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다음 주 설교를 통해서는 이제 스가랴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여러분, 혹시 우리가 요한계시록 시리즈를 듣기 전에 어떤 시리즈를 들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네, 맞아요. 역대상. 네, 들었었죠. 역대기 중에서 역대상 시리즈를 살펴봤습니다.이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이 귀한 공동체를 위한 그들을 향한 회복의 메시지가 쓰인 책이었습니다. 어 끝없는 불순종과 또 하나님에 대한 배신으로 북 이스라엘이 아스르에 먼저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유다마저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바벨론 포로기를 맞닥뜨리게 되죠. 어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결로 포로기를 맞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아마도 그들에게 아 우리 하나님한테 버림 받았나 봐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대상을 봤을 때 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그게 아니었다는 거였죠. 그래서 포로로 끌려가는 그들에게이 시간이 절대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70년이 지나면 너희는 다시 돌아와 회복될 것이란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진짜 그 약속대로 70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그래서 역대상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봐.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았어. 여전히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백성이고 나는 너희와 함께 할 거야. 내가 반드시 너희를 회복해서 다시 나를 예배하는 그런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게 할 거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게 당시에 그 귀한 공동체에게 주어졌던 주님의 음성이었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이 음성을들은이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에게는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거야라고 하시는 말씀은 곧 내가 너희 안에 임재할 거야라는 말씀과 같았어요.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또한 귀한 공동체가 이제 귀 안에서 회복해야 할 많은 영역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동체 또 언약 공동체는 그 예배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는이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성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지금 성전이 어떻게 되어 있는 상태죠? 포로기를 맞이하면서 다 무너져 있는 상태예요.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귀한 이들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성전을 다시 짓는 것,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곧 그들의 망가지고 무너져 있는 삶을 재건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무너진 성전과 또 그 공동체의
삶을 재건하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스가랴서입니다. 어 스가랴서는 책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 선지자 스가랴가 기록한 선지서인데요. 예언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이 선지서 또는 예언서는 분량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분량에 많은 것을 대선지서라고 부르고 분량의 비교적 적은 것을 소선지서라고 부릅니다. 어, 스가랴서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소선지서에 해당하는 책이죠. 어 올해 하반기에는이 선지 어 스가랴서 말고도 다른 소선지서들
몇 건 더 살펴보게 될 텐데요. 그래서 오늘 아주 짧지만 그래도 소선지서가 어떤 책들인지를 어 알아보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 성경은 배치되어 있는 그 위치한 순서조차 나름의 의미를 갖고 합니다. 어이 소선지서는 구약의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는 책이에요. 그래서 이 위치로 볼 때이 선지서들은 구약의 메시지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신약으로 연결해 주는 어 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12의 소선지서를 잘 이해하면
그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 그리고 구약에서부터 연결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또 그 임재와 회복에 대한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 물론 이 12의 책이 각자 갖고 있는 나름의 메시지가 다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연결해서 보면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또 다른 메시지가 있습니다. 12권의 책이 서로 연합해서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는 거죠. 어, 이것을 김창대 교수는 이런 구조로 정리를
했습니다. 어, 미가서를 중심으로 이렇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조인데요. 글자가 좀 작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가장 첫 번째와 마지막에 위치한 호세아서와 말락에서는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연결됩니다. 호세아서는 언약을 위반한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말라기에서는 그것과 연결해서 언약의 회복과 그것과 관련된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각 건들이 이렇게 다 대칭이 되다가 중간에 미가서에서 만나게 되죠. 보통 성경에서 이런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을 때는 가장 가운데 중심부에 위치하는 메시지가 중심 메시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이 12권의 책도이 소선지서를 아우르는 중심 메시지가 그 미가서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시련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언약의 성취라고 볼 수 있어요. 어 그래서 이스가랴서를 잘 살펴보면 이스가랴서만을 재건이라는 메시지도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함께 이 중심 주제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 또 언약의 성취에 대한 것들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어 또한 제가 이 소선지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여러분 실제로 이 스가랴서가 우리가 지난주까지 살펴봤던이 요한계시록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어 그래서 아마도 이제 스가라수를 읽어 보신 분들은 어 되게 요한계시록랑 비슷하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이 스가라서도요. 뭔가 꿈이나 환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또 하나는 이 두 책에 갖는 주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이 서로 연결되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죠. 어 이러한 스가랴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어 전반부의 서두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하는 메시지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는 백성들에게 알려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간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어,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해야 했던 것은 여호와께 돌아와라.
