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식이라는 표현이 지금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한 표현이 아니리라 짐작됩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그저 1995년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정도가 기억이 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잘 안 쓰는 표현이죠.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고 알아가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이 언약의 장면은 그 어떤 장면보다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단연 ‘시내산’에 있었고, 시내산은 언약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소였습니다. * 시내산의 문학적-신학적 위치 (출 15:22~민 21:18) A. 마라-샘물 (출 15:22-25) B. 바위에서 생수가 나옴 (출 17:1-7) C. 아멜렉과의 전투 (출 17:8-16) D. 모세의 리더십을 분배함 (출 18:13-26) E. 모세의 장인 (출 18:27) F. 시내산 도착 (출 19:1-2) X. 시내산에 머묾 (출 19:3
– 민 10:10) F’. 시내산 출발 (민 10:11-23) E’. 모세의 장인 (민 10:29-32) D’. 모세의 리더십을 분배함 (민 11:16-17) C’. 아말렉과의 전투 (민 14:39-45) B’. 바위에서 생수가 나옴 (민 20:1-13) A’. 브엘 – 우물 (민 21:16-18) 출애굽 여정을 교차대칭구조로 분석해 본 것인데 시내산에 있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언약식을 앞두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출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언약식이란
언약의 대상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서로 ‘약속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성막을 건설하게 하신 것입니다. 언약식과 율법과 성막은 긴밀히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언약식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신약의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 언약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와 당시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약식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봉신 조약’ 형식과 유사합니다. 산드라 리히터(Sandra L. Richter)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에서 시행되던 ‘유사 혈연관계’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던 것이죠. 유사 혈연관계는 ‘결혼’이나 ‘입양’과 같이 혈족이 아닌 두 당사자가 맹세를 통하여 가족처럼 행동하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사 혈연관계의 형성은 국가나 부족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봉신조약(종주권 조약)은 ‘종주-봉신’의
관계에서 맺는 것으로 하나님을 ‘종주’로 이스라엘을 ‘봉신’으로 이해하면 대입할 수 있습니다. 1906년도에 발굴된 히타이트 정치 조약은 시내산 언약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이 조약은 무려 기원전 13세기의 자료입니다. <고대 근동의 봉신 조약 형식> 1. 전문(Preamble) - 종주의 위대함과 조약 선언을 위한 권리가 강조된다. • 종주의 여러 가지 직함을 소개한다. • 때로는 종주의 계보의 정보가 언급된다. 2. 역사적 서언(Historical
Prologue) - 종주는 그동안의 관계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봉신에게 조약을 수락하는 데 감사하고, 그것을 어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현재의 조약을 맺기 전에 종주와 봉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회상한다. • 봉신을 위한 종주의 호의적 행동들과 종주의 권세에 강조를 둔다. 3. 규정(Stipulations) (1) 봉신 • 종주가 봉신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봉신은 그것을 수락한다. • 긍정적인 의무와 금령 - 기본 규정(의무)이 먼저 나오고,
세부 규정 뒤이어 나온다. ․ 종주국 이외의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지 말 것. ․ 봉신은 종주를 계속해서 제한 없이 신뢰할 것. ․ 봉신은 정규적으로(대부분 해마다) 종주를 알현할 것. ․ 종주국의 필요에 따라서 군사적 지원을 할 것. ․ 종주국의 경계선을 침범하지 말 것. ․ 봉신국으로 도망간 정치범을 종주국으로 송환할 것 등등. (2) 종주 • 충성된 봉신을 보호할 것을 약속하며, 봉신에게 요구한 동일한 규정을 자신도 지킬 것을 선언한다. 4.
