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성령 충만" / 박예진 전도사

2024-05-19 · 사도행전 6~8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는 요새 사도행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의 세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사도행전 6장부터 8장의 말씀을 가지고 성령 충만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 오늘의 설교는 크게 세 가지의 메시지를 가지고 여러분과 이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초대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초대교회는 어 우리 교회가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로 삼는 그런 교회죠 목사님께서 에 비유하셨다 것처럼 모든 교회가 기준을 삼을 만한 첫 번째 편자 같은 그런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다른 말로 했을 때 우리가 그 초대교회로부터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우리가 그 교회로부터 본받을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그런 좋은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 초대교회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좋은 교회란 또 무엇입니까 네 아마 여러분이 각자 생각하시는 교회가 다 다를 거예요 누군가는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예배가 풍성한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다 생각할 수 있죠 또 다른 누군가는

아 좋은 교회란 선교하고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좋은 교회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아마 대부분 긍정적인 교회 모습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런 근데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하고 기준을 삼아야 하는 그래서 우리가 좋은 교회다 이야기하는이 초대교회 모습에 썩 긍정적이지 못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갈등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문제가 있고 위기가 있는 모습을 그대로 성경은 내비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갈등 문제 위기라고

하는 이런 단어들은 사실 전부 좋은 교회라고 하는 그 카테고리 안에 넣기에 좀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오히려 그 카테고리 안에서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하고 지워버려야 왠지 좋은 교회라고 하는 그 명성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갈등의 이야기를 지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좋은 교회란 갈등이 없는 그래서 아무 문제도 그 어떤 위기도 만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갈등이 있고 와 위기가 있어도 좋은 교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갈등이 하나도 없는 교회보다 갈등이 있지만 극복해 가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교회가 더 좋은 교회일 수 있다는 것이죠 좋은 교회는 갈등의 여부가 아니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라고 말하는 이 예루살렘 교회를 잘 살펴보면 갈등과 위기가 참 많은 교회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늘 박해와 핍박 압박이 있었고요 또 공동체가 성장의 감에 따라서 내부적으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6장에 등장하는 갈등은 사실 그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그리고 겪어냈던 그 많은 갈등과 위기 중에 하나에 불가할뿐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시에 제자들이 점점 어났다 그런데 스를 하는 사람들이 리 말하는 이 사람들에게 불명을였다 그것은 자의 과이 다 식을 받는에 소 여을 기 때문이었다 초대교회 안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고 어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곧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지금 예루살렘 교회 안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회심하여 들어온 성도들이 점점점 많아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성도들은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한 그룹은 그리스 말을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의 그룹이 있었 다른 한 그룹은 히브리 말을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두 그룹 중에서 헬라파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호 음식을 나눠받는 그 과정에서 왠지 히브리파 사람들보다 헬라파 누리가 더 소홀하게 대해진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있었을 때 헬라파 사람들이 그 주장한 것처럼 정말 그들이 불평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는 사실 그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시에 그 일을 감당했던 리더들 즉 사도들이 히브리파 사람들로 구성되 있었기 때문에 헬라파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느끼고 오해했을 수도 있죠 우리는 그 사건의 진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요 그러나 여기서 확실하게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교회의 갈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초교 안에 갈등과 위기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더 큰 교회 위기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였어요 왜냐하면 사단은 언제나 우리의 그 작은 갈등을 키워서이 교회를 깨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위기는 반대로 위험한 기회라는 말을 아시나요 물론 갈등을 겪고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이겨내면 공동체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위기는 다른 말로 위험한 기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토록 성령이 충만했다고 말하는 초대교회도 갈등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갈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진단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더욱더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요 사도들이 먼저 자신들과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면서 아 우리에게 왜 이런 갈등이 생겼을까 우리가 혹시 놓 고 있던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생각하며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사도들이 발견한

교회에 부족했던 점은 모든 사역을 오직 사도들 감당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이것을 깨닫고 모든 성도들을 불러모으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네 읽고 싶습니다 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제자의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을 여러분들 마서 보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이를 맡기고이는 이한 일과 말씀을 성습니다 아멘 사도들이 제안한 해결책은 사역을 분배하는 것이었어요 오직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그 리더십을 나누는 것 그 그것이

