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가 말씀 묵상에 특별히 같이 힘을 많이 모으고 있습니다. 아마 뭐 저는 그런 고백들이 많이 많았지면 좋겠는데 묵상을 우리가 그 하면서 뭐 매일매일 못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더 평상 노력해 보면서 묵상의 가장 큰 유익은 성경에서 우리가 어쩌면 평상시에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들에서 메시지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묵상을 하지 않는 신앙생활 하다 보면 보통 주목할 만한 에피소들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한 경우 많습니다.
주로 설교에서 다를 만한 소재에서 말씀을 듣는 거죠. 하지만 묵상하다 보면 뭐 때로는 묵상하기 전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본문을 만나고 거기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적 내공이 깊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 정말 특이한 내용도 많다는 것도 아마 느끼게 되실 겁니다. 아, 그리고 때로는 어요, 이게 도대체 어떤 것을 주기 위해 쓰여진 것일까라는 씨름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신앙의 많은 편경과
또 좁은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의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될지 말씀을 놓고 고민해 본다는 것 때로 내가 아 오늘 말씀대로 살지 못했네라고 저녁에 나의 어긋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저는 이것이 모두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저는 여러분이 말씀 묵상만 잘하고 그것을 자기의 삶에만 잘 적용해도 신앙의 반은 정말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이 시간은 제가 그런 여러분들과 함께
또 주의 말씀에 함께 공동체 나누면서 이렇게 함께 그 말씀의 의미를 아 또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저는 이 시간도 굉장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같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번 주에 묵상하고 있는 본문이 요셉 이야기잖아요. 창세기 39장부터 41장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에서 오늘 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요셉의 이야기 너무 유명하죠. 우선 요셉은 아시다시피 형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낯선 땅으로 팔려갑니다. 그런데 성경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요셉이 어디를 가든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을 성경이 자주 쓰고 있습니다. 네. 잘못 넘어갔죠? 네. 네. 이런 표현인데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네. 여러분 묵상하셨던 분들 기억하시죠?이 표현이 많이 나와요. 근데 여러분 제가 이런 질문 드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아, 동의하세요. 요셉 정말 형통하게 되고 있습니까? 네. 그 몇십년을 몇 십년을 내다보고
결과적으로 예. 아니 분명히 성경은 형통하게 된다고 하고 있는데 진짜 이게 여러분이 사면 안 사면 형통이라고 고백할 수 있냐는 말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가족들에게 배신당해서 낯선 곳에 가서 종사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그 억울함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이것에서 형통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우리도 아까 얘기했지만 요셉의 해피 엔딩을 우리가 알고 보니까 이것이 그것에 과정으로 읽히지만 지금 내가 만약에 그 삶에 놓여 있는 그 삶에 던져져 있는
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환상하죠. 네. 근데 여러분, 같은 보면 우리도 어쩌면 우리의 먼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도 이 과정이 뭔지 다 이해할 수 없고 인생이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성경은 지금 우리는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도 그 분투 속에 있는 우리에게 형통하고 있다. 형통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혹 나는 너무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하나님 마음 아프다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이 끝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에
대한 해석도 때로 많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막막하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되는 것은 요셉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점은 그는 좌절과 절망 속에 파묻혀 있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성경에 다 들어지 않으면 괴로웠을 거예요. 엄청 괴롭겠죠. 그는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주어진 그 삶의 환경에서 굉장히 많이 나온 얘기가 맡은 일을 했다는 겁니다. 노예일 때도 그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고 감옥에 가서도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합니다. 그래서 맡은 일이라는 표현이 39장에 형통과 함께 많이 나오고 있어요. 요셉이 감정적으로 자기 삶을 해석하면 아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자포자기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합니다. 그것도 성실히 합니다. 우리는 자꾸 현재 내 삶에 대해서 혹은 내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맡혀지를함에 있어서 조건을 넣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열심히 하겠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되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거야. 그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요셉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요셉을 지금 끌고 가고 있는 것은 상황이 아니었어요. 성경은 뭘 보여주냐면 요새 에피소에서 요셉을 끌고 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무서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요셉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됩니다. 여러분 한번 우리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옆에 있는 분들에게 한번 따라서
고백해 주십시오. 당신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면 당신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면 당신이 있는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됩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됩니다. 네. 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요새 에베소도에서 제가 발견한 저 제가 묵상하게 된 핵심이에요. 요셉은 환경에 끌려나지 않았어요. 요셉은 다 자절한 곳 자절할 만한 곳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왜냐면 요셉을 끌고 가는 거가 환경이 아니었고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중심에도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인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이 내 환경을 바꿔 주길 바라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내 중심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노예 환경에서 바꿔 주고 감옥에 바뀌어 주기 원하지만 사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하나님이 그곳에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으로 계속 있기를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거예요. 내 중심이 바뀌면 내 중심이 바뀌면 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해석됩니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일하시는 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도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한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네.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주변에서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거 뭐냐면이 요셉의 삶에도 이러한 중심이 하나님으로 있는 요셉의 삶에도 악은 끝없이 찾아옵니다. 시험과 유혹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만약 요셉이 환경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끌고 가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보디발의 아내가이 종을 꼬셔 준 것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환경을 바꿀 기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떤 나의 삶에 뭔가 늘어날 수 있는 혜택이 늘어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어요. 지금의 요셉에게는 그게 만약에 환경이 바뀌 기다 상태였다면 그게 큰 기회겠죠.