조약 문서의 낭독과 보관 • 봉신은 조약의 규정을 잊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조약문을 낭독해야 한다. • 조약문서는 양측이 자신들의 신전에 보관한다. 5. 증인(Witness) • 일반적으로 종주국과 봉신국의 신들이 조약을 맺는 데 증인들로 초청된다. • 때로는 산들, 강들, 샘들, 바다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람과 구름이 증인으로 부름을 받는다. 6. 축복과 저주 • 봉신이 조약을 지키면 축복을, 반대로 조약을 어기게 되면, 저주(형벌)가 선언된다. 그런데
히타이트 조약의 형식이 시내산 언약의 형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1. 전문(Preamble) : 출 20:1 - 여호와가 언약의 창시자(author)이시며, 분명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종주로 확인됨. (출 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역사적 서언(Historical Prologue) : 출 20:2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자손들을 위해서 행하신 사역이 언급됨. (출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규정들(Regulations. 법, laws) - 봉신인 아브라함 자손들(이스라엘)이 종주이신 여호와께 지켜야 할 규정들 (1) 기본 규정(basic laws) : 출 20:3-17 (2) 상세 규정(detailed law) : 출 20:22-26; 21-23장, 25-31장; 레 1-25장, 27장 *** 종주와 봉신과의 만남을 위한 예식(제사장 복장)과 장소(성막)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4. 언약 문서 보관(Deposit of Text) : 출 25:16 (출 25: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5. 언약 문서 낭독(Public Readings) : (신 31:10-13) (신 31: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6. 증인(Witness) : 출 24:4 (참조. 신 31:28) - 열두 기둥을 증인으로 세움 (출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7. 언약체결 의식 : 출 24:3-11 (출 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출 24: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출 24: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출 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 24: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출 24: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출 24: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8. 축복(Blessing) : 레
26:3-13 (레 26: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레 26: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9. 저주(Curses) : 레 26:14-33 (레 26: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레 26:15)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즉, 우리가 모세오경에 나타난 이러한
말씀들 속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분명한 언약 관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끝에 하나의 가족이었던 이스라엘이 당시 초강대국 애굽의 울타리 안에서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그 수를 준비시키고, 이제는 때가 되어 출애굽 하신 후, 시내산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한 나라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 시내산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받아들였고, 이제 이 언약 앞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과 이 언약 앞에 성실할 때도 있고, 불성실할 때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이스라엘 전체가 언약에 불성실하였어도 그중에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도 신실하게 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현대 사회에서 언약 관계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것은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을 하면서 서약을 합니다. 내가 평생 상대방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서로 약속하는 것이지요. 이 약속은 내
감정이 어떠하든지... 즉 내가 감정이 좋으면 부부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내가 감정이 안 좋으면 내 마음대로 의무 없는 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지요. 약속과 책임으로 서로를 묶는 것입니다. 고대의 부족간의 언약식은 짐승을 쪼개고 그 사이를 함께 걸어갔다고 합니다. 죽음을 맹세하는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조폭 영화 같은 데서도 함께 피를 내어서 섞어 마시지요. 그것은 피로 맺은 언약이고 배신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닙니까?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2. 율법과 성막 언약을 맺은 후 출애굽기 후반부는 딱 이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율법을 가르치시고, 성막을 짓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제가 창세기를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강조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됩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런데 형상을 주셨다는 말씀은 ‘다스리게 하자’라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들은 자신의 통치권이 직접 미치지 못하는 먼 지역에 자신을 닮은 석상을 세우고, 그것으로 자신의 주권을 드러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대리자의 역할을 갖는 것이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감사하게도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스릴 사명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밟고 있는 영역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그곳에 하나님의 왕권이 인정되도록 하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왕의 지위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따르는가? 확인할 수 있는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법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그것이 에덴에서도 주어졌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온 세계와 피조물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온
세상에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에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실패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실패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도 그러하고, 바벨탑 사건도 그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일을 해 나갈 민족을 계획하십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도 봉신조약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면, 하나님이 그를 지키고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녀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아브라함과 언약식을 행합니다. (창 15: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 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도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온 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명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너희에게 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레 26:9)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레 26: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표지이고,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안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편입니다. 즉,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인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만나기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성막은 임시 성소이고, 성막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성전’입니다. 다만 광야에서는 이동이 필요하기에 우선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이죠. 출애굽기 24:12-40:38까지는 그 성막을 짓는 것에 대해 다룹니다. 그만큼 성막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 안에 중요한 것입니다. 성막 건조의 특징은 하나님께서는 만남의 장소와 예배의 유형을 직접 정하고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을 상세하게, 디테일하게 가르치십니다. 무려 출애굽기 24장부터
40장까지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성막과 율법이라고 하면 이것이 우리와 무관한 수천년 전 광야에서 있었던 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언어로 바꾼다면 무엇이 될까요? ‘예배와 삶’입니다.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성막과 율법인 것입니다. 먼저 율법을
가르치신 후, 하나님은 25장부터 성막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출 2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출 25: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출 25:4)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출 25:5)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출
25: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출 25: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이 부분이 성막 건조에 대한 요약적 진술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셨고, 여호와께서 세세하게 다 가르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길을
보여주시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며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걸어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다른 길로 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결정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성막이 가진 중요한 의미를 신학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와 사람의 영역이 구분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성막 건축을 마치고 축복하는 장면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 창조를 마치고 축복하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이것은 언약백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특권입니다. 3. 여러분은 언약 백성입니까? 출애굽기의 언약식이 이뤄진 시내산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모습을 보입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시고, 그곳으로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장면을
보면 거기에 일정한 지리적 구분이 나타납니다. (출 24: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출 24: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백성들은 산에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조금 올라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갑니다. 아시다시피
성전(성막)의 구조도 삼중적입니다. 마당(바깥 뜰)에는 백성들이 머물고, 성소(내성소)에는 제사장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출애굽기 시내산 언약의 이러한 공간적 배치는 시내산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제단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멋대로 제의를 진행하다가 하나님의 불을 맞고 죽게 됩니다.
