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사귐의교회 고난주간 특새 1일차

2025-04-14 (올린 날짜)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아, 이른 아침에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곳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 어 반갑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의 길에 우리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동참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이 이 시간 우리 예수 이름 높이며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줄지여. 수많은 물이 들줄여 그분을 보기 위해 따르네. 평범한 목수이 그분 앞에 모든 무릎을 꿇어 경배하네. 모든 문제들 하나 죽음까지도 힘을 잃고 생명의 근원 되신 예수 이름 앞에 모든 권세들 복하네. 예수 이름 높이세.

예수 이름 높이세 능력의 그름. 예수 이름 높이세 구원의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이름을 믿는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사람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 복이 있도다.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소망이 끊어질 때 삶의 주관자 되신 그분 나의 무릎을 꿇어 경배합니다. 꿇어 경패하네. 아멘.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길 때 비로서 나의 마음 평안네. 아멘. 구원에 반석되신 예수의 이름을 소리 높편 찬송하네. 예수 이름 높이세요. 예수

이름 높이세. 능력의 그릇 예수 높이세 구원의 그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나 복이 있도다. 우리 다시 한번 예수 이름 예수 이름 높이세 궁의 그름 예수 이름 높이세 구원의 그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을 믿는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행사 복이 있도다. 오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에 호사하옵소서 높은 영광 예수 이 시간 그때 그들이 잘 몰랐던 참 그리스도를

우리 함께 고백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은 영광의 당신은 평강의 왕 당신은 하늘과 땅의 주 당신은 성이해야 당신은 당신은 영광의 당신은 평강의 화 당신은 하늘과 땅의 주에 당신은 은위의 아들 천사가 천사가 무릎꿇고 예하고 찬송하네 영원한 생명 그분이 바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주 아멘입니다. 산나 다윗의 자손케 오산나불로 황중의 왕 높은 하늘행 영광을 예수매세 벗나 호산나 다윗 자손께 호산나불로 왕중의 왕 높은 하늘의 높은 하늘의

영광을 예수 우리 호산나 다시 한번 고백할까요? 우산나 다윗께 보산나 높은 하늘에 높은 하늘에 영광을 예수의 하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을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있던 그 사람들이 그분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십자가에 그들을 십자가의 그분을 내어놓지 않았을 것입니다.이 이 시간 저희 마음을 모아서 우리가 경배하고 예배하는 이분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가 참으로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성령 하나님 우리를 밝게하게 하여 주시서 우리가 나의 인생과 나의 생명을 걸한 그분이 바로 우리가 예배하는 이분을 이분이며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우리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또 그들이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에게 원하셨던 그 삶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시간 우리 주의 이름을 한번 부르며 기도하며 나아갑습니다. 주여 우리가 이 아침에 하나님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곳에 홀로오르셨을 주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어떤 하나님 자에 나왔지 볼 수 없사오나 하나님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주셨을지 우리 정말 잘 알아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제까지 해하는 같은 길을 가지 않고 오직 주님의 바라보며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내 마음에 주님이 주신 감격과 은혜와 평강이 사그들지 않는 시간 될 수 있게 하나님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그런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부족한 거예요.

내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 이제 기도로 나왔사오니 아버지 우리를 불러 주셨사오니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온전히 우리가 앞으로 주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자들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이곳에 불러 주시고 저희 하나님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사 우리가 이곳에 꼭 나와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하여 주심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 머리로 알았던 지식들이 있다면 이 시간 가슴으로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그냥 흘려 보냈던 이야기들이 있다면 하나님 그것들이 역사가 되어 나의 가슴에 박힐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그 이유처럼 하나님 우리가 이 땅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되는 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이 시간이 그 전환점이 되어서 우리 삶을 바꾸고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이 이 시간 듣게 되는 그 말씀을 통하여서 내가