근데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요셉의 모습 봤을 땐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디반의 아내에게 충성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셉은 그 길을 가지 않았어요. 어쩌면 우리의 신앙인들도 내 가치는 내가 만드는 거예요. 지금 나에게 있는 작은 것에 타협하면 이익이 있을 수 있죠. 근데 내가 진짜 하나님 뜻대로 살아갔을 때 내가 누리게 될 삶에 비교면 지금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요셉은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 나에게 있는 조금의 이익, 조금의 유혹, 조금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편 선택하면 더 좋은 대가가 올 수 있고 선택하지 않 거부하면 나쁜 대가가 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겠죠. 요셉이 바보가 아니니까 모르지 않았겠죠. 근데도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감옥에 갑니다. 자,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얘기를 해 봅시다. 만약에 여러분이 교회에서 어떤 설교를 듣고 꽂혔어요.
아, 내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심만 어떤 선택을 하자라고 해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여러분이 좌천당했어요. 그 결과 여러분이 엄청나게 손실을 받어요. 그 결과 여러분이 관계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게 됐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어떤 상황들에 그런 요소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환경을 보고 있는 거기에 끌려 시선으로 내 중심을 잃은 채 그 모든 것을 경험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바로 꾸라지게 될 것입니다. 요셉도 지금 보세요. 다 잃었어요.
보디발의 신임도 잃고 억울함도 당하고 안전적인 삶의 터전도 더 무너졌습니다. 이런 걸 보면 그래요. 대신 여러분, 요셉이 보디반의 아내 유혹을 이겨내고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고 그래서 그가 무엇을 지켰는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가 무엇을 지켰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지켰습니다. 자, 그래서 그 이후에 이제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인자를 단자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네. 네. 지금 요셉의 삶은
점점 꼬꾸라지고 있고 좌천당하는 거 같고 억울함 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그럼 보고 성경 말하는 것은 그런 요셉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함께하고 계셨다.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가끔 어떤 성도님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목사님 설교에서들은 말씀대로 살았더니 하나도 안 좋아요. 힘들기만 해요. 잘되는 것이 없어요. 물론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그런 일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가끔 그런 상황이 마주서 속상해서 말씀하신 분도 있으세요. 근데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분의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게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내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 선택을 하는 것을 보시며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자꾸 상황을 보면 그 하나님이 안 보여요. 그럼 억울해져요. 신앙생활 다 억울한 수성이에요. 근데 내가 이런 선택을 해서 지켜놓고 싶은게 하나님이었다면 그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우리를 정말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주는 힘과 위로예요. 나에게 그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나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근데 내가 진짜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요셉은 하나님이 그런 존재였어요.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그는 세상의 어떤 부분에서는 잃어버리고 손해를 봅니다. 근데 그럴 수 있어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여러분도 그럴 거예요. 그때 잃어버린 것에 묵상하기 시작하면 시험에 빠질
겁니다. 우리는 끝까지 보일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한 선택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 하나님이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멘. 성경 통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눈에 손해로 보였던 그 요셉의 길이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요셉이 전혀 예측하지 못할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거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그 요셉을 이끄셨던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내가 나도 그 하나님 때문에 나의 삶에서도 믿음의 선택들을 하고
있다면 우리도 끝까지 믿어야죠. 일일 위하지 말고 지금 내 삶에 안 좋은 것들이 다가오는 거 같지만 그건 나는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고 하나님이 옳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선택을 응원하고 계시는 하나님과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죠. 하나님이 그거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묵상시키는 거예요. 우리 그거 안 하면 계속 환경 감정 여기에 우리는 소용들이 안에 빠져드니까 하나님이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우연한 만남을 주십니다. 만나죠. 누구 만나죠? 술맡은
관원자가 만나게 됩니다. 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물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요셉의 삶에 있는 거죠.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 후에 요셉이 왕 앞에 나가게 될 계기가 됩니다. 근데 여기도 디테일하게 보면 또 함정이 있죠. 왜냐면 요셉은 사실이 감옥에서 인간적인 기대를 했었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꿈을 해석할 지혜로 활용하면서도 내심 요셉 안에서 자신의 지금 상황을 타게할 자신의 방법을 시도해 봅니다. 내용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당신이 잘못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하며이를 어주소서 나는 리에서 끌려온 자요 같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네이 약속을 했단 말이에요. 술 맡은 거한 잘 됐어요? 안 됐어요? 잘됐잖아요. 네. 요셉의이 요셉의 요청을들은이 관원이 원래의 자리로 복권됩니다. 근데 그 사람이 요셉을 잊어요. 여러분 이게 사람이죠. 근데 여러분이 술맡은 관원장이 뭐 고위로 아주 고위로 이런 거 같지는 않아요. 모르겠어요. 잘 들어가지 않으니까.
