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매일 성경 오늘 말씀이 어디죠? 예. 창세기까지 다 알고 있잖아. 창세기 10장이잖아요. 그죠? 창 10장에 있는 내용인데요. 예. 오늘 내용을 갖고에 설교를 할까 하다가 아 내일 내용을 갖고에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어 오늘 묵상 본문이 10장을 보면요. 노아의 새 아들이 세맘야에게서 70개의 민족이 퍼져 나가는 이야기 다루고 있는데 거기 반복된 내용이 뭐냐면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이렇게 흩어졌다라는 표현들이 반복되고 있어요. 그 이미 10장의 내용이
이미 나뉘어져 있고 흩어져 있고 각자의 땅과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장은 이들이 왜 흩어지게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설명이 어디 나와요? 11장에 나오는 거예요. 그 10장이 먼저 기록됐지만 11장의 사건이 발단이 되어서 10장의 일이 어 나타나게 된 겁니다. 즉 시간 순서로는 11장이 먼저예요. 11장 다음에 그 결과가 10장이다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11장의 말씀을 이해할 때 10장의 흩어짐의 그 신학적 의미와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원인이 됐던 11장 내일의 말씀을 갖고 함께 메시지를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11장 1절 2절 말씀을 한번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점의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에 썼다.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 오다가 네. 사람들이 동쪽에서 더 동쪽으로 간 거예요. 신날은 바벨론니아 평야를 말하는데 여러분 뭐 구약 알고 있는 분 있겠죠? 여기가 이스라엘이라면 이쪽으로 이렇게 동쪽으로 간 거죠. 그래서 바벨론
활동으로 간 겁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수메리 평에 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예상이로 중요한 표현가 뭐냐면 동쪽으로 갔다는 겁니다. 왜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성경에서는 신학적 메시지를 갖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에덴의 동산 입구가 동쪽에 있었고요. 성막도 동쪽에 출입문이 있습니다. 즉 동쪽의 입구를 통해서 서쪽으로 들어가게 되는 방식으로 에덴에도 출입할 수 있고 성막에도 출입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동쪽에서 들어가는게 아니라 더
동쪽으로 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냐면 에덴에서 멀어졌다. 성막에서 멀어졌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계신 곳부터 멀어져 간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됩니다. 즉 이것이 행동이기도 하지만 신학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즉 점점 더 동쪽으로 향하여 가던 무리가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만의 어떤 꿈과 비전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던 무리가 시나리라 곳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3절 4절 한번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원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 네. 우리가 종종 바베타 사건을 이해할 때 잘못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탑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견고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우리는 탑을 하면 이렇게 뾰족한 뭔가를 생각하잖아요. 그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탑보다는 도시 건설이에요. 도시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바벨이란 도시를 만드는 거죠. 수메르 지역은 기원 400년경 훅이 우르크 시대부터 가마의 구운 벽돌를 만들어서 건축에 사용했다라는 흔적이 있어요. 어 그래서 이 시기가 역사적으로 볼 때도 메소포타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도시아가 막 생겨 도시들이 막 생겨나고 있던 그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고대의 도시는 대체로 신전 복합체의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바로 이것을 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 탑을 아까 얘기듯이 한국에서 보는 다보탑, 석가탑 이런 것로 이해하면 맞지 않습니다. 절대 다수의 신학자와 고고학자들은 바벨탑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의 중앙에 있는 요것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그 이후에도 계속 발견되는 지구라트라고 봅니다. 뭐라고요? 지구라트. 지구라트가 뭔지 궁금하시죠? 제가 사진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게 지구라트예요. 이걸 탑이라고 부른 겁니다. 이게 지구라트인데 이거는 지금 뭐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이 발견되는이 지구라트의 일반적인 형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신전의 의미로 건축된 것입니다.이 지구라트에는 계단이 굉장히 많아요. 계단이 매우 중요했는데 신들이이 계단을 타고 땅과 하늘을 자유롭게 오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라트를 통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이것을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근데 이들이 이것을 조금 더 이들의 목적을 성경적 언어로 풀어 보자면 이들이 이걸 통해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한다면
잃어버렸던 에덴에 대한 복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런 얘기예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간은 에덴에서의 누리던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 그 임재를 상실하게 되었죠. 즉 풍성한 삶을 잃어버리게 됐습니다.이 풍성한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계속되고 있었고 그 갈증이 있으니까 그것이 빠져나가고 공허함이 있으니까 아 그래서 인간은 계속해서 뭔가 신적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홍수후의 인간은 그래서 지구라트라는이 신전의 권립을
통해서 자신들의 힘으로 우리가 다시 신과의 연결을 시도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신과 맞닿아서 신에게서 얻어질 수 있는 풍성한 삶을 획득하자라는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워서 자기 힘으로이 하나님께 닿기를 원했고 자신들이 만든 계단을 통해서 신이 오갈 수 있도록 함으로로 자신들이 만든 구원의 길에 신을 참여시키려고 어 신을 묶어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또한 인간이 제가 주일에도 말했듯이 신을 길들이고자 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뭐 성경에 나오는 사닥다리 표현들은 우리가 생각하 사다리가 아니라 이거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늘과 땅을 그들이 연결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또한 성경에는이 바벨레의 도시와 탑을 건설하고자 할 때 이들의 목적이 두 가지 정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한번 넘겨 주십시오. 두 가지가 뭐냐면 먼저 주한 것이 뭡니까? 우리의 이름을 날리는 우리의 이름을 알리는 거죠. 그 두 번째 뭡니까? 네. 즉 이들의이 바벨의 탑과 도시를 만들 때 목적은 우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자.
