부를 했던 ‘에스라’에서는 종종 교수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목사를 너무 빨리 행정적으로 준다는 것이죠. 적어도 나이 마흔은 되어야 진짜 인생을 조금은 이해하고 목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 친구들이 이제는 마흔이 되었고, 저는 빠른 연생이라서 몇 개월 남았는데요. 비로소 지금이 ‘목사’라는 타이틀에 부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겠죠. 저는 2016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2017년에 바로 개척하게 된 케이스인데요. 다행히 제 안에는 교수님들이 해주셨던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 동의가 되어서, 개척을 했던 35세의 나이부터 40이 될 때까지는 ‘목사라고 불리지만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을 보내는 것이다’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확실히

올해 교회 공동체도 조금 더 커지면서 정말 다양하게 해야 할 일들과 신경 써야 할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스스로 목사들 가운데서도 가장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족한 저를 아셔서 좋은 교회, 좋은 성도님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저에게 맞는 자리와 역할을 맡기셨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도님들께도 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책에서 걱정하는 슈퍼맨과 같은 상태, 그 상태가

주는 중압감 속에서 번아웃되는 그것이 아직 저와 가까운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 책에서 말했던 내용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님들에게 ‘목사’라는 자리가 참 크구나...”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목사님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많은 것이 왔다 갔다 한다고...” 기분이라든지, 열정의 태도라든지, 여러 가지 부분이요. 그러면서 점점 제 자리가 가볍지 않음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 사귐의교회를

사랑하고, 사귐의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자랑합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 공동체를 섬길 수 있도록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급적 최선을 다하고 싶고, 좋은 말씀으로 양육하고 싶고, 잘 목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로 인해서 거룩한 부담감이 참 큽니다. 피할 수 없죠. 부담이 없는 목회는 책임지지 않는 목회와 같습니다. 영혼을 다루는 일에 어찌 부담이 없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부담을 느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그 부담만큼 더 열심히

힘쓰고 있습니다. 리더마다 여러 스타일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위 워 솔저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명 깊게 보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전쟁 영화인데 지휘관이 참전하는 병사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하는 연설이 있습니다. 지휘관이 모두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에 나가서 모두를 무사히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이건 맹세합니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며, 맨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것입니다. 내 뒤에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린 살아서든 죽어서든 다같이 고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저 영화를 보고 나는 저런 목회자가 되어야지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제가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만약 저의 수고와 희생으로 이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에 제 삶을 드리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두려움도 있습니다. 최근에 동료 목회자가 방문해서 “고민이 뭐야?”라고 물었는데, 제게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삶의

패턴으로 평생을 잘 버티며 목회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주변에 열정이 많은 목회자들이 그것을 쏟아부으며 달려가다가 쓰러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이 아시는 제 사역의 좌우명처럼, “저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냥 하나님의 때에 잘 맞게 잘 닳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꿈꾸는 것이 있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공동체가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천천히

가도 좋으니,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출애굽기 17장과 18장을 읽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입니다. “너 혼자 할 수 없어. 사람을 세우고 더 긴 여정을 준비해야 해.”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비전과 깨달음을 3가지로 정리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1. 갈등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지켜가기 사귐의교회에 저는 여러분이

어떤 순서로 어떤 모습으로 왔는지가 눈에 선합니다. 정말 작고 작은 공동체였는데... 아무도 모르게 교단에서도 정말 관심 밖에서 시작한 조용한 공동체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도 주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그것을 쫓아 가야 하겠죠. 지나온 여정들을 생각해보면 행복하면서도 어떻게 왔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만약 다시 2016년 말로 개척을 준비하던 상황으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한다면, 사실 두려움이 덜컥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목표였는데, 결국 그들은 실패하고 여호수아가 이끄는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쫓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일을 끝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방법에 맞도록 일이 진행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굉장히 겸손한 마음으로

묵상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신의 모습과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점검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계획은 언제나 주님 손에 잘 순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천천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언제든 받아들이고 그 주어진 상황에 순종할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은 실패의 교훈이죠. 그럼 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모습을 우리가 취해야 할지 말씀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출애굽기 17장을 펴면 광야라는 상황 속에서 계속 벌어지는 여러 불편함들이 있습니다. 역시 광야에서는 ‘물’이 가장 큰 문제였지요. 한번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불편한 상황과 환경이 있었고, 우리의 삶에도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그 후에는 ‘엘림’이라는 풍족한

