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매일성경.346 _ [요한계시록②-5] | 성경특강 | 요한계시록, 마지막 메시지 | 요한계시록 19~22장 | 강정규 목사 | 2025.08.08

2025-08-08 · 요한계시록 19~22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요한계시록 복습> 1주차 : 아포칼립시스! (계 1장) 계시록은 비밀의 책이 아니다. 누구나 읽고 듣고 지키도록 쓰인 서신이다. 묵시문학은 로마의 박해 아래 있는 교회를 향해, 하늘의 시선과 하나님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절망 속 소망을 노래)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을 초월해 계신 분이며, 그분의 미래적 결말을 가지고 우리의 현재로 오시는 분이다. 교회는 초월 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신다. 2주차 : 교회는 승리하리 (계 2-3장) 요한계시록은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로 보내진 것이다. ‘칭찬 + 책망 + 권면’의 구조로 각 교회에 메시지를 보내어, 성도들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돌이키거나 정진하도록 한다. 책망받는 요소는 교회 안에 들어온 세속 가치, 우상숭배 요소 등에 타협하는 것이다. (황제숭배, 길드 문화 등, 실제적 고민) 충성(피스티스)을 명령하는데, 이는 단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신실한 믿음의

지속적인 싸움이다. 이미 받은 면류관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주님의 권면을 기억하라. 3주차 : 두루마리를 먹으라 (계 4-11장)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담은 두루마리는 오직 예수님(죽임당한 어린 양)만이 펼칠 수 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환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회복이 이 땅에 임하는 방식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회복을 위한 경고 + 구원) 세상이 당하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보호하신다. 교회는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린 양을 따라 죽기까지 충성하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먹고 증언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4주차 : 떠날 수 있는 용기 (계 12-18장) 악의 삼위일체 : 사탄(용) - 바다 짐승(국가나 체제) - 땅의 짐승(거짓 선지자) 짐승의 표 vs 쉐마 이스라엘 : 누구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666은 하나님을 흉내 내지만 결코 하나님과 같아질 수 없는 사탄을 상징한다. (게마트리아 : 악의 축, 네로 황제)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 :

D-day와 V-day 사이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이미 이기신 그리스도. 그의 편으로 승리를 소망하는 자들. 어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등장하는 구원받은 자의 무리 : 어린 양과 함께하는 14만 4천 명. 그들이 노래하는 영원한 복음. 일곱 대접 심판 : ‘다 되었다’ / 하나님의 테마곡. 17~18장에 나오는 악에 대한 추가적 서술 : 큰 음녀 바벨론 (붉은 짐승을 타고 앉은 화려한 여인)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한 줄 요약 1주차:

하나님은 현재를 초월해 계시고, 교회를 통해 그 뜻을 이 땅에 이루신다. 2주차: 교회는 세상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충성함으로 승리해야 한다. 3주차: 심판 중에도 구원은 계속되며, 교회는 말씀을 먹고 증언해야 한다. 4주차: 세상 권세에서 나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 (18장) 17장 –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바벨론 배후의 영적 존재인 짐승과 바벨론의 관계를 세밀하게 설명. 18장 –

사실적 언어를 동원하여 멸망하는 현실 제국 바벨론과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 “바벨론에서 나와라” (18:4) 물리적으로 로마제국(바벨론)을 떠나라는 뜻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가치와 신앙과 삶의 방식을 떠나라는 뜻. 그럼에도 18장에서 세 그룹의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다 = 땅의 왕들, 땅의 상인들, 선박 운영자들 / 경제적 이익 때문.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바벨론의 멸망을 목도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오직 “내 돈! 내 돈!”을 부르짖고 있다. (계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이여,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하여 그 도시를 심판하셨습니다. (계 18:24) 예언자들의 피와 성도들의 피와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이 도시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늘 어전의 합창 (19:1-10)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 &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축복의 말씀. 1)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계 19:1) 이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큰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계 19:2)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그 큰 창녀를 심판하셨다.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그 여자에게 갚으셨다." 2)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화답 (계 19:4)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이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말하였습니다. 3)

보좌에서 음성 (계 19:5) 그 때에 그 보좌로부터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작은 자들과 큰 자들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4) 허다한 무리의 음성 (많은 물소리 & 큰 우렛소리와 같은 찬양) (계 19:6)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계 19: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계 19:8)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게 하셨다. 이 모시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성도들은 ‘손님’이 아니라 ‘신부’이다. 어린 양의 아내 = 새 예루살렘(21:2,9) 어린 양의 아내의 의복 =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모시옷) = 성도들의 옳은 행실 바벨론의 멸망 = 새 예루살렘의 강림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목적이 아니라, 성도의 구원을 위한 필수 과정.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 성도를 구원. 종말의 2단계 1단계(4:1-19:10)는 현실 제국 바벨론의 멸망 / 2단계(19:11-22:9)는 인류 역사 전체의 종말 =제국을 움직이고 있던 짐승 세력의 종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19:11-16)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신 어린 양 예수는 19:11에 이르기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을 완결하기

