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이것은 어떤 장소적 개념이 아니고, 죽은 다음에나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임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머무는지, 내가 어떤 피부색을 가진 사람인지, 이런 요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나라에 속한 삶입니다. 그럼 이것과 복음의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복음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의
시작이며 우리는 그분께 속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2)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거부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 생명을 잃어버린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회복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하고 계시는 일과, 하실 일을 전심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 안에
살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한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에 속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이 사건을 처음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복음 사건을 누리며, 이것에 대해서 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현재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화가 나타나고 충만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땅에 속한 개념의 일이 아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은혜인 것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이 사건을 전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요 1:12)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입양 (롬 8:15)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값으로 사셨다 (고전 6:19-20)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나라에 속했다 / 죄사함을 받았다 (골 1:13-14)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 외에도 영생에
속했다, 거듭났다, 구원받았다 등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 안에 다시 연합하게 된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구원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회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수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살펴본 골로새서 말씀은 죄사함을 얻은 것이 곧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 것과 같은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둘다 시제가 무엇입니까? 과거형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는
죽음 이후에 갈 미래의 어떤 일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일어난 일, 이미 시작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볼 수 있는 어떤 유형의 나라인 것으로 여기고, 또한 아직 임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질문합니다. 만약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죽음 이후에 가는 어떤 특정한 장소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이해와 다를 바 없겠죠.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간혹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가 바리새인들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고백하는 주권적 통치인데, 그러한 고백이 없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있을 수 없죠. 여기서 ‘안에 있다’라는 표현은 ‘엔토스’인데, 이것은 ‘안에(within)’ or ‘사이에(among)’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바리새인들 마음 안에 있다는 번역보다는 바리새인들이 모인 그 사이에 하나님 나라가 계신다는 의미이죠.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쌓여 질문을 받고 있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
나라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시작하시는 분이며, 그분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통치가 아니라 실체라면 더더욱 그의 몸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의 가사를 기억해 보십시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진다는 것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장소’가 아닌 ‘관계’가 하나님 나라의 핵심임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더 잘 담아낸 찬양 가운데는 마커스 2013년에 발표 앨범 <Kingdom of God>에 있는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라는 곡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 아픔과 슬픔이 없는 나라인가요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은 걸 / 하나님 나라에 살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는 이곳이란다 /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이 있지만 행복과 기쁨이 여전히 있는 걸 / 우리가 하늘과 땅의 통로야 - 하나님 나라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특정 단어가 아니라, 이곳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 뜻을 품고 사는 자들 / 믿음으로 하늘 뜻을 보여주는 자들 보내어진 자리에서 동참하는 자들 / 믿음으로 주님 보길 소망하는 자들 - 하늘 뜻 :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 하나님 나라의 완성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사 회복하고 통치하시네 주님이 이곳에 나타나 오시는 날 / 세상과 우리는 완전하게 변할 거야 - 하나님의 창조, 회복, 통치 =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개념들 - 주님이 이곳에 오시는 재림의 날, 변화의 소망(부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너희에게 전해줄거야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인걸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 - 우리의 사명 : 이 세상(땅과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명 - 땅에 대한 중요한 시각 (소멸과 떠남이 아닌 재창조)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지금 여기 임한 그 나라 지금 이루어 가고 앞으로 이루어 갈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 - already, not yet (이미와 아직) - 주님의 궁극적 통치 샬롬. -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우리의 사명 우리가 다시 하나님 나라의 도표를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시작되었지만, 완성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표현하기에, ‘이미’와 ‘아직’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already,
not yet. 우리가 예배 때도 자주 부르는 마커스의 ‘믿음으로 서리라’에도 이런 하나님 나라 신학이 잘 담겨 있습니다. 이곳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 가난한 맘으로 바라보리라 먼저 그 나라 그 뜻 구하며 나의 삶 드리리 주님이 맡기신 하나님 나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리라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완성될 그 날까지 믿음 다하여 그 위에 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으리 믿음 다하여 그 나라 세워가리라 주님 곧 오실 때까지 - 이곳에 임하신(already)
하나님 나라 - 주가 맡기신(mission) 하나님 나라 - 하늘의 뜻(vision)이 이 땅에 완성될 그 날(재림)까지 -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으리(주님의 약속과 확신) - 그 나라 세워가리라 주님 곧 오실 때까지 (완성의 날까지 사명) 여기까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어떤 공간적 개념이나 세상 나라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고백과 주권에 대한 인정이므로 ‘관계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관계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관계는 불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역동적’입니다. 흔히 우리가 이것을 ‘천국행 티켓’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왕으로 모실 수도 있지만, 내 충성이 변질되면 그는 더 이상 내게 왕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역동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곧 구원사건입니다. 구원 또한 현재성과 미래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구원을 끝난 사건처럼 표현해버립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회심했다고 하여도, 여러분이 만약 변심한다면 여러분이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관계이기에 하루 아침에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의 문제로 이것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이 내 삶에서 계속 고백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었음을 믿으며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음을 신뢰하며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구원의 확신이 필요할 때 제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로마서 8장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도 그 사랑의 전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을 언약관계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상태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진정한 회심을 결단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바로 우리 안에 오신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옛 사람, 즉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 답게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따르는 마음을 끝까지 추구하고 힘쓴다면 저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성령은 누구보다 여러분을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단순히 교회 안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대해서 설명하는 네가지
밭의 비유에서 드러나듯, 모든 땅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현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생명력을 품는가? 즉 우리의 믿음과 결단과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보다 깊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나의 삶에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주권적 고백이 없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길은 하나님이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결코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내 마음 속에 왕으로 모시길 원하는 진실한 결단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지 않고 여전히 내가 주인된 삶을 살겠다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우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눅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