그들이 찾은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새로운 리더 일곱이 세워집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갈등을 겪으면서 오히려 그들이 그것을 기회를 삼아 성도들과 함께 동역하는 그런 교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이죠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 즉 초대 교회에게 원하셨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서로 같은 마음으로 동역하며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혼자 일하지 않으셨죠 굳이굳이 그 좌충우돌 사고 뭉치와 같은

제자들을 항상 데리고 다니셨어요 사실 여러분 예수님만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어디 있나요 혼자서도 얼마든지 많은 일들을 해내실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혼자서 일하시는게 더 많은 일 더 빠르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분이었어요 그러나 주님은 그 예수님도 제자들과 동역하는 반드시 제자들의 목수를 나누어 주시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들도 일하게 하시고 하셨고 그들도 나가서 전도하게 하시면서 꼭 제자들과 동역하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원리 자체가 나 혼자도 아니고 너 혼자도 아니고 우리 모두 함께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갈등을 통해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모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저는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라고 생각해요 다음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이 속에 받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과과 로와들과 와 마와 주신의 사람으로서 그에게 한 사람이 라를 뽑아서

사도들 함께었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하였다 여러분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 뜻에 더 가까운 쪽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나아가는 것은 교회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죠 교회가 반드시 그렇게 해내야 하는 일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그 일에 하나님의 뜻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모든 사람이 그 교회의 결정을 좋게 받아들이고 그 일을 함께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며 하나님의 뜻에 계속 가까워지도록 힘쓰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교회가 아니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 혹시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없을까 혹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여기서 어떻게 하면서 나아갈 수 있을까라는 것을 성령님께 계속 물으며 나아가는 공동체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교회가 그렇게 나아가고자 한다 할지라도 그 걸음의 속도가 붙고 그 방향성에 힘이 실리면 교회가 꿈꾸고 나아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고 그것에 힘을 실어 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저는 그 교회가 진짜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믿어요 여러분 우리가 오늘도 읽었지만 예배하기 전에 늘 사명 선언문을 읽죠 여러분 그것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주님의 그 뜻 안에서 함께 꾸고 있는 꿈이고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우리가 살아내고 싶어하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 함께 나누고 자꾸 되새기고 자꾸 곱씹는 것입니다

저는 그 교회 사명을 어떤 사역자들 아니면 목사님과 어떤 목회자들만 생각해야 한다고 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역자가 아닌 여러분도 이 교회의 가족이시라면 저는 여러분도 그것에 집중하고 자꾸 되새기고 곱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살렘 교회는 모든 성도가 교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동참하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그러나 그렇다고 정말 그 교회 안에 한 번에 그 모든 수가 그 많은 무리가

아 이거 좋아요 우리 이렇게 해요라고 마음이 합해졌기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누군가는 아 나는 그렇게 하기 싫은데요 나는 이게 더 좋은 거 같은데요라는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요 그러나 그들이 사도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우리끼리 일라는게 좋지 않은 거 같아요 주님께서 그 그러셨듯이 우리도 함께 동역하는 교회가 되는게 주님의 뜻에 더 가까운 거 같아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아 주님의 뜻이래라는 그 한마디에 그들의 마음이 모아졌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힘을 실었어요 다 같이 마음을 합하여 동참하며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귐의교회는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뜻과 더 가까운 교회가 되도록 나아갈 것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와 도전은 불가피합니다 때로 누군가는 그 변화와 도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정말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기 위한 것이라면 저는 여러분이 내 마음에 들지 않다 하더라도 그 일에 초대교회처럼 마음을 합하여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초대교회 모습을 본받을 수 있을까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음을 합하여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교회가 왜 이럴까 저는 우리에게 때때로이 질문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체 왜 이렇게 예배하지 왜 이런 걸 자꾸 하려고 하지 왜 저런 거 하지 말자고 하지 우리 사귐의 교회는 대체 왜 이럴까 이것은 교회 모든 일에 사사건건 시를 걸거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진솔하게 우리 교회는 왜 이렇게 나아가고자 하는 걸까 이렇게 나아가고자는 방향성인 어떤 주님의 뜻이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직접 교회의 걸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여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할 수도 있죠 또 누군가는 직접 목사님이나 리더들에게 아 우리 왜 이렇게 하려고 하나라고 물어볼 수도 있 질문하고 고민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지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에 저는

