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자입니다 / 굳게 믿을래요 / 내 마음을 가득채운 (랩 포함) /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2개의 영상은 같습니다. 소리 크기는 위의 유튜브 영상이 더 크게 나옵니다. 사랑. 기독교를 일컬어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가르치신 율법은 613가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을 축약해 놓은 것을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10계명은 다시 1~4계명까지와
5~10계명까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앞선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것, 뒤의 것은 이웃을 향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장 큰 두 계명’이라는 말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학자들은 ‘이중 사랑의 계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랑하라’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은 사랑의교회가 아니고 사귐의교회입니다. 사귐은 무엇인가? 사랑이 쌓이고 지속되는
것이 사귐입니다. 첫눈에 사랑할 수는 있지만, 첫눈에 사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며 사랑을 해가는 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이고, 이웃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며 사랑을 해가는 것이 이웃과의 사귐입니다. 저는 그래서 ‘사귐’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 그리고 이웃을 향한 것입니다. 읽어보신 분이 많겠지만, 사귐의교회 옥정 예배당의 인테리어는 바로 그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이 [with God : 하나님과의
사귐을 우선시하는 공적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면, 옆에 위치한 공간은 [with Neighbor : 이웃과의 사귐을 우선시하는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장소] 입니다. 오늘도 이곳에서 저는 그것을 꿈꿉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주고받으며 하나님과 사귀는 예배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제 예배 이후에는 이웃과의 교제함 속에서 사랑으로 위로하고 기쁨을 나누며 이웃과 사귀는 그러한 소중한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2-13장을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의
4번째 시간입니다. 그 중에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설교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사랑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은 성경에서 가장 멋진 한 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 만약 성경 한 장을 외우고자 한다면,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추천합니다. 정말 한절 한절이 울림이 있고, 우리를 일깨워주는 그런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대한 설교를 할 때마다, 맥스
루케이도의 글을 인용합니다. “내가 얼마나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에 합당한 자인지 알고 싶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마다 자기 이름을 넣어봐라.”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결코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쁜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진실만을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예수님’을 넣으면 이 고백은 진리가 됩니다. 주님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너무 좋아해서 왜 13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13장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12장을 봐야합니다. 12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그 메시지가 13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왜 13장에서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계속 무슨 얘기를 하냐면, ‘은사’ 이야기에요. 은사란 ‘달란트, 재능’과 같은 의미죠. 고린도교회라는 곳에 이런 저런 은사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겠죠. 12장 앞부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고전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교회는 초대교회 가운데 거의 최악의 교회였는데, 이 교회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최악이 아닙니다.
즉, 인재가 없어서 최악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그러나 그 결과는 최악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은사를 가지고 자기 잘난 맛에 사니까 그런 거예요. 고린도교회 안에는 정말 요소요소에 필요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어요. 능력으로는 최상자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 은사로 함께 주님의 나라를 이루고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폭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러니까 은사에 있어서도 우리는 청지기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눈에 보이는 뭔가를 나타내면서 이것이 내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은사는 가졌는데, 이들의 이해와 가치관은 세상의 것입니다. 그러니 은사를 가지고 서로 높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뛰어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망해갑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은사의 향연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최악의 교회였던 것이죠. 그러하기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너희가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은사가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은사는 성령의 뜻대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아마도 세상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절대 이해 못할지도 모릅니다. “뭔 소리야. 내 능력이지.” 맞아요. 여러분의 것이죠. 그런데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잘 발전시키고 계발하고 활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사용하라고 주셨으니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어요. 은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들 아닙니까? 우리도 누군가는 주방을 돌볼 줄 알고, 누군가는 악기를 다룰 줄 알고, 누군가는 사람을 챙길 줄 알고, 누군가는 묵묵히 기도를 할 줄 알고, 누군가는 나설 줄 알고, 또 누군가는 따라줄 줄 알아야 교회가 돌아가는 것이잖아요. 바울은 그래서 12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해요.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해서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알아야 한다는 얘기이죠. 제가 이번에 인테리어에 거의 매일 나와서 보면서, 건축 혹은 인테리어는 참 멋진 조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각 은사를 가진 기술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술을 이곳에 쏟아내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저는 정말 기술자들에게 반했어요. 교회가 교회다운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에요. 각각의 은사들이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야 합니다. 한번 바울의 강조점을