제사장의 지위를 갖고 시내산 성전 가까이 가는 특권을 누렸지만, 그것이 구원을 보장해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인 저를 비롯하여,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요한 교회의 사역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것은 큰 사명이고 소명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고 우리의 구원이 결정 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그 은혜 안에 머물 수 있겠지만, 언제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나의 어떠함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이것이 우리의 순전한 고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모세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출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출 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출 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출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 앞에 친구와 같이 설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이 모세의 구원 탈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 백성들이 보였던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과 불신앙을 보시며 2세대를 기다리셨고, 모세 또한 므리바 반석에서 화를 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모습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됩니다. 1세대의 대표였던 모세를 거절함으로 1세대의 실패를 우리의 교훈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즉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강하고 뛰어나기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것을 준행하며 살아가고자 힘쓰는 진실하고 순종 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한 하나님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시고, 성막을 짓고 예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가져오려면,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아니 생각해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시내산 언약과 같은 언약을 하나님과 행하셨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동물을 쪼개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럼 우리는 언약 백성이 맞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그렇게 묻거든 여러분은 말씀에 근거하여 대답해주십시오. “우리는 그보다 강하고 그보다 값진 언약을 맺었노라고” 말입니다. (마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새언약’을 하나님과 맺은 새언약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구약’ 백성이고, 우리는 ‘신약’ 백성인 교회입니다. 옛 언약의 대상은 열두 지파로 이뤄진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새 언약의 대상은 열두 사도로부터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구약의 백성들이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성소의 휘장이란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커튼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래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내산에서는 모세만이 올라갈 수 있었던 지성소. 구약의 제사에서는 대제사장만이 허락된 때 제한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성소의 휘장을 찢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그의 피로 정결함을 입고,
그가 열어 놓은 그 길을 따라 은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제 이 성소는 건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마음이 성소가 됩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 오늘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함의
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무슨....” 맞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자격이 없고, 그것은 저와 같은 목사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여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주셨고,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시고, 우리와 언약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오늘도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은혜를 입었는지, 여러분은 똑똑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혹 삶의 여러 어려움이 여러분을 낙담하게 하고 있습니까? 그 바람을 피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함부로 그러한 풍파 앞에 좌절해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세상 가운데 인정받지 못하고 무가치해 보이십니까? 그때마다 말씀을 보면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존재는 가벼울지 모르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나는 세상 어떤 존재보다 가치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고백 앞에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언약식 이후에 율법과 성막을 가르친 것은 ‘예배’와 ‘삶’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것은 구분되는 듯 보이지만 구분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공적 예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곳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도 계십니다. 그곳에서도 여러분은 주님을 예배하셔야 합니다. 저는 창세기의 창조와 함께 주어졌던 그 명령과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 안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그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온 세상에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삶의 자리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삶의 관계마다,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주님을 닮아가고 변화되어 가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곳도 주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스림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가서 억누르고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살아내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의 예배로 채워지기를 위해 힘쓰십시오. 방법은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순종하므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오늘 받은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삶으로 나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갑시다. 이곳에서부터 함께 퍼져 나아갑시다. 우리가 다시 이곳에 모이는 그날까지 삶 가운데서 순종의 예배, 사랑의 예배에 성공하고 승리하고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