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사귐의교회 고난주간 특새 5일차

2025-04-18 (올린 날짜)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주님을 어 바라보면서 또 집중하는 그런 또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이 이 시간 잠시 침묵으로 주님 앞에 집중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오직 주의 은혜로 지금 여기서 있네. 한없는 경매 한없는 경매 한없는 찬양 내 영혼 예배드리네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의 십자가고통 이기신 주님 그 은혜 어찌리 주네 주네 채우시네 네. 주님 보게하시네. 살아가는 동안 은혜로만 살리 십자가 은혜로이 시간

주님의 그 십자가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목소리로 다시 한번 고백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오직 주의 오직 주의 은혜로 지금 여기서 있네. 한없는 영매 한없는 찬양 내 영혼 예배드리네. 나를 위해 이 땅에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의 은혜 십자가 이기신 주님 은혜 어찌 지리 주은혜 날채우시네 주은혜 보게하시네 살아가는 동안 은혜로만 살리 십자가에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채웁니다. 주은혜 날 채우시네. 주은 보게 하시네. 살아가는 동안 은혜로만 살리 십자가에

우리 마지막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주 은혜 날 채우시네. 주의 보게 하시네. 살아가는 동안 은혜로만 살리 십자가 살아가는 동안 살아가는 동안 은혜로만 살리 십자가에 은혜로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입니다.이 시간 그 십자가를 정말 우리가 마음깊이 또 묵상하고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사랑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정말 주님께서 갑없이 우리에게 주어 주신 은혜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삶을 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묵상하시면서이

시간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시간 함께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하나님 우리가 새 생명을 얻어서 또 새로운 삶으로 또 새로운 신부로 변화받아 주님께서 갑없이 주신 은혜를 너무나 갑지게 누리며 살아감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주님 때문에 얻은이 세명을 아버지 이 생명과이 새로운 삶을 아버지 헛대히 살지 않게 도와주시고 우리가 찬양으로 고백한 것처럼 정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십자가를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주어 주신 말씀 가운데 함께 해 주셔서 이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 정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기에 아버지을 더 알아가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 그런 시간 되어질 수 있도록 주인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간절히 구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이 아침도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우리 가운데 주님 한량 없는 은혜를 부어

주시고 오늘도 갑없는 은혜를 주님 부어 주시옵소서. 주님 온 만물의 창조자 되시며 알파 오메가 모든 시간의 주관자 되신 주님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며 또 이른 아침부터 예배할 수 있게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크고 높으신 주님께서 작고 연약한 우리를 위해 친히이 땅에 오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오늘 주님의 그 십자가를 마음 깊이 새기고 또 묵상하여 봅니다. 하나님 주님의 그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예배할 수 있고 주님의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제는 어둠의 메인 자가 아니라 빛이 되어서 세상 가운데 주님의 이름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지치고 때로 어둠 가운데 한물될 것 같은 그런 순간에 우리를 살리시고 건져내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가 찬양으로 고백한 것과 같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이 이 시간도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도 주님께 위로가 되어지는 우리도 주님께 기쁨이 되어지는 그런 한 사람 되어질 수 있도록 또 그런 하루가 되어질 수 있도록 주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한 주간 투표 새벽기도 마지막 날 함께하는 모든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네. 오늘 제가 약속한게 있기 때문에네 우리 초등학생과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은 앞으로 한번 좀 나와 주시면네 그래도 오늘네 제가 마지막 날네 경 앞으로 나오시면 됩니다.네 초등학생이나 우리 성엽 친구들은 오늘 한번 앞에 한번서 주십시오. 이렇게 쭉 한번네 우리 한번 같이 기도도 하고네 그러고 여러분들을 좀 드려보내려고. 네. 어우. 네. 예은 예수까지. 네. 대단합니다. 네. 네. 오늘 유난이 많아 보이는 건 네. 네. 우리 여기 지금 이제 고3부터 네. 이제 초등학생까지 있는데요. 아,이 또 부모님과 함께 또 이렇게