그러면 여호와께서도 너희에게 돌아가실 것이다라고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아주 짧고 심플한 메시지죠, 여러분. 근데 여러분, 방금 읽으실 때 뭔가 하나 좀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여러분?이 이 짧은 한 절 안에요. 만군의 주가 말한다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어요. 메시지와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에서도 쓰여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 이러한 반복적인 표현을 이제 학문적으로는 남아도는 표현이라고 어 부르는데요. 뭔가 이렇게 좀 넘치는데 좀 과한데 싶을
정도로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는 거죠. 남아 도는 표현이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굳이 이런 표현법을 사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의도 때문입니다. 어, 하나는 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강력하고 또 간절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라고 하는 주님의 어떤 간절한 호소라고 보는 거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 말씀이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몇 번 봤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높일 때 그냥 거룩하신 주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굳이 그것을 거룩 거룩 거룩 세 번 반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여기서 지금 쓰고 있는 이 만군의 주 개혁 계정에서는 이제 만군의 여호와라고 표현을 하는데요.이 이 표현 또한 스가라서를 잘 읽다 보면 아주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하나예요. 그리고 여기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어 여러분 포로기 이후에 귀한한 공동책이 쓰인 책들은 사실 스가랄 말고도 여러
책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책들을 잘 보면 어 정체성을 회복해야 돼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늘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포로기 동안 그 정체성에 대한 어떤 것들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여러분, 근데 제가 이번에 스가랴서를 준비하면서 어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봤습니다. 여러분 그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지켜왔던 어떤 정체성 또는 그것에 따른 가치관 또는 그들이 고수했던 생활 방식이 아주 오랜 시간 수천년을 통해 어 이어져 왔죠. 그런데
그들이 지켜왔던 그 시간에 비하면 왠지 포로의 70년은 조금 짧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그 수많은 시간과 또 수많은 세대를 지나오면서 쌓인 그들의 생각과 삶의 틈새마다 배어 있는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았을 테니 말이죠. 어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만 한국인들만 쓴 언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들에게도 그들이 사용하는 공동체 언어가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들이 사용한 언어부터 시작해서 자녀를 기르고 또 양육하는 방법, 교육하는
방법 또는 그들의 삶에서 너무 오래되어서 어 의식하지 않아도 그냥 흘러나올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한 어떤 생활의 모습들, 습관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70년 동안 그것을 대부분 잃어버려요. 여러분, 단순히 고국을 떠나서 타국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그곳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잃어버렸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먹고 살려다 보니까 그것을 놓쳤다는 거죠. 어, 여러분, 번듯한 국가로 존재할
때도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늘 고통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포로는 그것과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겠죠. 그들의 삶이 완전히 고통속에 짓밟히고 무너지는 그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포록이었어요. 어, 오해의 표현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피라미드 맨 하층민이 되어서 제국의 무자비한 지배를 받아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그래서 그들은 그 냉혹한 현실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 상황에 적응해야만 했을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내가 바벨론의 지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그것을 좋게 여기든 아 나 이건 따르기 싫은데 여기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오늘 살아남으려면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을 따라야 했다는 것이죠. 어, 여러분,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도 이럴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여러분,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약육 강식과 피라미드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서바이벌 같은 삶에서 괴로움도 느끼고 외로움도 느끼고 고통도
느끼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적응해 내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남녀 노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어, 많은 아이들이 인성을 하지 않으면 그건 실패한 거야라는 생각 속에 갇혀 살아가요. 그걸 괴로워하면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 숨막히는 경쟁과 대학 입시의 경쟁 속에서 꾸역꾸역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학원 가라고 하면 그냥 가고 시험 보라고 하면 보고 대학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가는 거예요. 청년이 되어서 취업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취업해야 되니까 그냥 하는 거죠. 그래서 많은 젊은 세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어떤 비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대학에 들어가고 아등바등 노력해서 취업했는데 여전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라는 방황이 멈추지 않습니다. 어 제가 청년 공동체에서 이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 저 뭐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 대학 가라고 해서 왔는데 여기서 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나랑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걸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말들이 청년들이 아주 자주 하는 말들이에요. 여러분, 게다가 이제는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포기하는 지형에 이르는 세대가 되었죠. 3포 세대다. 7포 세대다. 이제는 포기하는게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어서 세대다라고 부르는 현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 인생을 조금 더 산 어른들은 다를까요? 여기 계신 우리 어른들은 좀 다르십니까? 어, 저는 아직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아서 제가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제가 어른들의
삶을 바라볼 때, 또 저의 부모 세대를 바라볼 때도 저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 세상의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상처도 받고요. 억울한 일도 당해요. 아, 진짜 이건 아니지 않아라고 생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까 그 부당함에 애써 적응하며 참고 사는 거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자녀를 키워야 하고 나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고 1년 카드값과 대출금과 공가금도 내야 하니까요. 여러분,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때로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아 이렇게 살아야지 다 이렇게 사는 거지라고 하며 그냥 맞춰 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버리고 꿈도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도 상실한 채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이것은 마치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의 집에 적응해야만 했던 그래서 그들의 정체성도 가치관도 그들을 향해 약속되었던 소망과 비전도 잃어버린 이스라엘 공동체와 같아 보입니다. 어 생존을
위한 상실이 불가피한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거기에서 돌아와야 돼. 돌아오면 나도 너희에게 갈 거야.이 이 말을 하는 나는 만군의 여호와란다라고 강조하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적응하려고 많이 쓰고 있는 이 세상보다 더 크신이가 바로 만군의 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야, 내가 최고장이야. 내가 일인 자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벨론이 패권을 가졌든 페레시아가
패권을 가졌든 그 그 이후에 또 어떤 제국이 나오든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은 그들도 하늘과 땅 또 모든 만유의 주인이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세상의 집에 억눌려 있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맞추려고 아등바등에 쓰고 있는 그 모든 것들 위에 바로 내가 있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 우리가 어떻게든 그렇게 살기 위해서 맞추고 애쓰고 적응해야 하는 것은 바벨론이 아닙니다.이
세상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 모든 것 위에 계신 만군의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그분의 통치와 그분의 나라가 요구하는 삶에 맞춰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누군가는 여기까지 들으면 마치 이 이야기가 하나님이 더 강한 존재, 더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주님을 따라야 돼, 주께로 돌아와야 돼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의 원리처럼 더 강한 자에게 굴복해야 돼. 더 높은 자를 섬겨야 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의미는 오히려 그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채워 주시겠다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바벨론의 왕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내려올까요? 안 내려오죠. 세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치에서 절대 내려오려고 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피라미드 체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짜왕 만군의 여호와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에게로 와 그러면 나도 너에게로 갈 거야. 여러분, 만군의 주가이 모든 것보다 강하고 높으신 분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리로 내려오시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피라미드 꼭대게 있는 왕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곳까지 기꺼이 내려오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오셔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다시 채우시겠다는 거예요. 그분이 오셔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체성, 우리의 존재 가치를 다시 채우십니다. 우리가 상실한 삶의 어떤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그려 넣어 주세요. 우리가 세상의 지배 아래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그분은 오셔서 다시 꿈꾸게 하십니다. 이게 바로 세상의 바벨론과 다른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통치죠. 하나님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지배 안에서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채우시고 회복하시려고 지금 스가레를 통해 이 백성들을 부르고 계신 거예요. 어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이들은 이미 어디에 와 있는 상태일까요? 이미 고국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예요. 바벨론에서 귀한했다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또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시죠.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어, 여러분, 귀한 공동체가 몸은 지금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지난 70년 동안 그들의 내면에 물든 바벨론의 생각들 또는 바벨론의 생활 방식들, 또 거기서 새롭게 생긴 어떤 습관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고국으로의 귀한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어요.
