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가 명절에 맞이해서 각 가정에서 흩어져 예배하는 그런 시간입니다.이 영상을 만약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보고 있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아직은 내가 우리 가정에 유일한 믿음의 씨앗서 홀로 예배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욱더 응원합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게 하는 그 놀라운 일이 당신을 통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매일 성경을 묵상하며 수요일마다 그것으로 설교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살펴보며 오늘 명절의 가정
예배를이 말씀으로 잠시 나눠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본문은 요한복음 6장 30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매일 성형 오늘 말씀입니다. 말씀은 조금 이해가 쉽도록 세 번역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우리에게 유명한 오병 이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남자만 5천명이었으니 적어도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예수님 근처에 모여 있었습니다. 당시에 마이크도 없었는데이 정도 사람이 모두 말씀을 잘 듣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님을 보려는 마음이라도 관심을 갖고 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모여 있었던 상황인 것입니다. 근데 이날 예수님의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그러자 이제 식사때를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굶줄임을 아시고 그들을 먹이고자 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알다시피 한 아이가내어 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을 기반으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먹이십니다. 당연히 이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이는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와 매출하기로 먹이셨던 하나님의 그 신령한 먹이심에 대한 것을 어쩌면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행하신 것이다. 이렇게 성경 연결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모세와 광야와 만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을 때 기적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나서는 아 이분이 놀라운 분이다 혹은 세상에 오시기로 한 그
메시아이다. 이런 식으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이 오병이어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별히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기적은 보통 그 놀라운 일을 주변에 사람 목격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 기적만큼은 모든 사람이 수혜자가 되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이제 어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놀라운 분이다라고 하면서 왕으로 모시려고 하는 거예요. 성경 보면 그래서 예수님이 피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 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이유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왕으로서 예수님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긍휼하시고 사랑하신 마음으로 그 안에 그곳에 모여 있던 그 무리들의 결핍을 채워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이 자신의 필요를 계속 채워줄 수단으로서 예수님을 왕으로 대하는 것은 거부하십니다. 왜냐하면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를 나의 왕이고 나의 신으로 삼는 그러한 신앙의 태도는 내 필요가 내 뜻대로 채워지지 않을 때 내 입맛에 안 맞고 내 필요를 안 채워주면 언제든 버리고 혹은 더 필요를
채워줄 존재로 갈아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러한 태도를 주님을 위한 주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라고 보지 않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구회로부터 피하여 버리십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이때 이 무리들이 치열하게 예수님을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빵을 먹고이 기적의 빵을 먹고 그만큼 이 사건에 꽂힌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찾고 찾다가 예수님 만납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지 양식을 구하기보다 영의 양식을 위해 힘써라. 인자가 너희에게 그 양식을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인자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나. 즉 이렇게 빵, 세상의 필요 이런 것을 위해서 찾지 말라는 거예요. 그보다 내가 너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훨씬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때 예수님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즉 지금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다. 그게 하나님이다 말하고 있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빵에 관한 관심보다는 그들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오신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의 믿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이 오늘의 말씀인 거예요. 이렇게 시작하죠.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을 행하셔서 우리로 향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한에서 빵을 열어서 그들에게 먹게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소왕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어제 오병 사건을 보며 기대에 찾고 오늘은 더 큰 기적을 기대하며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아 저분께 가면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는 육의 양식인 빵이 아니라 영의 양식인 생명을 주려고 왔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 기대가 더 올라가겠죠. 육의 양식을 주었던 즉 만나와 매출하기를 주었던 모세보다 더 월등한 월등한 선지자일
것이라 기대하며 이제는 그럼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 부분인데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대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의 생명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그들의 잘못된 기대를 교정해 주려는 거예요. 그들은 만나와 요건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면
모세가 기적을 베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에 그 시체를 숨기시는데 사람들은 자꾸 부적처럼 어떤 눈에 보이는 신령한 자를 섬기고 우상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지금 이들은 모세 자체를 어떤 그 기적의 근원으로 우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또한 하나님의 빵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어요. 그러니 이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겠어요? 당연히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 빵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세요.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죠. 그게 더 좋다고 말씀하시니까. 사마리아 여인에게 요한복 4장에서 영원한 생수를 말씀하셨을 때 그럼 그것을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러나 영원한 생수를 오해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이 무리들은 생명의 빵에 대한 이 말씀이