새명배를 나온 친구들입니다. 우리 시간 좀이 친구들 위해서 한번 같이 그래도 기도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한번 좀 이렇게 손을 좀 뻗어 주시겠습니까? 네. 그런 좀 얻어서 우리의 너무 귀한 다음 세대들인데 아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세대로 잘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 잠시 기도하고 어 제가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도하시옵고 주하시사 아버지 이들이 오늘도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할 수 있도록 또이 고난 주간에 특별한 새벽에

외에 함께 나와서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도록 하시니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이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 또 봄으로부터 받은 신앙들이 정말 이들에게 더욱더 빛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것을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동반자와 하나님 배울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 하나님 역사 있습니다. 주님 도와주옵시고 주여 함께하여 주옵시고 아버 뜻에 살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들로 영원받아 주옵시고 아버지 이들에게 있는 모든 것들이 될 수 있도록 주여도 할 있습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도하기 원합니다. 주여 인도하시 하나님 오늘도 이 아침에 하나님 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또 자발적인 의지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정말로 일찍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주게 주관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았다면 이들 세대에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 시대에 또 이들의 시대에 맡겨져 있는 하나님의 일들을 이들이 감당해 낼 수 있도록 주시 인도하여 주옵시고 이들이 지금 예배하는 이 마음을 더욱더 잘 키워가서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는 그런 사람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숙한게 있으니까 네. 오늘 제가 믿음으로 많이 갖고 왔습니다. 네. 네. 네. 네, 오늘 같이 말씀 나누겠습니다. 오늘 고난 주간 특별 새벽예배 마지막

날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 마지막 시리즈인데요. 오늘은 마지막으로 성경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 먼저 첫 번째 볼 것은 십자가 위에 예수님과 함께 못박혔던 강도 이야기인데요. 한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함께 하려 있는 그리스도께 나도 우리를 하며 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하여라 그러나 다른 그를 지려 하였다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너는 하나님이지 않느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 때문에 그의 뭐를 받고 있으니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가실 때에 나를 주시오게 말씀하시다. 내가 진정으로 내게 하노라. 너는 우리 나와 함께 나 것이다. 네. 아멘. 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함께 자우에 못 박힌 두 명의 강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강도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그러한 유의 강도보다는 뭔가 로마에 대해서 어 뭔가 예수님처럼 좀 쿠대타를 도모하거나 어떤 민중을 어 선동하거나 이런