그들이 진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그 관계 속에서 그들의 삶이 재정비되는 것이 한 어 그런 하나님의 귀한 이 더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말씀 앞에서 우리를 돌아봐야 해요. 여러분 우리의 몸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또는 내가 어떤 좋은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의 어떤 온전한 회복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있어요. 여전히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관의 어떤
부분은 세상을 따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경에서 말했던 그 광야 속에 거하는 사람들처럼요. 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사회생활 다 이렇게 하는 거야. 나만 이렇게 하는 거 아니고 다들 이렇게 살아. 여러분, 만약 우리 안에도 그런 모습들이 발견된다면 우리도 다시 돌이켜야 합니다. 어, 어떤 사람은 관계 영역에서 그럴 수 있고요. 어떤 사람은 재정에서 그럴 수 있고요. 또 어떤 누군가는 언어의 속관에서 그럴 수 있죠. 어떤 영역이든 여전히 나의
옛모습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에 완전히 회복되 있진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아, 내가 아직 이것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구나. 내가 아직 이것이 주님만 회복되지 않았구나라는 것이 발견된다면 하루 빨리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아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너희의 조상에게 악한 계을 모두 버리고 어서 돌이키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희 조상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아라. 왜냐하면 이전에 귀한 공동체 이전에 그 조상 세대에도 그들이 돌이켜 할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기를 맞이해야 했던 거예요. 하나님은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그 포로기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하는 그 공동체에 그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의 조상들 돌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이런 포로기를 맞이했지. 새로 시작한 너희는 제발 그 과거를 반복하지 마. 나한테 돌아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나에게로 귀한해야 해. 삶을 진실로 돌이켜야 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 하나님은 이후에 어이 여덟 가지의 환상을 통해서도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알려 주시는데요. 어이 환상은 하룻밤의 꿈과 같습니다. 여러분 스가랴가 하룻밤에이 여덟 가지 꿈 환상을 다 꾸게 되었다는 거예요. 어 환상은 이런
내용들이 어 이어집니다. 첫 번째는 말을 탄 어떤 순찰때들이 온 땅을 막 두루 다니는 장면을 봅니다. 첫 번째 환상이이 환상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본 환상은 이상한 뿔들이네 개가 있고 또 그 뿔들을 없애려고 오는 어떤 대장장이들을 보게 되는 그런 환상을 스가랴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환상은 어떤 측량주를든 그러니까 길이를 측정하는 그 줄을 도구를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향해서 막 가고 있는 그래서 어디 가십니까? 물었더니 아 제가 예루살렘을 다시 측량하러
갑니다라고 하는 그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네 번째 환상은요. 저 가운데 있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인데요. 여호수아를 보게 됐어요. 근데 여호수아 옆에 어떤 천사도 있고 사탄도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그들이 뭔가 일을 해요. 근데 그것을 스가랴가 보게 된 것이죠. 이어지는 환상에서는 순금으로 만든 저렇게 생긴 등잔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등잔대가 올리브 두구르 사이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올리브 나무에서 기름이 막
흘러나오는데 그 기름이이 등잔대를 채우고 있는 그런 환상을 스가랴가 보게 되었죠. 네. 일곱 번째에서는 이렇게 생긴 두루마리가 하늘을 막 날아다니는 그런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에 무언가 적혀 있었는데 어 그것이 무엇이지라고 이제 천사가 말해 주는 그런 꿈을 꾸게 되었죠. 그리고는 어 이어지는 꿈에서는 또 이런 꿈을 꿉니다. 저게 에바라고 하는 쉽게 말 뒤주 같은 건 곡식을 채우는 그런 도구인데요. 거기에 어떤 여자가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 여자를 그 뒤주에 가두더니 그 상자를 들고 바벨론을 향해 날아갑니다. 어 성경에는 천사가 둘로 나오는데요. 제가 한 명을 빼 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절대 안 빼 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세 명으로 돼 있는데 성경에서는 두 명입니다. 네. 한 명 빼줘 했더니 절대 안 빼 주더라고요. 네. 마지막 환상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 환상과 좀 비슷한데요. 첫 번째는 이제 말을 일단 이제 순찰때들이 막 온 땅을 두루 다녔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말이 이끄는 마병 어떤 부대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렇게 두 산 노으로 만든 구리로 만든 두 산 사이에서 저 마병대가 막 힘차게 막 나와서 온 땅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장면을이 스가랴가 보게 돼요. 무슨 꿈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으시죠? 자, 이제 앞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가랴가 어쨌든 이 여덟 가지 꿈을 하룻밤에 다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들 속에서 스가랴도 꿈을 꾸고 이제 하나님 보여 주시니까 보지만 잘 몰랐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환상을 보고 질문해요. 아, 이게 무슨
의미죠라고 천사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혹은 천사가 먼저 스가랴에게 너 이거 무슨 뜻인지 알겠어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환상을 보고 질문하는 어떤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마지막에는 그것을 해석해 주는 천사가 주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그런 형식으로이 여덟 가지 꿈이 환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 또이 환상들은 앞에서 우리가 소선지서의 그 내용을 봤던 것처럼 대칭되는 구조로 짝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짝꿍들끼리 같은 주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제부를
연결하면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 환상과 여덟 번째 환상이 온 세상을 다스린 주님이란 주제로 짝꿍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세 번째와 여섯 번째, 그리고 가운데 있는 어 4번과 5번이 이렇게 서로 각각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는 장면이죠. 어, 오늘이 모든 환상을 다 살펴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1시간 40분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를 중심으로 방금 우리가 앞에 살펴봤던 그 환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살펴볼 주제입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어, 여러분, 가끔이 교회에 있다 보면 이 앞에는 음양 장비들이 고장이 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뭐 소리가 안 난다거나 아니면 무슨 이상한 잡음이 들린다거나 이럴 때가 있죠. 그러면 방송 팀에서 어, 어디가 소리가 안 나는지, 왜 안 나는지를 막 찾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래도 안 되면 그래도 못 찾겠으면 전문가를 통해서라도