더 중요성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던진 그 질문 끝에서 아 교회가 이렇게 하고자 하는게 누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런 공동체를 원하는 거구나 그래서 우리는 힘들지만 이렇게 가고자 하는 거구나라고 하는 그 답을 얻었을 때 비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 우리 목사님 정말 위대한 분이죠 아주 유능한 분이세요 그런데 목사님이 이렇게 하자고 했어요라고 하는 말은 사실 힘이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봤을 때 아 정말 저 사람은 참 존경받을 만한 리더야라고 한 그 리더가 아 우리가 이렇게 하는게 좋겠어요라고 하는 말도 사실 잠깐 반짝할 수 있겠지만 그게 우리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묻고 끌고 갈 힘은 없습니다 왜냐면 여기 계신 여러분이 각자 좋다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다 다기 때문이에요 각자 좋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추구하다 보면 교회는 하나로 뭉치기 더 뿔뿔이 흩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고 늘 곱게

우리에게 한 방향을 알려줍니다 제가 다른 우리의 생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아 주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분 마음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고 어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공동체는 더욱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고 계속해서 위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갈팡질팡 흔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흔들린다 할지라도 금방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 중심축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서로 다 다른 것을 보고 있었어요 예수님이 대체 왜 이러실까 이런 거에 관심 없었습니다 각자 자기가 꾸는 꿈에 빠져 있었어요 나는 이런 나라 나는 이런 지도자 내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 그럴 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힘이 없었습니다 쉽게 흔들리고 넘어졌어요 위기를 만나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그러나 그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 안에서 같은 것을 꿈꾸기 시작할 때 같은 주님의 뜻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

공동체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 뿔뿔이 흩어지다 위기를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하나로 뭉치는 그런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죠 지금 갈등이 생겼지만 그들이 갈등을 통해서 무 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나아갑니다 그리고 온 교회는 그 교회가 제시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 모습을 같이 바라보고 동참합니다 갈등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들이 오려 고 이렇게 깨어질 수 있는 그런 갈등의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뜻을 바라봤을 때 한 공동체로 모이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부터 한번 질문해 보십시오 대체 우리 교회가 왜 이럴까 왜 이런 것을 꿈꿀까 우리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공동체인가 교회가 변화를 시도하고 무언가를 도전할 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더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리 교가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진실한 질문을 가지고 주앞에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견고히 세울 주님의 뜻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갈등을 그렇게 해결해가는 과정 중에서 뽑혔던 일곱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스데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은 스데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스데반은 은와 능력이 충만해서 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했다 스데반 역시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또 사도들이 그랬듯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 그렇게 놀란 일들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그것을 주시하면서 논쟁을

거론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리버디노 해당에 소속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이 스데반을 찾아가 을 겁니다 스데반이 그것을 받아줘요 그래서 스데반대 리버디노 해당 사람들의 논쟁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일대 다수의 대결이었다 해당 사람들이 이 스데반 한 사람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스데반이 논쟁에서 이겼다는 거예요 그러자 그들은 비열한 방법을 쓰면서까지 스데반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선하여 세상이 모세와 하나님을다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었습니다 하야 다 그리고 백성과 장들과 율법 자들을 시이고 에로 려가 그를 잡아서 공에 왔다 그리고 거짓를 어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이사람은 실세 없이가도 것으로 말합니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부여서 스데반을 결국엔 잡아드립니다 그리고 거짓 고소를 하여 공의로 끌고 가요 또 그곳에는 그들이 미리 매수하여 놓았던 거짓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스데반 아주 작정하고 몰아가는 것이죠 근데 여러분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제가 여러분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키워드에 색를 해놨습니다 선동 공의회 거짓 증언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순 가정과 매 흡사합니다 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진리를 가르치실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을 버렸어요 그런데 그 논쟁에서 늘 졌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하죠 예수님을 공로 끌고 가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 그 재판이 예수님께 분리하도록이를 꾸며 갔습니다 그리고 무리를 선동하여 결국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일을 버리죠 스데반이 처한 상황과 예수님의 처상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때도 그랬고이 스데반의 때도 왜 이들을 잡아먹지 못해 이렇게 안달이 나 있을까요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했길래 무리를 선동하고 거짓 증인까지 매수해 가면서 그를 잡아 주기로 이렇게 혈안이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스데반의 최후 변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거짓 고소로 공의 재판에 끌려간 스에게 대제사장이 마지막으로 별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기회를 얻은 스데반이이

