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내 주 되신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다고 구하리라. 그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이 전보다 더운 사랑합니다. 아멘. 그날 사랑하사 구하시려고. 저 십자가 고난 저 십자가 고난 당하셨도다. 그쓰신 내 주오니 이전보다 더욱 이전보다 더 사랑합니다. 합니다. 내 평생에 내 평생의 힘 그 의문을 주 예수의 내 길이 다가 숨지대에라도 할 말씀이 이전보다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영광의 구주 날 사랑하사 그 풍성한 그 풍성하리
더하시니 김멸육관 그 찬송할마 이정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 은혜를 그 은혜를 주신 예수시네. 아멘.이 이 성보 너 사랑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더욱 가까이 주님이 가까이 내게 보이라 내 주를 가까이 내 주를 가까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더욱 가까이 주님을 가까이하니 그게 복이라. 아멘. 더욱 가까이. 더욱 가까이. 너무 가까이. 주님 앞에 나갑니다. 더욱 가까이 더욱 가까이 가까이 주님 앞에 합니다. 내 평생 소원은 내 평생 소원은 우리의 평생 소원은 내 평생 소원을
영원한 주의 나라 아내 사는 것. 우리이 시간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찬양했던 것처럼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더 걸어가길 원합니다. 우리이 시간이 아침을 깨우는이 시간을 주님 주님께서 들어서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오늘 기도회와 그리고 있을 모든 고난 중간 동안에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이 시간 소리 내서 한번 주님께 외치며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뜻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하루하루를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을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연약하고 존재가 어 부족하지만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신 주님을 붙잡고 나아가는 우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더 따라가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소원과 우리의 평생의
소원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하고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고 그 길이 우리 안에 있음을 고백하며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모든 뜻 가운데 아버님 뜻이 우리 가운데 또한 거하고 주께 돌아가는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서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뜻이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셨던 꼭 그 고난을 저희도 받겠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저희도 걸어가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 가운데
우리를 과하기를 원하시는 그 주님의 뜻을 우리가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그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내가 주인이 되려 하는 그 연약함 속에 계속 살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고난 주간 동안 주님의 그 길을 걷기를 다시 한번 우리가 다짐하고 나아가오니 우리의 다짐과 우리의 결단을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아가오니 아버지 그 사랑을 우리가 기억하며 이웃에게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뜻이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결단한 우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네, 우리 고란주 특날입니다.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네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제가 나눈 말씀은 우리 니고데모와 시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 고난 특새 기간 설교는 성경의 인물들에 대해서 하루에 두 명씩 어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 위로가 되었던 인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조금은 우리가 어 주목했던 사람도 있겠지만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 니고데몬은 뭐 우리에게 비교적 유명한 사람이고 시몬이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죠. 베드로 또한 시몬이라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 이름이 좀 많을 때는 그 앞에 지명을 붙여서 구분하는데 구레네의 시몬이 바로 그런 경우이고 오늘은 그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 함께 보려고 합니다. 먼저 살펴볼 이야기는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어 개인적으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서 비교적 설교로 많이
소개했던 인물입니다. 리고데몬은 일단 종교적으로 보면 바리새인 출신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가 구약 정통의 어 구약의 매우 어 정통한 그런 잘 알고 있는 종교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의 사회적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회적 신부은 어 성경에는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 있는 것들을 종합해 봤을 때 그가 유대인의 지도자였고 또한 어 뭔가 공의원이었던 것을 함께 유추할 수 있는 분이 많기 때문에 사내린 공의원의 일원이었을 거라고 어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제 우리가 봤던 아리마데 요셉과 아 같은 그런 사들의 공회원 중에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어 어제 봤던 아리마데 요셉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비교적 예수를 지지하는 인물로 빠르게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를 대적하는 공회의 결정에 애초부터 동조하지 않는 인물로 성경은 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례 때 됐을 때는 이제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난 케이스가 아리마데 요셉이었습니다. 근데 니고데모는 사실 조금은 태도가 애매한 사람이었어요. 왜 그는
예수를 따르는 지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포지션은 지지자가 아니라 뭐였냐면 질문자였습니다. 궁금은 하나 여전히 의심이 있는 상태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 세 번 등장하고 있는데요. 우리 한번 그 말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주와서 이르되 우리가 당신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가시는 이유할 수 없니네 니고데모는 원래 하나님을 알아갈 때 율법과 종교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조금 충격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남 우리에게 좀 익숙한 표현을 말하면 회심에 대한 복음의 본질을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종교에 가장 심취해 있고 어쩌면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니고데모가 그 이야기를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니구데모의 이야기가 현대에도 종종 어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오래 교회 있고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 복음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정작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심이 무엇인지 혹은 진정한 구원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성령님이 어떤 존재인지 이런 것을 모르는 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니고데모가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처음 가셨을 때 어쩌면 그 만남은 그렇게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예수님이니까요.