상황으로 이끄시죠. 거기서 다시 신광야로 이동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허락하셨고, 이제는 르비딤에 이르러 여전히 물의 부족이라는 ‘현실적 고민’을 떠안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평’을 터뜨립니다. 이 불평은 곧 지도자인 모세를 향한 ‘원망’으로 이어지죠. (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출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출 17: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여기서도 물 없는 르비딤으로의 여정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평할만한 상황을 계속 마주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잘 못 하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에서 벗어나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게 됩니다. 그것은 은연중에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면 좋은 것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번 지금의 여러분이 겪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어쩌면 그것이 ‘고난’일지라도 하나님이 이끌어서 통과하게 하시는 과정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되짚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가 아닐까요? 모세와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불평 속에서 모세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17~18장을 모두 살펴보면,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200만에 이르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 나아갑니다. 갈등의 상황을 마주하면서, 그 대안을 찾게 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각종 불만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행정조직 개편을 하게 됩니다. 제가 청년 사역을 오래했기에

‘연애 상담’은 거의 필수과목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연애를 할 때도 싸워봐야 해요. 갈등을 직면해보고 해결하는 과정도 경험해봐야 합니다. 원치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한번 봐야 합니다. 제가 기억에 남는 것이 DTS가 6개월입니다. 처음에는 다 하나같이 ‘천사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모아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 좋아요. 그런데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점점 피폐해져갑니다. 그러다가 전도 여행을 가면 이제 끝을 보죠.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예민해지죠.

사실 그 과정에서 진짜 인성을 보는 것이죠. 군대에서도 참된 사람의 인성은 병장이 되어봐야 나온다고 하죠. 진짜 그 사람을 볼 수 있어요. 교회는 사실 갈등이 생기기 가장 좋은 구조입니다. 직장처럼 서열 관계가 뚜렷한 것도 아닙니다. 직장에서는 월급 받기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도 않아요. 교회는 정말 무책임하기 굉장히 쉬운 구조입니다. 다른 어떤 곳보다 내 의지로 모든 것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쉽게 생깁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기대치는 또 높아요. 직장 상사가 나에게 뭐라고 하면 그냥 원래 윗사람이 그런가 보다 하지만... 교회의 리더가 나에게 뭐라고 하면 그건 또 기분이 많이 상해요. 세상에서는 그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 되는데, 교회는 또 그 이상으로 서로가 다가서길 요구하죠. 그러므로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저는 갈등이 없는 교회는 오히려 문제가 있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됨과 함께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갈등이 없거든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방식은 ‘나’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라는 단어와 ‘함께’라는 단어를 주목해보십시오. 나를 살리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잠깐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 옆에 앉을 때까지 관계를 맺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경은 우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새번역 성경 2:10인데요. (엡 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작품들이 아니고 단수형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 분명히 우리가 가진 각자의 자기중심적 마음들이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향한 과정임을 믿으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나는 바이올린

- 유상열> 나는 바이올린 아무도 돌보지 않는 연약하고 초라하게 그저 먼지 속에 있네 누군가 다가오네 사랑의 마음을 갖고 나를 들어 연주하네 그의 뜻에 맞도록 가장 위대하신 연주자 앞에 나의 모습은 부끄럽지만 그가 나를 조율 할 때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 보네 주님 날 연주하네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내 연약한 모습도 주님 손 안에서 아름답게 되네 난 주님만 노래해 가장 아름다운 맘으로 내 연주가 다하는 날 주님 그 품 안에 저는 이 찬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그가 나를 조율할 때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 보네’입니다. 저는 대학교 때 동아리가 합창단이었습니다. 합창곡을 처음에 받으면 다 개판입니다. 그런데 합창의 묘미는 시간이 지나가며 맞춰가는 것에 있지요. 그것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모습입니다. 조율 :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름. 여러분. 우리는 피아노와 같아요. 각각이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피아노는 건반이 총 88개인데, 이 소리를 내기 위해 220개의 현이 있어요. 그런데

