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성령

2025-06-06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반갑습니다. 어, 저희 영상 설교로 오늘 성령에 대해서 여러분과 몇 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듯이 또이 영상을 잘 보면서 우리가 이야기를 한번 잘 듣고 또 잘 새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 월화수에 하나북 본강자를 다녀왔습니다. 우리에게는 풍성한 삶에 저로 유명한 김영고 목사님의 강의를 또 저는 포강자는 이번에 세 번째 가서 다시 듣게 되는데 이번에 유독 강조한 것이 티a쳐블 마인드였습니다. 한국어로 말한다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의미예요. 우리가 매일 그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있죠. 사람이 과연 변하는가?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고 좀 봐요. 그것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 변해요. 하나님이 하시면 변한다고요? 어 어쩌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능력 의심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은 오히려 성경을 보면 돌같이 굳은 마음의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말하셔도 듣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야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목이 고든 백성 즉 이렇게 기부수했다고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들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즉 듣고 깨닫고 새겨서 자기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변하는 거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 변합니다. 하나님은 뭐 신내림처럼 그냥 비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뭔가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결국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과 말하면 배울 수 있는 마음의 태도가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고 더나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필수 조건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삶을 시작해서 우리가 누려야 될 신앙의 목표가 분명히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골로서 말씀 보면 이렇게 나와 있죠. 우리가 그에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이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의 고백이죠. 그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어요. 근데 이것이 만약 만약에 그냥 되는 거거나 아니면 우리가 안 해도 내가 안 해도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라면이 말씀은 이해할 수 없어요. 왜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자로 세워가기 위해서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에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걸었거든요. 그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되는 거 끝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어 가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걸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드렸던 것이 복음 전한 사도들이고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복음으로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쳤어요. 왜요? 완전으로 세워가고 싶으니까요. 그게 하나님의 뜻인 것을 꿈인 것을 아닐까요?이를 이를 위해서 바울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에 역사를 따라서 힘을 다하여 수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달리 말하면 성령님이죠. 그러니까 성령님의 일하심을 따라서 바울도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에 자신을 들여서 힘써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게 아니라 성령이 요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에 내삶을 썼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좀 말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었고

성령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일에 자신의 몸을 들여야 할 때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과정은 바울 또한 성령께 순종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도 완전한 자로 세워져 가는 것이었고 또 그의 사역을 통해서 누군가가 그렇게 세워지는 것이 성령의 비전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가 이제 곧 성령 강림절이 오는데요. 어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엄청난 복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이 임하심을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져요.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생겨나요. 근데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만 말했을 때는 이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왜냐하면 그럼 지금은 성령님이 일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가이 질문 앞에 답하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동반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분 오순절에 성경 임했을 때 베드로가 그곳에서 설교하잖아요. 근데 베드로는 그 성령 강 사건을 보자마자 구약의 요에서 말씀을 인용해서이 사건을 해석하면서 사람들에게 설교합니다. 사도 2장 16절부터 18절이죠.이는 이는 곧 선지자 유회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을 때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말세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요정에 부어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우리가 알다시피 마지막 날이라는 찬양에 가사가 여기 나오잖아요. 근데 신기한 것은 베드로가 어떻게 이 처음 보는 성령이 그 사람들에게 임하는 적어도 기도하고 있는 120명에게 동시에 답발적으로 임하는이 사건을 구약의 요에서와 바로 연결시킬 수 있었을까?이 이 질문입니다.이는 이들이 성경 잘 보면 이 오순절 사건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전해주는 복음이 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그때 이 부활하신 예수님

만났던이 사건 가운데 예수님이 이들에게 어떤 복음을 전했는지가 성경에 나오거든요. 어 사도전 1장 3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니까 제자들은 부활한 그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된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깨닫고 눈이 열리게 된 것이죠. 근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셨지만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어 온 것이었어요. 구약에는이 하나님의 나라고 말하지 않고 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날을 메시아의 날,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은이 메시아 하나님 나라가 시작합되면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실 것에 대한 그 구약의 약속들을 그 주님께서 성취해 가고 계심을 주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어떤 이 성령을 기다리는 것을 영적 체험을 기다리는 것처럼 신내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들을 공부하면서 그때

말씀이 있었잖아요. 성경 말씀이 구약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거기 나오는 주님의 날 메시아의 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죠. 아마 그때 요에서에 나타난 그 약속의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된 거예요. 베드로는 그것이 그러니까 어떤 영적 체험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에 기초한 성취임을 말씀의 근거에서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은