세상에 널리 알리자. 그다음에 우리가 흩어지지 않게 하자. 이런 것이었습니다. 성원을 건축하는 사람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스스로 우리가 이것을 만드로 말미암아 우리가 신에게 도달하고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쟁취했다라는 명성을 얻는 거였어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고 에덴 농산에서 잃어버렸던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의 삶을 다시 얻는 일에 성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흩어지지 말자는 것은 홍수 심판을 경험한 이후 이제는 우리가 신에 의해서 통제당하지 않는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그런 욕망을 중심으로 뭉쳐서 우린 흩어지지 않을 거야. 우리는 신에게 당하지 않을 거야.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 자신들이 신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이들에게 가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이 바벨탑 사건은 그들은 하나님이 어 자신들의 인간의 죄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셨지만 회개와 순종으로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 신의 영역에 도달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신적인 삶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내가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우리 가운데 앞으로 행하셔도 그것을 대항해 내고자 하는 스스로의 이겨낼 만한 힘을 길러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을 방해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주도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들이 투영되어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홍수 이후의 인간들에게 나타난 모습입니다. 홍수 이후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경고한 성을 쌓고 그 안에 스스로
안전을 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바벨의 도시와 탑은 인간이 얼마나 자기 중심성이 강하며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을 조종하고 싶은지 혹은 하나님을 뛰어넘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며 기대하셨던 것이 빛이 있으라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모든 것의 이름을 부여하시다가 나중에는 아담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그 창조 창조적 사역을 나누어 맡기시며 아담이 모든 생명체에게 이름을
주도록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어 거룩한 동반자가 되도록 초청하셨어요. 그러나 지금이 바벨의 모습은 스스로의 이름을 내어서 하나님이 없어도 되는 삶을 꿈꾸는 것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시면서이 세상의 곳곳에서 하나님과 각자의 자리에서 연결된 존재로 살면서 내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이 계시는 거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어요. 이것이 죄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인간의 사명이었잖아요.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흩어져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고 하나님을 더높이기보다는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힘을 모아서 하나님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도 방해할 수 없는 우리의 뜻을 구현하자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고 버리는 삶을 꿈꿨던 것입니다. 이들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죄가 아니에요. 이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기술을 쌓아서 뭔가 해 나가는 문명이 죄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배제한 하나님이 없는 자신들이 꿈꾸는 안전성 자기가
중심이 된 하나님의 통제 받고 싶지 않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싶지 않은 자기가 모든 걸 하고 싶은 신도 막아서고 싶은 자기가 중심된 삶을 꿈꾸고 있는 이 시도가 바로 바벨이 보여주고 있는 인간의 모습 즉 죄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스스로 이름을 내려는 시도였잖아요. 근데 바로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들을 흩으신 다음에 그 흩어진 상태에서 12장이 시작돼요. 12장에서 누굴 부르죠? 아브라함 부르십니다. 아브라함 부르셔서 마치 처음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네가 나와 함께 일하자라고 하면서 내가 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결국 이 이야기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해서 발생하는 주권의 문제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어떤 역할을 부유하고 싶어 하세요. 함께 하자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 하죠. 그 결국 이 주권의 문제가 여기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한번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홍수로 심판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을 향해서 너희 나의 형상이야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명의 동반자로 초청하셨던 것이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러나 인간은 곧바로 살만해지자 어느새 자신의 왕국, 자신의 주권을 꿈꾸면서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삶 혹은 하나님도 내 뜻대로 통지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아요라 온몸으로 말하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건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아,이 시도가 성공했다고 한들 인간이 어떤 높은 탑을 쌓을 듯 쌓은들 하늘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비행기만 타고 봐도 아무리 높은 탑도 지면에 붙어 있는 작은 건축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성경 이렇게 이어지는데 11장 5절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로 내려. 예. 그들의 탑은 하늘에 닿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기 위해 한참 내려오셔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우리의 감극을 자주 까먹습니다. 우리의 어떠함으로
곧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우리의 어떠함으로 하나님 대체할 수 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11장 8 9절은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인데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 그들을 온다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일을 주님께서 거기에서 모든 상를 비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름을 바벨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해. 네. 결국 주님은 그들의 언어를 섞으셔서 그들이 함께 모여 악을 돈모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조치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분은 홍수 심판에 지나가시면서 조금 더 참아 주시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에 대한 조치는 레드 카드가 아닌 옐로우 카드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제 이 말씀을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 바벨의 죄는 결국 인간 사이에 분열이란 결과를 나아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죄는 언제나 목적을 이룰 때까지 함께 연대하려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또 죄는 서로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결국은 분열합니다.이 이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언어별로 사람이 흩어지는 모습이 여기서 벌어졌다면 아시다시피 사도행전 2장에 가면 오순절 성령 강리 사건에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니까 거기 모여 있는 각기 민족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이제는 흩어짐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는 역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기자는 의도적으로 거기에 또한 마치 바벨탑 이후에 나타난 흩어짐의 나라들의 모습과 같이 그 이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벨탑으로 인해서 벌었던 그 분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도 있는 나의 완고한 고집, 나의 높아지려는 마음, 하나님을 무시하며 내 갈길 가는 우리의 죄성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발견되는 아, 이게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거구나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예배 때마다 잘라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 안에서 그러한 것들이 자라서 나를 삼키고 주변으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이 말씀 앞에 다시 서서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를 스캔했을 때 내 안에 발견되는 말씀에서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것들 다시 한번 비워내고 성령님으로 다시 채워서 내가 할 수 없는 사랑 내가 할 수 없는 연합 온전한 삶을 이끄시는 그 능력을 우리가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도할 때 주님이 없어도 괜찮다고 던의 밥에 내가 싸운 나만의 안전한 성을 주님 앞에 하나씩 내려놓고 같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하나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