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사귐의교회 고난주간 특새 3일차

2025-04-16 (올린 날짜)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이 시간 저희 저희 마음에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내어 드리며 함께 찬양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내게 있는 향유혹하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음 아멘게 게 있는 향이옥하 내게 있는 향유혹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리 됩니다. 나를 위해 나를 위해 상길 오르신 그 걸음마다 그 신사가 새겨놓 네. 내게 있는 향의 옥게 있는 양육옥과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힘추고깨 드림 나를 위해 험한 상길 오르신 그 나를 위해 험한 상길 어르신

그 걸음마다 그지 사랑겨놓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급파 주님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주님의 성령 주님의 성령 지금이 곳에 임하소서. 임하 주님의 성령 주님의 성령 지금이 곳에 임하소서. 임하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시기네.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 소 주의 크신 사랑으로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 주소서. 사랑의 하나님. 어이 시간 부족하고 가진

것 없는 제가 제 마음속에 있는 향류와 옥합을 아버지께내어 놓습니다. 아버지 나를 위해서 그 험한 산길 올라 주시고 험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생명을 나에게 심기 위하여 하나님 순종함으로이 땅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귀한 생명 내가 내 마음속에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하여 나눌 수 있는 사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이루고자 하셨던 그 일을 내가 나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일, 하시고 싶은 일, 이곳에서 회복시키기 원하시는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내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그것들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니 성령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사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 뜻대로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자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이 이 말씀을 통하여 또 나에게

말씀해 주실 때에 하나님 내가 그것을 경청하고 나의 마음밭에 있는 옥토밭에 잘 심기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이 시간 역사하여 주실 줄 믿고 우리 예배 가운데 기뻐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고난주간 특별 세명예배 셋째 날입니다. 네. 어, 제 경험으로 보면 셋째 날 정도부터 이제 위기가 네. 와서 사람이 아, 줄지 않을까 했는데 네. 그래도 네.이 네.이 잘 기억하고 나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특별히 좀 우리 이번에 이 색 특새에 늘 우리 아이들이 참 잘 청소년부 아이들이 좀 이렇게 많이 참여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한번이 조금이라도 네. 경려를 하고 싶어 갖고 우리 뭐 청수부 초동부 친구 잠깐 앞으로 나와 보시겠습니까? 네. 우리 나경에도 나오고 네. 우리 유아 나오고 중경 비 나오고 네. 네. 원래 나와 보십시오. 네. 네. 네. 여기 유아 친구도 나와 나오세요. 네. 네. 오늘 잘 얻어 걸렸습니다. 네. 네. 얘가 나오고. 네. 네. 별거 아니지만.

네. 간식비를 목사님이 좀 준비했습니다. 네. 네. 네. 가시면 돼요. 네. 한 번 더 쏠 겁니다. 내일이 될지. 네. 금요일이 될지 모르겠으나. 네. 널리널리 소원을 퍼트려 주십시오. 네. 네. 우리 오늘 저희 셋째 날 말씀은 오늘은 어 계속해서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오늘은 참고로 두 명이 아니라네 세 명입니다.네 그래서 세 마리아라고 이름이 적었는데요. 어 성경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에 하나는 마리아를 구분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이제 그래도 아,이 사람이 좀 각각 다른 마리아다라고 한 사람이 최소 여섯 명 이상 나오거든요. 네. 그래서 근데 이 마리아들이 또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어떤 사건에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중에서 어 세 명의 마리아를 예수님의 이 사역과 관련해서 다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세 명이 여러분이 마리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그런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는 누구일까요? 어 그죠. 엄마부터 좀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부터네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에게 말하였다 이 말라 내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 내가 인하여 아들니 그의 이름을 하였다 그는 미대하게 아 되고 더지도 신의 아들이라고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를 주신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의 집을 다스리고 나를 하네이 말씀 잘 아시겠지만 어느날 결혼을 꿈꾸고 있던 10대 처녀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갑니다.이 당황스운 일 앞에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아직 남자와 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 이건 당연한 상식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무엇이었냐면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다. 이렇게 대답해요. 방법은 네가 걱정할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 방법보다는 지금 뭐냐면 내가 좀 너의 몸을 써도 되겠니라는 거에 대한 너의 어 동의가 있느냐, 순종이 있느냐 이걸 묻고 있는 거예요. 어, 늘 그렇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이에 대해서 수용하고 따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제가 찾아본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그렇고 아마도 마리아가 만약에 수태 고지를 거부했다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일하시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리아가 거부했다면 다른 경로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구속사는 이루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어쩌면 마리아에게 어 주어진 매우 특별한 어떤면 뭐 기회라고 해야 될까요?이 상황 앞에서 마리아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한번이어서 읽어 볼 텐데요.

