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 여러분 혹시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를 아시나요? 많이 아시네요. 자, 그렇다면 아마 데카르트가 누구지 좀 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아마 이런 말을 한번쯤 들어 보셨을 거 같아요. 네. 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네. 바로 데카르트가 남긴 말인데요.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남긴 것은네 이원론이라고 하는 철학적
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이원론이란 세상이나 어떤 현상을 서로 독립된 두 개의 원리나 실체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어렵죠? 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것인 이분법적으로 딱 두 가지로만 나눠서 생각하고 본다는 거예요.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인간을 몸과 정신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입니다. 몸과 정신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라고 보는 거죠. 이러한 이론의 대표 철학자가 바로 데카르트였습니다. 정신과 몸을 분리해서 따로 보기 때문에 몸 없이 나는
생각만 있어도 그 정신만 있어도 존재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 이러한 철학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모르게 이원로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 많은 곳에 스며들어 있어요. 여러분도 알게 모르게 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죠. 너 T야? F야? 여러분 사람을 T랑 F로만 딱 나눠서 구분할 수 있나요? 이성으로만 이루어진 사람도 없고 감정으로만 이루어진 사람도 없지만 그런데 우리는 왠지 모르게이 두 가지로 구분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간단하게 이해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어, 조금 더 와닿게 말을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나의 일상, 신앙과 현실. 우리는 때로이 두 가지를 마치 데카르트처럼 분리해서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이죠. 교회에서의 얼굴과 나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얼굴이 우리는 다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과 내가 마주하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를 때가
있습니다. 말씀은 그렇지. 근데 이건 현실이잖아. 성경은 그럴 수 있지. 그 시대는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라고 우리는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 저마다 다 조금씩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오늘 살펴볼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보았는데요. 영혼은 거룩하고 영적인 거야. 반대로 육체는 속되고 악한 거야. 이렇게 두 가지로만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죠. 그러자
그들의 일상 속에 또 신앙 속에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고린도전서 15장이 말하고 있는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부활에 대한 이런 오해들이 있었어요. 몸은 육체는 속된 거잖아. 그러니까 부활하지 않아. 만약 부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혼만 부활하는 걸 거야. 영혼과 몸을 분리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였죠. 그래서 이들 중에는 예수님조차 영혼만 부활했다고 믿는 가현설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덜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논리는 그럴 듯해 보였지만 성경과 복음에서는 분명히 어긋나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15장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읽어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에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함께 읽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몸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네. 바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처음 전에 들었던 그 복음을 다시 일깨워 주겠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바울은 문제의 원인이 그들이 복음에서 어긋나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거든요. 바른 복음을 제대로만 붙잡는다면 성도들이 당면한 그 문제들의 답을 찾을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세상에 어떤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래서 조금씩 어긋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구불구치며 뻗어가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우리가 전에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봤던 것처럼 우리는 직선으로 나아가기보다 때로는 어긋나고 돌아가며 나선형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구불구 가다가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올바른 길로 다시 걸어가는 점검과 조정이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점검과 조정이 계속되려면 우리는 복음을 바울과 같이 읽깨워야 합니다. 새로운 어떤 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어떤 것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받았던 그 복음을 읽게는 것. 그것을 다시 배우고 다시 기억하고 다시 나누는 그 일깨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바울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복음을 일깨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점검의 기준도 복음이고 조정의 방향도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실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앞서 늘 복음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복음이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복음 안에서 은사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 성도라고 한다면 어떻게 복음을 살아내야 하는가 말입니다. 왜일까요? 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내가 어디서 얼만큼 벗어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야 다시 복음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다룰 때도 어김없이 복음이 말하고 있는 부활은 무엇인가를 먼저 읽깨워 줍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크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데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성경대로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무담에 묻히셨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사흘에 살아나셨다. 바울은 이 복음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부활하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특별히 바울은 3번에 살아나셨다라고 말할 때는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사용된 완료 시제는 과거의 일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너희가 믿는 그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만의 부활로
