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늘은 어 성 금요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기도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에 우리가 보내면서 고난 주간의 의미는 예수님이 고난을 어 택하신 의미를 우리가 되새기고 또 거기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특별히 이런 주제의 설교를 좀 나눠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입니다. 어, 첫 번째는 죄와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죄의 대가가 그래서 사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이 이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면 결국 죄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놓쳐 버린 상태 즉 죽음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이것이 성경의 언어라고 저 생각할게요. 근데 이것을 우리의 일상의 언어, 현대의 언어로
바꿔서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죠. 근데 우리는 이 주어진 삶을 살아갈 때 종종 힘겹고 버겁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연 신이 정말 있는가? 이런 질문을 우리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질문에는 신이 정말 선하고 위대하다면 이렇게 한계 많은 인간의 모습과 추악하고 때론 위협적인 세상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맞습니다. 우리는 깨어진 삶, 깨어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삶을 우리는 어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이 삶의 직면회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존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대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답을 말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경로 일에는 어떠한 원인이 있었다는 거예요. 원래 창조주는 우리를 지금의 모습보다 선하고 온전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그렇게 만들었으나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결과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위기와 좀 우리가 버리고 싶은 어떤 모습들이 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라고 말하는 성경이 말하는 그 행위와 그 태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고 그 단절의 결과 지금 우리의 삶에 경험하는 여러 한계들과 깨워짐의 현상들이 찾아왔다고 성경은 적어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설명이 끝인가? 그러면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죠. 십자가에서서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다시 우리가 그 한계와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돌아가서 원래 우리의 상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의 길을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죄의 형벌 가운데 있는 우리를 그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여서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이 원래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스스로 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신 두 번째 일은 무엇이냐면 실패에 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은 바 되에서 우리를 송량하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율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지킨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그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귀하고 소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법 율법 앞에 서면 우리가 그것을 다 지켜서 의인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계속 발견하는 거예요. 즉 율법 앞에 우리가 서면 율법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율법은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나아가는 방편이 되기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에서 모든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실패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늘 죄인이다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바로 그런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온입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설명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입한다는 것은 우리가 뭐냐면 나는 여전히 죄이지만 내가 지금 예수로 옷 입은 것입니다. 한번 역설매 그렇게 고백해 줄까요? 당신은 예수로 옷 입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로 옷 입었습니다. 네. 우리가 우리의 행위대로 율법 앞에 나아가서 그 사 지키려고 하면 늘 실패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혹은 아니 실패해도 괜찮은 것은 우리가 예수로 옷입었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의 기준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앞에서 아 나는 세상의 기준에 완벽해라는 생각보다는 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할 것밖에 보이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나의 내면의 율법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떠나 있는 삶은 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너무나
힘겨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걸자품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우리는 종동 내 삶을 세상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는 아 나는 불량인 거 같아라고 여기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은 늘 나에게 지금 현재가 아니라 언젠가 이루어야 돼 목표 그러나 참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가 되기 쉽습니다. 가치를 증명해야지 나의 존재가 증명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힘겨워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런 우리를 회복시키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절대적인 가치로 다시 한번 부름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에 회복된 사람이 왜 어 이제는 다른 어떤 가치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 같습니까?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치은 대가가 무엇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분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에게 이제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서 되살하는 나는 새로워진 나는 바로 예수님의 그 가치를 내가 힘입어 나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얻으려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을 대가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복음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들은 복음 안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이제는 주를 따른 주의 자녀고 백성된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를 너무 낮게 보고 가치없게 여기고 낮은 자정을 허덕이 있다면 야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지불했던 것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야라고 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 성경은 우리를 포이에마 작품이라고 부르죠.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받은 작품으로서
우리의 존재가 회복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주님은 왜 십자가를 셨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 하셨는가? 세 번째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 가운데 살아가고 더 나아가도 나아가서 다른 누군가와도 분열된 관계를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하나님의 원수다라고 성경에 말합니다. 원수라고 하는 표현이 좀 자극적일 수 있는데요. 왜냐면 성경에 어 근거하면 하나님을 떠난 우리는 하나님은 빛이신데
우리는 어둠움이고 하나님의 생명인데 우리는 죽음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진리인데 우리는 거짓이고 하나님은 온갖 자유신데 우리는 어떤 것들 세상 같이 종속되어 있으며 평안이 아니라 우리는 불안이고 사랑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며 소망이 아니라 허무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상태가 하나님과 가장 멀리 있다. 하나님과 가장 반대 속성이 있다라는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어떤 뜻 안에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원수였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위치에서 보자면 하나님
거룩함과 가장 거리가 멀어진 것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야고보서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세상의 가치와 세상 가운데 살아가게 되고 그때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원수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떠나 있는 동안 우린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멀리 있는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돼요. 왜냐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는 그 상태는 자기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벗어난 세상의 흐름 속에 속하여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거나 혹은 경쟁하는 대상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날마다 가르치는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타인에게 다가서고 타인에게 마음 여기보다 나의 이익을 위한 판단을 하라고 가르치며 내게 이익이 되는
관계만을 맺기 위해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은 것입니다. 원수된 것을 고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던 살아가고 있던 방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구나. 저 세상 가운데 속한 살아간 내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모습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나의 모습, 나 중심적으로 관계 맺기였던 나의 모습,
용서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내가 그것을 바꾸기 원한다. 우리 안에서 더 새로운 길이 있음을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에게 있는 티끌은 반드시 제거하려고 하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는만큼 우리는 그 안에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다른 사람을 향한 넉넉한 태도, 사랑의 태도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1절 1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 안에서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 가고 계십니까? 죄의 문제, 실패의 문제, 관계의 문제. 우리는 모두 죄의 문제 앞에 때로 무너지고 실패의 그림자 아래 숨고 싶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그 모든 것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짐을 대신 지셨고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이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을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살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자유롭게 실패에 대해서 꺾이지 않고 관계 속에서 진심을 나눌 수 나누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고 싶으셨던 것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음을 여러분 믿으며 그 십자가의 능력
가운데 십자가가 살린 모습으로 여러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이 시간 그 복음을 다시 붙드시고 회복의 길 위에서 있는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먼저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사랑받은 자로서 오늘 날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더 나아가 나의 삶 속에서 주를 따르는 모습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