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역대하를 공부하면서 최근 수요 바이블 클래스를 통해서 <성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다뤘습니다. 아마도 수요예배를 계속 들으신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제 조금은 정리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사역하시던 그 때, 예루살렘에는 헤롯이 증축하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신약 시대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드나들었던 성전은 바로 헤롯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건물 성전의 시대가 끝날 것임을 말씀하십디다.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이미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첫 번째 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그랬죠.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그 자리에다가 다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도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손상이 된 것을 헤롯이 다시 복원하고 증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성전이 무너진다고 해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요. 다시 지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죠. (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바로 예수님이 지으리라고 한 성전의 특징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이라는 사실이죠. 즉, 제2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이죠. 그리고 다른 성전은 지어지는데.. 그 성전의 특징은 예수님이 짓는다는 것이고, 3일 만에 짓는 것이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정확하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리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지어진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당시의 사람들은 ‘진정한 성전’은 몰랐어요. 그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만 알았을 뿐입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시대와 신약 성경이 주어진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아는 것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지나봐야 그것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이런 오해는 또 있죠. 당시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유대인들의 질문은 메시아가 오시며 이루실 그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이것을 물었고...
예수님은 그 나라 또한 성전과 같이 너희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개념임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답을 이렇게 말씀해주시죠.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너희 안에 있다고 번역된 단어는 ‘엔토스’인데,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요. within이 되면 말 그대로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고, among으로 번역을 하면 너희 ‘사이에’라는 뜻이 됩니다. 이 질문을 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이기에 예수를 믿지 않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볼 수는 없고, 그러면 지금 그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 하나님 나라는 너희 무리들 안에 있는 나이다.” 즉, 바리새인들 사이에 서계신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 나라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되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이고, 예수님은 성전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이곳에 임할 때까지...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들이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까?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진정한 성전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 (엡 1: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 즉 건물 교회가 아니고, 믿는 성도들의 머리가 되셨고, 그분을 믿는 신자들은 그분의 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전이 된 것이죠. 예수님께 속하여 있다면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도 통치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어느 장소에 들어가는 개념이 아니라 통치권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해요. 미국 대사관은 비록 한국 땅에 있어도, 그곳은 미국의 통치를 받기에 미국 땅인 것처럼... 신자의 삶이 비록 이 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 천국의 시민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으로 인하여 거듭나서, 예수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성전 곧 신자들이라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그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미래에 대한 소망은 항상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미래는 미래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한 것을 본 것과 같이 대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본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죠. 여기 서 있는 제가 목사라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이곳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조선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후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이 경험을 합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 안에 그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이 말씀하신 것들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음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던 바로 그 시기. 즉,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40일을 제자들과 보내고 있던 그 시기입니다. (행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을 무엇에 힘쓰시냐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재림 때까지 예수님의 성전 됨을 이어받을 교회. 그 교회를 세워나갈 사람들을 양육하신 것입니다. 바로 사도들과 제자들이죠. 그 40일의 교육이 내용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40일이 끝나고 예수님이 승천이 임박한 순간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승천하면 나를 대신해서 성령이 오실 것이다. 그가 너희와 함께 하셔서 재림의 시기까지 승리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을 기다리라는 것이죠. 성령의 강림.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이 처음 내 안에 자리 잡는 것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과 일치합니다. 거듭남의 순간이겠죠. 이전의 내가 죽고 이제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사람의 삶이 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는 그 시작이고, 그분과의 지속적인 사귐을 위해서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한 것이죠. 예수님이 떠나시며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마음에 품고 있던 마지막 질문을 예수님께 던집니다.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 질문은 이런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메시아 대망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머물며 성전에서 예배할 때, 그들에게 구원자 메시아가 오셔서, 이것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때에 메시아가 왕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일어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래서 포로 가운데서도 그들은 이것을 소망했죠. 약속의 땅에 돌아와 성전을 지으면서도 간절히 이것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드디어 그가 오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생각했죠. 드디어 메시아가 오는가? 그래서 당시 유대 지역의 왕이었던 헤롯이 긴장한 것 아닙니까? 내가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라는 메시아가 탄생했다고 하니,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아이들을 다 죽이기도 하죠.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으니, 메시아가 오셔서 로마 정권을 몰아내고 강력한 국가를 세울 것을 기대했습니다. 적어도 다윗 때와 같은 나라를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까지는 이해를
