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특별 새벽 기도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모두 환영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이 시간 찬양하기에 앞서서 잠시 눈을 감으시고 어이 고난 주간을 어 좀 깊이 마음으로 한번 묵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 고난의 길을 가셨는지 왜 알면서도 그 죽음의 길을 가셨는지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가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살아내는 모습을 보시려고 예수님께서 그 고난의 길을 가셨는지 우리 시간 잠시 눈을 감고 그분이 하신
일과 그분이 가신 그 길을 잠잠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내 구주 예수를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리소서. 내 진정 소원은 내 진정 소원은 내 구주 예수를 더 사랑 내 구주 예수를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이는 말 들리소서. 내 진정소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 사랑 이전의 세상 나이는 세상 나 깊었어도 지금 기쁨을 오직 예수 다만 내 피는 다만 내 비는 날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한 번 더 고백합니다.
이전엔 세상나이 세상 나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을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더욱 다 내 믿는 말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을 더욱 사랑 더욱 3절 고백합니다.이 이 세상 떠날 때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거 다만 내 비는말 다만 내 비는 날 내 구주 예수를 더욱 더욱사 내 진정 소원은 아멘 내 진정 소원 내 구주 예수를 를 더욱 사랑 더 만왕의 왕 나를 기르시는 목자를 찬양합시다. 한왕의 왕
나를 기르시는 공자여 내 모든 삶 주가 다스리시니 주님 뜻을 따르길 원하네. 오 주 한 분만 바라네. 아멘. 만왕의 왕 만왕의 왕 나를 기르시는 목자여 내 모든 삶 주가 다스리시니 주님 뜻을 한길 원하네 오 주 한군남 한 번 더 찬양합니다. 만왕의 왕 만왕의 왕 나를 기르시는 목자여 내 모든 삶 주가 다스리시니 주님 뜻을 다르기 원하네. 오 주 한복 주님만이 주님만이 나를 아시네. 내 모든 주가 만지시네.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이에게 그 은혜를 부어 주시리.이 이
시간 함께 우리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찬양한 고백처럼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그 예수님이 내 모든 삶과 상황을 만지시는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이 시간 고난의 길을 걸으십니다. 그분이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걸으시는지 그분이 왜 나를 위하여 그 길을 걸으시는지 왜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내기 위해 그 길을 걸으시는지 우리가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 세상에서도 그 주님이 걸어가신 그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있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너무나도 치열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평화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에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처럼 지금이 시간 나 또한 나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주님을 따르길 원하오니 나를 아시는 주님 내 만지시는 주님이 시간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 이 새벽 내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그 힘을 풀어넣어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 남아서 우리 시 함께 주님을 한번 외치시고요.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이 시간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까?이 시간 무엇 때문에 그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만왕의 왕이시요 나를 이르시는 유일한 목자이신 주님을이 시간 찬양하며 나아가오니 주여 내 모든 삶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주여 나의 하루를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주님의 뜻을 온전히 다르기 원합니다. 오 주님 한 분만 바라기 원합니다. 나를 아시는 유일한 주님. 내 모든 삶을 만지고 나에게 진짜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나의 주님.이 시간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예배하오니 주님이 주시는
그 큰 은혜를 내가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 은혜를 누리고 나 또한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나의 믿음을이 시간 주님께 마음에 생명 다에 고백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아시는 주님이 시간 주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모든 상황과 마음을 만지시는 주님. 오늘의 이 특별 새벽 기도회를 통해서도 내가 주님을 더욱더 알고 주님이 그 고난의 길을 어떻게 가셨는지를 더 알고 그 시대에서 그 주님을 어떻게 따랐는지를 알고 나의 마음을 나의 환경을 나의 상황을
어 정말 그들처럼 따르기 어려운 순간이어도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오늘의 예배를 통하여 나를 만져 주시옵시고 우리 공동체를 만만져 주시옵소서. 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네.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 넷째 날입니다. 네. 우리 오늘만큼 용기를 내서 옆에 있는 과거 한번 인사를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예. 함께 예배하며 기쁩니다. 인사해 볼까요? 네. 어, 저희는 이번 한 주간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두 명, 세 명씩 나눠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마 보시면 알겠지만 가장 유명한 그런 인물과 또 어, 비교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다룰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마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같이 나누면서 이들이 어떤 모습이 주님께 위로가 되었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어이 시대에도 또 오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한번 나눠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는 어 예수님의 초기부터 함께했던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제자입니다. 그의 본명은 시몬인데 예수님이 그에게 붙여 준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뜻은 반석, 큰 바위 이런 뜻입니다. 12 사도 가운데 어 핵심 리더의 역할을 했던 것이 베드로였고 성경에는 베드로에 관한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드린 신앙의 고백이겠죠. 한번이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이 과 주는 그리스도시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라. 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고백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칭찬하셨고 내가 베드로와 같이 이러한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병 이어 사건을 펼치시고 나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조금 더 깊은 신앙의 본질적인 이야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기적은 환영했지만 어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말할 때 그들은 어렵도다 이해하기 어렵다 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거든요. 