말을 하는 건데요 총 두 페이지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지극히 오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지 물에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한자가 말하기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나의 보자요 따는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어수 있으며 내가 만한 곳이 어디냐이 모든 것이 나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 으로습니다 스데반이 이야기한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가 바로 지금 나오는 이야기였어요 하나님은 건물 안에만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만든 그 건물 안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둘 수 없다라는 것이 스데반의 결론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몸이고 마음과의 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조상들이 대로 당신들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하지 않 여자가 한 사람이라 있었습니다 그들은 것을 한 사람들을 죽고 이제 당신들은 그을고 죽습니다 스데반이 이야기한 두 번째는 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진짜 메시아라는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의인은 메시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은 지금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한 거예요 하나님을 성 그 건물에 계시지 않는다라는 것과 예수가 진짜 메시아라는 이야기죠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전하셨던 말과 동일합니다 전혀 다르지 않아요 비교해 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같은 말씀을 전했고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한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스데반을 죽인이 무리의 행동이 좀 지나치지 않나요 예수님의 때도 그랬지만 스데반을 죽인이 사을

바라보면 그들이 좀 화하다 너무 많이 흥분했다 아니 아무리 좀 듣기 싫은 말 했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대체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화가 나 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이 스데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이 믿어왔고 따라왔고 평생을 걸어온 그들의 삶을 마치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에게 성전과 율법 그 리고 기다리던 그 하 메시아는 그들의 삶 그 자체와 다르지 않아요 그것이 곧 그들의 삶이고 그들의 정체성이

되었어요 성과 율법 메시아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지금까지 긴 시간을 흘러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그들을 향해 스데반이 지금 말하는 거죠 아 정말 미안하지만 너희의 그 삶에 오류가 있어 너가 오하고 착한 분들이 있어는 그 다 금까지 살아왔지만 사실 주님이 원하시는 건 그게 진짜가 아니야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거기서 돌이켜야 해 여기가 진짜야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주신 것 맞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주신 것은 내가 내 백성 안에 함께 한다라는 그 의미의 상징물로 주신 거였어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상징물을 넘어서 그 성전 안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기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은 그 성전 애지 중지하며 살았어요 아 우리 성전 우리 소중한 성전 이렇게만 하고 살았다고 그런데 스데반이 그렇게 살아온 그들을 향해 지금 말하죠 하나님이 너희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그 성전이란 건물에 갇혀 계시지 않아 하나님은 애당초 사람이 지은 그 건물에 가둬둘

수 있는 분이 아니야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이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그 건물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성전이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평생에 걸쳐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길 기다리며 살았고 자신의 때에 오지 않으면 아 내 자녀의 때라도 아니면 내 손자의 때라도 오시기를 그렇게 기다리며 꿈꾸며 그들의 생을 맞춰 왔어요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조상대대로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사람은 그들을 향해 스데반이 이야기하죠

너의 조상들은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메시아를 예언한 예언자들을 다 죽였지 박해하고 핍박 지금 너희도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너희는 진짜 메시아 알아보지 못하고 너희 손으로 죽였잖아 너희가 죽인 예수가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 그분을 믿어야 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 그들이 살아가는 방향성 그들의 삶의 목적과 이유가 스데반의 말끝에서 모두 다 부정 당해요 그러니 당연히 화가 나죠 여러분 모든 사람은 자신의 굳은 신념 또는 사랑운

삶의 태도에 대해서 아 거기에 오류가 있는데요 그거 잘못된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일단 기분이 나쁜게 당연해요 반감이 다 들죠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아 여러분 참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은데 그것은 인정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심이 잘못되었네요 여러분 잘못 살아왔네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 우리도 기분 나쁘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만나면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논쟁을 하게 됩니다 대체 그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 왜 내 삶에 나 잘 살고 있는데 왜 자꾸 이상한