하면서도 그분의 행보를 보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죠? (눅 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준비하는 자였고, 분명히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는데... 요한도 유대인이었으니 그가 기대하는 것은 예수님이 왕의 길을 가야 하는데, 종의 길을 가고 있으니 묻는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당신도 메시아를 준비하는 사람입니까? (눅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 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구약 이사야서가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의 사역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즉, 내가 메시아가 맞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곳에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모여듭니다. 왜냐하면 그의 고치심과 가르치심 앞에서 사람들은 메시아 소망을 이뤄줄 한줄기 빛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했을 때는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환영합니다. 드디어 우리를 구원할 자가 오셨다고 믿는 것이죠. 이제 예루살렘에 왔으니 로마의 정권을 뒤집을 그런 일을
하실 것이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곧 배신으로 바뀝니다. 로마의 통치를 끝장 낼 것이라 기대한 예수님은 로마의 군인들에게까지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죽기 때문입니다. 기대한 만큼 분노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십자가에 죽을 때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모든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의 자리에 오르시는 순간인 것이고,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죽는 십자가로 가는 것이, 하나님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정해놓은 사명이었고.. 그래서 그분은 묵묵히 그 길을 가서 드디어 이루신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항상 오해하고 몰라봤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럼 성령이 오시면 이스라엘이 회복 됩니까? 이 물음은, 그럼 성령이 오면 메시아가 이루실 그 나라가 회복 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그들은 성령이 오셔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이들의 그 질문, 즉 메시아가 이루실 나라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대답해주십니다.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재림의 때는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것에 관심을 갖지 말아라. 그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성령을 경험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마지막 명령이고 당부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시죠. 그때 천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가 오실 것이다. 지금 그가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가신 것처럼, 그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으로 오실 것이다.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물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것을 의미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주의 재림 때까지 주어진 사명을 붙잡고 성전 되어, 그 나라의 백성 되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믿지 않죠. 인정하지도 않죠. 그들은 신약이 없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신앙에 머물러 있죠. 그래서 1948년 다시 그 땅에 나라를 세우고, 이제는 그 땅에 성전을 짓고, 그러면 메시아가 오셔서 그의 나라를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틀렸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신자들 자체이며, 하나님 나라 또한 세상의 국가가 아니라, 그분의 왕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제가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사도행전 이후의 신약은 이 약속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도들과 교회들,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 사랑 안에서 필요한 것은 신랑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신부된 우리가 동행하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복음으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어요. 성령이 임하신 후 그들은 그 약속을 붙잡고 명령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초점도 거기에 있습니다. 신자의 삶의 초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따르는 것이죠. 그것이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가끔 성도님들이 이야기하십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어렵네요. 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고백을 하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해요. 왜냐면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놓는 순간, 그 기준과 너무 먼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께 드리는 권면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일을 믿는 믿음이 있고,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심을 믿는다면... 그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그
때까지 복음으로 살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재림의 때를 소망하게 하신 것을 믿는다면, 이제 그 약속과 명령과 소망과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거대 담론을 이루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은 행동 하나가 바뀌는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내가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삶에서 행동 하나라도 바꾸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면 내 생각이 바뀌죠.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주님이 매우 기뻐하시죠. 그 생각이 삶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라도 실천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어요. 사탄은 은혜를 받는 것을 막고자 할 텐데, 그럼에도 그것을 뚫고 여러분이 은혜를 받았다면, 그 다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너 그거 못해. 넌 그거대로 못 살아.” 마치 우리가 엄청나게 큰일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부담을 줘서 정작 우리가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에요. 은혜까지만. 생각의 변화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를 위한 행동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 이웃 사랑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입니다. 주일만 예배를 드리던 내가 금요예배도 드려보는 것. 식사기도만 하던 내가 잠잘 때도 기도하는 것. 내 기도만 하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주변의 이웃과 가족을 향해 하나라도 주님이 기뻐하실 행동을 하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실 때가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은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모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는 것. 그래서 내 삶에 주님의 모습이 있는 것. 오래 걸려도 괜찮아요. 다 못가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 하나가 내 삶에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저는 다시 오실 그분의 나라를 믿습니다. 그날에도 제 모습은 완전치
못하겠지만, 저는 오늘, 그리고 내일. 하루하루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힘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해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러면 이곳이 주님의 통치가 있는 주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