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요한복음 21장 / 강성묵 간사

2023-12-08 · 요한복음 21장 · 강성묵 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본문을 토대로 청년부 기도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찬양과 함께 5분 정도의 짧은 메시지, 오늘 본문을 5분으로 축약하여 제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신실함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확장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금요예배 설교를 맡기로 결정 된 순간부터 저는 본문을 요한복음 21장으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여주신

말씀이고, 이 말씀을 통해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맛있는 음식이라며 데려간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서 첫 반응을 기다리는 일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듯이, 저에겐 지금이 그런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 이 말씀이, 단 한사람에게라도 들려지고, 전해져서

제가 알고, 경험한 하나님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저는 족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리” 제가 알고 있는 완전한 사랑이시고, 신실함의 증거이신 이 말씀을 사랑하는 사귐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1장 1절부터 14절, 15절부터 25절까지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본문 1절부터 3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21장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다시 본인이 살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어부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을 섬기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예수님께 드린 장본인이지만 그의 고백과는 별개로 죽음의 위기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처럼 닭이 울기 전 세 번 부인하고 베드로는 도망칩니다. 어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배와 물고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모든 것이던 예수님을 포기하고 다시 자신이 포기했던 어부의 삶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21장 3절의 말씀은 마치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5장 5절부터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배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의 어부 인생에 나타난 예수님은

베드로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날, 베드로는 밤이 깊도록 그물을 내리지만 제대로 수확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그물을 내리라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그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자 엄청난 만선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는, 예수님이 앞으로 베드로가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첫 부르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철저히 순종합니다. 어부로서

가장 최고의 자산이 무엇이겠습니까? 배, 그물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같습니다. 베드로는 밤이 깊도록 그물을 내리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어야 할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도, 물고기도 낚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어부로서 가장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시간인 ‘밤’이 베드로에게

가장 슬픈 영혼의‘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누군가에겐 주어진 상황이, 현실이, 관계가, 내 신앙이, 내 모습이 마치 밤 같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밤을 지낼 등불 하나 없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은 허무함과 의심 속에서 베드로의 밤을 보내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영혼의 밤을 지나갑니다. 누군가는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가는 어부의 밤을 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지나가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등불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가진 배도, 영혼도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을 걸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밤은 어떠합니까.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가는 기쁨과, 등불이 있는 기쁨의 밤이십니까, 아니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밤을, 그 어두운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분명한 것은, 이 밤은 분명히 지나갈 것이나, 밤을 지혜롭게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예수님만이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유일한

정답이었던 예수님을 부인한 상실감과 상처는 베드로를 끝없는 시간을 어두움으로 지나가게 하는 듯합니다. 광야를 걷고 있는 베드로에게 등불이 비추어집니다.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지쳐갈 때쯤, 동이 틀 때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납니다. 본문 5절부터 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다. 아마도, 동틀 무렵 바다였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듣고도 바로 예수님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 한마디를 듣고 당신이 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어두워진 베드로의 인생, 그 긴 밤을 지나 등불이 베드로에게 비추어집니다. 5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보여 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처음 만난 장면과 같습니다. 베드로의 가장 어두운 밤을 예수님이 다시 환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닐 때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베드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갔던 그 시간이

다시 베드로에게 등불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내리라는 말을 뒤로 한 채, 겉옷을 챙겨 입고 예수님을 맞으러 바다로 뛰어 내립니다. 베드로는 한 치의 의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하는 사람은 분명히 예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의 삶에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음성과 그 마음을 기억하고 망설임 없이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바다로 뛰어들은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격적인

예수님을 대학생 때 처음 경험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나의 삶을 드린 이후에 일련의 시간들이 지나고, 관계와 수많은 사역 속에서 무뎌지고 지쳐가는 시간이 무거워서 사역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 감사하게도 지금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목사님이 당시에 해주신 따뜻한 말 몇 마디가 지금의 저를 이 강단 위에 다시 서게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고, 하나님께 시간과 돈과