소리로 나를 공격하는지 자꾸 따져보게 된다고요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했던 것이고 리버디노 해당 사람들이 스데반을 찾아와 논쟁했던 것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짜 맞는 말인지 논리적 대결을 펼친 것이죠 리보노 해당 사람들에게 이 논쟁은 아 그냥 누구 말이 더 맞는가 그 정도의 논쟁이 아니었을 거예요 자신들이 살아온 지난 삶의 시간과 노력이 걸린 그래서 자신들이 살아온 그 가치간에 어떤 자존심이 걸린 그런 아주 중요한 대결이었습니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문제는 스데반의 말이 말도 안 된 억지가 아니라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었다는 거예요 스데반의 말에 논리와 당위성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으로 그는 스데반을 수없었다 스테반의 하는 말은 지혜와 성령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리버디노 해당 사람들은 저는 분명히 그들도 들으면서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듣다 보니까 정말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의 오류가 있고 우류가 틀렸고 그가 하는 말이 맞다는 것을 그들도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 한 사람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진리를 말하니까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죠 나는 분명히 이게 옳다라고 생각했고 이게 가장 좋은 것을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듣고 보니까 저 사람의 말이 맞고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이 우리 삶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지혜로운 사람과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구분 지혜로운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 아 저 사람의 말이 혹시 진짜 아닐까

정말 저게 진짜가 있는 거 아닐까 만약 이것이 오르려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고민하기보다 아 당장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저 사람 나를 불쾌하게 하는 저 사람을 내가 없애야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그 메신저를 공격하면서도 자신의 그 논리와 신념을 지키려 들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상대방을 다치게 하고 죽여서라도 지켜야 하는 신념을 가다 그것은 더 이상 신념이 아니라 무지한 함입니다 어리석은

집이에요 사도행전 7장의 상황도 이와 같았습니다 회당 사람들이 이토록 흥분하고 분해 화를 낸 이유 그래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잃은 그 이유는 스데반이 엉터리 같은 억지논리로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반 말이 진짜 진리임을 때문에 이토록 흥분했을 겁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이 틀리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온 삶이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려면 스데반이 틀려야 하거든요 그런데 스데반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말이 진짜 진리인 거예요 그게 맞는 말인 거예요 그러자 스데반이 전해주는 그 메시지 그 진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결국 메신저인 스데반을 예수님처럼 공격하여 죽인 것입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고집 그들의 그 완고함이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이죠 여러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그 진리는 당시 사람들의 모든 신념과 삶을 전부 다 흔들어 놨어요 다 뒤집어 엎어 놨다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하고 따지죠

대체 당신이 뭔데 이런 말을 합니까 대체 당신이 누군데 우리의 삶을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뒤집어엎어 놓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따지면 따질수록 옳다는 것만 더 증명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은 메신저 예수님을 죽인 것이죠 여러분 지금도 누구나 진리를 만나면 충돌해 진리와 내 안에 있는 내가 충돌하게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찔리고 얹고 당황스럽고 때로는 화가나요 여러분 때로 옳은 말을 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나잖아요이 설교 시간도 저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로 우리가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들을 때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죠 왜냐하면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일한 마음을 찌르고 굳어진 삶을 자꾸만 흔들고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욕망을 알아채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 말씀이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 내 생각과 가치관 내 경험 그 모든 것들과 정반대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그 말씀이 우리를 부정 하는 것처럼 느껴서 불편함을 느끼죠 그럴 때 우리도 순간 반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마음이 불편해지고 화가 나는 그 순간 내가 언고 기분 나쁜 그 순간이 어쩌면 우리가 진짜 진리를 만났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줄 어떤 그 터닝 포인트를 만난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때 그 순간에 우리에게도 두 가지 갈림 길이 주어지죠 진리를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여러분 우리가 그 갈림길에서 그 혼란 가운데 충돌하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실까요 성령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곱씹고 고민하며 질문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진리를 따르도록 도우세요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탄은 반대로 무슨 일을 할까요 우리의 그 찔린 마음 불편한 그 감정을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감정에 치우쳐서 진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그 진리를 떠나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들이 스데반과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메신저를 공격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리를 따라가지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이 만약 말씀을 듣다가 아니면 누군가 말씀을 나누다가 아니면 혼자 골방에서 기도하다가 어떤 기분이 나쁜 찔림을 얻는 그런 불편한 순간이 온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그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진짜 진리에 대해 고민해 보시라고 권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불편하니까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듣기 싫으니까 귀 닫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 혹시 이게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이게 진짜면 이걸