나의 하루를 또 나의 인생을 바꿔 나가는 지혜 있는 자들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가 꼭 알기를 원하는 그 내용을 목사님의 입술을 통하여서이 시간 우리에게 선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듣는 귀가 있어서 모두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마음을이 순간 옥토로 만들어서 모두 다 심기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삶을 살아 있는 자들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성령님께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네. 한 주간 어 시작되는 우리 고난 주간 트페의 첫 번째 날입니다. 우리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어 말씀을 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저희가 오늘부터 5해 동안 다룰 주제는 어 성경의 인물들을 좀 다루려고 합니다.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도 좀 다뤄보려고 함께 하고 있고 연관되는 출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께 좀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에 우리가 함께 좀 바라보면서 우리도 주님의 위로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꿈꾸고 싶습니다. 오늘 첫 번째 그 말씀을 함께 여러분과 나누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 오늘 다른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네 요한과 요셉인데요. 아,이 중에 어, 요한은 뭐 조연이라고 하긴 어렵고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다룰 우리 요한은 어,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요셉은 누구일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뭐 요셉으로는 꿈의 사람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있지만 이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담당했던 사내들린 공의 소속인

아리마데 요셉입니다. 오늘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먼저 요한은 베드로와 더불어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그런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요한을 향해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다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어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 가까웠던 예수님이 신뢰할 만한 그런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때 모든 제자가 도망쳤다. 배신했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에

끝까지 함께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지막 소원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자신이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과 삶의 마지막에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일죠. 십자가의 그 마지막 상황에 제자이 요한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그 자신의 육체적으로 보는 임종 앞에서 그 앞에서 있는 제자 요한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우리 그 마지막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한번 읽을까요? 시작. 예수님의 십자가 되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신 제자가 곁에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 어머니라 하신데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네 네. 여기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이제 요한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어이 앞서서 나는 절대로 예수님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베드로는 결국은 마지막에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으나이 마지막 순간에 요한만큼은

예수님의 길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베드로에 어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음을 그 마음의 진정성 마음의 결단만큼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기에는 연약함과 두려움이 있어서 결국 실패했던 사람이었다면 요한은 그런 뭐 말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한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예수님에게이 요한은 위로였고 또한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의 이 훗날을 함께 또 의지할 수 있는

부탁할 수 있을 만한 믿을 만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인생의 마지막에 또 나의 남겨진 어떤 가족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요한은이 이후에 부활의 증인이 되고 승천하신 예수님께 승천하신 이후에도 변함없는 예수님의 동역자로 살았습니다. 단순히 관계적인 사기만을 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꿈꾸셨던 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평생에 걸쳐서 살아낸 진정한 예수 따름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의 모습이 요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요한은 뭐 그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요한은 묵묵하게 자신이 있어야 될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낸 그 하나님께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사람이라고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어떤 삶으로 주님의 위로가 되었을까요? 먼저 그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고치의었을 때에 가서 물이 어 예수의 를하니이 사람을 하는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이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가 오르냐 묻고 백부장에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스마포를이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한 무덤에 넣어두고 도를 굴려 무덤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새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네.이 이 아리마데 요셉은 그동안은 드러나 있지 않던 좀 숨어 있는 제자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자는 12제자 같은 사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폭넓은 의미에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그런 제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그분의 실신에 대한 수습을 책임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에는 아주 멋진 표현이 등장하죠.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회적 신부은 공해원입니다.이는 지금으로 따지면 유대인의 국회의원 같은 대표자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가운데 참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를 부자라고 표현합니다. 당시 유대의 사회는 매장 문화를 가졌습니다.이는

구약의 신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활에 대한 소망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화장보다는 매장을 했어요. 특히 부자나 고위층 인사들은 안반에 파서 만든 가족 묘지를 가졌습니다. 돌을 파서 만든이 무덤은 당시에도 매우 값싼 곳이었고 주로 예루살렘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에게는 바로 이러한 아마 가족 무덤 혹은 어 자신을 위한 무덤 이런 것들이 이제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그 무덤을 그는 예수님을 위해 쓰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의 무덤

