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세례, 우리들의 고백" / 강정규 목사

2023-09-03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2023년에 두 번째 세례식의 설교 시간입니다. 오늘 세례식을 대하며 제가 갖고 있는 마음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반대로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예배이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특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이것이 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이 시간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시간이 아니라, 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점검하고 되새기는 시간이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늘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할까를 고민합니다. 예수님도 그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수많은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도 그럴 것입니다. 복음을 ‘설교’로만 전할 때는, 그렇게까지 고민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까지 확인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1:1로 복음을 나누며, 회심과 성장을 돕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진리를 어떻게 설명할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 최근에 생각해 본 예화는 ‘물고기 예화’입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적 특성을 무시하고, 물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물이 없는 곳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물고기의 선택이 가져온 운명과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창세기가 보여주는 인간의 실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창조하신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에 인간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었죠. 하나님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는지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함을 통해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창 2: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창 2: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노란 손수건>이라는 책의 내용을 아시나요? 오랜 감옥 생활을 한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죠. 용서하고 나를 받아주겠다면, 마을 입구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 그것이 없으면 용서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그냥 떠나가려는 것이었죠. 아내는 노란 손수건을 걸어둡니다. 그렇게 노란 손수건을 두 사람의 함께함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죠. <선악과>의 역할이 그와 같습니다. 선악과의 열매를

보존하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주인 됨을 인정하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는 단순히 무엇을 욕심내고 먹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주되심에 대한 존중과 무시를 결정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는 언어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룰 안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지혜가 아니라, 구속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안에 살기보다는 하나님을 벗어나 살아가고자 행동하게 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쳐나간 것과

같은 것이죠. 물고기가 그곳에서는 죽게 됨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죽게 됨을 아셨기에 경고했지만, 그것을 무시해버립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지금 나는 정말 성경의 가르침처럼, 물 밖에 나온 물고기와 같은 상태인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금의 삶이 원래 주어진 삶이 아니라, 원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궤도 이탈을 한 것이며,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고 신화나 허구와 같은 전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려면, ‘모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어떤 모델인가? 지금의 삶에서 역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살아가는 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한 모델 말입니다. 이 모델의

역할은 원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잃어버린 삶’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창조한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삶보다 더 풍성하고 행복한 삶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원래 주어져 있던 삶임을 보여주고,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그 모델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을 회복시키시고, 그로 말미암아 회복된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 삼으십니다. 회복된 공동체는 세상 모두에게 ‘모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의 어원인 ‘에클레시아’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구별된 자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성도들은 하나님이 없는 삶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있는 삶으로 회복된 자들입니다. 즉,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돌아간 삶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함을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정말 그 모델이 되는가? 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아니다’라는 의견을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도 ‘성도’라고 말하지만, 회복된 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델은커녕 오히려 교회 밖 사람들로부터 ‘지탄받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안에서조차,

예수를 열심히 믿은 사람의 삶이 저런 모습이라면, 나는 예수를 안 믿고 말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목사지만, 목사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도배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모델은커녕 그냥 목사라고 차라리 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 사람을 보면 정말 뭐가 있기는 한 것 같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죠. 나는 오히려 예수에는

관심이 없는데, 저 사람의 삶을 보면 저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그 무언가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그런 경우가 있죠. 한편으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처럼 살아갈 결단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부자도 아니고, 성공한 것도 아니고, 내세울 것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요소’가 없는데, 그런데도 그들의 삶에 분명히 ‘뭔가’가

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갈등합니다. 뭐가 진짜일까? 오히려 저는 그래서 역으로 질문합니다. 당신이 지금껏 당신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고 살았던 것이 ‘진짜’ 행복을 주는 것일까요? 정말 우리의 행복은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물 밖으로 나간 물고기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말라가는 삶에, 다른 무엇을 주어도 그것이 그 삶을 온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삶을 진짜로 바꾸고 회복하는 것은 내 존재가 정말 머물러야 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3명의 제자들을 이 설교의 동역자로 함께 초대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삶을 잘 아는 편입니다. 저는 이들이 이 세례식에 있는 것이 감격스럽고 좋습니다. 이들은 각기 주어진 삶의 자리가 달랐으나, 그 삶에서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받고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초청받았으며, 그것에 당당히