뗄 수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따로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이단이 되는 거예요. 즉 누군가가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난 성령에만 기대어 살아가는다. 말마다 기도만 하고 성령의 음성만 들으려고 하고 이러면 이단 되는 거예요. 때로 누구는 성경만 봐요. 말씀에만 기대고 성령에 기대 있지 않으면 그 신앙 또한 굉장히 어쩌면 지적인 어떤 추구하다가 성령님이 잃어버리고 삶의 역동성에 떨어지는 그런 잘못된 신앙이 됩니다.이 이 모든 신앙이 위태롭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가야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적 성장을 위해서 신앙이 하나님이 약속한 그 삶을 우리가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 유일하고 가장 안전한 방식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된 것이 예수님입니다. 육신이 되셔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장점은 눈에 보인다는 거예요. 그분의 음성을 우리가 너무 쉽게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육체는 논리적 질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말씀이 영이 된 것이 성령님이라

말할 수 있어요. 영의 단점은 뭡니까? 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단점이에요. 대신 장점은 물리어 지서 영향을 초월해서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 만날 수 있어요. 예수님은 이곳에 만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 같은 시간에 못 만나잖아요. 성령님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자기 옆에 있는 그 예수님 육체로서 함께 하시는 그 든든한 그 예수님을 떠난 떠나보내는 것은 제자들에게 매우 놀랍고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야, 내가 가는 것이 오히려 너희에게 더 유익이야. 요한복음 16장 7절이죠.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회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야 된다는 것. 복 받아는 것은 아 복음이 하나님이 원래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내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떠나 있던

나의 삶이 잘못됐다는 것을 내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다시 내 삶의 주인 되시는 것을 의지하고 요청하고 그것을 받아리는 것을 복음을 받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걸 회심이라고 말하죠. 그럼 이 회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무엇이냐? 회심의 그 약속대로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 떠나 살았습니다. 하나님 내 삶에 하나님 다시 주인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어 네가 정말 그 원하니 그럼 내가 갈게라고 해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인되어 주신 분이 성령이에요. 여러분 누가복음

11장 9절부터 13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는데 정가를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금은 구하라, 찾으라. 이것에 대한 결론으로 너희가 그렇게 구하면 주실 것이다 말하고 있어요.이 말씀 우리 익숙하잖아요. 근데 여러분이 말씀 잘 보시면 전제가 있는 거 아십니까? 전제가 있어요.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된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된 관계 안에 있을 때 성령을 구하면 주신다는 거예요. 즉 회심이 전제돼 있습니다. 회심 없이 성령은 없습니다. 회심하기 전에도 성령님은 우리 주변에는 계셔서 역사하시겠지만

우리 마음이 딱 오셔서 우리 마음에 중심이 오셔서 주인이 되시는 것은 이 중심을 잘잡고 있는 내가 하나님 제가 이제 비겨날게요. 제가 자 저의 중심 내 버리겠습니다. 주님 제가 물러할테니까 저에게 오십시오. 내 마음에 주인의 자리를 하나님께 요청들을 때 회심한 이후에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겁니다. 오십시오. 이게 구하고 찾는 거예요. 그럼 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원하시니까. 요한복음 14장 15절부터 17절 말씀도 한번 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회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 받지 못하나니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자 보십시오. 여러분, 세상은 성경을 받지 못한대요.이 세상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죠. 근데 여기 보시면 15절 전체잖아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즉 회심한 그 고백 그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보회사 보호하고 은혜 주시고 함께 하시는 그런 분으로 예수님이 계셨던 것처럼 이제 그가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심 없이 성령 없습니다. 회심했다면 내가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요청하고 구하고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심을 받아들여야 돼요. 여러분 그 신앙은 감정이 아니에요. 내가 회심하지 않은 거 같아. 혹은 성령이 나에게 계시지 않은 거 같아. 감정이 아니라 이 말씀의

진리를 믿고 그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알아요. 아, 내가 하나님께 회심하고 하나님이 주인의 여자를 요청하면 성령님이 나에게 오셔서 내 안에 거하고 계시는구나. 이것을 믿고 그분께 듣고자 하고 그분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회심하여 구원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회심한 모든 사람에게 함께 거하시며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왜 함께 하십니까?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 주시기 합니다. 진리의 영이라고 말하잖아요. 아까 성령은 말씀이