어쩌면 자신이 나중에 누을 자리를 예수님께내어 드리겠다는 생각은 생각을 그는 공개적으로 이제 드러냅니다. 바로 로마의 총독인 예수님께 사형 판결을 내렸던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내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근데 이 표현에 보면 성경의 표현이 굉장히 재미있죠. 뭐라고 나면 당돌이라고 나옵니다. 당돌이. 왜냐하면이는 어쩌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원래이 십자가는 우리에겐 지금 영광의 상징이 되어 있지만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에 죽었다라고 하면 이제

그 사람과 최대한 멀리 있는 것이 안전한 그런 것이 됩니다. 왜냐면 십자가는 아무나 죽는 곳이 아니에요. 로마 제국의 반란자, 흉악범, 노예 이런 그 가장 극악하게 처해야 될 사람들을 죽이는 사형 방식이었습니다. 사영수에게 십자가형은 시민권 박탈, 인격 소멸, 공적 모욕을 당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죽은 후에 존엄한 장례를 금지하는 것이 이 형벌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은 시신을 주로 십자가의 매단체로 방치하거나 혹은 근처의 공동 매장지는

또는 쓰레기 처리장에 그냥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근처에는 흰놈의 골짜이라는 쓰레기 소각장이이 시체 처리에 사용되곤 했습니다. 처형된 시신을 거기서 불태워서 없애거나 혹은 짐승에게 그냥 던져줬던 그런 것이 역사의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시각에다 보자면 지금 유대인의 왕이라는 반란 세력, 반역 죄인으로 그는 처형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뭐 가족도 나서기 쉽지 않았을 수 있어요. 로마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장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활의 증거인 빈무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했던 사도 요한도 감히 총독에게 가서 반역자의 시체를내어 달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누가 등장한 거예요? 요셉이 등장한 겁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등장해서 시체를 달라고 해서 자신의 무덤을 내어드렸는데이는 예수님에 대한 개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로마 사회 모두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드러내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공연이라는 신문을 최대한 선한 방식으로 사용하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도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분명 그에게도 로마의 반역자로 죽은 예수의 추종자였다는 사실이 어 밝혀지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나서야 하는 순간에 가장 멋지게 자신의 믿음을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버림받고 조롱당한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요셉의 헌신으로 품격 있는 장례 절차를 통해서 그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게

됩니다.이는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가족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신앙을 말하기 두려운 시대 속에서 요셉의 용기는 저도 예수님께 드리는 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숨은 제자로 시작했으나 예수님의 마지막을 책임진 제자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따르던 백성들과 또한 제자들로부터 어쩌면 버림받는 그런 고통이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분의 곁에 요한이 있었고

또한 그분의 그 육신의 마지막을 요셉에게 또 맡기셔서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곁에 있어 주는 사람 또한 필요한 때 나서서 드러내어서 내가 그의 편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들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모습으로 있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어서 주를 따를 것인지 오늘이 말씀 앞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곁을 지키는 사람 또한 숨은 믿음을 드러내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주님이 가고자 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 자리에 그곳에 있는가? 나는 지금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임을 나의 삶으로 증거하고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이 두 가지 질문 앞에서 우리가 기도로 또 그의 걸맞은 삶으로 응답하며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하루의 고백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 기도하고 돌아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마무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이 아침 우리의

하루의 시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 오늘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위로가 되고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던 두 사람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사도 요한과 같이 때로는 두렵지만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방향에서 그분의 곁을 지켜야 한다면 또한 승천 이후에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그 비전을 향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에게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면 주님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그런 마음으로 도전하여 주옵시고

오늘이 자리에 요한처럼 살겠다라고 고백하고 그 말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쓰는 그런 사람들이 세워져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요셉과 같이 때로는 내가 나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나의 삶에 분명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를 따르는 자임을 나의 삶에서 드러내며 또한 그것에 따른 나의 삶의 실천을 보이며 나의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며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가 되어서

주님께 위로가 되며 오늘이 하루 동안에도 주를 따른 자로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하루를 지켜줄 믿으며 우리와 동행할 것을 믿싸오며 사랑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우리 각자 이생같이 기도하고 돌아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