따라가야 하니까 그것에 대해 진실하게 질문하고 고민해 보라는 것이죠 그래야 진짜 진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 제가 이것에 대해 설교를 준비하다가 한 예화가 떠올랐는데요 어 제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삶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배우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때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아주 엉뚱한 이야기였어요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대는 어 대체 저게 무슨 소릴까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 하는 언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계속 둥둥 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고 그 영 그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는데 교수님이 그게 아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오류가 있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하나님 나라의 재성에 대해 저는 그 당시에 몰랐거든요 그날 교수님의 수업은 저에게 아주 큰 혼란을 아주 한 방 땅 던지고 끝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혼란을 저만 느낀 건 아니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동기들이 다 쉬는

시간에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다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배온 건 뭔가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은 지금도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럼 저건 틀린 건가 여러 가지 혼란 가운데 자연스럽게 어떤 토론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저희 동기 중에 거의 교수님과 같은 어떤 그런 박식함을 가진 한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그분이 하나님 나라 신학에 대해서 아주 잘 어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저희에게 이런저런 답을 해

주시는데 저에게도 알려 주시는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왜 오류인지 거기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계속 하나하나 짚어 주셨습니다 근데 제가 그걸 짚어 주는데 고마움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진짜 꼴배기 싫더라고요 아니 내가 이렇게 믿어왔고 내가 이렇게 배워 왔는데 아 나도 나름 어 다름 논리를 가지고 이렇게 살아 왔는데 아 그거 이거 틀렸고 이거 틀렸고 이거 틀렸다고 자꾸 이렇게 제 시험지에 빨간 줄만 이게 그어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

더 화가 났던 건 아 내가 맞았고 저분이 틀렸다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크게 한방 먹여 보고 싶은데 하시는 말씀만 다 맞는 말이라 제가 할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으면 들을수록 반박할 수 없는 그 말에 아주 우라통이 터졌습니다 나중에는 웃으면서 예진아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하시는데 아주 그냥 배기가 싫어서 밥 먹기가 싫었습니다 분명 저에게 도움을 많이 주셨고요 많은 맛있는 밥도 많이 사줬던 아주 고마운 분이었어요 근데 그 순간에 정말 믿더라 그요

내가 살아온 나의 신앙을 부정하는 거 같아서 내가 믿어 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 가치관을 아 틀렸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 같아서 아 그래서 어쩌라고 넌 뭐가 잘났는데라고 소리치고 싶은 그런 유치한 마음도 제 안에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미워하고 스데반을 미워했던 그 무리들 럼 말이죠 근데 제가 집에 돌아오는데 마음이 너무 찜찜한 거예요 왜냐면 그 교수님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가르쳤을 거 아니에요 그 똑똑한 그 전도사님도

아 뭔가 거기 진짜가 있으니까 자꾸 저한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찜찜함 때문에 아 혹시 이게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좀 더 고민해 보고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그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 취소하지 않고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전도사님과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그런 대화의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단기간에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치열한 과정을 어 거친 끝에 저는 그 학기를 졸업하면서 아 하나님 나라가 죽어서 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오늘 나에게 임하는 주님의 다스림이 것을 깨닫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만약 제가 그때 제 올라오는 그 불편한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그래서 넌 뭐가 잘났는데 그래 나보고 뭐 어쩌라고라고 소리 쳤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전 아마 지금도 이 땅에서이 풍성함을 누리지 못한 채 아 죽어서만 가는 나라 아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았겠죠 결국 그것은 제가 이 나라를 더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 마음이 질린다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아 여기가 내가 있는 자리인데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인데 이게 내가 원하는 건데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겠어 너 거기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나와 함께하지 않겠어고 신호를 주는 거라고요 복음을 진짜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거고 내 삶을 진리로 교정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시는 순간입니다 어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서여 우리가

어떻게하는 죽겠습니까 하고 베로와는 사들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나를고 마음에려 그을 향하여를가 그들이로 니 세이 어 이되 주을 받으시옵소서네 지금이 말씀에 두 가지 어 사건이 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행전 2장의 사건입니다 2장의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은 말씀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지금 찔렸다고 성경이 기록하죠 그들에게 성령님이 주신 기회가 찾아온 거예요 그들은 성령님께서 주신 그 기회를 지혜롭게 잘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주시는 그 마음을 따라서 그 찜찜하고 언짢고 그 불편한 그 찔림을 가지고 그 말씀 앞에 나아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 정말 만약 당신의 말처럼 우리가 착각하고 있던 거라면 내가 정말 잘못 가고 있던 거라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내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민하고 질문한 것이죠 그렇게 고민했던 그들은 결국 회개하고 돌이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밑에 있는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를 드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2장의 사람들과 똑같은 복음 똑같은 진리를 들었지만 또 그 말씀을 듣고 똑같이 마음이 찔림 얻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들은 고하지 그저 불편하고 당황스럽고 아 저 사람 나한테 지금 시비거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그 분노의 눈에 멀어서 복음을 외면하고 스데반을 죽이고야 맙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찔리는

