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로버트 멍어가 지은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짧은 책이라서 혹시라도 짧고 가볍게 읽어볼 책을 찾고 계신다면 추천 드립니다. 그 책을 보면 이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하늘로 가시고 언젠가 그 곳에서 그들을 영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위한 처소를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도저히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이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헤롯이 증축한 성전이 있었으나, 성령님은 그 성전에 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듭 말씀드리는 것처럼, 손으로 지은 성전의 시대를 넘어서 그리스도인이 성전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손으로 지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역행하는 것이 됩니다. (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예수님은 손으로 지은 건물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셨고, 예수님 스스로가 진짜 성전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믿는 자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인간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제가 요새 계속해서 ‘경험’의 중요성을 말씀드리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 30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에 관해 지난 3년 동안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현실이 되었고, 정말로 그들 안에 성령님이 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멍어’라는 책의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위한 거처를 만들어 기꺼이 모셔 들이며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아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을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지난 10월 4일 주일 설교 가운데 제가
전했던 중요한 복음을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고후 1:22)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내게 이런 일이 있었는가? 당연합니다. 그 보증으로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이 계신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증거이며, 새로운 언약의 소유자라는 보증이며, 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내게서 성령이 떠나시지 않으면 나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나요? 저는 그것을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성령님이 함께하고 계십니까? 내게 성령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새 언약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광채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이것을 우리가 잘 아는 말씀으로 이렇게 표현을 하죠.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렇게 문을 열고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처소로 만드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에 전한 시편의 표현대로라면 ‘맛보아 알지어다’ 이것이죠. 오늘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납치해서 내 마음 안에 넣고,
탈출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내가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며, 들어와서 우리와 더불어 먹는 실제적인 교제를 갖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만나는 것을 은혜라고 늘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없어요. 그분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나타내시고, 내 부름에 응답하시고, 나와 함께하기를 스스로 결정하셨습니다. 그 결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주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은혜이죠. 특권이죠. 오늘도 그렇습니다. 아직 내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없는데...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거든요. 여러분이 존재의 깊숙한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단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분께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원자요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해서 쓰고 있는데, 책에서도 주인공의
기도가 이것이었어요. “주님, 저의 마음이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집의 모든 것을 당신의 것처럼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이제 우리 안에 들어오신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책>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 안에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의 집 안에 주님이 들어오셔서 서재로 함께 갑니다. 여기서 서재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가지가 전시된 방입니다. 그곳으로 주님을 모시고 가는데,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이 그 안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이 방이 깨끗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방을 정리해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기꺼이 도와주지!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온 것이란다. 우선 지금 네가 읽고 보는 것 중에서 유익하지 않고 깨끗하지 못하며 좋지 않고 참되지 못한 것을 전부 내다 버리자. 그리고 그 빈 책장에 성경을 꽂자. 그리고 내 방에 있는 그림들(즉 내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여러 이미지들) 중에 대해서도 몇 가지를 버리고 대신 그분의 초상화를 그곳에 걸어놓도록 주셨습니다. 주인공은 그것에 순종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생각이 그리스도께 집중되고, 그분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에 대한 의식이, 잘못되고 불결한 모든 생각과 관념을 바꾼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주인공 안에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주님은 내 생각을 사로잡아 그분께 복종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그 안에서 교제하며
그분의 뜻대로 바꾸어 가면서 주인공은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성경과 자신의 성령을 통하여 주인공에게 말씀하시고 주인공은 기도로써 응답한 것이죠. 이 같은 인격적 사귐의 시간을 보내며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이 이렇게 저렇게 바쁜 일들을 마주하면서, 점점 그 교제의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죠. 어떤 날은 너무 바빠서 그리스도와 시간을 보내기 힘들었고, 점차 규칙적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도 알다시피 그것은 고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바쁜 일상이 잦아졌고, 어느 날도 중요한 약속 때문에 급히 나가던 중, 내 마음의 한 방에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고 주님이 앉아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주인공 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찾아왔죠. 저분은 나의 손님이고 내가 저분을 내 집으로 모셨는데... 내가 저분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주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주님 늘 여기에 오셨나요?” “그럼”하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매일 여기에 오겠다고 말하지 않았니?” 그 말씀에 주인공은 부끄러워졌죠. 그분은 주인공이 불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신실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주님께 용서를 구했고, 주님은 그렇게 주인공이 잘못을 시인하고 올바로 살겠다고 결심하면 늘 그렇듯 용서해주셨습니다. 이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잘못된 것은 이것이다. 너는 이제껏