그 원인을 찾아내죠. 왜 그렇게까지 그 원인을 찾는 걸 집착할까요? 왜 그럴까요?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원인을 알아야 정확하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고 실제로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회복도 마치 이런 것과 같아요. 여러분 쉽게 말하면 지금 이스라엘 공동체가 망가지고 고장났어요. 그 깨어진 그 상태로 그냥 몸만 이렇게 쑥 귀한 상태인 거예요. 그러니까 귀한했지만 그것 자체가 그들이 회복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한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고쳐지고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그 시작점에 서서 마치 전문가가 원인을 분석하듯이 그들이 그렇게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포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분석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게 그 원인을 분석하신 하나님이 전문가의 소견으로 아 제 소견에는 이런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일곱 번째 환상입니다. 어 이스라엘의 불순종 우상숭배와 같은 모든 죄악을 상징하는 여자가
있었어. 아까 그 귀안에 갇혔던 바로 그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이스라엘의 죄를 상징하는 여인이었어요. 근데 그 여인을 하나님께서 가두셔서 어떻게 하시죠? 바벨론으로 옮기십니다. 지금이 환상에 보여주는 것은 너희가 바벨론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했던 그 죄 때문이야. 우상순면은 그 죄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늘 해피해피하진 않잖아요. 가끔은 고통을 당하고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대체 왜 그런 일들은 끊임없이 발생할까요? 많은 사람들, 또 똑똑한 사람들, 때로는 힘 있는 사람들조차 아,이 세상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보자. 노력하고 있는데 왜 세상은 언제나 이 고통과 슬픔이 끝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질문에이 세상을 만드신 전문가가 원인을 분석해 줬어요. 그거 너희의 죄 때문이야. 여러분 안타깝게도이 세상의 깨어짐 그로 인한 고통은 나의 죄로 인한 것도 있지만 때로는 다른 누군가 여러 죄가 얽혀서 여러 인과관계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어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그 땅에서 태어났단 이유만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했던 종사리를 해야만 했던 바벨론 포록이 이세대들처럼 말이죠. 어, 여러분, 그런데 어쩌면 그건 그렇게까지 중요한게 아닐 수 있어요. 그 깨어짐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고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두 번째 환상에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억압했던 그 나라를 상징하는이네 개의 뿔이 나옵니다.이네 개의 뿔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또 괴롭게 했던 그 어떤 상징물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뿔들을 향해 아까 누가 오고 있다고 했었죠?네 네 명의 대장장이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걸 본 스가랴가 이렇게 묻습니다. 아 대체 저들이 무엇을 하러 왔죠? 무엇을 하러 오고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다 주님께서 대답하세요. 저뿔들을 없애기 위해 왔다. 너희를 억압하고 너희를 진누리게 하는 그 모든 세력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의 대장장애들이 왔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그 깨어짐을 제거하고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말씀을 잘 보면요. 스가라는 분명히 대장장애들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어, 저들이 무엇을 하러 오고 있죠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이 왔다라고 대답하세요. 혹시 이 표현에서 뭔가 느껴지는게 있으신가요?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만났던 표현이에요. 하나님이 회복과 승리를 들고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주님의 입장에서는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나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이 깨어져서 신음하는 세상을 향해 오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온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완성하는 분이기 때문이죠. 어, 여러분, 우리에게도 우리를 억압하는 저네 개의 뿔과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신음하게 하고 탄식하게 하고 억누르는 것들이요. 그런데 그 뿔들을 없애 버릴
주님의 대장장애들도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그 전문가가 분석해 준 그 깨어짐의 원인,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맡기면 됩니다. 주님께서 회복하게 오고 계시기 때문에 아 주님 저의 이런 문제가 주님 회복해 주시려 오고 계시군요. 그럼 주님께 맡기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는 거죠. 주님께서 회복을 이미 시작하셨고 또 그것을 들고 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주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였습니다.이어서 두 번째 주제를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루살렘 재건과 하나님의 임재. 네. 어, 귀한 공동체에 방금 우리가 앞에서 봤던 주제에서 드러난 그 회복은 성전 재건으로 나타났어요. 여러분, 그런데 이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에서 원인을 다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어요. 그 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마치 이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전을 재건하고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그들이 계속 죄를 짓는다면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테니까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은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을 재건하고 싶으신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 그 이스라엘 공동체 그들 자체가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원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거예요.이 사람들을 진짜 잘 세우려면 그 죄악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어, 스가랴가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을 봤었죠. 여러분이 환상을 보고 있는데 천사가 먼저 와서 이 두루말의 크기를 알려 줘요. 두루말의
길이가 20규빗이고 너비가 10규빗이었다고 말해 줍니다. 천사가 굳이 그걸 말해 줬다는 건 그것이 갖는 의미가 있다는 거겠죠. 여러분 이걸 환산하면 오늘날의 길이로 말하면 길이가 약 9m고요. 너비가 약 4.5m나 되는 아주 큰 두루마리입니다. 여러분이 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어요. 하나는 누구나 볼 수 있을만큼 크죠. 그러니까 여기 적힌 메시지를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큰 두루마리가 막 펼쳐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으니까 누구나 그 메시지를
알 수 있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른 하나는 이 20규빗 10규빗는 길이가 성전과 관련된 단위들이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이 두루마리가 곧 하나님과 관련된 하나님의 두루마리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스가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을 날아다닌 두루마리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아주 커다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하나님의 두루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두루말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온 땅 위에 내를 저주다. 두루마리의 한쪽에는 두둑질하는 자가 모두 땅 위에서 맑금이 없어진다고 쓰여 있고 두루마리의 다른 쪽에는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가 모두 땅 위에서 말끔이 없어진다고 쓰여 있다. 어이 두루마리는 심판의 메시지가 적힌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럼 특별히 여기에 있는 도둑질하는 것과 거짓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 스가랴 시대에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그 공동체 안에 이러한 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이었어요. 어 스가랴와