시작. 마리아가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말씀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에게네 놀랍게도 마리아가 보였던 반응은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야기였어요.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양반이 마리아라고 전 생각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종종 세상적 의미로는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대책이 되어 주는 삶이 저는 믿음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에 나타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 통로가 기꺼이 되겠다는 마리아의 모습은 하나님께 분명히 힘이 되고 어때로 위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합니다. 예수님의 성장길을 보면 마리아도 연느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모성에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이 선명해질수록 마리아는 점점 뒷자리로 물러납니다. 아마도 이러한 마리아에게 있어서 두 번째 넘어서야 했을 어쩌면 시험은 예수님이 공생의 사역을 시작한 이후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메시아로서 예수에 대해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육신의 가족들이었어요. 실제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어쩌면 말리러 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향해서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냐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것은 저기 밖에 있는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보다 예수님 앞에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죠. 하나님의 가족이 육신의 가족보다 더욱 깊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가족은 앞서 말했듯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사역을 말리러 왔고 그에 대해서 예수님 단호인 선을 그은 것이었습니다. 철연의 관계보다 영적 순종을 더 우선시했고이는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님의 형제들 동생들 이들이 믿음의 길에 함께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어야함을 의미했습니다. 다행히도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후회됩니다. 야고보와 유다 등 동생들은 신약성경의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이 어머니

마리아는 끝까지 동참하죠. 어쩌면 자기 아들이 고문당하며 죽는 장면을 끝까지 바라보는 어머니로서의 자리는 큰 슬픔의 자리였을 거예요. 그러나 끝까지 마리아는 예수님의 곁을 지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동행자가 되며 함께했던 삶이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는 그때에도 이렇게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고 있는데요.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과 예수의 어머니 마아와 예수의 아버 마음을 같이하여 오직 교회에 있어라.

네. 이제 그들 또한 성령을 추구하며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성도들이 되었음을이 말씀은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볼 마리아가 있습니다.이 마리아는 베다니의 마리아라고 부르기도 하고 조금 더 우리에게 소피하는 마르다의 동생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입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이 베다니기 때문에 베다니의 마리아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마르다 마리아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예수님과 교재를 나누는 가정이었고 어느날

그 집에 예수님과 일행들이 함께 방문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일하느라 바빴고 마리아는 그 앞에 말씀을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죠. 근데 예수님이 이 마리아의 그 태도를 좋아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언니 입장에서는 눈치 없는 얄미운 동생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말씀 앞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예배자의 모습이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어 이들의 오빠 나사로가 죽게 되는 일이 있죠. 예수님이 그곳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 나스로가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마리아의

대화가 나오는데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아 예수께서 신곳으로 와서 예수님을 듣고 그하여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을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오는 것과 자 것을 보시고 마음이 기뻐하여네 어 저는 예배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예배자 예배가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걸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사람과 하나님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예배를 할수록 하나님 마음을 더

잘 알기도 하고 또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잘 아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셔서 우는 장면도 여기 나오고 있는데요. 어 마리아의 말을 보면 이 마리아의 말 속에는 어 담긴 의도가 여러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당연히 애통과 아쉬움도 묻어납니다. 그러 적어도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믿음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그녀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그 믿음대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립니다. 그 사건 이후에 이제 등장하는 모습이 또 한 번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 향유를 붙는 모습입니다. 한번이어서 읽어 볼게요. 시작. 마리아가신 자들이을 발을고 자기 로라네 아까 찬양도 했던 향유합에 대한 이야기데이 향유 부훈 사건은 내 편의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각각의 상황이 다르므로 현대의이 학자들은 이 사건들이 한 번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여러 번의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저도 그렇게 봅니다. 어 적어도이네 편의 복음서 있는 사건은

세 가지 사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요. 마태와 마가는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거 같아요. 여기 나오는 향유 부인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기와 상황이 똑같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는 다른 경우입니다. 우선 시기가 달라요.이 여인도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이 여인은 다만 죄인 여자라고 나옵니다. 유일하게이 향유 부운 사건 가운데 이름이 나오는 곳은 요한복음 사건뿐이에요. 바로 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있던 마리아가 부은 사건입니다.

이때 이 마리아의 이 어 향유 부은 행위에 대해서 옆에 있던 가론유다가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합니다. 어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가론유다의 편이 아니라 가론유다의 편은 가론유다 이야기 그거였죠. 이게 너무 아까운 건데 차라리 이거 여기다 쓰지 말고 가나안 자들에게 나눠 주는게 도지않냐라는 핀잔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지지하십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나의 장한 자를 위하여 것을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정말로 당시의 향유는 비싼 거였는데 그 값친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예수님 발에 붙고 또한 머리털로 발을 닦는 모습에 대해서 아 그것이 예수님이 향한 사랑과 섬김과 어떤 예수님을 향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그런 거룩하고 존귀한 어떤 행위라고 이해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낭비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때라면 모르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두고 계셨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향유를 부은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은 장례를 준비하는 행위로 그렇게 해석하십니다. 그래서 이 행위는 기억되고 존중받아야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녀는 예배하는 사람이었고 이날 그녀가 향유를 묵은 것은 예수님이 향한 예배였고 이날이 마리아의 예배는 주님께 위로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살펴부 마리아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어 그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찬송과 가사 가운데 제가 가장 불만이 있는 가사가 하나 있습니다. 찬송가 211장에 나오는 갑비싼 향유를 주께 드리니란 찬송이에요. 왜냐면 이 찬양 가사가 틀렸기 때문입니다.이 찬송과 가사가 이렇습니다. 갑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이렇게 나와요. 왜냐면 막달라 마리아는 향유를 부은 여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아까 그랬듯이 향유를 분유 있는 베다니엘의 마리아입니다. 어 그리고 죄인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를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맞지