경건의 시간이나 성경 연구나 기도 시간을 네 자신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수단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구나. 나는 너와 교제하는 것을 귀하게 생각한단다. 네가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따스해지지.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해라. 내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주인공은 다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러나 또 순간순간 갈등하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주님은 기다려주시곤 하죠. 이 집에 모든 곳을 주님과 공유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이 집에는 주인공만이 간직하고 싶어서 문까지 잠가둔 ‘벽장’이 있습니다. 오픈하고 싶지 않은 나만이 알고 싶은 상처들과 죄들과 그런 모든 것이 꽁꽁 숨겨진 그런 공간이죠. 주인공은 갈등을 하지만, 어느 날 결단을 하며 그 열쇠를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이 이것을 깨끗하게 청소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분은 “알고 있다. 너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 열쇠만 내게 다오. 그러면 내가 하마.” 말씀하시며 그곳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바꾸고 수리해주셨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며... 주인공은 경험하고 깨달아갑니다. 그러면서 끝내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명의 이전” “주님, 이 집 전체에 대한 책임을 당신이 지고서, 그 벽장을 치우셨듯이 저를 위해서 이 집을 다스려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제 마음을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어
주시고, 제 삶이 마땅히 설 곳에 서도록 하는 책임을 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인공의 그 이야기를 듣고 주님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암, 맡아주고 말고. 그것이 바로 내가 와서 하려던 일이다. 네 자신의 힘으로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가 없단다. 내가 너를 통해서 또 너를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 다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집의 손님일 뿐 주인은 아니다. 내게는 권한이 없다. 건물이 내 소유가 아니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 지금까지는 당신이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가 하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이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렇게 주님은 주인공의 삶을 받으셨습니다. 주인공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도가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또 그 삶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깊은 평화가
내 영혼 위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영원토록 나는 그분의 것이요 그분은 나의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우리 신앙의 너무 중요한 부분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성령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떤 것을 행하기 원하시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교활한 우리는 이 책을 읽다가도 왜 우리가 굳이 하인이 되어야 하지? 왜 꼭 명의이전까지 해야 하지? 공동명의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들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 모두에게는
삶의 주인이 되는 자리가 하나씩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표현대로라면 왕의 자리, 왕좌입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자신이 앉아서 자신이 스스로 삶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된다는 것은 매우 실제적인 것입니다. 내 삶의 소유가 바뀌는 일입니다. 내 마음의 한 자리, 그 왕의 자리에 주님이 앉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집에서 왕비대접을 받고 싶으면 간단합니다. 먼저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됩니다. 남자분들은 왕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아내를 왕비로서 대접하면 됩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려주시길 바란다면 스스로 먼저 종이 되어 그분을 왕으로 높이면 됩니다. 선악과 사건이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아, 에덴에서는 네가 모든 것을 다스리고 누려도 돼. 다만 한 가지. 너에게만큼은 내가 왕이 되면 좋겠어. 이 열매만 먹지 않으면 네가 내 말에 순종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약속하자. 네 안에 내가
왕이라면, 내가 너에게 준 이 에덴의 모든 것을 네가 다스리고 통치해도 돼.” 즉, 이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 그 안에서 주님이 왕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므로 그 질서는 깨어지지 않는 것이었죠. 그러나 인간에게 찾아온 죄는 인간 스스로가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죄는 딱 2가지로 요약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 모든 죄는 이 안에 속하는 것입니다. 불신앙, 그분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것이고... 불순종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악의 통치를 끊어버리기 위해 주님께서 오셔서 순종으로 신앙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담의 죄의 실패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죠. 우선 불신앙을 극복해야 됩니다. 주님의 살아계신 실존의 문제입니다. 그분이 계심을 믿는 것이 신앙의 첫 결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불순종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왕의 자리, 그 자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악과’인 것입니다.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면 나는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주님을 모시고 나는 그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내가 순종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그분의 힘으로 빼앗아 간 적이 없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자유의지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자리를 내어놔도 되고 안 내어놔도 됩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안, 가장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내 마음에 주님을 받아들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그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내 삶으로 주님이 임재하시를 갈망하며, 내 삶의 자리에 주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기를 바라는 선한 욕심이 여러분 스스로에게서 쏟아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 이곳에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