보시죠.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고전 12: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린 모두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은사도 다양하고, 직분도 다양하고, 사역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같고, 주는 같으며, 하나님은 같습니다. 삼위일체의 강조를 통해서 다양성이 하나님께
묶여 있음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게도 은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은사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것이죠. 제 것이 아니죠. 제게는 개척의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좋아하고,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도전을 좋아해요. 그러다보니 사업도 도전해보고, 또 교회도 개척해서 이렇게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은 하나님에 제게 주신 은사이고 DNA죠. 그러므로 이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것이고, 주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저는 그저 순종하며 동참하는 것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읽겠습니다. 옥정으로 교회가 이사를 왔습니다. 3년간 정들었던 첫 예배 장소를 떠나는 것은 가슴 뭉클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로서 공식적인 인테리어는 마쳤고, 이제 소소한 마무리들을 하며 예배를 준비해갑니다. 옥정으로 이사 오면서, 규모가 훨씬 큰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10평짜리 예배당이라도 얻고자 돌아다닌 것이 엊그제 같은데... 조금
더 큰 공동체가 된 만큼, 목사인 저부터 믿음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사실 이전 후 드릴 첫 예배를 앞두고, 계속 떨림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3년이나 한주도 거르지 않고 섬겨왔던 사귐의예배인데, 왜이리 이번 주일 예배는 두근대면서도 부담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겠습니다."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잘 하려고 하는 제 마음이라면 가차 없이 버려야겠습니다. 사실 요새, 이래저래 주목받고
칭찬받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제 마음 속에 '나의 의'가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제는 예배당이 커져서 부쩍 많아 보일 빈자리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3년 전, 이러한 그림을 띄어두고 예배를 시작했죠. "교회를 찾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예배당이 없어서... 회의실 하나를 빌려놓고도 '이곳이 사귐의교회 입니다' 외쳤던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몇 사람 없는 이 교회가 '하나님이 주인인 그 교회가 되겠다' 외쳤던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배당이 커지고, 성도가 늘었고, 더 좋은 곳으로 왔다고... 우리가 더 좋은 교회가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더 좋은 목회자가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걱정하고 집중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의 모습으로 첫 예배를 준비해보려 합니다. 설교의 제목은 정해졌습니다. Worthless Servant. 무가치한 내 인생을 가치 있게 사용하시는 '주님'이 높아지는 일이... 늘
제 삶과 우리 교회 가운데 있기를 다짐해봅니다. 저희가 교회를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받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체적으로 교회들이 위축되어 있는데, 이 시국에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니 관심을 받는 것이죠. 친한 후배 목사가 연락을 해서는 “형님, 개척학교의 전설이 되셨던데요” 라고 말하는데, 제 안에서 한편에서는 그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듣고 흐뭇해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 나 정도면 목회 잘하고 있지.” 그렇게 막 스스로도
뿌듯해하고 있다가, 한편에서는 그 이야기가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자꾸 내 안에 남아있는 성령에 지배를 받지 못하는 나의 죄악된 본성은, 주님이 하신 일을 ‘내가 한 일’로 가로채도록 부추깁니다. 서울의 삼일교회를 담임하시는 송태근 목사님이, 사랑의교회를 개척해서 담임하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고 하죠. “목사님, 목회자로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입니까?” 보통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변화되고 열매가 나타나고 교회가
성장하고 이런 답들을 얘기할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아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로, 나는 할 말 없이 행복해.” 그래서 이렇게 또 물었다고 해요. “그럼,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들에게 열매가 나타나고 하는 것은 행복하시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옥목사님께서 “왜, 좋기야 좋지. 목회자로서 그것이 싫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내 관심이 아니야. 왜냐면 열매가 안나타나도 실패한 목회는 아니거든. 꼭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성공한 목회자인가.” 제가 정말 그런 마음으로 개척을 했는데, 지금의 과정을 바라보며 너무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입니까? 시선입니다.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했기에 살았고, 사울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망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는 그 크신 주님 앞에 내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자 유일한 자랑은 그 크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멀리서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 중에, 분당 우리교회를 개척하고 담임하시는 이찬수 목사님이 계세요. 제가 가장 설교를 많이 듣는 목사님일 것입니다. 그분이 종종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본인에게 항상 떠오르는 한 가지 이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 멀리서 저격수가 한 사람씩 저격해서 쓰러뜨리고 있다는 거예요. 다름 아닌 소위 잘나갔던 목사들. 한국교회 안에서 사역을 잘한다고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들이, 그 안에서 교만해지고 부패해져서