위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다. (계 19:11)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흰 말이 있었는데, '신실하신 분', '참되신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 그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계 19:12) 그의 눈은 불꽃과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을 썼는데,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계 19:13)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으셨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계 19:14) 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계 19:15)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으로 모든 민족을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쇠지팡이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계 19:16)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왕', '군주들의 군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 왕들의 왕(king of kings), 군주들의 군주(lord of lords). 그는 공의로 심판하며 자신의 주 되심을 최종적으로 확인하실 것. 그러나 그의 싸움은 폭력적이지 않다 : 하늘의 군대 =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19:14) / 예수님 = 피로 물든 옷(19:13), 십자가 죽음을 상징.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칼은 ‘진리의 말씀’ / 히 4:12, 엡 6:17 = 말씀이 칼 / 세상을 진리로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세 아마겟돈 전쟁의

실현 계시록 16장에서 악한 영은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아마겟돈에 세력을 모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다가 여기로 이어지는 것. 하나님은 여섯째 대접 재앙을 유예하심으로 모든 악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들이 한곳에 모이자 짐승의 세력을 한 번에 처단하심. (계 16:16) 그 세 영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계 16: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니,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다 되었다" 하는

큰 음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계 19:19) 또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이, 흰 말을 타신 분과 그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19:20) 그러나 그 짐승은 붙잡혔고, 또 그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그 거짓 예언자도 그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이런 기이한 일로 미혹시킨 자입니다. 그 둘은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졌습니다. (계 19: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의해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이렇게 최후를 맞이한다. 성도들을 대적해 왔던 모든 악한 자들은 말 탄 자의 검으로 모두 죽임을 당한다(18, 21절). 악인은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선다. 용에 대한 전쟁 계시록 12장에서 아들이 하늘에 올라가니 하나님의 천사와 용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용이 땅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이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계 20:1)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0:2) 그는 그 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계 20:3) 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까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세력의 근원이자 괴수인

‘용’(사탄)은 천사가 무저갱(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로잡는다. 용은 하늘에서 쫓겨난 후,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여자의 후손)을 괴롭혔는데, 이제 그를 잡아 무저갱에 가둔다. 무저갱은 최종심판 전까지 가두는 죽음의 장소이다. 감옥과 같이 가둔 것이다. 아직 불못(최종적 심판)에 들어가지 않았다.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 : G.L. 밀리(Mealy) & G.K 비일(Beale)의 제안 / 최근 신학계의 주요 견해로 “비 시간적

해석”이라고 부름 천년왕국은 ‘시간’이라기보다 ‘상태’이다. 문자적 1000년이 아니라, 완전하고 충분한 하나님의 통치의 기간 / 19-20장은 순차적 서술이 아니라 평행적 반복. 재림 후의 심판 강조 : 바벨론의 멸망 → 짐승의 심판 → 사탄의 심판 → 악인의 심판 / 같은 사건을 다른 렌즈로 본 것 / 단계적, 점진적 해석 천사는 사탄을 무저갱에 투옥한 후 봉인하여 누구도 천 년 동안 그곳을 열지 못하게 한다. (천년이라는 상징적 기간, 영원한 심판 불못

전) 악에 대한 심판은 실현되고(19:18,21),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첫째 부활에 동참하여 그의 통치에 동참한다. 피조세계가 통치의 대상(21장 이하). 의인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특권이 주어짐, 악인에게는 천년이라는 상징적으로 긴 시간 동안 무저갱에 거하는 형벌이 주어짐. 모든 의인의 부활 메시아의 심판으로 악은 천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그사이에 의인들이 부활한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다. 첫째 부활 = 의인의 부활. (계 20:4)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림. 통치는 성도의 특권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이미 불못에 들어가 있다. 사탄의 최후 사탄은 처형(최종적 심판) 전까지 무저갱에 가두어 두었다(로마 형법에 징역형은 없고, 사형에 처하기 전까지 감옥에 가두어

둠). 사탄은 무저갱에 갇혀 있는 동안 전혀 뉘우치지 않고, 옥에서 놓이자마자 다시 뛰쳐나가, 하나님을 대항한다. 이로 인해 곳곳에 숨어 있던 사탄의 잔당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전부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게 된다. (계 20:7)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옥에서 풀려나서, (계 20:8)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고 그들을 모을 것인데,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계