같은 시대 활동했던 선지자가 학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학계는 그런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현실에 타협하고 성전보다 자기 집을 짓는 일에 치중했던 사람들이었다라고 기록하죠. 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어 보십시다. 전쟁 후에 다 무너진 상태로 다 그냥 그대로 끌려갔어요. 그리고 70년이 있다가 그냥 돌아온 상태인 거예요. 돌아왔을 때 어땠을까요? 뭐 하나 멀쩡한게 없었겠죠. 다 무너지고 다 이렇게 쓰러져 있는 상태였어요. 여러분, 그 현실을
바라봤을 때 그 공동체인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아니, 당장 나 지낼 것도 없는데 성전이 그렇게 중요해. 아니, 성전을 짓지 말자는게 아니고 중요한 거 알지 않은데 일단 우리 좀 기본적으로 먹고 살 건 좀 챙기고 하자. 여러분, 이런 이야기들이 그 공동체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단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상황이든 늘 우리에게 이런 방법을 유혹하는 거 같아요. 현실에 타협하는 방법. 여러분, 상황이 좋으면 좋아서 타협하게 만듭니다. 상황이
나쁘면 나쁘고 힘드니까 타협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한 이유는 한 가지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뒤로 미루게 하는 거죠. 아니, 순종을 안 하겠다는게 아니라 요거 나아지면 할게요. 요거 해결되면 할게요. 지금은 내 상황이 이러니까 지금은 내가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이거 지나가면 그때 하겠습니다라고 미루도록 하는 거죠. 여러분, 스가라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현실 막막한 거 알죠? 그런데 그 막막한 현실을 탓하며 순종하는 일, 성전을 세운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주의 말씀을 미루고 그들이 했던 일은 빨리 자리잡기 위해서 자기의 집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일을 위해서 이들이 바벨론에서 보고 배웠던 방법을 써먹기 시작해요. 왜냐면 바벨론의 방법은 빠르고 쉽거든요. 그렇게 선택한 것이 도둑질과 거짓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것을 뺏어서 내 것을 채우는게 더 빠른 방법이죠. 남을 속이고 모르게 해서 어떤 내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 어쩌면
내가 노력하는 것보다 더 쉬운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그 공동체의 그런 모습을 아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네가 그렇게 세운 집 너희는 그럼 자리 잡을 줄 알지만 그 집 내가 다시 다 부서 버리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조금 느리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셨던 모습이 있었어요. 그 모습이 무엇이었냐면 스가라서 8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이제 이렇게 살아야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 서로 진실을 말하고 공의롭게 재판하며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웃을 해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 맹세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이 공동체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내가 세워 갈 때 자기 집을 세우는 것에 나 혼자 살아남는 것에 바벨론처럼 나 혼자 살아남고 내 집 세우는 것에 혈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공동체가 함께 사는 길을 도모해야 한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런 순종 위에 성전이 제검되고 그런
순종 위에 그 공동체 집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임지하셔서 그들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바깥으로는 내가 예루살렘의 둘레를 불로 감싸 보호하는 불성벽이 되고 아내로는 내가 그 안에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도성시오나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내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어,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벨론의 도둑질과 거짓말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사실 이거 말고도 우리의 생활을
더 쉽고 빠르게 무언가 이루게 해 줄 것 같은 그런 유혹들이 우리를 찾아오죠. 사단은 주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여요. 야, 그건 너무 미련해. 그건 너무 느려 터졌어. 답답해.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이거 성공할 건데, 어느 세월에 이거 이룰 건데라고 말하며 속입니다. 그래야 타협하니까요. 여러분, 그런데 그 거짓의 소가 타협한 사람들의 집은 주님께서 부서 버리시겠대요. 처음에는 빠르게 세워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종말이 결국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다시 고통 속에 머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련해 보이지만 느리지만 주님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사람들은 주님께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주님께서 지키시겠다는 거예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불성벽이 되어 주시고 또 영광이 되어 주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 주님께서 보호하신다는게 뭘까 제가 잠시 고민을 해 봤는데요. 어, 저는 보호받는다는 것은 안전한 곳에 거한다는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어, 여러분, 바벨론의
방법은 서로 각자 도생이죠. 나만 잘 살아남으면 되니까, 나만 생존하면 되니까. 그런데 주님의 나라는 우리가 앞에서 말했지만 서로를 위한 공동체를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 각자 도생하면 안전하기 힘들어요. 어 제가 이 말을 별로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어 저에게는 어 공황이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약점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게 세상에 나가면요. 저를 너무 많이 흔드는 아주 큰 약점이 돼요. 사실 그게 있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거든요.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불안한 때문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을이 공동차에서 한 2년 전쯤에 고백했던 적이 있어요. 여러분들 제가 그때 느꼈던 것은 아이 공동체 안에 있으면 이 약점이 약점이 아니구나. 나 이렇게 약해도 괜찮구나. 나 안전하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좀 힘들 때 다른 공동체 형제 자매들이 와서 그것을 채워 주기 때문이죠. 여러분, 나 혼자 살아남는 세상에선 이게 불가능해요. 약하면 뒤쳐지게 놔둘 뿐입니다. 어,
또 다른 예시를 제가 생각해 봤는데 어, 저희 공동차에서 우리 안수형제님이 편탄하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때 우리 공동체가 함께 힘을 합쳐서 그 위기를 남의 문제로 보지 않고 마치 우리의 문제처럼 이겨냈던 경험이 우리에게 있죠. 여러분, 저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주의 말씀 안에 거할 때 보호받는 그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어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만군의 주 여호와가 우리가 서로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갈 때 주의 방법대로 나 혼자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살다라고 노력할 때 그 안에 임지하셔서 함께 사신다는 거예요. 만군의 주 여호와가 우리 안에 임지하셔서 함께 사시니 그 누구도 건들 자가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주제,이 두상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메시지죠. 어, 세 번째 주제를이어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메시아 나라의 도래. 네. 여기서 이제네 번째 환상과 다섯 번째 환상이 나오는데요. 스가랴가이 환상 중에서 어 실존 인물을 본 환상이 바로 이 두 가지 환상이었어요.