또한 과거에 일어난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그 효력이 똑같이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과 우리의 신앙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이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지 않는 그 부활이 너희에게 이미 주어졌다. 너희가 부활에서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많은 증인들을 나열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 500명이 넘는 형제 자매들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 그리고 지금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 자신까지도 그 부활을 목격한 부활의 증인들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그 증인들을 쭉 나열한 뒤에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바울이 앞서 증인들의 목록을 나열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그들 중에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게 뭘까요? 바울은 부활을 못 믿겠어? 부활을 직접 본 그 산 증인들이 지금 여기도 살아 있는데 그 수많은 증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못자공난 그 몸을 다 봤다니까 만졌다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 부활의 증인인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그것을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은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라고 말합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믿음이 얼마나 복음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계속해서 일읽게 줍니다.이어서 함께 읽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잔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 바울은 만약 그 성도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부활이 정말 없다면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실 수 없었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고린도의 성도들의 논리대로 한다면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부활도 거짓말이 될 거라는 거예요. 바울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을 꼬집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셨다는
그 복음도 거짓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울은 그런 복음을 믿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알맹이가 없는 공허함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부활이 빠진 복음,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 신앙은 마치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버린 것처럼 공허한 것, 가짜, 거짓과 같은 것 결국 그 정도에 불가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부활이 없다면 복음도 가짜잖아.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도 우리의 구원도 다 가짜라는 거잖아. 정말 그렇다면 이 복음의 인생을
걸고 따르고 있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인 거잖아라고 강력하게 말하면서 그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믿는게 진짜 이렇게 공허한 것이냐? 너희 정말 그 알맹이 빠진 부활 빠진 그 신앙으로 정말 괜찮겠느냐라고 계속해서 반문하는 것이죠.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죽은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이상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준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죠. 이것을
일부 학자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일이었다라고 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다. 직접 죽은 시체에 세례를 주 주었을 것이다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느 쪽이든 바울이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사실 똑같아요. 몸은 중요하지 않고 그래서 부활도 없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들의 행동은 굳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까지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 것이 모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라고 어 꾸짖고 있는 것이죠. 아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여기까지 이어진 바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허를 찔렸을 것 같아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그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어 정말 내가 오해하고 있었나? 부활이 빠지면 복음이 헛되다고? 내 믿음이 알맹이가 빠진 공허한 이야기라고? 그럼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 바울은 굉장한 전략가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바울이 이런 반응들을 다 예상하고 그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들이 갖고 있던 어긋난 그 가치관과 생각을 흔들어 놓은
다음에 바울은 곧바로이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생각을 마고 흔들어 놓은 다음 마지막 한 방을 날리는 거죠. 그들이 부활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특별히 그들이 부정하고 있던 몸의 부활이 그들에게 실제로 일어날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 중에 첫 열매는 아파르케라고 하는 구약의 제사 용어입니다.이 이천 열매는 추수의 시작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다음에 일어날 모든 수학에 대한 확실한 보증 그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이상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그 첫 이삭 첫 열매 그것은 이 뒤에 이어질 모든 추수를 하나님께서 보증하신다라고 하는 신앙 고백이었어요. 바울은 지금 그 이미지를 인용해서 부활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부활이 시작되었으며 그리스도가 이후에 일어날 그 모든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똑같이 부활하게 될 거야라고 바울이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이 정말 복음을 믿는다면 그리고 정말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듯이 그들 자신의 부활도 믿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아, 우리도 부활하게 되겠구나라는 것을 믿어야 했다는 거예요. 바울은 그리스도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부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 잠들었던 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었죠. 이미 죽은 사람들이요. 그렇게 모두가 부활하고 나면 바울은 마지막이 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마지막은 역사의 패막인 어 그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르침을들은 어 이런 가르침을들은 고린도교의 성도들 중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부활하는 거를 믿을게요. 근데 정말 몸이 부활한다면 우리가 정말 부활한다면 우리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자 바울은 이 물음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지막 나팔이 올릴 때에 눈 깜빡할 사이에 호련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을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음을 을삼서 승리를 얻었다. 마지막 나팔이 올릴 때 주님이 다시 오시고 그 나라가 완성되는 바로 그날에 우리는 모두 부활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고 만약 그때 살아 있는 성도라면 그 또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창조 이야기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어요. 여러분,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는 각 생명에게 알맞은 형태를 어 주셨습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우리와 똑같지 않죠. 물고개에게는 그가 물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의 맞는 형체를 그의 맞는 몸을 주셨어요. 하늘을 나는 새도 그러하고 짐승들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바울은 마치 부활의 몸이 그와 같을 거라고 말해요. 어 우리가 최근에