니고데몬은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보인 가장 좋은 점은 그는 계속 배우려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계속 알고자 했던 자였어요.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쩌면 예수님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는 교만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진리를 묵상합니다. 진리가 무엇일까 찾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고데모의 연차, 니고데모의 종기적 지위,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어쩌면 교만한만큼 배움에 있어서 장애물은 없습니다. 우리가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최선일뿐 내가 하나님께서 계속 알아갈 때 하나님께서 어쩌면 나를 계속 이끌어 주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것. 어, 그것이 계속 배워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그의 등장은 요한복음 7장인데요. 두 번째 모습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사람으로 주를 찾아보게 하라.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사라를
고다가 보다. 가장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 네.이 이 상황은 이제 종교인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니고데몬은 예수님에 대해서 옹호하고 변호하는 입장에 서해야 됩니다. 여전히 그는 예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인들이나 공의원들 자신들 잠세적인 위협인 예수께에 대하여 적대적였지만 이제 니고데몬은 한 발에 물러서 적어도 거기에 대해서 동조하지 않습니다.이 모습은 그의 내면에 예수님께 대한 어 처음보다 조금 더 나아진 좋은
마음 혹은 약간의 신뢰함 신앙적인 부분에서 진보가 나타나고 있으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어도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을 하고 있을 때 이제는 좀 그들과 다른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태도가 그의 안에 보여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의 마지막 등장은 19장에 나오는데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아 예수의 지을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그의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와이 그 가서 예수의 신을 또 전에 예수를 에던 이도 양을 것
같네 여기는 이제 오늘 제가 언급했던 어제 나왔던 요셉과 니고와 함께 등장하는 하는 장면인데요. 어 아리만데 요셉에 대해서는 그가 예수의 제자였으나 어쩌면 그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어 상황에서 이제는 이 장례에 대한 시신을 처리하고 이렇게 하는 부분에서는 공개적으로 나온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어제 살펴봤죠.이 이 아리마데 요셉에 의해서 예수님 시신이 수습되자 이제 니고데모도 등장합니다. 니고데모 또한 예수를 따르는 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제는 드러내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에 함께합니다. 이때 니고데모가 가져온 장례용 향료가 백근이라고 나오고 있는데 이 백근은 34kg 정도의 양입니다.이는 이는 당시 어 풍습에 의하면 왕의 장례를 치를 때 사용하는 수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 그러니까 이 니고데모에 의해서 또 어제 나왔던 요셉에 의해서 예수님의 장례가 어쩌면 어 그들에 의해서 가장 어 멋진 모습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어 그렇게 치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 이로써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어쩌면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이렇게 세 번의 니고데모의 등장을 통해서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안에서는 밤과 낮으로 이들의 상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니고데모가 처음에 예수 때는 언제였습니까? 밤이었습니다. 밤은 영적인 어두움을 요한복음에서 상징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낮입니다.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영적인 깨달은
가운데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니고데모와 같이 어 사람은 늘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고데모는 우리에게 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도전을 주는 인물일 수 있습니다. 아 목회자로서 어 가장 큰 기쁨은 성도들의 변화와 성도들의 성장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런 니고데모의 변화 또한 큰 위로이자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살펴볼 인물은 구레네
시몬인데요. 리고데모는 요한복음에 세 번 나오는 요한복음에서 주목하는 인물이라면이 구레네 시모는 짧게 나오긴 하지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즉 모든 이 공간복음의 저자가이 구린네 시몬의 이야기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죠. 한번 그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각각 다른 복음서요. 하나씩 하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시라는 그의 사랑을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하게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온 길에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산더와로서 레사가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지고 하였다 그게 예수를 받아서 온 시몬이라는 한편 그의 사람을 들어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게 네. 이게 구련의 시몬에 대한 이야기예요. 구련의 시몬은 십자가를 질 마음이 있었을까요? 네. 전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 이날은 어쩌면 무슨 날일까요? 네. 재수 없는 날입니다. 네. 세수 없는 날이었어요. 괜히 근처에 있다가 괜히 십자가 직원에 예수님 어쩌면 구경하려고 옆에서
있었다가 로마의 군인의 강제 명령에 의해서 강제로 억지로 십자가를지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이 순간 십자가에 대한 어떤 어 뭐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없었어요. 당연히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처럼 뭐 십자가에 대한 의미, 헌신, 결단 그런 거 전혀 없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어 억지로이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이고 불평 가운데 그는 십자가를지고 그 길을 걷습니다. 마가복음은 이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죠. 그는 시골에서 그냥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하필
그때 그 길로 지나간 것이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의 두 아들이 마가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 왜 기록되어 있을까요?이 이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마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 이야기는 마가복음을 지금 보게 되는 독자들이 초대교회 공동시죠. 알렉산더와 루포를 알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들이 적어도 알렉산더와 루포가 초대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야, 너희 알렉산더와 루포 알지? 바로 그들의 아버지가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같던 그 사람이야라는 의미예요. 우리 따지면 뭡니까? 너희 중경이야. 빗별히 알지? 어, 그의 아버지 최주혁 씨가 로마 군인에 의해서 억지로 그 십자가를지고 갔던 바로 그 사람이었어. 이런 표현인 거예요. 어, 저는 군대를 이제 육군으로 다녀왔는데 제 보직이 81mm 박격포였어요. 그러니까 직접 들고 맨날 이렇게 행군을 해야 되는 그래도 들고 가야 되는 무기 중에 가장 무거운