마음을 모두 내어놓던 그 시간에 기도 가운데 제가 하나님께 이런 고백을 드리고, 결단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비록 가시 밭 길 같아서 걷기 힘들고, 때로는 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그 피가 흘러서 내 발을 적시더라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기를 원합니다.” 왜 어렸을 땐 그렇게 피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피는 보면 기절하면서, 예수님의 피, 보혈, 죄, 이런 조금은 강한 단어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도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기도는 제가 당시에 평소 하던 기도보다 훨씬 온순한 기도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저 결단은 당시에 제 진심이자, 모든 것을 담은 고백이었습니다. 저에겐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미 가시 밭 길을 걷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가정, 그 속에서 가정의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가정에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도리어 가정을 뒤로하고 신학을 하겠다며 집을 뛰쳐나왔으니 말입니다. 저 고백을 하나님께 서언 하듯이 드리고, 시간이 흘러 제게 잊혀진 기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쳤고 사역을 그만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렇게 잊고 있던 기도를 회복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풍삶기를 하고 있는데, 최근 풍삶기에서 김형국 목사님이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기도하지 마라,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문 닫고 나가면 하나님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 마치 부하직원이 보스에게 찾아가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해낸 뒤에 ‘됐어요!’라며 소리치고 문을 닫고 나가는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기 할 말만

하지 말고 때로는 침묵해라. 침묵으로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훈련도 해야 한다.” 풍삶기를 준비하며 인상 깊게 들은 내용이었기에, 그 주에 있었던 금요기도회 때 바로 적용해봤습니다. 저는 기도를 쏟아내듯 하는 스타일입니다. 김형국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제게 말씀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 일방적인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 말입니다. 그 날, 하나님께 기도드린 이후에 침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그 날에 침묵의 시간을 통해 제가 하나님께

서언 하듯이 결단하던 기도를 마음으로 다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비록 가시 밭 길 같아서 걷기 힘들고, 때로는 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그 피가 흘러서 내 발을 적시더라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던 베드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다시 자기의 연약함을 겉옷으로 가리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가장

비참한 시간을 지나는 베드로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자신을 잡아 삼킬 것 같던 바다로 뛰어듭니다. 베드로의 결단은, 예수님의 초대로 이어집니다. 본문 9절부터 13절까지 읽겠습니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 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예수님은 밤새 물고기를 잡고 바다를 나온 제자들에게 만찬을 준비하셨습니다. 숯불을

피우고, 약간의 생선과 빵을 준비하셨습니다. “너희가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그물을 땅으로 내렸을 때, 그 물고기가 153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떠났을 때 긴 밤을 지나서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동틀 무렵 한 번의 그물질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153’이라는 숫자에 상징과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정확히 이 의미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모나미 볼펜도 볼펜 끝에 적혀있는

153은 이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이전에도 동일하게 겪었던 상황이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6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전에 베드로의 그물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했지만, 그물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물을 내린 베드로의 그물은 153마리라는 수많은 물고기를 끌어안은 채로 찢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베드로가 앞으로 내릴 그물은, 복음을 전하는 가장 강한 믿음이 되어 더 이상 그물이 찢어지지 않고, 수확의 기쁨을 누릴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상처를 가지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 “네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나를 부인 할 것이다.” 당시에는 이를 베드로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의 삶을 살기 전에 그가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지금 숯불 앞으로 부른 장면은 마치 이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복음 18장 17-18절과 25-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7.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하고 대답하였다. 18.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하고 말하였다. 26.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예수님은 과거의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원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숯불 앞으로 다시 베드로를 부른 것입니다. 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의 아픈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숯불 가운데 베드로를 초대합니다. 이 숯불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이 표현과 동일한 원어를 사용합니다. 이사야 6:5-7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를 용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했듯이 그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 죽음 이후에 부활한 몸으로 다시 베드로를 찾아간 것은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이루실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명을 베드로에게 회복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모닥불 가운데로 초대하신 것, 그 불 앞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이 함께 물고기와 떡을 나누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정점입니다. 우리가 매월 첫 주에 드리는 성찬의 가장 위대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식탁으로

초대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죄의 자녀로 살던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로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고, 그의 피와 살을 나누는 귀한 성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를 따라 우리가 그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됨을 선포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지난주일 방길주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각자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사귐의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다시 베드로를 자신의 지체로,