영이 되신 거예요. 진리입니다. 말씀 안에 살아 하려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말씀으로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이급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막 난 성령이 성령과 친해. 뭐 난 성령이 임했어. 뭐 그렇게 말하면서 말씀은 하나도 관심지 않고 말씀 듣지도 않고 오직 지통 계시를 추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다 지금 잘못 신앙생활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신앙생활은 그래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성령님과 무관했던 회심 이전에 나의 삶을 살 것인가

이 안에서 내 진로 내 선택을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부터 읽어보면 보회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오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이제 이 말씀과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세상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가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을 줘요.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요구를 따라가도록 집요하게 우리를 가스라이팅합니다. 너 이거 해야 돼. 이렇게 살아야 돼. 근데 그것을 떠나는 삶을 우리가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말씀과 성령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그 진리로 또 예수님께 원하시는 세상과 다른 삶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고 그때 우리에게 평안이 있는 거예요. 성령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인도를

받고 있는 사람은 구원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의 확신 구원이에 확신하잖아요. 구원의 확신 다른 거 아니에요. 우린 다른 것으로 구원의 확신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도 이단이에요. 내 안에 회심의 고백이 진짜 있고 그래서 내가 성령과 동행하고 있다면 내가 그 상태가 구원의 확신 그 자체입니다. 회심했고 성경 동행하고 있다면 여러분 이러면 또 나는 어떤 분들은 아 내가 정말 회심했나? 또 내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죠. 회심은 어떤 여러분

자격 증명이 아닙니다. 여러분 회심은 주님 제가 제가 주인된 삶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는 정말 주님이 주는 것을 제가 믿고 따르겠습니다라는 진실한 고백이 있는가예요. 진실한 고백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내가 주님을 따라가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넘어져도 애쓰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거 회심한 거예요. 근데 나는 회심했다 말하지만 나는 뭐 주님 좀 안 따를 수도 있지. 안 따르면 어때? 막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하고 이렇게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은

회심하지 않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 회심하지 않는 내 모습이 잘못되고 깨닫고 그렇게 살지 못하고는 나를 보면 아파하고 있어야 돼. 그러면 그거한 거예요. 내가 정말 주의 것 살겠다는 어쨌든 진실한 고백이 있으면 그 고백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바꿔 가려고 애쓰는 마음도 있고 어떻게든 그렇게 살고자 조금씩 노력하게 됩니다. 그 그 노력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기뻐하세요. 도와주세요. 그때 주님은 그 우리의 진실한 고백을 받으셨기 때문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정말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우리에게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겁니다. 고린도서 1장 22절 보면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해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섬유 주셨습니다. 즉 회심한 사람은 야, 넌 이제 내 거야. 그까 회심한 사람은 주님 전 당신 겁니다. 이제 제 삶은 제게 아닙니다. 당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어, 그렇구나. 성령 보내서 그 사람이 딱 인치해지면서 넌 내 거야. 이거예요.

신앙생활은. 여러분 풍삼기 과정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이 풍삼기 과정이 너무 좋은 것은 이 안에 성령론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이 있어요. 나는 지금 성령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면 분 풍상계 하시면 다 배웁니다. 마 이미 풍상기를 하셨는데 지금 내가 아직 정리가 안 해. 어, 여러분 성경에 대한 파트를 다시 들으셔야 돼요. 이번에 제가 본강장 갔더니 어떤 교회에서 한 목사님이 자기네 성도 한 사람과이 목사님이 풍상기를네 번 했더라고요. 왜냐면 한 번에도 안 변하고 두

번 해도 안 변하고 세 번 해도 안 변하고 풍산기 배웠던 것을 삶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니까 근데네 번째 했을 때 역사가 나타났다고 해요. 그럼 풍상기를 내가 한번 이수했다. 아, 분산 해 봤는데 나 안 변해. 후기 한 번수했다고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서도 한 번 했지만 전혀 안 변한 사람 있을 거예요. 당연해요. 어쩌면 풍삼기를 한번 했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배운 것을 내가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정말 애쓰고 있느냐. 애쓰지 않는 사람은 다시

안 한 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아니 했다고 오히려 교만만 떨다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운 것을 그 가르침대로 기억하고 붙들고 살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배워도 내가 삶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 진리는 내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풍성한 삶이란 것은 어 그런 사람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되기 쉽습니다. 풍상기에 나오듯 성령의 인도를 잘 받으면 우리 성령 안에서 비전도 찾아가고 성령의 열매들이 내 안에 주어져서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기도 하고

