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이 세상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성경 전체 배경을 설명해 주고 보여준 부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상이 깨어지게 된 이유, 깨어진 세상에 대한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12장부터가 하나님이 이제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하셨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한 사람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온 세상을 구원하는 프로젝트가 온 세상을 회복하는 프로젝트가 시작한 거예요. 그 굉장히 큰 이야기죠. 온 세상을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12장을 시작한 거예요. 굉장히 거대 담론인데 놀랍게도 그 시작은 뭐냐면 아주 조용하게 한 사람을 찾아가신 거였어요. 성경은 아브라함을 선택한 구체적인 자격이나 조건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아브라함이야라고 하면 답을 못 찾아요. 왜 아브라함이었는가 질문을 갖고 성경을 묵상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다 뭐냐면 그가 뚜렷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그냥 아브라함을 택하셨어요. 이런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그냥 선택하셨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선택에 관하여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따라볼게요. 부르심에는 부르심에는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믿으시죠? 부르심의 자격이 없어요. 근데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중요해요. 부르심의 자격이 없는데 그 부르심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반응이 조건이 됩니다. 어 어떤 부르시면은 그냥 부른 거예요. 규성이를 왜 불렀는지 이유가 없어요. 근데 규성이가 이것에 응답할지 안 할지는이 동행의 조건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복음의 초청 대상이 되는 곳에는 자격이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그 복음이 나의 일이 되는 것에는 조건이 필요해요. 복음의
초청은 그냥 우리 확 덮치는 신내림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이에요. 복음은 그래서 거부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의 구원 프로젝트에 함께하자라는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아브라함도 뭐 할 수 있어요? 거부할 수 있습니다. 거부할 수 있어요. 가라라고 할 때 아, 저 싫은데요. 나는 당신 몰라요. 그러면 끝이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원하지 않는데 막 그의 발을 갑자기 막 마음대로 움직여서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실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 가운데 굉장히 불리한 조건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선 여호수아서에 보면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 나오는데 그가 우상숭배를 하던 가문 출신이라는 얘기가 나와요. 그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우상의 도시인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그 우상 숭배하는 집안에서 살아갔던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함인데 아브라함은이
일에 있어서 가장 결핍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왜냐면 그는 뭐가 없어요? 아이가 없어요. 아이가 없을 뿐더로 생물학적으로 그의 아내 살례는 임신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안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왕 선택할 거라면 좀 하나님을 잘 믿는 집에서 자랐고 자녀도 잘 출산하여서 기르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가정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부분에서 우리가 아셔야 돼요. 하나님은
참 많은 경우에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길을 택하여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봤을 때 비효율적이고 우리가 봤을 때 비합리적인 것을 많이 선택하세요. 근데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봐도 아, 저 사람은 세임 마만해. 저 사람은 저거 갖고 하면 되겠네. 자신들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어떠함으로 그 일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잘 안 쓰세요. 그런 상황을 오히려 피하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설명한 장면이 있죠.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행하시는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말하라. 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주 강한 나라 강대국 이런 나라를 갖고 일하시면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오히려 너희가 연약해서 택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역을 하든지 아니면 신앙의 길을
진실하게 걸어가다 보면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힘으로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 내 힘으로 못 하겠다. 어렵다. 그 순간에 마주하는 것은 당연해요. 나는 지금 사역을 하는데 나는 지금 정말 설교를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쭉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한 번도 한계를 마주한 적이 없고 어려움을 마주한 적이 없고 못 할 것 같다 마음이든 적 없다. 그 사람이 이상한 걸 수 있어요. 그 마음에 드는 건 당연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한계가 가득한
존재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어떤 사명은 시당초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신앙의 길은 진짜 진지하게 가면 원래 가지는 우리 힘으로는 나는 못 하겠어요. 나는 못합니다라는 순간에 마주하는 길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그럼에도 그 한계까지 가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그래야지만 내 힘으로 안 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돼요. 거기 전에 멈추면 평생 그 사람은 자기가 힘이 부족해서 그냥 끝난 줄 알아요.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통해 일하시는지 못 봐요. 내가 포기하니까. 우리가 힘이 다 빠져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돼요. 사실 그 전까지는 내 힘으로 하는 거 같았지만 사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 주셔서 내 힘과 하나님의 힘이 같이 사용되고 있었던 거 그때도 하나님이 함께 일하고 계셨던 거예요. 근데 그땐네 힘이 들어가고 있으니까 내가 한 줄 알아요. 근데 우리가 내 힘이 드디어 하나도 나지 않을 때 내 힘으로 아무것도 못 하겠을 때 그때 비로서 내가