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마치 땅에 떨어진 물고기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처럼 변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 설교를 함께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실한 고백’을 나누는 것입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 자극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선별하지도 않았고, 각자의 삶에 있었던 일을 ‘부풀리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특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시작된 하나님의 일하심은

특별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한번 만나봅시다. 먼저 오늘 세례자를 보면서 가장 의아할 것 같은 분에게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여러분이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해보겠습니다. 강목사 : 박예진 간사님. 자매님은 우리가 알기로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우리교회에 오기 전까지는 3년간 전도사 사역도 경험했던 것을 아는데, 세례를 받고자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예진 1 : 저는 세례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중학교 1학년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에게 세례란 성찬식을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 정도로 여겼습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배우지 못했고, 저의 회심과 신앙에 대한 점검도 없었습니다. 올해 봄에 있었던 세례자 교육에 인턴십 간사로 함께 참여하면서,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배운 후, 과거 나의 세례가 얼마나 가벼웠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 다시 기회가 있다면 진정성 있는 세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하나님과 저의 관계에 있어 진심어린 결단과 고백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세례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강목사 : 현우 형제도, 청년공동체 회장도 했었고, 나름 신실한 청년으로 우리는 알고 있는데, 현우 형제도 세례를 안 받은 건가요? 박현우 1 : 유아 세례를 받은 것은 확실한데 그 후 세례를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헷갈리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고3 때 예배당 앞에 나가 무언가를 한 기억은 있는데, 그게 세례였는지, 수능 응원기도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요. 어머니께 확인한 결과 저는 세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강목사

: 예지 자매는 2021년 가을에 사귐의교회에 등록한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니, 교회 나온 지 딱 2년이 지나서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네요. 왜 세례를 받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까? 신예지 1 :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제가 세례를 받게 된다면 이 세례의 기준을 낮추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세례’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속과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겠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일거야!’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세례를 통해 저의 흩어져 있는 마음을 잡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도와주신 사귐의교회 성도분들 앞에서 결단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조금 들어보고 싶은 것은 세 사람이 하나님과 무관했던 시절, 혹은 교회 안에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입니다. 제가

아까 표현한 예화로 따지면, 물속에서 벗어나 있었던 물고기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강목사 : 예진 자매님. 자매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이미지는 ‘밝음, 에너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히려 자매님의 삶에는 ‘깊은 우울감’이 있었다는 고백이 기억납니다. 그 삶을 잠깐 나눠주시겠어요? 박예진 2 : 강목사 :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예진 자매는 굉장히 선해진 상태이군요. 한편으로는 저에게도 찾아왔던 심각했던 공허함과 허무주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 예진

자매님에게 있는 변화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지 이따가 이어서 들어보도록 하죠. 강목사 : 현우 형제님도 나름 모태신앙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20대 초반까지도 교회는 뒷전이었던 예배도 못 하고 기도도 못 하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못 해 신앙’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현우 형제님의 삶은 어땠는지 나눠주시죠. 박현우 2 : 강목사 : 저는 가끔 현우 형제를 보면서,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거든요. “현우야, 나는 내 아들이 너처럼 컸으면 좋겠어.”

술꾼 되는 것은 빼고요. 지금의 성숙한 현우의 모습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강목사 : 아마도 예지 자매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베일에 싸인 삶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아마도 예지 자매님의 삶에는 지금 교제 중인 장태준 형제님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한번 들려주시죠. 신예지 2 : 강목사 : 제가 알기로는 태준 형제와 교제하다가 이별한 후, 다시 만나는 과정이 계기가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다른 분들도 그 이야기가 궁금할 것 같습니다. 신예지 3 : 강목사 : 참, 이런 일을 들어보면, 신기한 것 같습니다. 헤어진 사이 남자친구의 변화가 교회에 대해 열린 마음을 주었고, 또 신앙인이셨던 할머니의 죽음이 어쩌면 예지 자매를 교회로 향하게 만들어줬네요. 그럼, 이제 우리가 주목해서 나눠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있던 삶에 어떻게 변화의 계기가 생기게 되었는지입니다. 강목사 : 우울하고 내면의 까칠함이 가득했던