근데 아주 악의적으로 한 거 같지 않아요. 제가 봤을 때는 요셉은 굉장히 날 꼭 기억해서 수 이렇게 말지만 사실 술 맡은 관원장에게이 요셉의 청은 그렇게 막 귀담아듣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냥 자기의 꿈 해몽 여기에 빠져 갖고 잘 되고 나니까 요셉의 그 청은 그냥 잊어버린 거죠. 근데 여러분 한번 만약에 이 요셉의 기대대로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술만트 관원장이 나가자마자 왕에게 요셉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정말 잘됐을까요? 왕이 그러면 보디발에게
추궁해야 될 수도 있고 너 아무것도 아닌 지금 요셉 아무것도 아니잖아요.이 히브리 종을 위해서 아무리 뭐 얘기해도 신경도 안 쓸 수도 있고 혹은 그로 인해서 안 좋은 일 벌 수도 있고 요셉의 인간적인 기대가 오히려 이을 망치는 것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술 맡은 관원정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또이 일을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과정이 됩니다. 안 된게 잘된게 돼요. 자,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말씀 한번 41장 시작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은즉 자기가 나의 가까에서 있는데 네. 술맡은 관원장이 복권된 이후 요셉이 기대했던 시간이 몇 년이에요? 기다렸던 시간이 2년입니다. 아마 요셉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어 왜 연락이 안 오지? 반년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요셉의 기대가 실망으로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요셉이 하나님과 다시 한번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절망하고 씨름하며 때로 다시 한번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는 어쩌면 더 성숙함으로 그가 세워지는 그런 시간들이이 2년의 시간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요셉은이 과정을 통해서 어쩌면 또 깨닫고 배우는 거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법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만 2년 후에 카이로스 드디어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됩니다. 그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니까. 요셉의 이야기는 그래서 하나님을 빼놓고 읽으면 이해할 수도 없고 상처에 상처를 쌓아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러한 절망의 절망 속에서도 꽤 괜찮은 청년으로 잘 자라가요. 왜냐면 그는 환경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세상을 보면서 정말로 우리의 중심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내가 세상에 어떤 것들 다른 것들 붙들고 살아가면 우리라고 별 수 없어요. 내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만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들에서 흔들리지 않고 세상과 좀 다른 모습으로 진짜 살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쩌면 더 크게 보자면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던 아버지 야곱의 밑에 있었어요. 근데 아버지 야곱의 밑에 있었으면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주어진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환경이 그의 신앙에 더 도움이 됐었을지 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삶에 있는 비극, 우리 삶에 찾아오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환경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빨리 이것이 안 좋은 거야. 비극이하라고 단정짓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우리의 해석, 그에 대한 세상의 해석과 하나님의 해석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쉽게 아, 지금 난 안 좋아. 내가 쉽게 말하는 좋은 일, 나쁜 일,이 기준은 과연 우리의 인생의 끝에서 돌아보면 얼마나 맞는 이야기였을까요? 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어쩌면 그런 모든 부분에 대한 우리의 눈에 한계가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야 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는 인생 힌트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야지 나를 찾아하는 모든 환경 속에서 내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할 수 견고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우리 주님의 자녀 주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어쩌면 오늘도 숱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살아왔을 여러분 그 선택을 내가 주를 위해서 했다면 이일비하지 마시고 계속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들어서 그분이 해 나가시는 놀라운 일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을
세상에내어 주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붙들고 때로는 버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십시오. 저는 그 삶 안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써내려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믿고 고백하는 곳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모든 여러분이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다시 한번 그렇게 주 앞에 중심으로 잡을 수 있는 귀한 예배 시간 될 수 있기를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