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옥정 사귐의교회 주일 예배 설교 / 이사야 19-20장 / 애굽의 피라미드 / 강정규 목사

2020-08-09 · 이사야 19-20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주의 장막에서 / 산과 시내와 붉은 노을과 / 거리마다 기쁨으로 / 너 결코 / 주를 위한 이곳에 제가 지난 7/31 금요예배를 통해 이사야서에 나타난 여러 이방나라 예언 말씀들의 다뤘습니다.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 아람, 구스, 애굽, 에돔, 두로> 등 다양한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부분이 13-23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매우 유명한 나라이고,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 우리가 잘 알면서도 또 거의 모르는

나라인 애굽(이집트)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 19:1) 이것은 이집트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이집트로 가실 것이니, 이집트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고, 이집트 사람들의 간담이 녹을 것이다.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앗수르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고,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 대항했던 이야기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애굽에 대해서는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일단 애굽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우리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가 있습니다.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황하 / 인더스 이 4대 문명의 발생지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모두 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발전한 그런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애굽을 처음 만나는 것이 언제죠? 아브라함 때입니다. 아브라함 때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셔서 순종하여 갑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기근이 있는

것입니다. 당황스럽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왔는데.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근에서 자유로운 애굽으로 가죠. 그때 아브라함이 꼼수를 쓰죠. 자신의 아내를 얻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봐 누이라 속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죠. 그 이후에 우리가 더 잘 아는 사건은 요셉이야기겠죠.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총리가 됐고, 그를 통해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애굽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이 가장 강대한 국가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요셉의 일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죠. 애굽은 나일강을 기반으로 일찍부터 농업을 선도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이 그것을 해석하죠. 내용이 무엇이냐면, 7년의 풍년이 있은 후, 7년의 흉년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7년 동안 애굽은 흉년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저장고를 만들고 7년의 풍년동안

곡식을 잔뜩 비축해놓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을 믿고 요셉을 총리로 삼아 대비한 바로의 탁월한 결정이었습니다. 7년 후 엄청난 흉년이 찾아오면서 애굽은 주변 나라에 곡식을 비싸게 팔면서 강대한 국가가 됩니다. (창 41:54) 요셉이 말한 대로 일곱 해 동안의 흉년이 시작되었다. 온 세상에 기근이 들지 않은 나라가 없었으나, 이집트 온 땅에는 아직도 먹거리가 있었다. (창 41:57) 기근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으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요셉에게서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왔다. 이를 바탕으로 애굽은 엄청난 경제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 야곱의 가족들도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다가 형제인 요셉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으므로, 결국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필두로 70명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해오게 됩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마지막 내용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특징이 사실 몇 가지 숨겨져 있습니다. 애굽은 성경에 등장하는

나라 중, 가장 먼저 자신들의 정치체계를 갖춘 나라였고, 자신들의 제국을 더 확장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여호수아를 가르칠 때,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세상의 나라가 추구하는 것은 반대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이 추구하는 것을 이렇게 정리했었죠. <피라미드 구조> 애굽은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의 국가였습니다. 즉 세상 나라의 속성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이 피라미드 구조는 애굽 이후의 무수한

세상의 나라들이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여보내시며 염려했던 것도 가나안이 추구하는 세상 나라의 구조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피라미드 구조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피라미드의 특징은 철저한 계층화입니다. 1) 왕 – 고관 – 신하 – 백성- 노예 계급주의 구조였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셉은 노예의 신분에서 고관의 자리에 오른 그런 놀라운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나라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당시의 시대상황대로 이스라엘에서도 노예가 생길 수는 있지만, 7년이 지나면 안식년 마다 해방시켜주고, 50년의 희년이 되면 모두가 처음 상태로 다시 시작하도록 만드셨죠.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2) 민족을 계층화 해놓은 구조였습니다. (창 43:32)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은 요셉에게 상을 따로 차려서 올리고, 그의 형제들에게도 따로 차리고, 요셉의 집에서 먹고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따로 차렸다. 이집트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과 같은 상에서 먹으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을 같이 차리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모습과 다릅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 바라보는 소망의 나라는 모두가 하나님의 빛 안에 모이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이런 민족적, 계층적, 성별의 구분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골 3:11)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3) 직업 또한 계층화 해놓았습니다. 구분이 아니라 계층화입니다. (창 46:33) 바로께서 형님들을 부르셔서 '그대들의 생업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시거든, (창 46:34)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집짐승을 길러온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이 다 그러합니다' 하고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형님들이 고센 땅에 정착하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은 목자라고 하면, 생각할 것도 없이 꺼리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애굽은 농업만을 중시하고, 목축업을 경시하는 국가였습니다. 요셉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죠. 만약 야곱의 자손이 농업을 선택했다면, 이들은 애굽과 함께 동화되어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기에 바로 애굽 안에서도

