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나누는 네 번째 설교입니다. 우리는 지난 설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진 신학적 중요성과 하나님 나라의 설계도, 그리고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어원,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칭하기에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늘 잊으면 안 되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구조인 ‘이미’와 ‘아직’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하나님 나라>가 성경 안에서 가지는 의미입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 구원론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고,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주고, 이런 부분들은 뒤로 하고, 예수님에게도 그리고 사도들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중요했는가? 어쩌면 그 근원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마가복음입니다. 기본적으로 마가복음은 ‘마가가 전하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은 첫 시작에서부터 마가복음이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예수께서 오셔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필요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 말씀은 우리가 2021년 6월에 <청년아 때가 찼다> 시리즈로 여섯 번에 걸쳐 설교를 깊이
했습니다. 마가복음만 복음의 시작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말할까요?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보시죠.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사십일 금식 후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후, 이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마가복음과 동일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내용을 직접 다룬 본문은 5~9장입니다. 4장에서 사역의 시작을 선포하고,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본격적인 사역을 하신 이야기가 5~9장인 것이죠. 그런데 제자의 부르심 이후 5장을 넘어가기 전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리고 9장까지 그분의 사역을 보여준 후, 9장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말씀이 주어집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즉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부분을 다루는데 그 가장 앞과 가장 끝에 이 말씀이 반복됩니다. 이것을 인클루지오 구조라고 합니다. 양 끝을 이 구절로 감싸고 있는 것인데, 그 안에 담긴 것의 핵심이 여기에 있음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2가지로 나눠지는데 5~7장은 ‘가르침’, 8~9장은 ‘고치심’입니다. 가르치시고 고치신 일이 예수님이 하신 사역입니다. 이 구절 들에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고치셨다고 축약하죠. 그런데 결국 그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냐면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의 두 구절은 헬라어로 보면 거의 일치하고,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지역’인데, 온 갈릴 리가 모든 도시와 마을로 바뀐 것이니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더욱 지역이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가르치신 장면의 핵심이 팔복이라고 불리는 가르침입니다. 산상수훈의 핵심이죠. 팔복의 첫 번째와 마지막 구절이 무엇을 말합니까?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인클루지오를 사용해서, 결국 팔복도 하나님 나라를 얻는 사람들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즉,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어떤가요? 누가복음에서 제가 늘 말하는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메시아적 선언을 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실제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귀신을 내어 쫓아서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들어서 자기들을 떠나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시죠. (눅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결국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렇듯 복음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마지막으로 이 땅에 계신 40일은 뭘 하셨을까요?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 후 40일. 가장 소중한 이 시간에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하시던 사명을 이어갈 사람들을 만나고 회복시킵니다. 그러면서 뭐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세요.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수가 중요하다고 하죠. 그럼 예수님의 복음이 잘 전수되었는지 이제 살펴봅시다. 사도들의 사역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활발히 사역한 것은 이방 선교의 중심에 있었던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사역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행 20: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행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이 모든 바울 사역의 기록은 그가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증언하였다는 것입니다. 날짜를 정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했다는 것은 지금으로 보면 사경회를 했다는 것이죠. 율법과 선지자의 말은 구약 전체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구약의 예언과 성취로서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친 것이죠.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증언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도바울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이 조금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사도바울의 죽음 같은 것은 다루지 않고, 사도행전이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모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 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행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에 죄수로 가서 가택연금 상태로 투옥된 바울은 그곳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가장 마지막 기록입니다. 우리가 ‘ACTS 29’를 써 내려가야 한다는 도전을 많이 합니다. 사도행전 28장에 이어서 우리의 삶이 사도행전 29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도 인클루지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하나님 나라 전파>였고, 사도행전 끝장에서 바울의 마지막 사역 또한 <하나님 나라 전파>입니다. 이로써 그 가운데 놓인 사도행전 전체가 어떤 이야기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 전파>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성경적으로 답해보자면, 하나님 나라를 믿고 살고 나누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를
깨어진 세상의 영향력 아래에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약시대에 현실적으로 행하신 장면이 여러 치유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고치시는 사역 대부분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죠. 그 일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이 쫓겨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그 사람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 나라로 그가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를 지배하는 힘이 악한 영에서 거룩한 성령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나라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죽어서 가는 사후 세계의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구약의 여러 약속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사도들과 복음전도자들은 구약의 본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증언하며 그 약속의 성취를 증언했던 것입니다. (행 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 8: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행 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구약의 모든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했던 세례자 요한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예언에 근거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메시아라고 선포했지만, 정작 예수님의 사역하심을 듣고 보면서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묻기도 하죠. (눅 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눅 7: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눅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모든 기적과 치유 사건이 메시아의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하기 전까지, 즉 세례 요한의 사역까지와 예수님의 사역을 구분합니다. 어떻게요. 구약과 신약시대로 말입니다.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이 구약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신약에 나오지만 사실상 옛 언약(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 후부터,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새 언약 시대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이고 실체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제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하나님 나라로 침입합니다. 매우 적극적인 의미로 ‘침입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한번 침입하면 끝일까요? 아니죠. 하나님 나라는 관계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인 그 마음, 그분을 따르는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완전한 주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인내하고 견딤으로 최종적인 구원, 완성된 하나님 나라까지 우리는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정리하는 한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예로 들며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D-day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온 작전명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과 독일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습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하게 되면 독일군에게 굉장히 불리해질 수 있기에 독일의 롬멜 장군은 해안선을 경계하며 상륙을 막고자 했습니다. 마침 해안에 안개가 가득하여 며칠 동안은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한 롬멜 장군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하고 자리를 비운 사이, 1944년 6월 6일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연합군 15만 6천 명의 어마어마한 군사가 프랑스 해안을 통해 유럽 대륙에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D-day라고 부릅니다. 이 D-day의 상륙작전으로 인해 사실상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후에도 독일군의 최후 저항은 계속되었고, 힘든 전투 역시 계속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연합군은 나치의
독일을 이기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최종적 승리의 날이 V-day입니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 그것이 이 땅에 악한 세력에게는 D-day와 같은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의 성육신을 환영받지 못할 사건으로 만들어 놓고 실제로 아기 예수는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이미 신이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 것입니다. 이 계획은 이미 창세기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구약 전체가 예언하고 기다리던 D-day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죠.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탄이 에덴에서 사람을 하나님께 배신하게 만들고, 사람을 죽음을 내몰아갈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예비하시며 구원 작전의 D-day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시간입니다. 구약은 그래서 늘 그날을 예언하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카이로스.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것은 이 땅의 악한 세력에게는 D-day와 같은 것이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죽음을 소멸하셨습니다. 그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승리에 참여합니다. 우리에게도 남겨진 시간이 있죠.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는 최종적 V-day(재림의 날)까지, 남겨진 싸움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승리하고, 사탄 나라의 패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세상을 다시 따라가지 않습니다. 승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끝까지 살면, 그것이 승리의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계속 거짓으로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고, 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 안에 이미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을 붙들고, 깨어서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사십시오. 이 세계는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이곳이 주의 나라가 되고, 이 땅 모두가 주의 나라가 되도록, 우리의 삶을 다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