그때 주님이 곁에 있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묻는 장면 있는데요. 한번 그 말씀도 한번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에게 가자 하느냐 베드로가 하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 말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네. 그러니까 베드로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사람이에요. 베드로는 아 우리가 누구에 가겠습니까? 남들이 떠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당신 어떤 분이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떠날 수 없습니다. 이런 멋진 고백을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도 어 구원하러 오셨잖아요. 기적을 베푸셨다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는데 이제는 진리를 가르치니까 떠나갔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근데 그때 이렇게 말하는 어 제자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께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아마도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제자들과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그 십자가 전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또한 베드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 발을 시키시는 장면이 있는데요. 한번 그 장면을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과 이에 내를 주지 못하시니 하시되 내가 너를 어주지 아니하면 내가 니라 성 베드로가이 주여 내다가 주옵소서 그리스도께서이 모든 한자는 밝게을 필요 없다 몸이 계니라 너희가 하나 가니라 하시니 네이들의 발을 씻기는 어 그런 모습을 보이십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족씩 하면 섬김을 의미하고 혹은 좀 뭔가 로맨틱한 어떤 거를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의 문화에서는
이것은 영락 없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종이 어 주인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을 때이 모습을 베드로가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섬길 수는 없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장면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이것을 너에게 행하는 것이 우리 안에 깊은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베드로가 갑자기 그럼 이제 저의 모든 거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예수님도이 베드로의 이 약간은 엉뚱하고
순수한 모습에 그 안에 느껴진 베드로의 진심을 보셨기 때문에 저는 이 모습도 주님께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꾸 죽는다고 얘기하니까 이렇게 이야기한 장면이 있죠.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이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되어 예수님의 고난이 임박했을 때 베드로는 결코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전 당신과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의이 마음은이 마음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가 실제로 예수님이 체포당하는 순간에 칼을 빼어서 저항하며 잡으러 온 사람의 귀를 자르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연약함으로 대표되는 그의 예수님이 향한 세 번의 부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베드로가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실패 이후에 보였던 시리와 자포자기를 보면 역설적으로 그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자신이 할 수
있어야 생각했던 자신의 믿음과 그러나 전혀 그것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체 사이에 간극을 목격한 것이죠. 결국 그는 아 나는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 나는 예수님 제자로서 자격이 없다 생각하며 고기 잡는 업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베드로의 진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찾아오셨고 다시 그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똑같이 베드로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마치 베드로가 부인했던 것과 똑같이 불을 펴놓고 거기서 세 번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을 다시 물으시죠. 그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세 번째 예수 요한이 되시나 내가 나를 잘하느냐 하시니서 번째 내가 나를 사랑하느니 하시고 베드로가 신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 하시나이다. 예수께서이 내라. 네. 예수님이 세 번이나 거듭해서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말하죠. 주님, 제 마음을 주님이 아시잖아요. 제가 그렇게 못 살아냈지만 그래도 제 마음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이 아시잖아요. 저는 주님이 그 마음을 아하셨고 다시 그 베드로의 마음을 받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얻은 베드로는 이제는 정말로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말로 초대교회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또한 예수를 힘 있게 전하고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주를 섬겼던 그런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에게 이제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회복과 변화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던 것이 베드로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에 있던 마르다는 어떠한가요? 어제는 그녀의 동생이었던 베단이 마리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저는 마르다의 섬김이 예수님께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번 그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예수께서 집으로 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종종 이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어떤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교제를 위해서 이 집을 방문하신 것은 이들이 예수님의 친구들이요 이들에게서 안식과 평안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이삼남매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 존재 자체가 어쩌면 위로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 오늘이 보면 이 집은 마르다가 가장 대표돼서 나오고 있어요. 당시 유대 문화에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랍비를 초청하여 대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는 자신의 최선으로 예수님을 섬겼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쩌면 이런 모습 본받아서 팬 모임을 합니다. 어, 가급적 자기 집을내어 줄 수 있는 리더들은 가정에 초대해서 성이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섬기는 성도님들을 존경합니다. 어쩌다 한 번은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매주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어 저희도 최근에 매주 화요일마다 저희 집에서 원형 가정교회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집에 초대해서 함께 그 마음이 없으며 쉽지 않다는 것을 사실 경험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오시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섬김으로 음식과 또 쉼을 제공하고
