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2과 / 거듭남의 신비와 축복 / 강정규 목사

2022-03-11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풍성한 삶의 첫걸음>에 대한 두 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로운 삶, 그 참된 평안으로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짊어진 죄와 세상이 주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도록 하신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이야기는 <거듭남의 신비와 축복>에

대해서입니다. 바로 그 초청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경험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다양한 언어와 표현법으로 ‘구원’을 설명하다 보니, 우리가 때로는 각기 다른 이야기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살펴본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을 얻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주로 ‘의롭게 되는 것’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없던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으로 전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Born again.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있죠. 우리가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없는 상태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거나, 그 상태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남이라는 단어 ‘아노텐’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이 거듭남은 내가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태어남을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며칠 전, 우리는 소중한 생명의 탄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기의 탄생만 보더라도 아기의 자발적 노력으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거듭남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것이 우리의 힘이나 의지나 노력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지동설과 천동설을 알 것입니다. ‘지동설’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이고,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돌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과학적 연구와 증명들이 없었다면, 지구에 서 있는 인간은 천동설적 인식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느끼는 대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게 되죠. 사실은 내가 서 있는 지구가 지구보다 더 큰 태양이라는 행성이 중심에 있는 태양계 속에 속해 있고, 그 중심에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내게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지금도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지금 이러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어느 하나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뭔가를 느낀 인간들이 스스로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한계 극복과 내면의 정화를 위해서 종교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가 생긴 후 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신이라는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이 신을 찾기 위한 노력 속에 종교라는 틀을 갖춘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종교가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의 앎이라는 것이 너무나 흐릿하고 불분명하기에 나타난 한계일 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우리보다 먼저 계셔서 우리를 만들어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가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셨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나 흐릿한 종교심 속에서만 보려고 하여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작이 무엇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우리의 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왔고,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죽음 앞에 놓인 인간에게 다시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거듭남은 바로 그 구원의 여정의 첫 관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인간이 지동설을 깨닫기 전부터 우주는 이미 그렇게 질서 있게 지어졌고 존재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든 개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볼 수 없던 우리에게 그 나라를 보여주시고, 그 나라에 속하여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존재로 새롭게 하셔서 말입니다. 바로 그 변화가 ‘거듭남’입니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 사도는 거듭나는 것이 우리가 소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면 구원의 소식은 가장 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주시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한한 인간이, 그것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무한하시고 무흠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신비하고도 불가능해 보이는 거듭남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거듭남이 주어진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썩어질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말씀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시작되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음을 진짜로 믿으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호해지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거듭난 자들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방금 설명한 것처럼,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 죄를 대신 지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가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의 첫 번째 특징은

믿음(Belief)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간혹 믿음을 오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소원하는 바를 간절히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가 소원하는 바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올해 반드시 결혼할 거라고,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 그런 것이 기독교의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세게 믿어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하죠. “제 믿음이 약해서요.” 자주 쓰고 자주 듣는 표현입니다. 정말 믿음이 충분히 세지 않아서 문제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자로 재시며, “믿음이 모자라서 병은 못났겠구나” 혹은 “올해 결혼하고 싶으면 믿음 강도를 더 올려라” 이렇게 하실까요? 열정적인 것은 좋을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된 채로 열심만 높이면 다른 방향으로 더 빨리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드시 무엇을 믿는지, 어떠한 사실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지 그 믿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다음 네 가지 내용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생을 지으신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2) 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된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았기에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졌고, 죽음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받아야 할 이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대신 받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깨졌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없는 내 삶의 연약함과 이 세상의 깨어짐을 바라보며, 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복음은 감격이 되는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 가운데 여전히 존재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분이자,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때 거듭난 자의 두 번째 특징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우리 삶의 변화(Behavior)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여기고 살다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배워나가면, 우리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더욱더 온전해집니다. 물론 이 변화에 있어서 각기 다른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속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 변합니다. 대표적으로 바울과 같은 사람이 그러하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변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배우고 새로운 가치관을 갖는 일은 대개 시간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서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러한 일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즉 나의 영적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Belonging)입니다. 교회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라고 주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서 자라간다면 그것이 거듭난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가족 공동체를 부르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사랑은 모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희생하고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들 속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배워갑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의 잃어버린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십니다. 또한 이런 공동체를 통해 깨지고 상한 세상을 치유하시며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정리하면, 거듭난 자들에게는 이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갑니다. 이것을 누리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 가지 특징이 혹시 나에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거듭나지 않은 것일까요? 정답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내 거듭남의 특징을 어떤 예식이나(대표적으로 세례식), 혹은 어떤 체험(방언 등)을 통해 확인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히려 본질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근거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약속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특징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반드시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변화의 이유는 성령님이 약속대로 우리 안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에 근거하여 진실하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결단은 한순간에 이뤄지고, 그 순간부터 눈에 띄게 변화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결단은 짧지 않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시는 일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직면하고,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체험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진리들과 달리 체험은 주관적입니다. 체험은 언제나 객관적 진리 위에서 해석되어야 하고, 주관적 체험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는 아무런 체험이 있지 않아도, 진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자신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진실하게 기도하며 거듭난 삶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체험을 받아야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변화된 여러분의 삶을 통해 그것을 체험으로 삼으십시오. 그것이 더 건강한 신앙입니다. 거듭난 자가 변한다는 것은 마치 씨앗이 세월이 지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출발점이 있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의 특권을 누리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것이 거듭남의 축복입니다. 제가 계속 ‘특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까, 그 특권이 구체적으로

뭘까?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많은 특권 중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만 살펴봅시다. 첫째는 은혜입니다. 거듭남은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가 무엇을 잘 해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찾으려야 찾을 수 없고, 얻으려야 얻을 수 없기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고 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놀랍고도 큰 사랑을 받아들이며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 은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혜중의

은혜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피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이 아들로 하여금 대신 당하게 하셔서, 우리를 심판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는 자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둘째는 신분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영적인 고아와 같았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외인이었는데, 이제 그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그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지도, 의인답지도, 하나님 나라 시민답지도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제 그러한

삶을 살라고 우리의 신분을 먼저 바꾸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고 김치를 잘 먹는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민권을 받으면 그때부터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 음식을 즐기는 법도 배우면 됩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나타나는 변화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변화된 신분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삶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변하여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듭나서 새로운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인격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셋째는 성령님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리를 따라서 살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거듭날 때 위로부터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 노릇 하였음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속에 오셔서 거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우리의 오감으로 체험하기도

합니다만, 오감으로 느낄 수 없다고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날 때 특별한 체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절감하고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을 진심으로 믿으며 거듭나듯이,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성령님을 진심으로 의지할 때, 우리는 거듭난 자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알아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그분은 우리 속에서 무뎌진 양심을 일으키시고 깨달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온전히 감격하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변화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특권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거듭남. 이것은 우리의 삶이 경험하게 되는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신비지만, 영적 생명이 시작되는 것은 더욱 큰 신비입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일도 신비지만, 인간이 하나님과의 사랑 속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더 큰 신비입니다. 거듭난

자들에게 있는 세 가지 특징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갑니다. 이것을 누리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세 가지 특권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분,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성령님. 거듭남은 우리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지금 그 삶으로 나아가는 분이던지, 혹은 이미 그 삶 가운데 살아가고 계신

분이던지,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나에게 거듭난 자의 특징이 고백 될 수 있도록, 그 특권 가운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