20:9) 그들은 지면으로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계 20:10)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의인에 대해서는 의인으로서의 선고, 악인에 대해서는 악인으로서의 선고가 주어진다. 여기서 그 기준은 ‘자기의 행위에

따라’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의 행위는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행하는 행위들이다. (계 20:13)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계 20:14)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 (계 20:15)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첫째 사망은 의인과 악인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둘째 사망을 경험하지 않는다. 악인은 부활 이후,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에 처하게 된다. 이는 최종적이고 영원한 멸망이다. 사망과 지옥도 모두 사라진다. 더 이상 이것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새 하늘과 새 땅 사탄의 세력은 완전히 소멸하고, 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 (계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계 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계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계 21:5)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새롭게 하다’ : 재창조는 단절. 새창조(Renewal)는 연속성.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 성경 전체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새창조로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새창조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새로움으로 존재하는지 말하려는 것. 예수님의 부활은 연속성이 있었다. 그것이 새창조의 한 모습. 그러나 완전히 새롭게 된 것임으로 재창조의 표현을 할 정도로 다름을 표현하고 있는 것. 예수님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아름다움은 손의 못 자국, 창 자국, 가시면류관 자국. 그분의 섬김의 절정이고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 우리의 세속적 기준으로는 성형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곳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없고 새로운 세계가 될 것.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에는 ‘천국’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천국은 어디 가서 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임해있다. 새 예루살렘은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새 예루살렘은 성도들이 가는 어떤 장소가 아니다. 성도들 자신이 새 예루살렘이다. 유대교의 성전은 건물이지만, 기독교의 교회는 성도이다. 새 예루살렘은

이것을 확장한 개념이다. 새 예루살렘의 본질은 샬롬이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진 진정한 평화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초월과 내재가 구별되지 않는다. 21:3.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우리는 깨어진 삶에 직면. 그러나 4절을 보면 이제 모든 것이 회복된다. 죽음은 이미 불못에 들어갔다. 새 예루살렘과 신부는 바빌론과 음녀라는 이중적 상징과 대조되는 것. (새 예루살렘 - 바빌론 / 신부 - 음녀) 새

창조의 특징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 성취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1:6) 하나님은 미완성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알파는 첫 창조, 오메가는 새 창조이다. 하나님의 새창조의 핵심은 ‘생명’이다. 새창조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음이 없는 것. (계 21:7)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우리가 받는 구원과 상급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우리가 누릴 유일한 특권은 예수님이다. 상급론은 이 생명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모독. 절대적 가치를 선물로 받았으면서 더 달라고 하는 것. 하나님 아들

됨의 특권을 망각한 것. 새 예루살렘의 특징 열두 대문이 있고, 그 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음. 모든 사도의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여기서 나오는 보석의 상징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것.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 구조(12,000 스타디온 : 12 x 1,000). 12는 완전수. 이스라엘 상징 수. 성의 본질이 하나님의 백성 됨에 있음. 정육면체는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모양과 같음. 지성소는

하나님의 공간. 새 예루살렘이 정육면체라는 것은 그 하나님의 공간에 함께하는 것. (계 21: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4)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 성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지상에서 매개하는 장소. 이제 매개물이 필요 없다. 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다. 늘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등불 되신다. 해나 달도 필요 없다. 다시는 저주가 없다. 눈물도 사망도 애통도 없다. 바다도 없다. 어떤 악한 것도 없다. 질병도 없다. 생명나무 열매가 만국을 치료한다(22:1-2).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들여온다 :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 그들이

가진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헌신, 모든 문화와 권위와 가치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 도널드 거스리 (신약학자) “만약 우리가 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고 했는데, 기억마저도 없어질텐데.. 그러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우리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세상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지 않는가? 날기도 하고, 달에도 가 본다. 우리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우리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존재의 양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가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한도 상징적으로 새 예루살렘을 그리는 것은 그만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초대교회 사람들은 생명이라도 내어놓으며 그것을 소망한다.” 에덴의 회복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는 전반적으로 에덴의 모습을 반영한다. 죄로 인해 망가지고 깨어졌지만,

그 모든 것을 끝내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 프로젝트. (계 22:13)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 마라나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이 우리 주님 노릇을 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진정한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반드시 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분의 주 되심을 친히 보여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도 같은 간구로 응답한다. (두 이야기가 만나다 中)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새물결플러스_바이블에센스 91강 정리) 부록 : “완성된 하나님 나라” 가끔 천국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모습은 세상의 물질적 가치들을 극대화 시켜놓은

