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5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어떻게 누릴까? / 강정규 목사

2022-05-06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1. 다시, 풍삶첫 3월부터 <풍성한 삶의 첫걸음>으로 설교를 시작했는데, 청소년부 캠프, 고난주간 기도회, 팸예배, 고기 파티 등으로 이제 다섯 번째 풍삶첫 설교를 나눌 차례입니다.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동안 있었던 4편의 설교를 잠시 정리해보겠습니다. 풍삶기의 예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군인 중에는 특전사와 같은 특수부대도 있습니다. 해병대 같은 곳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육군훈련소에 있는 훈련병들은 군인인가요, 아닌가요? 그들도 군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군인이 되었다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해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더 훈련된 그리스도인이 있을 것이고, 이제 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이 모두 있죠. 이 영적 여행을 잘 걸어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 동안에 모든 영역에서 성장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 삶이 그 첫걸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탄생’입니다. 영적 탄생을 표현하는 말이 ‘거듭남’입니다. 여러분, 지동설과 천동설을 알 것입니다. ‘지동설’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이고,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돌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과학적 연구와 증명들이 없었다면, 지구에 서 있는 인간은 천동설적 인식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느끼는 대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게 되죠. 사실은 내가 서 있는 지구가 지구보다 더 큰 태양이라는 행성이 중심에 있는 태양계 속에 속해 있고, 그 중심에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이 지동설을 깨닫기 전부터 우주는 이미 그렇게 질서 있게 지어졌고 존재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든 개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볼 수 없던 우리에게 그 나라를 보여주시고,

그 나라에 속하여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존재로 새롭게 하셔서 말입니다. 바로 그 변화가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자들에게 있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믿음’, 그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죠.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갑니다. 이것을 누리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걷기도 하고, 태어난 후 비교적 빨리 혼자 커나가는 개체들도 있지만, 사실 인간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기를 낳은 후 방치하면 혼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젖을 먹여주어야 합니다. 또 따뜻한 엄마 품이 있어야 아이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적 특성인데,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젖’과 영적인 ‘품’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음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태어나 생명의 숨을 쉬기 시작한

사람 중에, 이런 젖과 품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람이나 공동체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죽지는 않더라도, 태어난 후 성장하지 못한 채 그저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기는 했으나 그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더이상 자라지도 못한 채 생존만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영적 성숙에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기초는 늘 근본입니다. 기초를 무시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고, 공부에도 진척이 없으며, 관계도 깊어지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이 왜곡되거나 정체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이러한 근본과 기초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기초는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는

하나님과 눈을 맞추며 교제를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말씀의 양식을 먹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을 ‘예배’, 그분과의 대화를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마주하고,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말씀’의 양식을 먹으며 자라갈 수 있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찾듯이, 우리는 말씀을 향해 나아가서 말씀을 내 삶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생명입니다. 생명에는 영적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를 돕는 분으로 각 사람에게 보내어 주시고, 이러한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외형을 바꿔서 습관을 만들고 내면은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주일에 1회도 하나님 앞에 나오기 힘든 사람은 그것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에 밥을 한 끼 먹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주일예배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삶은 건강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예배와 모임, 개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은 의무이거나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특권입니다. 인격적 관계는 늘 시간과 함께 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높고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도 첫걸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결단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 누리기 오늘 다섯 번째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어떻게 누릴까?>입니다. 이 책은 ‘누린다’라는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의도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과제나 의무 등으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예배가 ‘의무’였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특별히 사역자로 살아가면서 더욱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오히려 예배가 특권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그 예배를 위해 제가 해야 하는 일, 특히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때로는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입니다.

매주 소논문 한편씩을 준비해야 하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보내며, 또 전하며 누리는 은혜와 특권이 있습니다. 성경 읽기는 어떤가요?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함께 하는 성경일독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2독 정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40일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매일 밤 교회에 모여서 1시간 정도 속독으로 읽어주는 테이프를 들으며 성경을 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에 참여했던 것은 목사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고, 개근하면

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근을 해서 저는 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생인 저에게 줄 상은 준비하지를 않아서, 문구점에 데려가서 고르라고 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줄 상으로 택했던 것이 ‘비비탄 총’이었습니다. 저는 상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상주시는 목사님을 바라보고 열심히 성경을 읽는 그 시간을 버텼던 것입니다. 물론 돌아보면 그것도 훈련이고 추억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성경읽기의 경험은 어떤 것입니까? 예전에는 ‘성경이 어떤 책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두꺼운