함께 나눴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마리아 마르다 사건처럼 어떤 때는 여러 명의 일행을 접대하느라 분주함 속에 염려 가득했던 모습도 마르다에게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에서 마르다는 매우 아름다운 사람으로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 대해서 갖고 있던 마음을 요한복음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사와를 사랑하네 여기서도 마르다이 먼저 나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이 향한이 섬김에 있어서
가장 주도적이고 가장 헌신적인 역할을 도마타 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 원형 관역학교라면 어 저보다는 저희 아내가 훨씬 더 주도적이고 헌신적인 일을 하죠. 그 저희 집에 오는 것이 목사님 집에 오는게 아니라 사모님 집에 온다고 그렇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나사로가이 가정에 있는 나사로가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잖아요. 예수님이 그곳에 오시자 마르다가 먼저 나가서 예수님 맞이한 장면이 있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다면 가죽 아니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이어 주실다. 네. 어제 마리아의 이야기도 우리 먼저 봤지만 마르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어 그러나 그러니 그러나 그러나 이제라도라고 말하면서 지금이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25절부터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이것을 믿느냐가 예수께 바았다. 예의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네 네. 성경을 4 읽어 보면 예수님이 이 나사로에 위독하다는 소식, 또 죽음이 임박했던 소식을 듣고도 늦게 오세요. 예수님이 늦게 도착하셨고 어 오빠 나사로는 이미 그 사이에 죽음을 맞이해서 지금 죽은지 나을지 4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서운하시자면 끝도
없이 서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왜 이제 오셨어요? 그런데 마르다가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예수님도 사역 중간중간에 여기저기서 개척당하시고 외면 당하셨기 때문에 그런 예수님께 이런 변함없는 신뢰와 믿음을 보이는 마르다의 모습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또한 나사로는 소생케 되는 그런 일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 두 명의 사람을 통해서 과연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셨고 성경이 그들 행적을 기록하고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서 위로와 또한 사랑의 마음을 느꼈는지 오늘 나눴습니다. 베드로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죠. 사랑하지만 넘어지기도 하고 고백했지만 지키지 못할 때도 있고 결심했지만 부인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 모든 연약함을 안고도 주님 그러나 제 마음을 주님이 아시잖아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또한 그 안에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받으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정말 찾으시는 사람은 일을 잘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것입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기보다 그의 사랑의 진심이 주님께 온전하게 드릴 수 있도록 다시 가서 손을 잡아 주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시는 분이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명한 꾸준한 사랑과 섬김 그리고 슬픔의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렇게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예수님의 친구이자 쉼이 되어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삶의 공간에 자신의 시간을 끊임없이 내어드렸고 주님은 그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하시고 때로는 그들의 슬픔 가운데 함께 눈물 흘리셨습니다. 마르다는 그렇게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섬김으로 예수님 향한 마음을 깊이 들어했던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도 어쩌면 우리의 모습에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사랑을 경험하시고 또한
위로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이고 우리가 이 마음 가운데 우리가 나아갈 때 주님은 이 예배을 통해서도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며 어쩌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정말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마음을 모르고 복음을 외면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어쩌면 외면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주님을 합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김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저는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위로이자 우리의 삶의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처럼 말하다처럼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진심을 받으십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넘어져도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그 마음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보시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이제 4일차인데요.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묵상하며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는이 시간 가운데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나의 모습으로 주님께 위로가 되어진 사람. 또 주님의 마음을
아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친구, 주님의 제자, 주님을 따르는 그런 주의 자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말씀을 보며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의 아버지 예배 처소에 함께하며 이렇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며 시작한 하루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몸은 평소보다 더 피곤할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욱더 주님과 동행함으로 힘을
얻는 그런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루를 이렇게 시험하며 더욱더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주님께 붙들려 살아갈 수 있는 우리 하루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와 동행하옵시고 우리 하루의 삶을 통해서 주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