사람이었을 확률이 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죽음 앞에서 이제 예수님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죠. 아 그러면서 어차피 지금 자기에게는 소망이 없으니까 그냥 예수님이 조롱하는 것으로 자기의 마지막 남은 그 화와 분을 이렇게 표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은 달랐어요. 누가복음은이 두 강도 중에 한 명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과 또한 회심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회심한 강도를 우편 강도 즉 오른쪽 강도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성경에는 그러한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우편이면 우리가 보기에 오른쪽인지 예수님에게 있어서 오른쪽인지 그것도 기준이 없기 때문에 어느 쪽에 있는지는 우리가 뭐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십자가에서 회심한 강도라고 저는 부릅니다. 아,이 사람은 다른 한쪽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는 그 강도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어,이 회심하는 강도가 주장하는 것,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로 인해서 어, 이러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죄, 우리가 행한 어떤 부분 때문에 지금 죄를 받는 것이다. 자신이 적어도 도덕적인 의미겠죠. 법적인 의미의 죄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진실하게 자기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이 사람이 말하는 거 뭐냐면 예수님은 무죄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지금 오히려이 강도보다 예수님을 향해서 막 희롱하고 조롱하고 있었잖아요. 아 그리고 자기와 똑같이 예수님 또한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 그런 예수님에 대해서 회심한 강도가 하고 있는 이 고백은 놀랍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그냥 예수님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얘기한게 아니라 이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심의 가장 중요한 고백 하나님이 주이시고 하나님이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드리고 있어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이야기가 그에 해당합니다. 십자가에서 어쩌면 자기와 똑같은 처지 혹은 사람들의 반응을 어면 자기보다 더 어 조롱받으면서 죽는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의 나라를 믿겠다. 당신 나라를 믿는다는 고백은 엄청난 신앙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 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 이 강도가 그렇다고 예수님을 위해서 무언가 행함으로 보여 준 것은 단 하나도 없을 수 있어요. 뭐 예배를 했던 것도 아니고 봉사를 했던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이 순간 그가 가진 마음의 고백이 진짜였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많은 경우에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야지 진짜인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말뿐인 고백과 진실한 고백을 그를 통해서 구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상황에서 어이 예수님의 경우는 이 강도를 보면서 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계세요. 그러므로 이 순간이 사람은 전혀 무언가 행한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충분히 행함이 뒷받침 만한 뒷받침 될 만한 진실한 믿음이었다는 것을 예수님은 보셨죠. 만약 이 강도에게 바로 이 순간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만한 삶의 기회가 남아 있다면 그는 아마도 이 고백만큼 예수님을 따른 자로서의 어떠한 모습을 살아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있는 그 진실한 믿음을 보시고 그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시죠. 어쩌면 행위가 정말 하나도 없는데 구원을 받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주님만이 아실 수 있는 그의 그 진실한 회심의 고백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이렇게 그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함으로 마지막까지도 한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예수님의 이 십자가 상에서이 사람의 존재,이 사람의 고백은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사역에서 한편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모두가 자신을 믿지 않고 어찌면 조롱하고 있는데 그 순간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믿음의 고백을 보인 한 사람 그가 바로 강도였던 것입니다.이 이 십자가상에서 십자가에 있는 이 시간 동안에 또 한 사람 우리가 주목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십자가형을 집행하고 있던 로마의 백부장이었는데요. 한번 그 이야기도 읽어서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과 그와 함께 예수를 죽이는 사람들이 지금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상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수를 만고서 있는 백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주을 얻으시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런데 부장은 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라 말하였다.이 사람은 참으로다. 네. 지금 보면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 공간복음은 모두 이 백부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라 것은 100명의

군인을 지의하는 직업 군인이었습니다. 어, 유대인의 십자가 처형을 담당했던 역할로 보여요. 그래서 십자가 형을 진주 지의하고 있는 예전에 우리나라 뭐 조선 시대 이런 걸로 하면 뭐 이렇게 참수형을 행하는 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는 거죠. 이러한 군지가 있습니다. 그는 어쩌면 십자가형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로마의 통치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박 잔인하게 죽이는 그러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로마의 공권력을 상징하는 혹하는 집행자이고 어 대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십자가 처형을 아마도 예수님만 하지 않았을테니까 십자가 처형은 그에게 있어서는 어 아마 수없이 경험했을 법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무언가 다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에 대해서 공감에 그는 예수님의 의로움에 대해서 증언하는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가 본 예수의 죽음은 그만큼 특별했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은 이것이죠. 마태나 마가복음은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말하고 말하고 있어요.이

여기 사용된 진실로 단어는 알레소스라는 단어인데 진실로 정말로 틀림없이 이런 의미입니다. 어 저는 이 사람이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 앞에 나온 것처럼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십자가의 그 상황에서 어떤 그런 기적의 행암 때문에 그랬을까 혹은 다른 것을 뭔가 느꼈을까라고 했을 때 아마도 영향들이 있었겠지만 단순하게 어떤 기적의 요소만 보고 그가 이런 고백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이 단어가 그냥 뭔가 놀랐다 이런 일이 아니라 이것은 신앙고백적인 어조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가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은 로마에서는 로마의 황제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목이 뭡니까? 네. 십자가형은네 처형 방식이고네 제목은 반역죄라고 했죠. 로마의 통치에 반역한 죄. 그러니까 로마를 거부하는 어떤 반란 세력의 수계로 지금 예수님을 처형하고 있는 이 백부장이 그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지금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표현에 보면 그가 이 고백을 하는 것은 어쩌면 예수님의

그 죽으시는 모든 과정을 그가 목격하면서 했던 고백처럼 나오고 있어요. 보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이 십자가 영을 할 때 보통 다른 이들을 저주하거나 로마의 병상에서 저주를 퍼붓거나 뭔가 이런게 있는데 다른 사람을 욕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나 아니면 거기에 있는 사명에서 어 용서의 기도를 하는 이런 모습이나 이런 어 가운데 숨을 거두신 예수님 모습에서 어쩌면 그는 다름을 을꼈을지도 모니다.