책이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다 휴대폰 속에 있는 애플리케이션 정도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이 참 소중한 책이라고 말할 때마다 2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합니다. 1)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2) 성경을 잃어버렸던 시대는 진리와 멀어졌던 시대였습니다. 복음의 전파 과정을 보면, 사람이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먼저 성경이 전해져서 복음이 전파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성경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날도 성경을 읽는 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는 것들을 경험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곳에 어떠한 신령한 목사님이 와서 말을 하더라도 그의 이야기가 성경에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더 우선입니다. 인류 역사의 거대제국이었던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의 틈새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 속에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깨우쳐 주십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선명하게 전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인격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3. 성경을 통째로 누리기 그럼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우선 이 책에 다가서기

위해서 우선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한 개인의 삶을 위한 안내서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한한 우리 인간 세상 속에 오셔서 일하시고 자신의 뜻을 보여주셨는지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 인간의 언어와 논증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무한한 분이시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주도적으로 인간과 소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은 버릴 것이 없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의 책을 차례로 읽어가면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어떻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책으로 쓰인 이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안 되겠죠. 아시다시피 저희교회가

매일성경으로 묵상을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설교를 하는 것은 여러분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묵상집의 반값을 대주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가르치고 설교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성경을 안 볼 것인가?’ 이것이 저희 교회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과 동행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성경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습득하고(성경 파노라마, 개론서, 유튜브), 조금 쉬운 번역성경을 통해 통독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15~20분씩 할애하면 1년에 성경 전체를 일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교회는 지금도 1년에 1번, 교인들을 모아서 성경일독을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저도 준비해보겠습니다. 성경통독에 대한 풍삶첫의 일부 내용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속에 담긴 역사적 흐름과 지리에 대한 간략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저희가 바이블 클래스 시간이나 설교 시간에 지리나 역사를 자세히 다룹니다. 어떤 부분은 신학대학 수업보다 더 세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희 교회에서 하는 것만 잘 소화해도 여러분이 성경을 읽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66권을 읽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우선 진리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글들을 먼저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스스로도 성경이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네 편의 복음서가

바로 이 예수님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됩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는 두 가지에 집중해서 읽기를 추천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둘째, 예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계시는가?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오늘도 우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은 후에는 ‘사도행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신 구주로 받아들였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역사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 살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신약의 서신서들은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의 편지입니다. 그를 통해 어떻게 예수를 섬기며 따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품은 비전을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신약을 읽다 보면, 신약의 가르침은 구약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또한 구약을 자신의 모든 가르침의 근거로 삼으셨고,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말씀하시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생길수록 구약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구약을 읽다 보면, 수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품으신 계획과, 어떻게 세상을 다루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절망스러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배웁니다. 신약은 5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다루지만, 구약은 수천 년의 시간을 다룹니다.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성경의 메시지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치를 창조하셨는데, 그 아름답고 선한 창조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깨졌고, 하나님은 이를 다시 회복하신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회복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과 실패 끝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메시아로 보내십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었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결국에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완전히 회복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 속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립니다. 4. 묵상, 성경을 우려내서 누리기 끝으로, 성경을 대하는 너무나 소중한 방법인 묵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경통독을 통해서 숲을 보는 것이 중요하고, 동시에 묵상을 통해서 나무, 혹은 가지와 잎사귀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묵상이란 짧은 본문, 10~15절 정도의 한 단락을 깊이 관찰하는 것입니다. 도보로 여행하며 바라보듯 집중하여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그 내용을 우선은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자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그 진리를 오늘 나와 우리에게 가져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이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지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지적 호기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아가려고 읽는 것이기에,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눈으로 읽고(관찰),

머리로 읽은 후(해석), 몸으로 읽는 것(적용)이 묵상의 여정입니다. 이렇게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말씀 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갈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무한한 절대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지도가 성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현상은 ‘말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래전 자신의 시를 통해 ‘말씀이 꿀보다 달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다윗만의 고백이 아니라,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깊은 관계를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블로그가 있다면 그것을 안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정말 갖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특권을 놓치지 마십시오. 성경을 안 보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어둠 속에서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오해하며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김교신 선생은 쓰러져 가는 조선을 보며, 조선에게 주고 싶은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성서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썼고, 누군가는 이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들 또한 성경을 통해서 삶이 변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누리는 이 기쁨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겠죠. 이제 이 시대는 성경을 구하는 일에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소중함을 모르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깊이 사랑하며 평생을 성경과 동행하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 성경을 누리고, 누리고, 또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