타락을 하게 되고 사라져가고 있죠. 그분은 그 변질을 사탄의 공격을 맞고 쓰러지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그 총이 본인을 향해 겨누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만의 문제도 아니고, 고린도교회라는 그 크지도 않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 안에 있고, 바로 우리들 안에 있는 그러한 문제들일지도 몰라요. 교회에서 모두가 말씀 앞에 고꾸라져서 말씀의 기준에 벗어난 내 모습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하는데, 내가 기준이 돼서 내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내게 맞춰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서운해 하고, 나를 인정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나는 말씀 앞에서 죽지 않으려 하는 그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죠.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바울도 자신 안에 있는 이러한 문제와 싸우고 있었어요.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본인도 그렇게 살기 위해 부단히 힘썼던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제가 쉽게 이렇게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도 내 안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하려는 죄악된 본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다보면 이 안에 생명의 씨앗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이신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거하시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그분이 내게 말을 겁니다. “주일이면, 교회 가야지. 내가 기다리고 있잖니.” “그래. 몸도 힘들고 쉬고 싶고, 다른 일도 하고 싶지.” “그래도 예배가 나와 만나는 약속인데 힘을 내보자.” 어떤 때에는 내가 이기죠. “성령님, 잠깐 음소거(Mute).” 내 주변에 내가 도와야 할 일, 내게 주신 은사로 섬길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에도 그분은 말을 거시죠. “네가 좀 도와줘. 네가 이것을 해보지 않겠니?” 만약 성령님의 그 음성에 순종해서 반응할 때, 그 능력도 그 과정도 성령께서 동행하며 함께 하시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을 하며 성령 안에서 기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시작하신 이도 성령이고, 그 일을 하도록 이끄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사귐의교회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그분이 주인이 되어 일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순종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우리가 이뤄낸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는 주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높이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제 마음속 깊이... 저는 여러분이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제 스스로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철저하게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커질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잘된다고 느낄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 이 교회가 시작될 때 가졌던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이 주인인 교회’를 여러분과 계속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종의 마음입니다.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한다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해냈다고 우쭐대고 그 영광을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여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Worthless Servant. 한글로 번역하면 무익한 종입니다. 쓸모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우리 스스로를 이 고백 안에 묶어두는 이유는, 내가 무익함을 인정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마음껏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려면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나를 부인하는 고백이 무익한 종의 고백이죠. 내 안에 내가 주인 삼고 앉아
있을 때, 내 스스로를 종이 아닌 주인으로 인식할 때면... 우리는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무익한 종의 고백에 있어서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앞에서 우리가 아무리 쓸모없다고 고백해도, 여러분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신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가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온 세상의 주님의 목숨 값입니다. 내 스스로가 나를 무가치한
존재로 여김을 통해, 내가 내세울 것은 바로 내 안에 계신 그 주님의 영광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있으니 나는 그분 앞에 무익할지라도 내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다윗은 세상에서는 왕이었지만, 주님 앞에서는 늘 종이었습니다. 그가 늘 종의 삶을 살았기에 주님 앞에서 그는 가장 좋은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은사주의가 가득해서, 서로가 더 교회에서 유익한 존재이고, 더 가치 있는 존재라 여기며 다퉜던 고린도교회. 교회는
한 몸인데, 그 안에서 “나는 손이고 너는 발인데, 내가 너보다 낫다. 쟤는 발가락이다.” 비교하며 높아지려 했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 고린도교회에서 은사를 행하던 사람들이 그랬지 않았겠어요? 병 고치는 은사가 있었다는데, 내가 누구를 붙들고 기도해서 병이 나으면 이것이 ‘내 능력’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야 내 은사 봤지~?” 내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면,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임을 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우리는 자랑할 뿐입니다. 바로 그런 곳이 이곳에 새겨진 글씨처럼 하나님 나라이고, 그러한 자들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은사에 대한 권면들을 하면서, 이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맺습니다.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바로 더욱 큰 은사, 가장 좋은 길을 가르치면서 바울이 전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을 하고 수많은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내 모든 것을 내어서 구제하고, 내 몸조차 아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섬김과 수많은 헌신과 혹은 수많은 재정을 헌금해서 뭔가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내세우고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한 마음의 동기라면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시므로 무익한 종의 심정으로 순종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아름다운 흔적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옥정 사귐의교회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끊임없이 사귐을 누리며, 그 안에서 우리는 겸손해지지만... 우리를 통해서 주님만 높아지는 아름다운 일이 오늘부터 이곳에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옥정 사귐의교회 첫 예배를 기념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