아까 우리가 봤던 그 누더이 옷을 입고서 있는 그 어 여호수아를 보게 된 것이죠. 여러분이 여호수아는 앞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바벨론 포로 어 2세대였습니다. 그니까 영문도 모른 채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그냥 그 깨어짐의 고통을 그냥 이유도 모르고 당해야 했던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그들도 회복시키겠다라고 하는 거였어요. 그 여호수아 저렇게서 있습니다. 그 앞에 천사가서 있고 오른쪽에 사탄이서 있죠. 근데
사탄이 여호수아를 향해서 계속 비난하는 거야. 계속 그를 공격합니다. 뭐 어떤 내용이었지 정확히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탄의 그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아마 이렇게 했을 것 같아요. 야, 너희는 이미 실패했잖아. 야, 이방 땅에서 태어난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야? 현실을 봐. 네. 꼬라지를 봐. 넌 안 돼. 회복할 수 없어. 그건 불가능해라고 계속 공격했을 것입니다. 어, 여러분, 때로 사탄은 여호수아에게 했던 것처럼이요.
실제로 우리에게도 찾아와서 우리 삶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공격할 때가 있어요. 나도 느끼고 있는 나의 연약함을 공격할 때가 있고 과거에 겪었던 어떤 상처나 내가 저질렀던 잘못을 또다시 소환해서 너 이런 사람이었잖아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또는 노력하지만 잘 안 돼서 계속 반복된 어떤 나의 실패들을 공격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공격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듣고 있으면 맞는 말 같거든요. 나한테 다 있는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절망에 빠지곤 하죠.
여러분, 여기서 있는 이 여호수아도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그거 듣고서 있었어요.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서 있을 수밖에 없는 여호수아를 대신해서 하나님이 사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탄아,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한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이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타다남은 나무 토막이다. 어,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마치 장면이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사탄아, 네가 뭔데? 아, 이게 꼬라지가
어떻든 과거가 어떻 내가 사랑한다는데 내가 용서했다는데 네가 뭐 어쩔 건데? 여러분, 여기서 주님께서도 불에 꺼난 타다은 나무토막이란 표현을 쓰시는데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가 불타 없어지기 전에 그 고통 속에서 꺼내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타다나 어 남은 그 나무 조각이 뭐 얼마나 쓸모가 있 있었겠어요? 근데 주님은 우리가 쓸모 있어서 우리를 꺼낸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뭔가를 잘했기 때문에 또는 잘할 것 같아서 꺼낸게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저 우리를 사랑해서 선택하여 꺼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꺼낸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내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어 여러분 사탄이 여러분을 찾아가서 야 타다만이 나무토하고 대체 뭐라 할 수 있는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주님의 사랑 뒤에 빨리 숨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에게는 좀 뻔뻔하고 당당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 저도 어 학생 때 어떤 선교사님께 배운 비법인데요. 제가 지금까지도 아주 잘 써먹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저 여러분께 가르쳐 드릴게요. 한번
저를 따라해 보실까요? 어쩌라고? 어쩌라고? 다시 해 보실까? 어쩌라고? 어쩌라고? 뻔뻔한 태도가 더 중요해요. 뻔뻔하게 어쩌라고? 어쩌라고? 네. 그렇게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나한테 와서 야 타다만이 나무 조각 같은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말할 때 그래 나 좀 탔다. 근데 어쩌라고?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는데 아 네가 뭐 어쩔 건데? 주님이 나 이미 용서하셨다는데라고 하는 그런 대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탄의 말을 듣고 있잖아요.
그럼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약한 것도 맞고요. 내가 죄인인 것도 맞아요. 나를 보면 소망이 없는 것도 맞습니다. 그거 가지고 공격하니까 할 말이 없죠.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사랑과 나에게 부어진 은혜를 보면 우리가 당당하고 뻔뻔하게 할 말이 생깁니다. 여러분, 그러니 사탄이 여러분을 찾아가서 또 막 알짱알짱 되면 여러분이 사랑과 은혜를 의지해서 쫓아내십시오. 그 말을 그냥 듣고 맞아 맞아 나는 그런 사람이지. 난 못하고 주저 앉지 마시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오늘
배운 방법처럼 어떻게 하라고요? 어쩌라고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놓치지 말아 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여러분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런 무한한 사랑만 주신게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환상에 보면 주님께서 그가 앞으로 따라야 할 그가 앞으로 새롭게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도 말씀해 주세요. 어 여러분 회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이 맞습니다. 여호수아가이 더러운 옷을 벗고 또 아름다운 옷을 입고 그 왕관을
쓸 때까지 여호수아는 사실 한 개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물리쳐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것을 바꿔 주셨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그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워져서 그렇게 하나님 곁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우리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이 필요해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이죠.