예진 자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박예진 3 : 강목사 : 예진 자매가 억지로 참여했던 수련회가 하나님을 만난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왜 여름 사역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지금의 박예진은 정말 보기 좋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강목사 : 이제, 현우 형제가 고민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의정부 성모병원의 간이침대로 다시 가서, 어떤 일들이 그의 삶에 생겼는지 들어봅시다. 박현우

3 : 강목사 : 과음하고 와서 드럼 치던 현우 형제가, 교회의 예배를 인도하는 리더로 쓰임 받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일은 다시 들어도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강목사 : 예지 자매는 할머니 장례식으로 인해 처음 교회를 가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는 교회에 잘 정착했나요? 신예지 4 : 강목사 : 제가 교회 유선으로 오는 전화를 진짜 안 받는 편이어서, 저희교회 전화했다가 안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예지 자매와 태준

형제의 전화를 잘 받았던 저 자신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나면, 정말 우리가 변하는가? 글쎄요? 제가 여러분을 말로 설득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복음을 갖고 설득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에 대해서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일하신 흔적들로 채워놓으시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서 삶이 바뀌고 변화된 사람은 그 일의 첫 번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증언하는 것이죠.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온유와 두려움이란, 우리에게 나타난 일에 대해서 나눌 때, 우쭐대거나 좋지 않은 마음과 동기를 가지고 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두려움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정직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또 내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나눌 때 염두에 둬야 할 말씀이죠. 강목사 : 그럼, 과연 예진 자매의 삶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있은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진 자매를 괴롭히던 우울감은 해결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있었던 변화를 솔직하게 나눠주시죠. 박예진 4 : 강목사 : 개인적으로 간증을 들으며 궁금한 것이 있었어요. 예진 자매는 이번 주에도 전라도 광주에서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이면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KTX를 타고 양주로 와서 사역 간사로의 3일을

살아가잖아요. 어떻게 보면 미친 열정인데, 공허함과 허무함에 빠졌던 삶이 어떻게 180도 바뀌어 열정의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예진 5 : 강목사 : 예진 자매의 삶이 하나님께 소중하게 드려져서, 그 삶이 머무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또 누군가의 삶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목사 : 현우 형제의 삶은 예수님과의 소중한 사귐이 시작되면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나요? 박현우 4 : 강목사 : 현우 형제를 통해 이제는 역으로

부모님이 신앙을 회복하시고, 또한 청소년부 학생들에게 현우 형제의 삶이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좋은 ‘모델’이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강목사 : 끝으로 영적인 나이 2살, 예지 자매의 삶에 나타난 변화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예지 5 : 강목사 : 20대 후반, 직장생활을 하던 예지 자매에게도 이렇게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 바라기는 가정에 뿌려진 첫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분 모두 자신들의 고백을 잘 나누어주셨는데요.

우리 함께 고백할까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을 설교는 이들의 고백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 만날 사람이 없고, 안 찾아가는 삶이 없으며, 변화되지 않을 사람도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도우실 뿐 아니라, 우리의 변화를 사용하십니다. 만약 저는 우리의 변화가 우리의 노력과 열심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이라면, 저는 단호하게 못한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 회심을 고백한 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마치 다른 종교에서와 같이 우리의 수련과 훈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 모든 것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 모든 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품을 떠난 사람들을 찾고 부르시며, 각 사람의 삶에 다양한 방식으로 노크하십니다. 때로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복음을 접할 기회도

주시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나의 환경들을 그렇게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세 사람은 자신들 안에 일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고백하며, 이제 자신들이 하나님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에 앞으로도 종종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시 회심 이전으로 돌아갈만큼 거센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매섭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힘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하고자 한 내 결단을 놓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이 예배에 함께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는 오늘 이들의 간증을 보면서 각자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나도 저렇게 되기를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저것은 다 억지라며 ‘정신 승리’를 한다고 의심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전 늘 말합니다. 차라리 의심하십시오. 힘써 의심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나님을 찾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못 믿겠거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를 보라고. 왜냐하면, 사람들의 변화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세명의 세례자들의 간증이 여러분들에게 그런 복음의 초청과 말씀의 놀라운 열매로 전달되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이들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삶에 일하고

계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세례자 특송 헌아식 세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