그리고 불편하게 하는 그 기회를 어리석게 놓치지 마십시오 치만 그 말씀을 고는 지혜가 여러분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고민하면 반드시 진리가 나를 이겨요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말씀이 나를 시킵니다 왜냐면 진리의 말씀을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전에 읽었던 말씀이죠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낼 수 없었다 분 겉으로 보면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이 스데반을 당지 못한 것처럼 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조금 더 주목하여 보면 스데반의 말은 사실 성령님이 하는 말이었고 그들이 당지 못했던 것은 스데반이 아니라 진리로 말씀하고 계시는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찔렀던 건 스데반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고 싶으셨던 그 진리에서 그것 함께 누리고 싶으셨던 성령 하나님이었다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을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당해낼 수 없어서 또는 당 지 않서 무시하고 떠나갈 수 있겠으나 진짜 그분 앞에서 고민하고 질문하며 나아갈 때 그분의

논리와 당위성에 우리는 모두 설득되고 말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것과 듣고도 외면하는 것 진리 앞에서 내 삶을 교정해 가는 것과 그저 살던 대로 계속 사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그 말씀을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고민하고 질문한 가에 있다고 저는 생합니다 그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말고 고민하고 질문하시고 씨름하기 바랍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반드시 바꾸어 놓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주님의 진리를 당해 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스데반의

관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했죠 그러나 굴하지 않고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다시 전한 그 복음 때문에 돌에 맞아 처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이런 질문이 들 수 있죠 데바는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 있으면 어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삶을 걸어야 합니다 전부를 내어야 합니다라고 또 우리도 쉽게 어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목숨을 건다는 거 정말

삶을 건다는 거 정말 내 전부를 다내어 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라는 걸 우린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여러분 스데반은 지금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는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스데반이 그렇게 살아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다면 우리도 스데반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스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찾아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에 계신 것을 보였다

이것을 메시지 성경으로 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 말을 듣고이던 사람들이에 있더니 나와과 용서를 거부는 도로 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스가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영광 가운데 신 하나님과 그 성신 예수를 다 사람들이 난폭해지고 폭도처럼 변할 스데반을 치러 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스데반이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 말고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기록하죠 저는 이

말씀이 스데반의 기계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죽음의 순간에서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그런 기계 말입니다 스데반의 기계는 하나님만 바라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스데반처럼 눈앞에 상황이 아니라 주님만 볼 수 있다 스인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내 삶에도 폭한 제들이 들이닥치고 앞에 폭도 같은 고난과 고통이를 치겠다고을고 있을지라도 내이 그것들을 는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라볼 수 있다면 리 스데반처럼 그리스도인의 기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다 스 어떻게하 있었을 그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오직 하나님밖에 보이지 않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건 여러분 어떤 특별한 능력을 얻거나 어떤 뛰어난 인자가 되거나 뜨거운 불을 받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고 아주 깊어진 사이가 되었다는 것 것을 말합니다 스데반과 하나님의 관계가 다른 것으로 흔들리지 않을만큼 그

관계를 깨지 않을만큼 그만큼 돈독해져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죠 나와 그 사람의 사이가 얕으면 얕을수록 아주 작은 찌라시에도 흔들려요 아 걔가 그랬다고 하던데 이런 말에도 우리 흔들린다고 그런데 그 관계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친밀하고 아주 돈독해지는 돈독해 질수록 우리는 그런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아니까 내가 그 사람과 겪고 온 경험들 그와 마주한 교재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을 위해서 때로는 손해도 볼 수 있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관계를 지키고 그 사람을 지켜내고 싶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주님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돈독해지는 돈독해질수록 그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군가 와서 딴 을 걸고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알거든요 내가 그분과 교제에 온 함께 걸어온 시간이 있거든요 여러분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신 손해볼 수 있죠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내가 어떤 건 견뎌낼 수 있어요 또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죽어줄 수도 있습니다 내 눈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그 상대만 보이기 때문이에요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었고 아주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하나님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성찬 예배 때마다 부르는 고백이란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먼저 날 사랑하셨으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위에 죽겠 주님먼저 날 위해 죽으셨으니 내가 주 위해 죽겠습니다 내가 주 위에 살겠습니다 주님 먼저 날 위해 사셨으니 나도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하는 고백의 찬양입니다 하나님과 스데반의 관계는 아마 이 찬양의 가사와 같은 관계였을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는 관계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도 서로를 위해 살아줄 수도 있는 그 성 충한 관계 말이죠 도 성이 충만했던 사람들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서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