무기였습니다. 저 힘들게 걷고 있으면 옆에 이제 저희 위인 90mm부터는 이렇게 차를 타고 지나갈 때 얼마나 이 부러웠는지 몰라요. 네. 저희 얘기는 그러니까 행군이 가장 중요했고 또 가장 어려웠습니다. 한 달이나 두 달 한 번씩은 이제 그 포를 매고 이제 행군을 해야 되는데 어 신참일 때는 그게 가장 이제 힘든 일이었던 거 같아요. 한 뭐 네다섯 시간 정도를 이제 걸어가고 또 이따저도 걸어와야 되는 건데 한 세시간 정도 걸으면 고비가 옵니다. 그럼 이제 딱 포를
이제 매지 않고 걷고 있는 이제 선인들이 딱 이제 우리가 드디어 이제 나고하려고 하는 그 찰라에 결정적인 순간 직전에 한 타임 정도 이렇게 포를 대신 들어 줍니다. 그러면 그 선임은 저에게 영웅입니다. 네. 예수님이 이제 밤새 신분과 고난을 당하셨어요. 가시강과 채찍질 등을 당하셨어요. 이미 예수님의 몸은 일반적인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니까 십자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제가 십자가에 얘기했죠. 저 세로대는 이미 현장에 박혀 있습니다.
그 가로대를 들고 가는 건데 그 가로대 또한 무게가 만만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예수님이 들고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이후에도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죽음에 이은 것으로 나타나요. 그 예수님이 죽었다고 했을 때 약간 반응이 뭐였냐면 벌써 죽었다고 이거였어요. 그만큼 예수님의 육체는 이미 한계의 직면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로마 병사들이 보기에도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시몬에게 억지로 지게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순 가운데 보면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심리를 동행하라라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당시에 있었던 억지로 지게하는 것. 즉 로마 군인들이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행할 수 있는 강제 명령권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억울하죠. 누가 나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하기 싫죠.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가능하면 그의 기대보다
오히려 더 해주라는 의미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연히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아 내가 지금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때구나이 말씀을 실천하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가 때로는 힘써 기억하고 행해 봐야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구레 시몬에 대해서 특별한 표현에 붙이고 있는데요.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워서 뭐라고
하냐면 예수의 뒤를 따르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예수의 뒤를 따르게 하였다.이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면 예수를 따른다라는 표현은 복음서에서 누구에게 붙이는 표현이에요? 제자에게 붙이는 표현입니다. 즉 구의네 시몬이 어쩌면 이일 계기로 정말로 그의 삶에 어떤 부분이 일어나서 예수를 따르게 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어쩌면 시몬에게이 날은 그냥 어 재수 없는 날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가 그의 동참하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그 이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의해서 전해지는 복음에 반응하는 인물이 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표현이라 거예요. 억지였지만 십자가를지는 자리에 그가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적대인 로마군의 지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의 고난에 가장 가까운 동행자가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지고 가는 사람이 됩니다.이를 통해 우리 뭐라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계산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자발이든 억지든
때로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거 자체가 은혜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혹 여러분의 지금 사역 가운데 내가 해야 될 일 가운데 억지든 뭐 자발이든 그렇게 무언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전함, 불안전함 가운데 들여지는 순종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도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사람을 봤습니다. 리고데모와 시모입니다. 니고데몬은 어쩌면 상유층 유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시몬은 구레네 출신 즉 북아프리카에 해당하는 변방 구레네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자기 자리에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발적인 질문자였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불려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결국 예수님의 길에 참여하게 됩니다.이 이 이야기는 때로 나의 의지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끌어당길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기회를 만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위로와 방편이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하나님은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또한 어 이끌어 가고 계실까요? 오늘 주어진 우리 삶 안에서도 그러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 그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니고데모처럼 또 시몬처럼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이 아침에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를 예배하도록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곳에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말씀을 보고 또한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그들에게 일하셨던 것 같이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 니고데모와 같은 마음을 주십시오. 니고데모와 같이 늘 내가 있는 것을 고집하는 거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갈 수 있지만 태도를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깨닫게 하시는 것에 있어서 겸손하게 반응하며 늘 고민하며 무엇이 정말로 나에게
주신 진리일까 따라갈 때 우리의 삶도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서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니고데모가 보였던 영적인 진부와 성장이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도 예수를 따르는 자로 예수님의 그 십자가와 예수님의 비전에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누구의 삶은 구련의 신문과 같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뜻하지 않았지만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내 삶에 어쩌면 간섭하셔서 만나게 해주신
그 기회의 통로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면 주님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와 그런 마음대로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서 때로 내가 온전한 자발 가운데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나의 그 삶, 나에게 주어진 그 환경까지도 주님 사용하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어갈 수 있도록 주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주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며 우리의 삶을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동행자가
되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각자이 시간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며 그렇게 하루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