성령과 함께 일하며 꿈꾸며 살아갑니다. 성령님이 꿈꾸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일에 동참하고 싶으면 열망이 생겨요. 내 삶을 드릴 수 있어요. 그래서 내 삶을 당신이 원하시는 그 삶에 복음을 전하는 삶에 교회를 세워가는 삶에 내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일들이 성령 의해서 일어납니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거 하고 살고 싶어 하죠. 근데 문제는 성령이 임했던 사람에게도 반대 경로도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내 안에 오신 성령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지만 무시하는 길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 하나님이 성령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까지 인치심을 받았 인치심 받았는데 성령 무시하면 성령이 근심한다는 거예요. 그 성령이 왜 근심하실까요? 성령께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만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는 그 삶의 결과를 아시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안타까워요, 여러분. 여러분 자녀가 있는데 여러분이 자녀가 여러분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근데 우리는 그렇게 자꾸 엇나가면 그 삶의 뒤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아요. 그럼 근심하잖아요. 성경이 똑같아요. 그분은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서 말씀하고 계실 거예요. 근데 끝까지 가르침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 그 사람은 결국 어느 순간 성령님도 몰아내 버립니다. 성령께서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떠나가십니다. 여러분 로마서 말씀이 이렇게 말해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교인된 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교인 된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회심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따르미가 되는게 중요한 거예요. 성령은 우리를 원하세요. 우리와 함께하기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주님을 추구하고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께부터 듣고 때로는 그것이 내 뜻과 달라도 주님의 뜻을 따라오자 힘쓰고

있지 않는다면 아 그것을 성경에서 가장 슬퍼하는 삶이에요. 그러나 그렇게 따르고자 할 때 그 마음을 주께서 받으시고 주님께서 그 사람을 도우시는 겁니다. 우리가 결심해서 내가 성령이 원하는 사람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내가 결심 하는 건 맞아요. 내 결심을 주님께서 받으시고 우리가 못하는 그 영역을 도우시는 거예요. 근데 그 마음도 없는 사람 그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아요.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래서 회심 이전에 성령과 다 무관하게 살았어요.

그때는 성령이 아니라 악한 영의 지배와 영양 성경 이건 세상이라 말하죠. 깨운 세상의 그 가르침대로 우리 다 살았어요. 근데 우리가 회심하면 이제 이 깨어진 삶에서 속해 살던 그 삶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회심하기 전에 것서 추구하고 있다 볼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은 교회도 세상의 원리대로 운영하려고 해요. 아, 근데 이제 여기서 우리가 다른 삶으로

건너온 거예요. 근데 이렇게 우리 건너왔을 때 사탄은 뺏긴 거잖아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다시 집유하게이 회심으로 회심한 이후에 여러분 끝이 아니라 회심한 이후에는 여러분을 다시 옛날 자기와 함께 했던 삶으로 데려오려고 합니다. 꼬셔요. 여러분 회심한 사람에게 사탄이 들어올 수 없어요. 근데 우리의 이 어깨 위에 앉아서 날마다 우리의 귀의 거짓말로 속삭입니다. 성령은 진리로 속삭이세요. 사탄은 거짓 속삭입니다. 여기에 넘어가려면 안 됩니다. 뭐 여러 가지 속삭이겠죠.

야, 뭐 그렇게 살면 뭐 될 거 같냐? 막 이러기도 하고. 야,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야, 그렇게 살면 다 망하더라. 막 여러 가지 얘기할 거예요. 회심하기 전에 나의 모습,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던 그 삶의 모습으로 날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계속 설득합니다. 혹은 우리가 그리스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도록 계속 만들려고 해요. 그러나 그때에도 아니야. 나는 그래, 이전엔 그렇게 살던게 맞지. 이전에 나도 그렇게 세상에 축제를 살았지. 이전 것은 지났고 나는

이제는 성령님 함께하는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고백하며 성령님 더욱 의지하셔야 돼요. 주님 제가 주님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이 원하는 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이고 그것이 복음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뭐 매번 넘어지더라도 날마다 또 한번 일어나서 그렇게 평생을 그분이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어떤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좀 가르침을 잡아는 티처블 마인드로 그분께 날마다 가르침 받으면 나아갈

때 말씀에 가르침 받으면 내가 바꿔 갈 때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한 삶을 누리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 모든 사귐의 성도님들이 그 삶을 함께 경험하고 그 삶 안에서 함께 연대하여 바로 그 주님이 주인된 하나님 나라를 함께 맛보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사기관족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