많은 사람이 늘 저주하고 저항하며 죽었던 그곳 그곳에서 예수님의 마지막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표현해요.이 사람은 그래서 정령 의인이었도다.이 말을 하면서 영광을 돌리며 이야기를 합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죠.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라는 표현은 무언가이 순간에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어떤 임재의 고백 경험을 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근데 복음서에서이 백부장의 고백이 매우 중요해요. 왜냐면 로마의 백부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하지만 그러나 죽음 당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십자가는 이제 이것을 통해서 어쩌면 또 다른 복음의 이야기를 또한 보여 주고 있는 거죠. 복음서가들이 말하는 복음의 확장 이방인을 향한 구원. 어쩌면 이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서도 예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봤던 것처럼 외적으로는 어떤 로마 혹은 유대인 어 지도자 이들을 향한 외적으로 패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고통과 침묵과

무기력과 조롱이었어요. 그러나 사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그 모습은 어쩌면 계속해서 누군가의 구원과 누군가의 놀라움과 누군가의 회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그러한 구원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이 마지막 두 사람의 이야기까지 그동안 여러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삶에서 또 십자가에서 또 죽은 후의 장례를 통해서 함께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이번 한가 쭉 살펴봤습니다. 사도 요한, 아리마데 요셉, 리고데모, 구레네의 시몬, 세 명의 마리아드, 그

베드로, 마르다, 그리고 오늘 이름 없지만 강도와 백부장까지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되시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의 눈빛에서, 누군가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또 누군가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두 사람, 이름이 계속되지 않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죠. 강도는 어쩌면 죄인 중에 가장 나락에 있는 자였고 백부장은 로마 제국의 권력자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십자가 아래 무너졌고 동시에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 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이 백부장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에 그래도 이 사람의 이야기 기록하고 있는 것은 저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볼 때 어쩌면 십자가는 가장 실패한 자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기의 삶이 다시 한번 전환을 맞이하는 은혜의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오늘날 예배하면서 또 오늘이 아침에도 예배하면서 어 예수님을 영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 안에도이 예수님과 만남이 어떠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이 변화가 모이고 모여서 우리의 삶의 길이 되어지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중 우리 살펴본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그들 중에는 완벽하지 못한 모습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모습으로 예수를 따랐고

예수님을 고백하고 예수님 동참하면서 예수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도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렇게 예배하며 하루 시작하는 여러분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면서 기뻐하시고 또한 위로 받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옆에 옆에 있는 분들에게 그렇게 고백합시다. 당신이 예수님의 위로입니다. 네. 어이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나는 다른 모습으로 살겠어 십자가를 사랑하고 오늘도 믿음을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으며 혹시 오늘 하루의

삶 가운데 내가 오늘 아침에 예배한 것을 기억하며 이 아침에 기도한 것을 기억하며 조금이라도 원래 나의 모습과 다른 삶의 길을 갈 수 있고 다른 모습을 행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오늘 주님의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고난 주간에 보내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새로운 삶에 시작한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 가운데 그렇게 살다가 오늘 밤 우리 9시에 다시

한번 십자가 기도회로 모여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마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예수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한 사람, 예배할 수 있는 사람, 삶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5일의 시간 동안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다시 한번 우리의 삶에서도 그 안에 작은 도전들을 경험하고 또 내 삶에 따라서 실천할 수 있는 어떤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오음은 우리가 이름도 나오지 않은 두 사람에게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어진 삶의기에 그들에게 있었던 큰 깨달음은 알지 모르겠지만 그 작은 깨달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 우리 모두가 오늘 하루의 삶에서도 주님을 그렇게 발견하고 주님을 그렇게 의식하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내 삶을 조금이라도 들이며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기쁨 되고 주님의

위로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는 물음표를 안길 수 있는 그런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각자에서 기도하고 자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