있고 서로를 위해 살아줄 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스데반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은로 할 다 그는마다 들서 자 자 않 다런 진 람들은 씀을 다 복음을 믿고 전한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고난을 당합니다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흩어져서 그들이 숨은 것이 아니라 도망하여 터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순간에도 두루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하나님 말고는 눈에 베는게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그러 여러분 이런 관계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을까요 그렇지 않았겠죠 우리 사람끼리의 관계도 시간을 같이 보낸만큼 내가 마음을 쏟은만큼 내가 그에게 시선을 맞춘만큼 지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주 하루 예배드리는 사람은 그 속도만큼 주님과 친해지겠죠 그러나 주일 예배 금요일 예배 또 다른 어 모임의 시간에 시간을내는 사람은 또 그만큼 깊어질 거예요 또 매일 큐티로 묵상하고 일상 중에 틈틈히 주님을 생각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속도가

다를 것입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나요라고 물 물으며 사는 사람의 그 속도가 또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시간을 내고 마음을내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시는 사람과 데이트 하듯이 주님과 데이트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도 스데반과 같이 성령이 충만하여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무슨 주일이네 우리 성령

강림 주일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이 진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신 날이에요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점점 더 특별한 능력을 갖거나 아니면 뛰어난 어떤 은사를 갖거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그 성령님의 손을 잡고 발을 맞추어 함께 걸으면서 날마다 점점 더 친해지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오늘 살펴봤듯이 성령이 충만했던 그 교회도 갈등을 겪었습니다 문제를 만났어요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오히려 그 위기를 성숙해질 기회로 삼고 한 걸음 더 성장하여 나아갔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법이라도 성령님이 원하신다면 그것을 기꺼이 시도하는 사람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우리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면 그저 그 손잡고 주님 따라가는 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그 공동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성령님은 공동체만 아니라 우리 각 개인에게 지금도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본인이 계신 그 진리 안에서 함께 이것을 누리자고 우리에게

말씀으로 찌르고 불편하게 하시고의 삶을 들어보세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 계신 그 진리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도시죠 여러분 이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누굴까요 조금 더딜지라도 그 찔림 앞에서 욱하고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국엔 돌이켜 성령님을 따라 진리 쪽으로는 사람이 성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성님과을 추 한걸을 걷다보면 우리도 때로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데반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여러분 그런데 이럴 때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그 어떤 문제도 단숨에 뛰어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성령 충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령충만한 사람이 문제 해결할 수도 있죠 그러나 꼭 그렇지만 않다고 생각해요 성령 충만했지만 자신의 죽음의 위기를 넘겼나 그것을 해결할 힘이 그에게 있었나요 그렇지 못했어요 그는 그저 주의 복음을 전하며 죽어갈 뿐이었어요 근데 여러분 그가 성령 충만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죽어 가면서도 자신에게

날라 들어오는 그 비수의 돌덩이를 보면서도 주님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이 복음 때문에 이 진리 때문에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도 헤어져야 했고 누군가는 죽임을 당해야 했고 누군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을 해결해낼 감당해 낼 능력이 없었다고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 그 교회 사람들 그 시대 사람들 성령 충만했지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단순히 뛰어 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순간에서도 주님만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순간에서도 주님을 놓 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죽을지라도 내가 이 손 놓지 않겠다라고 나아갔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보며 그들이 성령 충만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 충만하시고 하는 말은 여러분 여러분을 찾아오신 성령님과 끝까지 동행하십니다 그분의 손을 끝까지 놓치지 마십시오 그분만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어떤 순간에서도 그분만 바라보십시오 하는 말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사귐의 가족 여러분 성령 충만하시고 여러분 성령 충만하길

원하십니까 아멘 이 시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도 성령 충만하기 원한다면이 시간 자리에서 함께 일어나 찬양하며 나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