귀한 동역자로 부르고, 회복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0절부터 43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자기의 식탁으로 초대하여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시고, 그들의 죄를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요,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 되셔서 그를 이루는 지체가 됩니다. 우리의 지체 중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모든 지체가 머리를 따를 때 우리의 지체가 온전할 수 있듯이, 우리가 함께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나를 보고 주님을 볼 것이요, 주님을 우릴 통해 그들에게 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치유하기 위해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그를 모닥불 앞으로 초대하셨듯이, 이 시간 여러분을 예수님의 모닥불 앞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 모닥불 앞에서 여러분의

죄가 씻겨 지고, 이곳에서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이루실 영적 성찬이, 하나님과 우리의 고백이 잔치가 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와 함께 성찬하시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예수님의 기가 막힌 계획이 시작됩니다. 함께 본문 15-17절을 읽겠습니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가장 비참했을 모닥불 앞에서, 그가 행하였던 세 번의 부인을 모두 상기하게 합니다. 숯불 앞에서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까?”라고 묻던 질문, 그리고 세 번의 부인,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였으나, 생명의 위기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베드로를 예수님은 깨끗하게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행한 세 번의 부인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향한 세 번의 사랑 고백과 확신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라는 대답과 함께, 베드로의 남은 상처와 죄를 씻어냅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자신의 사역에 동참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은혜로 받아주시고, 예수님과의

성찬을 통해 그와 한 몸을 이루신 것입니다. 평범한 어부에서, 예수님의 수제자, 예수님을 부인한 배신자에서 예수님의 사도가 되기까지, 이런 인생을 계획하시고, 인내하며 베드로를 기다린 예수님은 베드로의 회복을 통해 무엇을 꿈꾸셨을까요? 베드로전서 5장 1절부터 4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그의 삶을 통해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것을 바라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이라 말했을지 모릅니다. 불합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예수님을 열심히 섬겼을 뿐인데, 나의 주, 나의 조국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의 곁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 정말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부인해야만 했던 베드로의 상처, 그의 어긋난 마음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가장 적절한 때에 베드로를 자신의 양을 먹이기 위한 목자로, 또 모범이 되는 양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연단하고, 단련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습니다. 때론 하나님과, 가정과, 회사에서, 이웃과 갈등을 겪곤 합니다. 저는 이 시간 오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모닥불 앞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닥불 앞에서,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찬하며 우리가 한 몸이 되었음을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셨듯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수많은 상처와 위기, 고난 속에 있을 지라도 여러분의 시간과 마음을 작정하여 나온 이 예배의 자리가 여러분의 모닥불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 청년부에서

나누었던 본문의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어느새 칠흙같던 밤이 지나고 동이 튼다. 나는 지난 밤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렇게 빈 그물을 거둬 돌아가려는 때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다. “베드로야, 오늘은 무엇좀 잡았느냐.“ 나는 그분이 내가 사랑했던 예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당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부인했고, 나는 당신을 외면했고, 나는 당신보다

세상이 좋기때문에.. 그는 자신을 배신했던 나에게 묻는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마음의 진심을 담아 대답한다. ”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는 또한번 내게 묻는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마음의 불안함을 뒤로 숨기고 대답한다. ”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는 이내 내 답변이 맘에 들지 않는지 다시 한번 묻는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모든 마음과 진심을 담아 예수님에게 고백한다.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른 아침, 밤새 그물질로 지친 내게 찾아와서 당신의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셨다. 내가 당신을 세번 부인했던 그 순간이, 이 모닥불 앞에서 당신의 세번의 질문을 통해 용서 받았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 삶이 너무 바빠서 내가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보다 즐거운

것이 있어서 때로는 예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나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당신은 내게 묻습니다. “성묵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 나의 아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때로는 내 삶이 지쳐 부인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애써 힘내어 고백하고자 합니다. “네 주님,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은 여전히 여러분 옆에서 깨어진 세상 속에서 상처받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당신을 세번 부인하더라도, 당신은 내게 세번 사랑한다 말씀하시니 나도 다시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나는 다시,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마주한 모닥불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지치고 상처받은 여러분을 예수님이 만드신 모닥불 앞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모닥불 앞에서 회복 된 여러분, 그 힘을 얻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전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신실하심이 베드로를, 그의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셨듯이, 오늘 밤 예수님의 신실하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