힘을 다 빼고 못 하겠다고 그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데 그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걸 보면서 아 내가 하는게 아니구나. 내 힘이 다 빠져서 내가 할 수 없던 절망감과 무력감에 놓일 때 아 정말 이렇게 이게 이 나는 믿고 와 봤는데 이제 더 이상 못 하겠어. 이게 신앙의 길이라고 하니까 믿고 와 봤는데 더 이상 이렇게 못 하겠어.라고 라고 할 때 그런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지키는 거를 선명하게 보게 돼요. 비로소 그때 우리가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인정할 수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인생이 여러분 딱 그렇습니다. 성경은 잘 읽어 보세요. 아브라함이 완벽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여러분 요즘에 이번 주 묵상해 보시면 알겠지만 오히려 아브라함 좀 인감이 넘치는 부분들도 있네. 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목적을 말하고 있고 아브라함이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해 가는지 또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어떻게 훈련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시는지를 성경은 보여
주고 싶어요. 우리는 아브라함이 부름받은이 12장 말씀을 딱 보면 바로 뒤에 12장 뒷부분에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못난 인물인지부터 보고 갑니다. 그가 애굽에 가까이 가자마자 얼마나 자기 중적 인간인지를 보여주죠. 우리 알잖아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자기 아내를 예. 좀지 말하면 팔아먹어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 사실상 아내를내어 줍니다. 살례를 방치해요. 여러분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르면서 아브라함 했던 약속이 뭡니까?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릴 거다. 그럼 그 약속 믿었으면 아 만약에 내가 가는데 애굽의 바로가 나를 힘들게 하면 하나님이 그와 싸우시겠지라는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아브라함이 그 믿음이 없었어요. 애굽에서의이 사건을 보면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 믿었을까? 아닌 거 같아요. 한번 말씀 한번 보시죠.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니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주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러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의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의 이식도 구제할 수 있을 것. 네. 우리 사랑하는 남편분들 이렇게 우리가 얘기했다고 생각보. 우리는 바로 쫓겨나죠. 네.이 정상적이지 않은 남편이잖아요. 네. 사실상 뭐냐면 아 여보 나 좀 살려 줘. 아내를 거의 팔아 놓이다시 피하면서 자기 목숨 부제하겠다는 얘기예요. 우린 여기서 바로 깨닫지 않습니까? 아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전혀 완벽하지 않구나. 아 어쩌면
보통의 남자들보다 더 두려움이 많고 더 유약하구나. 그런데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그렇게 못난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바뀝니다. 13장에서 조카 롯과 땅을 나눌 때 모습을 보면 이제 조금 성숙한 태도로 보여요. 하나님이 상황을 역전시키는 분이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던 사람에서 이제는 좀내어 주는 사람으로 한걸음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니까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격려해
주세요. 그러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음을 아브라함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14장에서 조카 롯을 위해서 전쟁에 나선 장면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택한 받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그 훈련을 받으면서 점점 믿음이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나요. 전쟁 후에 소돔왕이 재물을 주려고 할 때도 아브라함은 거절합니다. 이렇게 말해요. 읽어보겠습니다. 시작의 것은 하나도지 않으네 애굽에서는 아내를 팔아서라도 부와 안전을 얻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당신 거부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이 오늘의 본문인 15장인 거예요. 아브라함은 앞선 사건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우리게 13, 14, 15장이지만 시간이 있으니까 그 시간 안에서 아브라함이 조금 성장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여기까지 좀 성장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상황을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을 볼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프레트, 가장 큰 사명인 자손에 대해서 바라볼 때 자기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거였어요.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런 일들이 일어난 후에 주님께서 헌상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내가 받을 보상이 매우다. 아브라함이 여주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까? 저에게는 사실이 아직 없다. 네. 14장의 사건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다가와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아브라함은 정작 걱정이 가득해요. 하나님이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아내의 부림은 뭔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그 구원 프리트에 합당한 사람인가? 어쩌면 이런 마음이 아브라함에게 들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의 판단 안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자기의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 저에게 상속자라고 할 사람은 믿을 만한 종인 엘리새 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또 깨우치시죠.
