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9과 - 생애 첫 간증, 그리고 증인의 삶 (1) / 강정규 목사

2022-09-02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기독교는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보통 신흥 종교가 자리를 잡으려면, 창시자가 오랫동안 영향력을 미쳐야 하고, 그들을 지원해주는 정치·사회·문화적 후원자들과 시대의 적시성 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시작점인 예수 그리스도는 단 3년 동안 가르쳤고,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중하층민이라고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지원해주는 그룹은커녕,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로마 통치 아래에서 황제 숭배에 반역한다는 정치적 모함으로 많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랬던 기독교가 결국 인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저는 가장 큰 힘은 ‘진리’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리이고 사실인 것이 가장 큰 힘이겠죠. 그러나 이것과 연결되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진리에 대한 ‘증인’입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이죠. 사실이 없다면 증인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증인이 없다면 진리가 전파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주체자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옆에서 바라보고 말해주고 전달하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예수님의 증인, 부활의 증인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한 일들, 그리고 그분이 예언한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에 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단순히 목격자가 아니라, 그 일의 수혜자이자 당사자로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경험하고 있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있었기에 그들의 증언이 효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로 전하는 증언도 효력이 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증언은 삶으로도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는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벧전 1: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에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베드로가 사역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보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그분을 누리고 있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한 번도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며, 믿으며, 누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준 ‘증인들’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증언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이들이 믿고 증언하는 사실과 그들의 삶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인 것은 아닐 테지요. 우리도 복음을 말하지만 완벽하게 그 삶을 다 살아내고 있는 완성품이기에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신앙이 추구하는 진리에 대한 진정성을 보았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힘입니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우리 안에 흐르고, 우리를 변화시켜가고, 또 그 모습이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궁금증을 일으키고, 또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변화되어 가는 그 계속된 복음의 역사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독교가 가진 힘은 곧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변화’에 핵심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설명해봅시다. 태어날 때 한국의 시민이 아닌 사람이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시민권을 얻었다고 그들의 삶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고, 한국 음식도 잘 못 먹겠죠. 그러나 한국에서 살아가면 결국에는 변화되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말도 유창하게 잘하고, 한국 풍습에도 익숙해집니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면 그 존재의 변화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되면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점진적으로, 또 때로는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함께 나누는 풍성한 삶으로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풍삶초>에서 설명하는 4가지 관계 도표로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시작이죠. 그분의 사랑 관계 안에 있으며 내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과의 관계’도 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채우고 있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자신과의 관계가 건강해지고 풍성해지면,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내가 속한 ‘세상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며 변화되어 갑니다. 평생을 지속적으로 말입니다. 이 4가지 영역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으셨던 삶, 하나님께 속하여

누릴 수 있는 삶의 축복을 경험하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토대가 지난 설교까지 나눴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어 변화된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함께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그 토대 위에서 우리의 일상은 세속적인 삶터에서도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자 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영적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가족 안에 있으면 안정감을 누리고 자연스럽게 배워가며 닮아가며 성장합니다. 우리나라가

요즘에 저출산이 고민이지 않습니까? 2021년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 출산율이 0.8입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1.3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재 수치로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이것은 나라의 생존 문제이기도 합니다. 복음 전파 또한 생명을 낳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한 사람을 통해 몇 사람이 영적 탄생을 하는지 굉장히 중요할 수 있지요.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또 내가 자랄 수 있도록 누군가 헌신해 주었기에 오늘

이렇게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가진 생명력이었죠. 지난 2천 년간 놀랍게도 복음으로 변화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것은 전하는 자의 진정성 있는 증언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어 간다는 것은 우리도 영적 아이에서 장년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증인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탄생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변화된 존재들을 두신 이유이고, 성령을 보내어 우리의 삶을 보호하시는 이유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죠. 내가 경험한 복음에 대해서 증언하는 실천적인 방법이 ‘간증’과 ‘전도’입니다. 간증은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간증 집회> 이런 것을 저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세상에서의 어떤 성공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간증’은 좋은 것인데, 그런 집회로 인해서 ‘간증’이 속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간증은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제든지 다양한 간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간증의 나눔에서도 생명력은 언제나 ‘진정성’입니다. 자신의 변화를 강조하려고 과장을 하거나,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 축소하는

것 모두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내게 일어난 일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나누되,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예수라는 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간증은 어쩌면 간증이 아니죠. 나만 부각될 뿐입니다. 우리는 나는 숨기고 예수님은 드러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우리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신 ‘그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속에 ‘간증’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럼 ‘전도’는 무엇인가? 전도는 간증과 달리 예수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전달해주는 객관적 나눔입니다. 간증이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면, 전도는 보다 객관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법정에 가면 주관적 느낌은 빼고 있는 사실만 말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것과 같습니다. 왜 예수님이 오실 수밖에 없었고, 그가 오셔서 하신 일은 무엇이고, 이 예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간증적 부분을 조금씩 넣어서 함께 전하면 효과적입니다. 객관적 진리가 주관적 경험으로 된 과정들 말입니다. 제가 굉장히 동의하는 문장이 있는데,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사명이다’ 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도를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전도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정리된 복음의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무엇을 믿는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복음이

선명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에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그리고 전도의 방법은 ‘인격적 대화’입니다. 우리는 비인격적이고 무례한 방법으로 예수를 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전해주고 싶은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되 인격적 대화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하기도 하죠. 그러나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저는 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이밍이 왔을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어쩌면 타이밍은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으로 만들어 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변수와 최선’의 합작품이죠. 가끔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상대방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당황할 수 있어요. 그러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대부분 질문하는 것은 그래도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기에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질문을 통해서 나도 배워갈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면 그냥 “좋은 질문이다. 나도 생각 못 해본 부분인데... 나도 한번 그 부분을 생각하고 공부한 다음 함께 이야기 나눠보자”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모르시면 저에게 가져오시면 됩니다. 물론 저도 모를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그런 질문을 20년이 넘게 받아온 사람이니까 조금 더 설명할 수 있는 재주가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내가 제대로 답을 줄

수 없는데, 자존심 때문에 자신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이상하게 하면, 다시는 그 사람과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진리를 찾고 알아가고 배워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진실한 질문을 던지고 마주하며, 성경을 통해, 그리고 신앙의 선배들이나, 자료와 서적을 통해 더 깊은 깨달음과 확신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간증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 좀 더 다루려고 합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진리를 증언하는 증인들의 역사였습니다. 증인의 삶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요,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2) 우리의 증언은 ‘삶의 변화’라는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복음의 열매는 삶의 변화입니다. 3) 간증을 통해 우리는 내가 경험하고 누리는 복음과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진실함이 그 핵심입니다. 4)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선명한 복음을 인격적으로 나누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또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또 그 사람에게 누군가 복음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씨앗을 심었다면, 누군가는 가꾸어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해주었겠지요. 그렇게 우리의 신앙의 전수에 대한 흐름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리와 피부색도 달랐던 선교사들도 있었을

것이고, 순교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과 사도들, 그리고 예수님에게까지 닿을 것입니다. 이 신앙의 놀라운 행진이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시대가 어떠하든, 상황이 어떠하든... 때로는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도 지켜냈던 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종착역이 아니라, 정류장이 되어서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고백되어지고, 전파되어지고,

누군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노라고, 누군가 여러분을 통해서 자랄 수 있었노라고, 누군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고백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