야곱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죠. 기독교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인 <만인제사장>에 대해서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직업에 대해서 우대하고 또는 천대하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직업은 그것이 죄를 짓는 일만 아니라면 <성직>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애굽이라는 나라가 대표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모습. 이것은 세상 나라의 특징입니다. 피라미드화

되어 있는 세상은, 상하로 계층의 구분이 지어져 있습니다. 소수의 권력계층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하며 존재합니다. 서로가 한 칸이라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싸우고, 위에서는 못 올라오도록 더욱 짓밟죠. 이런 세상에서 사람은 서로가 경쟁자이고, 남의 불행이 곧 나에게 기회이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은 더욱 밀려나버리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세상이죠. 이사야에서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언서에서 하나님이 화를 내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아무리 예배를 종교적으로 열심히 드리면 무엇하느냐. 너희의 삶의 모습이 세상과 다르지 않은데... 하나님이 가르치신 질서, 하나님 나라의 법과 정의는 그것과 다른 것이죠. 신약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세상과 다른 가치를 갖고 살도록 말씀하시잖아요. 낮은 곳으로. 연약한 자를 위하여... 즉 성경에서 애굽의 모습은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대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입니다. 한번 살펴봅시다. 출애굽기를 펼치니 요셉을 잘 알던 왕조가 바뀌었고,

그러면서 손님으로 왔던 야곱의 가족들은 이제 골칫거리가 됩니다. 히브리인들이 아기를 너무 잘 낳아서 애굽의 인구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애굽은 제국의 면모를 갖췄고, 다른 나라를 정벌하여 더욱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데... 자신들이 다른 나라로 전쟁을 나서거나 할 때, 히브리 민족이 다른 민족과 결탁하면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피라미드 세상에서 취하는 방법은 더욱 짓밟는 것입니다.

원래는 손님으로 살고 있던 히브리민족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건축 현장에서 심한 노역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도 인구 증가가 줄지 않습니다. 바로 히브리인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태어나자마자 죽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려줍니다. 그러니까 애굽은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합니다. 직접 찾아다니며 발견된 남자 아기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누가 태어나죠? 모세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3개월간 숨겨서 키우지만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나일 강에 띄어 보내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관점에서 표현한 <요게벳의 노래>가 바로 이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찬양이죠. 바로 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사실 애굽이라는 나라가 지금의 강성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죠? 요셉이라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애굽을 통해서 하나님의 민족을 이스라엘을 인큐베이터처럼 자라게 하시려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굽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도구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야망을 갖고 자신들이 꿈꾸는 나라를 이루고자 죄악을 일삼고 교만의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자 바로에게 모세를 보내시는 장면에서 이러한 충돌은 확고하게 드러납니다. (출 5:1)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출 5:2) 그러나 바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주가 누구인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도 않겠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 그게 뭔데? 그게 누군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냐?” 이것이 바로의 모습이었죠. (출 5:4) 이집트의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들어라.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어서 물러가서, 너희가 할 일이나 하여라." (출 5:5) 바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이집트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이 하는 일을 중단시키려 드는구나." (출 5:17)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 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 애굽은 나일강을 기반으로 풍요로움을 누렸고 강성한

국가를 이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없어도 그들의 삶을 유지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품은 욕심과 더 누리고 더 갖고 싶은 마음은 이제 때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아섭니다. 가장 하층민인 이들이 나가버리면 자신들의 피라미드 구조가 흔들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체제를 곤고하게 하기 위해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십니다. 10가지 재앙은 애굽이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뒤흔드는 것이었고, 바로가

모른다고 했던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었죠. 첫 번째 재앙은 그들이 자랑하던 나일강을 치는 것입니다. 9번째 재앙까지 내려졌습니다. 달리 말하면, 9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랐다면 그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완강히 거역합니다. (출 12:29) 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출 12:30) 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그 날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다. 10번째 재앙을 통해서 바로의 항복을 받아낸 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나오게 됩니다. 바로도 얼이 빠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다시금 원래의 완악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바로와 애굽은 히브리인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더 강대한 제국을 꿈꿨는데 자신들의 계획이 무너질까 즉시 이들을 뒤쫓습니다. (출 14: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추격부대의 주축은 ‘선발된 병거 600대’입니다. 애굽의 가장 정예부대와 추가로 모든 병거를 앞세워 지휘관들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러 갔다는 것입니다. 이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죠. 하나님의 백성은 홍해를 가르고 그곳을 건너갑니다. 이때 애굽이 추격하지

못했던 것은 불과 구름기둥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건너가자 하나님께서 애굽을 막아선 불과 구름 기둥을 치우시죠. 이제 애굽의 군대가 무작정 쫓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라졌던 홍해가 다시 흐르도록 합니다. (출 14: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애굽의 모든 부대가 수장되어 전멸 당합니다. 바로의 욕심이 낳은 결과입니다. 정예부대인