장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한계시록도 그런 관점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일부 그리고 있다. 천국은 전부 금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천국의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를 묘사하는 것.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천국은 보석으로 꾸며진 장소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의 종말에 완성될 천국은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천국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이 세상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보석 등의 묘사는 인간의 인식 능력과 언어로 '가장 좋은 곳'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요한이 환상 중에 본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성령에 사로잡혀 환상 중에 완성될 천국을 본 것이다. 그런데 환상은 인간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인식의 재료들을 사용해서 초월적인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제한된 지식수준에서만 신비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초월적 경험은 물리적-역사적인 삶에 기초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22장의 천국의 모습은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고, 신학적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천국 모습 : 저자 요한이 구약성경에 기초해서 알고 있던 종말의 실재와 당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공유하고 있던 내세 관념을 통합하여 그려낸 그림 언어이다. 1. 천국은 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천국을 죽어서 가는 어떤 장소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의 종말에 천국이 우리에게

내려온다고 표현한다. 물론 우리가 죽음 이후 부활을 기다리는 중간 상태에 대해서는 '우리가 천국을 간다'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아직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함께 맞이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주도해서 이 땅으로 오는 어떤 실체이다. (계 21: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1:10)

나를 성령으로 휩싸서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분명히 천국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그 무엇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 '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라고 표현하신다.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 하나님 나라가 창조주 하나님만이 구현하시는 초월적 나라이며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력으로 세워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창조주 하나님이 초월적인 능력으로 만드셔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실 때만 가능한 것이다. 2. 창조세계가 궁극적이고 최종적으로 갱신되는 것 누군가는 천국은 영혼이 우리에게서 빠져나와 어떤 미지의 세계에 구축되는 '영혼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에 물질세계는 불에 타서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그런 생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계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물질세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 창조세계가 갱신된 곳으로 묘사한다. 미래의 천국은 현재의 우주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천국은 역사의 종말에 부활한 신자의 새로운 몸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화의 상태이다. 이 세계가 갱신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차원과 피조물이 살아가는 차원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오해 : 천국은 우주에서 멀리 떨어진 가상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천국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천국은 우리 곁, 우리 앞, 우리 뒤에 있다. 천국과 세상의 차원이 달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예 : 인터스텔라) C.S 루이스 : 천국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천국은 비밀의 옷장 하나만 열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3. 천국은 우주 성전의 완성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자신의 성전으로 만드시고, 그 신학적 중심인 지구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에덴동산이 성전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성전을 돌보고 관리하는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사명보다 이 세상을 자신의 신전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부렸다. 그 죄의 욕망이 이후 이 세상 가운데 피라미드 체제와 제국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피라미드 체제를 분쇄하고 원래 의도하셨던 성전 체제를 회복하시는 우주적

싸움의 여정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독종자)이자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당시 피라미드 체제와 로마 제국 사회 가운데 억눌린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성전의 지위를 부여하시고, 희년을 선포하시며,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화해를 성취하신다. 교회는 바로 이 일을 계승하고 이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탄의 피라미드 체제에 맞서 하나님 나라의 샬롬의 체제를 증거하고 구현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이 긴 우주적 싸움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하나님의 미래적 승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계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 : 성전의 의미. 이것이 우주성전의 완성이다. (계 22:1)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계 22: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계 22: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계 22: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계 22: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종말에 메시아가 다스리는 예루살렘에서 생명수의 물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 세상을 살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이다(겔 47장, 슥 14장, 욜 3장). 이 말씀은 창세기 2장 에덴의 말씀과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역사의 종말에

에덴 성전으로 돌아가는 길이 다시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의도하셨던 하나님의 성전이 종말에 완성될 것이기 때문에, 종말의 우주 성전에는 정중앙에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주변에 생명나무가 가득하여 생명이 충만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4. 천국에는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의 세계관에서 바다는 사탄의 근거지이고,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장소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나라들이 서 있는 자리이며, 죽은 자들의 처소이다. 사탄과 죽음의 힘이 지배하는 장소가