말씀의 그 본질을 오해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빵이고 영원한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한계가 가득한 이 땅에 속한 어떤 물질적인 그런 필요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진짜 필요한 진짜 우리를 해결해 주는 생명의 빵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이죠.이 이 빵을 먹기 위해 필요한 방식은 두째 나온 것처럼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그냥 예수님을 이렇게 맹목적 쫓아낸게 아니라 예수님께 진짜 속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평소 설교를 통해서도 제가 자주 말하지만 신앙은 관계적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관계라고 이해하는게 거의 대부분이 신앙을 잘 이해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지금 예수님과의 참된 관계 안으로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그 관계적 어이 상태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
나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예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명의 떡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 듣는 사람들은 이런 진리보다도 그냥 자신들에게 실제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물질적 필요 어 진짜 떡을 원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다음 말씀이 이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을 보고는 그냥 예수님 자체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혹은 그냥 관심일 뿐이에요. 말 그대로. 근데 이들은 진짜 갈급하게 찾는 뭐냐면 예수님에게서
나왔던 빵입니다. 즉 평상시에 그들이 예수님 바라보고 있지만 예수님이 이렇게 적고 적 원하지 않았어요. 근데 예수님이 떡을 주시니까 빵을 주시니까 예수님 주신 이 그 빵에 꽂혔어요. 예수님 주님 빵을 원할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예배합니까? 우리가 예배할 때 진짜 주님을 원하십니까? 주님만 있으면 괜찮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손을 원하십니까?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날 향한 어떤 선물들을 원하고 있습니까? 주님과의 관계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 받을 무엇인가
원하고 있습니까? 거듭 말씀드지만 이것이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 자체보다 관계자로부터 주어지는 혜택을 중요시 하는 사람은 나에게 그 혜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자기 기준에 더 좋은 혜택을 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변질되고 관계를 포기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자꾸 약점이 생기는 것은 사실 내가 하나님 말하지만 진짜 하나님을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이렇게이어서 말씀하시는데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말씀이 어떤 걸 의미할까요? 어 하나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우리를 향해서 먼저 은혜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은혜가 우리 먼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빵을 주시려고 구원하기로 뜻하셨습니다. 그 뜻은 모두를 향해서 열려 있습니다. 모두 향해요. 모두를 위한 구주로 생명의 떡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 만났을 때 그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반응과 결단에 따라서 하나님의 그 부름에 응답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한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아 저분이 하나님께서 우리 향해 보내신 생명의 빵이구나. 구원의 길이구나. 지금이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향한 하나님 뜻과 일하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먼저 행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 예배하게 될기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하나님 뜻에 사용된 통로들이 있었을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온 것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제 그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께 반응해서 예수님이 나온 사람은 예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 땅의 현실로 실현해 가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읽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문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먹고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떡이라고 하고 생수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것이 얼마나 우리 안에 들어오는 문제인지 우리가 그래서 그를 통해서 그분께 속하는 문제인지를 표현하기 위한 거예요. 그럴 통해서 우리가 죽음과 단절이 아니라 영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죠? 영생은 단순히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우리의 이 깨어진 삶이 영원한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가 지금 죽지 않고 그냥 영원한게 뭐가 중요하겠어?이
이 상태라면 거듭난 삶으로의 초청이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이라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우리가 맛보일 수 있는 생명의 떡을 통해서 생명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비록 죽음이라는 시간이 다가올 수 있지만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그 어 이후의 영원한 약속이 우리에게 신실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예수님이 신실하시고 말씀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즉 지금부터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참된 생명으로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는 생명의 삶 풍성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서 맛볼 약속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보내어 누리게 하신 복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랑 여러분. 어, 명절이 되면 많은 것을 드시죠. 또 우리가 많은 것을 또 올해 기대하고 어이 한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건강과 평안 또 형통과 우리 복을 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진짜 우리의 형통함이 뭔지
진짜 우리의 평안함이 무엇인지 이거는 고민해 봐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있다. 이것이 성경 약속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찾니 내가 주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니 무리들은 떡을 먹고 빵을 먹고 있으면 찾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생명의 빵이다.이 얘기는 너희가 찾아될 건 나야. 내가 무엇을 줄 것을 기대하는게 아니라 나를 기대해야 돼. 예수님과의 참된 사임을 들 때 그와 연합하면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나의 어떤 필요를 채우려고 하고 나의 그 옛사람에 예수님을 얹으려고만 하면 그것으로는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이 가정이 주님의 손이 아니라 주님을 구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을 주시는 분을 이용하려는 신앙이 아니라 나는 그대로 있고 예수님만 내 삶에 끼어 맞추려는 신앙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 예수께 나아가는 생명의 똥인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영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나눈 질문을 알려 드립니다. 나는 요즘 주님의 손을 구하고 있나요? 아니면 주님 자신을 구하고 있나요? 우리 가정에 생명의 방이 풍성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이것을 한번 어이 시간 이후에 예배를 마치고 나누시든 한번 함께 예배하는 분들과 나누고 같이 기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