그 건반은 중앙의 표준음(A음)에 모두 맞추어서 조율합니다. A음을 기준으로 서로 조율되어 갈 때 그 많은 줄이 함께 눌려서 아름답고 좋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공동체의 A음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준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 바로 이 A음에 맞춰서 우리를 조율해가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2. 하나님이 가르치신 승리의 비결 하나님께서는 르비딤의 식수난을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돌보고 계신

것이죠. 이 해결의 과정에도 모세를 사용하셔서 일하시는데, 홍해를 가르셨던 모세의 지팡이를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하시는 것은 공동체 가운데 모세의 리더십을 세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리더는 권위가 있어야 하죠. 그러나 그것은 권위주의를 위해서 피라미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비롯한 교회의 사역 리더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하나님을 보면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라는 한

인간에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맡길 때는 그것을 감당할 힘과 능력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죠. 실제로 후에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지도자가 바뀌고 나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모세를 통해 행하셨던 기적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반복하여 주십니다. 대표적인 것이 요단강이 마른 사건이죠. 홍해의 기적이 여호수아 버전으로 다시 반복됨으로써 모세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여호수아 때에도 함께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어떤 사역으로 부르시거나, 어떤 일을 맡길 때. 혹은 교회가 아니더라도 가정에서 나를 영적인 초석으로 삼을 때... 그것을 감당할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혹은 나를 그 자리에서 훈련시키고 빚으셔서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고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고 따라가면 됩니다. 17장에는 아말렉과의 전투가 나와요. 이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그것이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역할입니다. 여호수아의 몫은 순종하여 전장으로 나가는 것이죠. 모세는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로 갑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는 형국이 됩니다. 이것은 전쟁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 하심에는 사람이 꼭 사용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그 사명을 다하고 있고, 모세는 그 뒤에서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팔이 피곤해요. 하나님이 정말 안 피곤하게

하시려면 하셨겠죠.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팔에 그 능력을 안 주셔요. 왜요?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피곤하지 않을 능력은 주시지 않았지만, 대신 무엇을 주십니까? 모세의 옆에 그것을 도울 사람들을 주신 것입니다. 아론과 훌. 두 사람이 모세 옆에 함께 있었지요. (출 17:12)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니,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출 17:13)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고 해가 질 때까지 버텨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승리를 합니다. 이 뒷부분 이야기가 중요한데요. (출 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여러분. 이 전쟁 누가 이기게 한 것이죠?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인정하며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라는

뜻인데, 승리를 주셨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승리의 깃발입니다. 사실 이것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탄의 마지막 시험인 경우가 많아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어요. 서로 자기 영광으로 돌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역시 나는 싸움의 신.”, 모세는 “역시 내 팔은 승리의 팔.”, 아론과 훌은 “우리가 지혜롭게 대처한 결과야.” 하고 스스로 영광을 돌리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서로 격려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반대로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남 탓을 하기보다 서로 격려하고 감싸주고 위로해 줘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기계적일 수는 없지요. 아까 제가 합창 이야기를 했지만, 저희는 정말 음악회 앞두고 기합받고 이러면서 연습했어요. 혼나면서 했어요. 긴장감을 줘야 최고의 실력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 선의를 서로 믿고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유명한 옥한흠 목사님이나 이찬수 목사님이나... 이런 분들도 얼마나 단호하고 엄격한지 몰라요.

특별히 부교역자에게 정말 호되게 가르칩니다. 그 중심에 대한 이해함이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분명 사탄은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 교회가 하나 되고,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공격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힘쓰십시오. 늘 하나님을 우리의 중심에 두십시오. 특별히 분열은 사탄이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신약 고린도교회에서

파를 나눠서 파당을 지었을 때, 바울이 고백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저는 목사로서 제 역할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동역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죠. 교회에는 빛나는 역할이 분명 있어요. 찬양인도자. 앞에 서는 예배팀.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일이죠. 그런데 차량 운행. 쓰레기 정리. 주방 설거지. 창고 정리. 방송팀. 이런 사역들은 눈에 잘 안 띄죠. 그러나 우리는 함께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해가며 어떻게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희생은 믿음이 강한 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포기하고 좀 더 수고하게 되는 일 앞에 불평보다, 내 믿음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자리라고 여기십시오. 제가 합창단에서 첫 번째 음악회를 할 때였어요. 보통 3개월 동안 주 2~3일씩 저녁마다 모여서 연습을 해요. 그때 회장 선배님이 있었는데, 갑자기 당일에 방송실에 뭔가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 선배님이 그 자리를 책임지느라 앞에 서지도 못했어요. 2~3개월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연습을 했는데... 그런데 그