전차부대 600대, 그 외 모든 병거들, 지휘관들이 모두 수장된 것입니다.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위에 있던 고관들, 바로의 아들, 그들의 제국주의를 지탱하던 모든 병거들까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제국의 운명도 하루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후 애굽이 어떤 위치로 추락하는지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애굽과 관련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솔로몬 때의 일입니다. (왕상 3: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애굽의 공주가 솔로몬의 1000명의 부인 가운데 하나로 시집을 온 것입니다. 이 시기가 출애굽 후 500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이스라엘은 부강해졌고, 애굽은 오히려 약화된 시점입니다. 전세가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처지의 뒤바뀜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시기가 이스라엘의

전성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제국주의로 가지 않습니다. 그는 참 신기한 왕입니다. 그는 왕인데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종이었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이스라엘을 거대한 제국으로 만들려는 개인적 야망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윗이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여호와의 집, 성전 건축’ 그게 그의 소망이었어요. (삼하 7:1)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삼하

7:2)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철저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교만해지지 않았어요. 그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대를 축복해주시죠. 다윗에게 주신 그 축복을 이어받은 것이 솔로몬이죠. 그도 초반에는 괜찮은 왕이었잖아요. 그때 이스라엘의 국력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이미

예전의 애굽은 넘어섰죠. (왕상 10:26)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상 10: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왕상 10:28)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들여왔으니 왕의 상인들이 값주고 산 것이며 (왕상 10:29) 애굽에서 들여온 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한 필에 백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에게 그것들을 되팔기도 하였더라 하지만 솔로몬의 마음에도 위기가 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과 같지 않았어요. 자신을 높이기 시작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그의 아들 세대에는 더욱 그러했어요. (왕상 14:21) 또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를 다스렸다.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의 나이는 마흔한 살이었는데,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열일곱 해를 다스렸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이며,

암몬 여자이다. (왕상 14:22) 유다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들이 지은 죄는 조상들이 저지른 죄보다 더 심하여서, 주님의 진노를 격발하였다. 나라의 흥망성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죠. 다윗과 솔로몬 시대만 해도 강력했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 주변 나라의 괴롭힘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애굽입니다. (왕상 14:25)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오 년째 되는 해에,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왕상 14:26) 주님의 성전에 있는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털어 갔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가져 갔다.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들도 가져 갔다. 결국 솔로몬 시대와 달리, 애굽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 르호보암 때의 일입니다. 이후부터는 이제 유다는 애굽의 기에 다시 눌리게 되는 형국이 됩니다. 이제 이후에는 다시 유다와 이스라엘이 위로는 앗수르 밑으로는 애굽에게 위협을 받으며 조공이나 바치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게 됩니다. 유다는 유다의

죄로 인해서 이런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유다가 이런 회초리를 맞으며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니 회초리가 몽둥이로 바뀌고, 결국은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거기 가서야 드디어 깨닫는 것입니다. 애굽의 모습도 마찬가지죠. 첫 번째 재앙, 두 번째 재앙을 경험하며 회초리를 맞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모습에 대한 깨달음의 기회를 주신 것이죠. 그래도 돌이키지 않고 더욱 강퍅해 집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여러분.

해보나 마나에요. 우리가 져요.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이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죄성이에요. 우리의 교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그 질서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나를 하나님의 자리로 높이고 하나님을 나보다 낮게 여기고 무시하도록 만듭니다. 혹시 여러분 하나님과 이런 투쟁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해보나 마나입니다. 그는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 꿇을 때 우리가 세상 가운데 무릎 꿇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항복 할 때, 세상 앞에 두 손 들고 승리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사야서가 계속 말하는 것이 뭡니까? 모든 민족과 왕들이 하나님 앞에 교만해져서 결국 그로 인해 심판을 맞이한다는 것 아닙니까. 이사야 13-23장에서 모든 나라에 대해서 주시는 말씀은 거의 대동소이 합니다. 하나님을 욕보이고 하나님의 자리에 스스로 오른 모든 나라들은 심판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애굽에 대한 예언을 보십시오. (사 19:2)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부추겨서, 서로 맞서