'바다'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다. (계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미래의 천국에는 바다로 상징되는 죽음의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않는다. 예수님이 악의 세력에 승리하셨으며, 그 결과 우주 전체가 새롭게 갱신되어 하나님의 속성인 생명으로 꽉 채워졌기 때문이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날 터인데, 그 때에는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 24:31) 그리고 그는 자기 천사들을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보낼 터인데, 그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그가 선택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살전 4: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이 나팔은 '희년 나팔'이다. 희년은 사회전체가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지는 날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희년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복음 4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성전을 세우고 희년을 선포하는 자로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시는 구원은 인간 실존 전체, 나아가 사회 구조 전체, 우주 전체의 해방이다. 이것은 피라미드 체제의 억압과 착취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우주적 희년의 모습으로 구체화 된다. 그러므로 완성된 천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의 힘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바다가 없다! (계 21: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계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천국에는 문명의 성과들이 갱신되어 신자들과 함께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 천국의 모습을 이렇게 배운다. 영혼들이 모여 살면서 끝없이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는 곳. 그러나 요한계시록 21-22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완성된 천국은 창세기의 원형적 천국처럼 미개발된 어떤 모습이 아니다. 요한은 큰 도시의 모습을 하고 내려오는 환상을 본다. 성경은 창세기의 동산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도시로 발전한 인류의 문명을 긍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의 성취들을 미래의 천국에서도 수용하실 것이다. (계 21: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4)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계 21:25)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계 21:26)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종말에 땅의 왕들과 민족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영광과 명예를 '문화'로 해석한다. 즉,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문명 중 선하고 좋은 문화적 가치들은

천국에 인간과 함께 입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거룩하고 좋은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언제나 인간이 만든 문화에는 명암이 혼재한다. (과학기술의 발달 = 전쟁 무기의 발달) 창세기에는 창조의 하루마다 '밤'과 '낮'이 혼재되는 것으로 묘사한다. 완성된 천국에는 더이상 문화의 어두운 요소들은 없다. "그 도성에는 밤이 없다"(계 21:25) 6. 천국은 아주 큰 세계이다. 역사의 종말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이것은 교회를 의미한다. 요한은 역사의 종말에 교회가 내려오는 것을 본 것이다. 열두 대문에 12지파의 이름이, 성벽 주춧돌에는 12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말은, 이 공동체가 구약과 신약 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계 21:18)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계 21:19) 그 성벽의 주춧돌들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첫째 주춧돌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비취옥이요,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보석인데, 여기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 대제사장의 가슴에 달린 판결 흉패에 부착한 돌들과 동일하다(출 28장). 대제사장의 옷에 부착된 열두 돌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이는 새 예루살렘이

특정 장소나 공간의 의미가 아닌,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계시록 22장 환상의 핵심은, 공간적 의미로서 천국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 공동체가 내려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으면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소망하는 것은 반쪽짜리 진리이다. 그런데 이 환상 속의 모습은 정방향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계 21:16) 그 도성은 네 모가 반듯하여, 가로와 세로가 같았습니다. 그가 자막대기로

그 도성을 재어 보니,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서로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습니다. / 약 2,200킬로미터 (계 21:17) 또 그가 성벽을 재어 보니, 사람의 치수로 백사십사 규빗이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치수이기도 합니다. / 약 65미터 이는 당시 그리스 국경의 크기와 비슷하다. 이는 종말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규모가 매우 클 것임을 암시한다.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표현들도 이것과 연결된다. 7.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바빌론과

비교-대조한다. 새 예루살렘의 특징 :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도시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 정의와 생명으로 충만 만국의 자발적인 영광과 충성을 받음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 하나님의 거처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짐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는 곳 바빌론의 특징 : 사탄에게 속한 큰 도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창녀 불의와 죽음의 힘으로 가득 폭력을 앞세워 강제로 열방의 숭배를 받아냄 자기

영광을 추구 귀신들의 처소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며 이마에 바빌론의 이름이 새겨짐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망쳐야 하는 곳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계 21:8)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신실하지 못한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계 21:27)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계 22:15) 개들과 마술쟁이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을 사랑하고 행하는 자는 다 바깥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요한은 단호하게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상세히 말한다.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 겉으로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존과 안녕,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즉,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에 두 발을 걸치고 살아가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생존과 안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두려워하는 것'과 '신실하지 못한 것'을 새 예루살렘에 참여할 수 없는 최우선적인 조건으로 말한다. 세속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만인구원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지옥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믿음만을 통한 구원을 지지하지 않는다. (계 20:11)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계 20:12)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계 20:13)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로 들어간 순간부터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온 우주의 참된 왕이심을 고백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은 반복해서 '귀로 듣기만 하는 신자가 되지 말고, 이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한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도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어라."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당부이다. 이기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새 예루살렘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교회에게 약속되었던 상급들이 계시록 21-22장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다. 신실하게. 그리스도인이 종말에 얻게 될 최종적 구원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 전부를 통해서 예수를 주님으로 증명해낸 사람들이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