않습니다. 근데 이 찬양의 가사가 기독교 전통에 남게 된 이유가 있어요.이는 얘기는 어 기독교가 이제 그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구분되기 전에 591년에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스 1세가 그의 설교에서 향유부 여인의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 씨하면서 오랫동안 그 잘못된 생각이 퍼져나간 결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막달라 마리아로 보지 않습니다. 그럼 이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인문인가? 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이렇습니다.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그 예수께서 보과 마음을

주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집을 하였다. 열제자가 예수와 공하였다.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구를 만든 몇 제자들도 공행하는데 귀신이 떨어져다가 마달라고 하는 마리아와 롯의 성인이 자와 자와의 여러 가지 관다. 그를 자기의네 성경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소개는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에 해당하죠.이 이 말은 그녀를 괴롭히던 극심한 고통과 절망들이 예수님 안에서 치유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받은 사건은 그녀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입니다. 12 사도는 아니었으나 바로 그들과 함께 또 그들 곁에서 후원하고 섬기는 제자들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 중에 하나가 막달라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어 12명의 남성 제자만이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성자들의 헌신이 함께 이루어낸 공동체적 사역이었어요. 저는 오늘날 교회도 같다고 봅니다. 아마 이 교회 안에

자인들이 하고 있는 헌신과 섬기들이었다면 오늘날 교회의 사역에 많은 부분은 어려움에 빠지거나 아니면 대다수가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역도 이렇게 섬기는 어 여성 제자들이 많이 있었음이 성경에 나오고 있는데요. 막달라반는 그곳에 항 항상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반역 죄인으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넘겨진 그 과정에서 남성 제자들은 대부분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여성 제하들은 오히려 그 곁을 지켰죠.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서 예수님이 향한 사랑과 충성을 드립니다.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많은 여자들이 벌칙이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시려서 따라온 사람이다 그는 신 마리아와 야고보와 머니 마리아와의 아들다 그 예수의 지을 리를 들어서 자기의 생의 신에 어 큰를 려다 거기 무너지 막 마리아 막 마리아가 네. 어 십자가의 마지막 수간에도 막달라 마리아에 나오고 그다음에 아리마데 요셉에 의한 장례의 절차 그때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그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 저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때 하나 느낀 거 배운 것이 있었는데요. 아 보이는 것이 있더라고요.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 누구인지 장례를 지켜보고 있으면 거기서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어울 수 없는 상황에서 달려오는 사람. 그리고 장례하는 내 매일매일 찾아오는 사람. 어쩌면 끝까지 머물러 함께하는 사람. 그것이 우리 인간들이 누군가에 대한 마지막에 대한 최선의 위로로서 사랑을 전하는 그런 방식이기

때문에 것입니다. 오늘이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도 그렇죠. 예수님의 그 십자가 앞에서도 할 수 있는게 없지만 그 자리에서 함께 있고 또 예수님의 장례식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없지만 그 자리에 있고 무덤 앞에서 아무것도 없지만 어 그렇게 있는 모습입니다. 원래 사랑이란 것은 효율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저 그곳에 함께 머리며 어 주를 향한 자신의 신실함을 그렇게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희망이 끊긴 듯 보이는 그 자리에조차 예수님이 곁나지 않은 그런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어 제가 오늘 이렇게 세 명의 마리아를 여러분께 소개해 봤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한 세 명의 마리아를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습니까?이 이 새 마리아는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의 곁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고통을 품고 침묵으로 동행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고 베다니의 마리아는 늘 예배하는 자로 죽음을 준비하는 또한

예배자로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린 제자였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절망의 자리에 복되어 끝까지 주를 따르며 끝까지 남아 증인이 되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드러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어떤 자리에서 예수님을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가 때로는 우리의 모든 어떤 말이나 이런 걸로 하지 않아도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의 예배하는 마음으로 나의 섬기는 마음으로 내가 주를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내 삶에 실천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것 때로는 주님의 편으로서 주님의 곁에 있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삶의 예배이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의 또한 이 시대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이 시간에 보내면서 우리가 그렇게 주님께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예배자들, 소중한 주의 자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주를 예배할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세 명의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서 각 사람이 어떻게 주님께 예배했고 어떻게 따랐는지 어떻게 주의 말씀에 실천하며 주님께 위로를 드렸는지 바라봤습니다. 이제 그 마리아의 자리마다 마리아의 모습마다 우리 이곳에 있는 예배자 각 사람이 그 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누군가는 어머니 마리아처럼 또 누군가는 베다니 마리아처럼 또 누군가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주를 섬기고 주를 예배할 때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위로받으시고 주님께서 또한 영광 받을 줄 믿습니다. 고난 주간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주께 나아갈 때 하나님 그것이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며 주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가 그렇게 드릴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각자 돌아기도하고 자유롭게 돌아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