어, 여러분, 이렇게 회복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여호수아와 공동체가 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냐면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예표다. 어떤 일의 표시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처럼 여호수아가 지금 회복되고 또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서 그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회복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 환상 뒤에 싹에 대한 말씀을 하세요. 새싹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수아 대제사장은 들어라. 여기 여호수아 앞에 앉아 있는 여호수아의 동료들도 함께 잘 들어라. 너희는 모두 앞으로 나타날 일의 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를 놓는다. 그것은 일곱 눈을 가진 돌이다. 나는 그 돌에 내가 이 땅의 죄를 하루만에 없애겠다는 그를 새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모아가
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새싹 싹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이것은 곧 메시아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어 특별히 원어적인 의미를 더 보면 땅에서 이제 막 솟아오른 싹이란 의미가 어 들어 있어요. 여러분 회복을 일으킬 그 메시아를 생각하면 왠지 다 자라 울창한 나무가 어울릴 것 같아 보입니다. 근데 그분은 그렇게 오지 않으세요. 이제 막 땅에서 올라온 여인 순처럼 미약하고 연약한 새싹으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서의
죽임당한 어린양처럼 말이죠. 여러분, 하나님은 이 연약한 싹처럼 오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실 일들을 일곱 눈을 가진 돌에 빚되어 설명해 주세요. 여러분, 일곱이 어떤 의미를 가진 수였죠? 네. 하나님의 완전하심 또는 어떤 충만하심 의미한 숫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숫자였어요. 그래서 여기서의 일곱 눈은 하나님의 눈이라는 표현입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고 무엇하나 놓치는 법이 없으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이 돌에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라는 글을 새기십니다. 여러분 그 말로 하는 건 사실 흩어지기 쉽죠. 그런데 글로 기록된 것은 잊어버리기 어렵습니다. 왜? 글로 이미 딱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글을 새기셨다는 것은 이 땅의 죄를 없애는 그 회복을 반드시 이루겠다라고 하는 주님의 어떤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메시아를 통해서 이러한 일들을 이룰 거야. 내가 일어낼 거야라고 약속하고 계시는 거예요. 온 땅을 놓치는 것 없이 지켜보고 계시고 메시아를 통해
이 땅의 죄를 제거함으로써이 땅을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어 여러분 어 저희가 그 에베소서 바이블 트립에 갔을 때 그 에베소서에서도 이런 복음의 메시지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 저희가 그것을 구원 프로젝트다. 하나님의 구원 프로젝트다라고 했었는데 그 구원 프로젝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키시는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건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메시아
예수님이라는 거죠. 그분이 오셔서 그 일들을 이루어 주시겠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날이 오면 메시아의 나라가 약속대로 임하는이 땅에 오는 그날이 오면 사람들은 서로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세요. 어,이 표현은 열왕기상에서 등장하는 표현인데요. 그 솔로몬의 시대 가장 큰 번영과 풍요를 누렸던 그 시제를 표현할 때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라는 표현은 풍성하고 안전한 삶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사람들을 초대한다라는 표현을 오늘 우리의 언어로 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풍삶초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여러분 다 하셨죠? 풍삶초. 네. 그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고 그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아 이거를 나만 경험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이들도 그 풍성한 삶으로 포도나무와 무아나무 아래로 초대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너희가 메시아를 통해서 그 회복을 경험할 거고 그 회복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로서 다른 누군가의 예표가 되는 사람들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환상에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입니다. 네. 마지막네 번째 주제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어, 제가 아까 이 환상 이야기는 서로 대칭, 짝꿍이 되어 있다고 했었는데요.이 환상 이야기에서 첫 번째와 여덟 번째 이야기는 거의 흡사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이 환상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해서이 두 가지 환상의 메시지를 통해서 이 가운데 있는 환상들의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있는, 감싸고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까 보셨겠지만 첫 번째 한상에서는 말을 타고 온 땅을 순찰하는 순찰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한상에서는요. 구리로 만든 노으로 만든 두 산들 사이에서 어떤 마병대가 나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둘 다 하나님의 순찰대 그리고 하나님의 마병대를 어 의미하는 거였어요.
그들은 온 땅을 두루다니면서 감찰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온 땅을 두러 다니면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신부름을 하는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어요. 어 환상에서 굳이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한 이유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주관자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 당시 그 고대 당시 어 제국들은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지역에 순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순찰대들이 이렇게 잘 감찰하고 그 지역에 혹시 어디 밀란
일어나지 않는지 혹시 반역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를 점검했겠죠. 그런데 첫 번째 한상에서는 하나님의 순찰때가 온 땅을 두루 다녔다고 말해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온 땅을 다녔다는 건 하나님의 지배가 온 땅에 임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시는 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덟 번째 한상에서 나오는 산은 고대 중동에서는 보통이 산을 신들이 거처하는 거처의 어떤 장소로 여겼습니다. 특히 두 산 사이에 있다라고 하는 표현은 가장 강력한 신을 표현할
때 나타내는 표현이었어요. 그래서 보통은 태양신과 같은 것들을 나타낼 때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나라서는 그 당시 그 생각을 다 깨고 그 두 산 사이에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신이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하나님은 혼자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어, 말들이 이끄는이 병거부대 함께 등장하고 계시는데이 병거부대는 강력한 힘 또는 어떤 위험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그 두 산사에 나오는 것만도 이미 하나님이 엄청 강력한 분이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부대와 함께 등장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고 일하고 계시는 가장 능력 있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스가라는 이런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그 공동체에게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진짜 신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환상이 가장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서이 많은 이야기들을 아우르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환상까지 살펴봤던 그 환상들을 통해 보았던 약속들과 회복들을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똑같은 거예요.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인 내가 너희의 삶으로 들어가 그 일을 하겠다. 제국에 순찰 때는 그 지역을 순찰하면서 얻어낸 정보로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그 거짓된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순찰 때는 온 땅을 순찰해서 얻은 정보로 온 땅에 평화를 주는 일을 하십니다. 특별히 이 두 환상은 하늘과 땅을 의도적으로 구분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하늘에서 일어난 일과 땅에서 일어난 일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막막한 땅에 사는 그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그 귀한 공동체는 이렇게 탄식했을 것 같아요. 정말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이 땅에 정말 그런 회복이 있겠습니까? 왜냐면 이 땅만 보면 안 일어날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이 너무 우리 사정 몰라 주시는 거 아니야? 우리 현실 몰라 주시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환상을 통해서 보여 주는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감찰하신 것 보고도