아니야. 아브라함아. 너는 그렇게 얘기하면 넌 지금 날 못 믿고 있는 거야.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간절함이 있지만 바로 아브라함의 태를 열어서 그에게 자녀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이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완전히 포기할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흘려 보내세요. 어쩌면 아브라함과 사례가 정말로 이제 모든 힘이 빠져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려고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도 안 되는 모든 이 빠져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기대하시 기대하게 돼.
그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기다리세요. 잘못하면 잘못했어. 다시 바르게 해라고 하고 또 기다리게요. 또 기다리고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 아니에요. 꼭 하시는게 있어. 그러면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세요. 15장 5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아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하라. 내가 셀 수 있거든 저를 세워 보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이처럼 네. 그리고 15장 쭉 읽어 보시면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 이제 역사 안에서 일어날 일들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애굽으로 가게 될 거야. 나중에 출애굽하게 될 거야. 태속까지 말 말씀하시죠. 이것을 얼마나 아브라함이 진지하게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꿈 같은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 모습 봤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진지하게 하나님의 구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행자로서 인정하시며
그에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으신다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최대한 아브라함의 눈높이로 낮추셔서 횃불이라는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보이게 임하여 주시고 고대 족장 시대의 부족에 동맹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쪼개놓고 횃불 언약으로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내가 너와 함께할 거야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게 오늘 본문이잖아요. 내일 대면 아브라함은 바로 다음 장에서 또 실수하고 또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굳은 하나님의 굳은 약속은 아브라함의
삶을 계속 권면하셨고 결국 우리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100세의 이삭을 낳는 그 하나님의 시간에 이르게 되고 그때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믿음의 성숙함을 가진 자로 점차 더 나아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은혜로 하나님께 오셔서 은혜로 부름받았고 주님과의 동행하심 주님과의 동행 주님의 동행하심 가운데 계속 다듬어지고 세워져 갔던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메시지 좀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제가 오늘 말한 초점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서 못난
모습을 찾자면 참 못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온전하게 드러나실 정도로 기다리십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하지 않도록 포기하면 못 보니까 포기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면 못 보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자신을 완전하게 의탁할 시간이 어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에도 실수도 제법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내일부터 보는 장면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스스로 깨닫고 배우며 성장하도록 그를
이끄시며 그와의 언약이 그와 함께 가고 있는 방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상기시키시며 기다리십니다. 저는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가 아브라함이라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냥 위대한 이름 그 이름의 이면들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찾았을 때 그 아브라함 전혀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위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옆에 있는 사무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야, 너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어. 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는 거에는 조건이 없거든요. 하나님이 여러분 찾아오는 조건이 없어요. 다만 뭐가 필요해요?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성경에서의 가장 큰 실패는 내가 무능하다는게 아니라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여전히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완고한 고집과 태도에 있는 것일뿐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무익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거의
전문가이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를 거예요. 여러분의 삶을 사용하실 거예요. 모든 성도의 삶을 하나님 부르고 계세요. 근데 하나님이 여러분이 꼭 도움돼서 부르는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근데 하나님의 일에 함께 참여시켜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자격을 가진 사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르심에 반응하며 걸어가는 사람을 하나님 끝까지 붙들고 세워가십니다. 오늘 나의 자격을 보지 마시고 나를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 그 하나님 마음 그분의 포기하지 않는 신실하심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오늘도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