계속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할 때 창조와 새창조에 대해서 설명하곤 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날에 주님이 재림하신 바로 그날에 새 창조가 일어날 텐데 그때도 처음 창조하셨을 때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성된 그 날에 딱 맞는 몸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죠. 바울은 그 성도들에게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형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부활한 성도들에게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하고 딱 알맞은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이 일어나고 나면 바울이 앞서 말했던 역사의 패막 그 마지막에는 우리는 죽음을 삼키고 승리를 얻었다라고 하는 이 부활의 선포, 승리의 선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함으로써 죄와 사망을 최종적으로 이겼다라는 것이죠. 어, 여러분, 바울이 부활에 대해 이토록 어, 강력하고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고린도교회
성도들 한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어떤 문제만 잡아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곧 새 창조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도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로 이 이토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있었던 거였어요. 부활이란 단순히 우리가 살아나는 것을 넘어서 그 나라의 완성, 그 회복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이 깨어진 세상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 이미 임한 그 나라가 완벽하게 완성되어지는 것. 그래서 그곳에 속한 우리도 그렇게 회복되고 완전하게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울이 가르치고 싶었던 진짜 부활이었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시는 회복의 한 조각이라는 거예요. 죄와 사망 그 깨어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땅의 몸이 완성된 그 나라의 회복과 함께 온전하게 회복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고 죽음을 삼키고 깨어진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어 생명을 얻는 것. 이것이 바울이 정말 그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부활이고 하나님이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시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부활, 우리의 삶, 우리의 현실 그 모든 것을 그날의 완성과 회복이라고 하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바라보라고 말이죠. 어, 안타깝게도 고린도의 성도들은 이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복음으로 전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삶을 복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이전처럼 은행에 빠져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여전히 세상과 똑같이 살면 죽으면 끝이지.이 몸뚱아이 죽어 썩으면 그만이잖아. 그러니 오늘 신나게 먹고 마시자 따위의 그 삶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오해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구원과 그들에게 새롭게 주어진 그 삶이 얼마나 거대한 프로젝트 안에 있는지 보지 못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인 다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도 복음을 놓치면 우리의 믿음은 알맹이 빠진 헛것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 담고 있는 구원과 부활이 담고 있는 회복이 무엇인지를 놓친다면
우리의 신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실수했던 것처럼 고장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의 말을 제가 메시지 성경으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이토록 위험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살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과 직면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부활하신 메시아 예수께서 보증해 주신 여러분의 부활과 나의 부활에 대한 확신도 없이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내가 에베소에서 나의 최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나온 짐승들과 싸울 때 그것이 단지 영웅처럼 행동하려고 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행하고 말하는 것, 내가 사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은 부활. 부활. 언제나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부활을 반대하는 잡담에 물들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가 좋은 행실을 망칩니다. 똑바로
생각하십시오. 깨어나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더 이상 부활의 사실에 대해 오락가락하지 마십시오. 지금 같은 시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부릴 사치가 아닙니다. 이러한 일을 이토록에 방치하다니 여러분은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또 모든 예배자 여러분. 우리가 오늘 행하고 말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바울처럼 부활, 그 복음에 대한 확신과 감격과 은혜가 맞습니까? 부활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의 표현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미 우리에게 임한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격으로 나에게 더 이상 죄의 권세는 끝났다. 새로운 삶과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그 복음으로 그리고 뭐지 하나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완전한 승리를 이끌고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그 소망과 영광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울은 그의 삶의 모든 방식을 뒷받침하는 것은 부활, 부활, 부활, 그 날의 회복과 완성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 확신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고난과 박해도 견디며 기여이 끝까지 그리스도인으로, 기꺼이 끝까지 주님의 종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울이 강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은 다르죠. 