아 그냥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고 개입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거짓 속에서 고통받는 우리를 아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이 지금 필요한지 이들이 무엇을 회복해 하는지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 땅에 사는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성전 재건하는 것이 너무 막막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도이 일을 할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실제로 고대 중동에서 성전 또는 어떤 신전을 건설하는 것은 그 당시에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 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에겐 그런 왕도 존재하지 않고요. 그럴 여력도 없어요.이 이 땅의 현실을 바라보면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도 이렇게 탄식하죠. 아, 주님 말씀대로 사는 거 너무 막막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습니까? 망할 거 같은데 망하지 않습니까? 하는 어떤 그런 탄식들이 나오죠. 그런데 여러분,이 땅을 보면 그렇지만 하늘의 이야기를 보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마병들을
이미 보내서 그 신부름을 행하는 그 사자들을 보내서 이미 주님의 일을 온 땅 두루다니며 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 환상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병거부대로 상징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은 온 땅을 두루다니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어, 여러분, 우리가 어, 요한계시록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겨진 진짜 악의 실체 그 배우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죠. 저는 이 스가라의이 첫 번째 여덟 번째 환상을 보면서도 아 하나님을 우리가 이렇게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주님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요. 사탄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도 무슨 일을 하시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진 진짜 적을 아는 것처럼 그리고 진짜 적을 알고 그것을 대적하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어 막막한 현실 뒤에 일하고 계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의
그 막막함을 하나님이 모른다고 말씀하지 않으세요. 내가 다 감찰하여 보고 있다. 내가 그 뒤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이 땅에서 주님 말씀대로 사는 거 불가능해 보이는 그 불안함과 두려움 이렇게 살면서 실패하는 거 아니야? 망하는 거 아니야? 저 사람들 벌써 저기 가고 있는데 나만 도태되는 거 아니야?라고 라고 하는 그 두려움 뒤에 이미 약속의 시련을 보고 계시고 이루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것, 그분의 백성에 대해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비록 이 땅을 디디고 살지만 하늘의 일을 볼 수 있는 것. 여러분, 귀한 공동체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들의 성전이 재건되고 또 무너졌던 그들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이를 위해서 그들은 오늘 우리가 살펴본 메시지처럼 악을 제거하고 여호와께 돌아와야만 했어요. 여러분,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사탄의 참소와 정제가 있습니다. 너 안 돼. 너 이런 사람이잖아. 그거 가지고 되겠어? 너 정말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 말씀대로 사는게 될까? 정말 그게이 시대에 먹힐까? 사탄이 우리를 참소합니다. 때로는 정말 그 참소처럼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정말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막막함에 우리가 발목을 잡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그들이 또 우리가 기억해 할 것이 있었어요. 여전히 그들을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을 쉬지 않고 이루어 가고 계시는 주님의 신실함이었습니다. 여러분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지? 이해되지 않을만큼 커다란
어떤 사랑을 입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불러요. 여러분, 주님이 기다려 주지 않으셨던게 아니었잖아요. 엄청난 세월을 기다려 주셨는데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냥 포로돼서 망하도록 내버어 두셨어도 돼요. 아, 너희는 끝을 모르는구나. 너희는 적당이를 모르는구나. 그냥 버리셨어도 돼요. 근데 그들을 다시 불러오십니다. 불러왔더니 불러와서도 바벨론에 그 습성 못 버리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자기 집만 짓고 있는 그들을 보세요. 그럼 그런 사람들 버리셔도
되잖아요. 아, 너희는 진짜 안 되겠다. 너희는 탈락이야. 하실 수 있지만 주님 그러지 않으십니다. 사탄이 그것을 참소하죠. 아, 얘네 좀 보십시오. 주님 불에 타다남은 나무처럼 쓸모 없습니다. 얘네는 글렀습니다. 근데 주님께서 그런 사탄을 책망하십니다. 내가 사랑하여 선택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요? 왜 이렇게까지 기다려 주시고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여 주시고 왜 이렇게까지 회복시키고야 말겠다고 약속하실까요? 여러분, 우리는 그것을 볼 때 아, 이것이 주님의
은혜다라고는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회복의 시작의 과정도 완성도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스가랴라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죠. 여러분, 저는 스가랴의이 모습이 오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겉모습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삶은 이들보다 더 첫참히 무너져 있을지 모르죠.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그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무너진 신앙과 깨어진 삶을 다시 세우고 우리의 영혼을 다시 회복시키고야
말겠다라고 약속하시는 그 말씀을 우리가 붙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부디 기억하시고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만군의 여호와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여러분마다의 회복을고 삶으로 직접 찾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찾아가신 주님께서 세상에서 깨져버린 그 상처들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시고 생존하기 위해 이을 수밖에 없었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으로 다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 만군을 수가 말한다.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구라도 시온을 대적하면 용서하지 못할만큼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때가 되면 말이 다른 이방 사람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가 너와 함께 가겠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어 우리가 지금 읽은 이 말씀은 전반부의 결론에 해당하는 어 부분입니다. 그니까 회복의 결론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다 말씀하시네. 마지막 가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를 열렬히 사랑한다. 내가 내 백성을 열렬히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여러분 앞에서는 너희 돌아와야 돼. 네. 그래, 내가 돌아갈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이 이 이야기를 다 말씀하시고 마칠
때는 내가 돌아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주님의 마음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찾아가셔서 그 회복을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회복이 이미 우리에게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회복의 결론이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에요. 우리 회복된 삶이 풍성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가 되어서 다른 누구도 누군가도 그렇게 초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우리처럼 고백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주님이 원하셨던 구원의 프로젝트, 그 회복의 프로젝트는 완전하고 충만하게 그 귀한 공동체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루어갈 주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온 세상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인과 동시에 온 세상을 열렬히 사랑하고 계시는 사랑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가랴서가 주님의 이 큰 그림을 그 시작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고 깨닫습니다. 우리가 먼저
회복되어 상실의 세상 바벨론에서 충만한 백성으로 살아갈 때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싸도 안전하지 않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거 같지만 가장 안전한 주님의 나라와 그 보호 속에서 진짜 샬롬을 누릴 때 무너졌던 우리의 삶이 진짜 교회로 세워져서 교회 답게 살아가게 될 때 그것을 본 이들은 우리가 꿈꿨고 또 회복되 누리고 있는 이 소망을 함께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 나라에 함께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