싸우게 하겠다. 형제와 형제가, 이웃과 이웃이, 성읍과 성읍이, 왕권과 왕권이, 서로 싸우게 하겠다. (사 19:3)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의 기를 죽여 놓겠다. 내가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켜 버리면, 그들은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무당을 찾아가 물을 것이다. 제가 몇 번 말씀드립니다만, 이것은 순수한 애굽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죄악을 심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 싸우며 분열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계획을 주님이 막으십니다. 하나님께 해답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무당을 찾아가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2주 전에 이사야 8장에서 이런 말씀을 봤었죠. 사람들이 너희에게 “점쟁이들을 한번 찾아가 보지 그래. 영매들에게 물어보지 그래. 영계에 들어가서 죽은 자들과 접촉해 보는 것이 어때?”라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하여라. “아니,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것이다.” 애굽은 답을 찾지 못합니다. 아니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변 나라에게 오히려 침공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자랑하던 모든 것은 다시 잃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는 이 애굽에 대한 심판 예언을 기록하면서 그와 너무나 대비되는 한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이사야입니다. (사 20:2) 그 해에 주님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시켜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두른 베 옷을 벗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씀대로, 옷을 벗고 맨발로 다녔다. 하나님은 설명도 없이 명령합니다. “이사야. 옷을 벗고 신을 벗고 돌아다녀라.” 솔직하게 저라면 정말 못할 것 같아요. 이사야는 웃시야 왕 때부터 왕궁에서 예언한 학식있는 나름 명망있는 선지자였어요. 그런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알몸인지는 모르겠으나, 벗은 몸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롬’은 불충분한 옷차림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해요.

몇몇 학자들은 하의만 입고 맨발로 다니는 모습을 추측합니다. 이 모습은 고대 세계에서 전쟁 포로의 전형적인 모습, 수치스러운 모습이었어요.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이라고 명령이 있기 전까지 이사야는 순종합니다. 그 기간이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을 넘어갑니다. 그의 순종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본 애굽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전해도 대들고 반항하고 하나님을 무시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철저한 하나님이 가장

중심에 있는 그런 사람이에요. 3년 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 20:3)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게 표징과 징조가 된 것처럼, (사 20:4) 앗시리아 왕이, 이집트에서 잡은 포로와 에티오피아에서 잡은 포로를,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니, 이집트 사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의 엉덩이까지 드러낸 채로 끌려갈 것이다.“ 나의 종

이사야.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내 종’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종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이사야도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하게 순종하였기에 주님은 그 이사야의 마음을 아시고 “나의 종, 이사야야”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하나님의 종이 된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보이시고 계신 것입니다. 애굽은 앗수르에 의해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앗수르의 전쟁 포로가 되어 수치스럽게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면서, 동시에 한 나라를 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디입니까? 이사야가 살고 있는 남유다입니다. (사 20:5) 그리하여 에티오피아를 의지하던 자들과, 이집트를 그들의 자랑으로 여기던 자들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사 20:6) 그 날이 오면, 이 해변에 사는 백성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나라, 앗시리아 왕에게서 구해 달라고, 우리를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한 나라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어디로 피해야 한단 말이냐?" 남유다는

이사야서에서 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주변 나라를 의지하면서 살아요. 다윗의 길을 가지 않았고, 이사야의 순종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남유다를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배우죠.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에 약합니다. 기도 잠깐 해보고 뭔가 안 되면 나를 도와줄 다른 것에 금방 마음을 쏟죠. 그런데 이 세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아요. 믿지 않는 사람들, 믿지 않는 나라들에게 때로는 힘을 주십니다. 애굽도 강성했고, 앗수르도 강성했고,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힘과 권력과 물질을 주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는 힘과 권력과 물질을 갖게 되면, 더욱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그런 부자들 권력자들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거든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이 보석과 패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눠줘서 그것으로 나온 것입니다. 열재앙을 경험하고 정신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것을 막 다 내어줘요. 페르시아 때는 고레스 왕이라는 권력자를 사용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땅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보내도록 일하시죠. 모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권불십년. 권세는

10년을 못 간다는 표현입니다. 부불삼대. 부는 3대를 못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 볼만한 것은 없어요. 제국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사야서인데, 무엇이 우리를 책임진다는 말입니까? 딱 하나 뿐이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 ‘영원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 하나님을 고백하며 말씀을 새기며 나아갑시다. (창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신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48: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는 오늘 어쩌면 애굽이라는 제국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생을 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나님도 필요 없고 보이지 않는 그런 시간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세상의 방법대로 곤고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서있고자 발버둥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애굽이라는

인생. 하나님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그 제국의 결말은 심판입니다. 그 인생은 결코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잠깐의 꿈입니다. 이사야라는 인생. 그 안에 쓰디쓴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는 순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순종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의 초점은 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니라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르기에 그 삶을 성실히 살아갑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누구의 길을 가시렵니까? 주님

앞에 종이 된다는 것은 종속의 의미입니다. 주인은 그 종을 책임지고 그 종의 삶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께 속한 나라가 되길 바라셨어요.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직 유일한, 영원한 하나님을 붙들어서... 그가 이루시는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국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영원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지금 그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수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부자와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영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 그 영원한 영광을 맛보는 주의 종, 주의 자녀가 됩시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A1RVej1D5Ma4Z6Pijzpq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