바울은 자신이 붙들고 했던 그 복음, 그 나라, 그 영광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거 없었다면 자신도 내일이면 죽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라고 무너졌을 거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이 어 올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다 마약하거든요. 믿음과 신앙을 다 떠나서 우리는 물리적으로도 이미 육체가 약합니다. 어, 제가 어, 오늘도 이렇게 공항이 왔다 갔는데요. 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는 이 복음이 없었다면, 주님이 없었다면 진지게 무너졌을 것 같습니다. 발짝이 열고 어 심장이 빨리 뛰고 지금도 막 손에 땀이 차는데 그렇게 온 몸이 부서지 아플 때마다 아마 저는 절망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 저는 복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완성되는 날 아픔과 고통이 없고 슬픔도 없다라고 하는 그 나라가 오면 나도 그렇고 회복되는 날이 오겠지. 저는 정말 진심으로 그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공항이 있지만 마치 그것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사역고 애쓰고 있습니다.이 땅에 있지만 나의 아픔이 있고 질병이 있고 그렇지만 그 소망의 날 그 부활의 영광을 가지고 앞서 사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제가
가진 부활의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죄로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든 아플 수 있습니다. 아프지 않더라도 늙어가는 몸 때문에 한계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완성되는 날에 우리는 아픔이 없고 죽음이 없는 그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약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약하나 강하신 주님과 함께 살기 때문이죠. 여러분에게 그 주님의 능력이 주어졌음을 믿으십시오. 죄를 이기고
사망을이긴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음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주님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그 능력 때문에 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과 같이 세상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때로는 버려짐도 무서워하지 않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세상에 여러 잡이 있다고요. 우리를 흔들고 무너뜨려서이 땅에 안주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의 잡담이 있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죠.
요즘은 이런게 유행이래. 자녀 교육이 정도는 시켜야 된대. 돈은 이렇게 벌려야 된대. 남들도 다 이렇게는 산다더라.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우리에게도 수없는 그런 잡단들이 들려옵니다. 그것들의 귀를 기울면 우리는 다시 실패가 두렵고 돈에 끌려다니고 죽음이 무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이 땅끝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똑같은 땅을 딛고 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많이 움켜지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나라를 위해 가진 것도 기꺼이 내어놓고 그 나라를 위해서 주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그 회복을 위해서 나도 내 삶을 기꺼이 드리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그 회복이 곧 나의 회복이고 또한 나의 부활임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죠.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지막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복음을 놓치면 부활을 놓치면 우리의 신앙과 삶은 어김없이 둘로 나눠질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신앙은 신앙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우리도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방법은 복음을 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은 먼 훗날에 일어날 일 나의 오늘과는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소망의 날을 지금부터 앞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현실은 현실이지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 신앙, 그 복음이 곧 우리가 오늘 마주한 그 현실을 사랑하는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지금을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을 다르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을 시시 때때로 일깨워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를 통해서, 양육을 통해서, 에클레시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게 뭘까요?
하나님 나라 그 복음에 대해서 배우고 기억하고 나누는 것 아닐까요? 이것이 이 모든 것들이 복음을 읽깨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읽게워서 우리를 복음으로 점검하고 복음으로 다시 조정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오늘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신앙과 삶은 과연 무엇이 뒷받침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근거, 우리 삶의 이유, 우리 삶의 모든 뒷받침이 복음이 되게 하십시오. 특별히 오늘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부활의 믿음이 되기 위해서
바울처럼 복음을 일깨워 여러분의 삶을 끝없이 점검하고 조정하여 나아가십시오. 그래야 모든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함께하신다는 그 복음 위에 굳건히 서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몰라서도 오해하지만 때로는 알면서도 두려워 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결단도 하지만 두렵고 불안해서 용기를 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안다고 기도하면서 두려움으로 벌어진 복음과 우리 삶상 사이의 그 간극을 좁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게 들려온 그 세상의 잡담이 파고들어 벌려 놓은 그 강극을 복음과 기도로 다시 좁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세상 잡담에 물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 앞에 엎드리는 사람만이 갈팡질팡 오락가락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맞으시죠? 아멘.이 이 땅의 역사가 어떤 끝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어떤 승리를 준비하고 계신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할 영광은 무엇이며 그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전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뭐라고 떠들든 그 잡담에 물들지 마십시오. 너는 못해. 너는 끝났어.라고 속상이는 그 사단의 잡담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점검하고 조정하고 기도해서 복음으로 살아가며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자꾸만 나눠지려고
하는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십시오.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성경대로 만물이 회복되고 충만하게 될 죄와 죽음을 이기고 온전하게 부활하게 될 그 영광스러운 소망의 날을 지금부터 앞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Ye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