음악회에서 올리는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정말 하나님임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면... 그때 비로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제게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모습입니다.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결국 18장에 가서 모세는 공동체를 이끄는 과중한 업무로 쓰러질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게 됩니다. (출 18: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출

18: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출 18:18)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중간 리더들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저에게도 참 간증이 있는데요. 제가 찬양 인도를 개척 때부터 계속 혼자 맡아왔지요. 설교하랴, 찬양 인도하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세울 수는 없지요. 본문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력적인 부분을 따지고 싶은 것보다, 누군가 번아웃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이 되었던 것이 제 마음이었어요. 그러다가 금요일과 주일에 6명의 인도자를 세워 나눠서 맡기게 되었는데... 저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는 예배는 최선의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분들이 불성실하게 감당하면 못 맡깁니다. 적어도 예배에 대한 것은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역을 잘 나눴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저희 교회는 청년부, 중고등부, 아동부 사역을 모두 평신도 사역자들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비취 집사님은 개척하던 때부터 교육부 사역을 담당해주셨고, 그 뒤로 정은진 집사님과 이세훈 집사님이 부장님으로 또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년부 사역에서

제가 빠지는 것은 제가 가장 고민하게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아직 내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은 주님의 이끄심 속에 다 이유가 있음을 또 고백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 계속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저희 공동체가 앞으로 준비해나가야 할 ‘십부장’을 세우는 일들입니다. 이제는 서서히 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사역의 양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습니다. 저는 어떤 부분에서 제 에너지가 줄면 그것을 또 다른 사역에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또한 늘 우리 공동체에 어떤 것이 유익할까 고민을 합니다. 이제 저희 공동체가 혼자 돌볼 상황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30명이 넘게 식구가 늘었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실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이 들려주는 사람을 세우는 기준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시는지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출 18:21)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출 18:22)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사람을 세우는 일, 특별히 사람을 이끄는 리더를 세우는 것은 성경에서 언제나 기준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시는데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시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1) 능력 있는 사람(이쉬 하일)입니다. 여기서 ‘이쉬 하일’은 지도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는 하나님 공동체 안에서 이것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자기 방법대로 일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내

방법’대로 사랑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시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이 없이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진실함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4) 불의한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주어진 권위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면 그것은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럼 담임목사의

직을 맡고 있는 저는 이 말씀에 부합하는가? 부족함을 따지고 보자면 많은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끝까지 순종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저를 계속 훈련하고 다듬고 계시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완성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이 부르심 앞에 순종하는 자들을 그 순종의 자리에서 다듬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교회의 어떤 사명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세상 모든 민족을 바라보며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그 사명을 이어받았고,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사명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정체성을 주님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을 통해 돌아올 영혼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시대에 ‘감염 재생산지수’를 따집니다. 확진자 한 명이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는 정도입니다. 저는 복음 안에서 복음 재생산지수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신앙으로 초청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첫째, 갈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결하며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잘 용납하고 이해하며 지켜주어야 합니다. 분명히 그 과정을 이용해서 사탄은 분열시키려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 있으십시오. 진리로 무장하시고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시오. 서로를 붙들어주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되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하나님의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모세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여호수아가 필요했고, 아론이 필요했고, 훌이 있었으며, 수많은 리더들이 그를 도왔습니다. 이 공동체를 위해서 여러분이 함께 도와야 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상생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는데,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진실하고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귐의교회 안에서 우리는 함께 주님의

뜻 안에서 자라가고, 또 흩어져 각자의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뜻으로 주변을 섬기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뭉쳐도 교회, 흩어져도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의 작년 표어를 기억하십니까? “모여서 함께 최고의 예배를, 흩어져서 삶으로 거룩한 흔적을!” 혹시 내 삶이 지치고 흐트러질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A음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습. 그분을 나의 기준 삼아 내 삶을 조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맡길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을 사용하시고,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 비전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주님 날 다스려 주옵소서. 나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