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네, 반갑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한번 인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네. 우리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귀한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 찬양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 또한 우리의 귀한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그 나의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너쁘고 참 귀하다. 는 보석보다 귀하다. 내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주의 사랑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불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에 쉴 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 나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려없는 믿음 주신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주의 사랑.이 사랑은 주의 사랑.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불은 마르고 꽃은 시든 나 주의 말씀은 신실에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가 힘과 두려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신 주님 알기를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려없는 믿음 주신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찬양하리 찬양하리 만군의 주 영원히 함께하시네 존귀하신 사랑의 왕 영원히 동치하시 찬양하리 찬양하리 만군의 주 영원히 함께하시네 존귀하신 사랑의
왕 영원히 통치하시네.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려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주의 나라 영원하며 주의 나라 영원하며 그의 영광 무궁하리 왕의 위험과 능력이 이제 임하였으니 주의 주권과 주의 통치와 주의 나라 힘과 권세 임하네. 예수 하나님 우리 시간 마지막으로 찬양합니다. 주의 나라 주의 나라 영원하며 그의 영광 무궁하리 왕의 위험과 능력이 이제 임하 하였으니 주의 주권과
주의 통치와 주의 나라 힘과 권세임하네. 예수 하나님의 고민. 우리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 기도하는이 시간을 통하여 나의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의 그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서 더욱더 선면행해지기 원합니다. 주여 오늘이 새벽 예수 그리스도로 나의 옷을 입으니이 시간 나와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 공동체와 함께 하여 주셔서 이 기도가 주님의 기가에 울려퍼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이런 마음도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시간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며 나아갑니다. 누군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인 하나님이 이 시간 주님의 그 주권과 힘과 통치를 인정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이 시간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고 나아가기 원하오니 주님 나의 삶속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들리며 나아가는 우리의 기도회 하는 시간 속에 주여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기를 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이번 주간 우리가 특별 기도 하면서 함께 주의 말씀 앞에 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면서 하셨던 그 약속의 말씀들을 보며 우리 또한 하나님이 시대의 언약 백성 답답게 살기 위해서 오늘도 나아갑니다. 주여 우리 모두의 삶을 지켜 주옵시고 오늘도 이 새벽에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 되어지고 주와 함께 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어 오늘 우리 특별 새벽기도 3회차에 나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네. 네. 제가 오늘 약속한게 있기 때문에 어 우리 여기 있는 우리 좀 다음 세대들 우리가 좀 함께 같이네 응원하고 축복하고 싶습니다. 우리 이곳에 있는 다음 세대네 우리 사경회 때 다음 세대 청년까지라고 정의했기 때문에네 청영까지 우리 다 앞으로 한번 좀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 청소년도 그렇고요.네 박현우 청년도 나와 됩니다.네 다 나오셔도 됩니다.네 우리 정우이도 나와야 됩니다.네 네. 나오시고 네. 여기 은현 자매님 아들도 네.
나오셔도 됩니다. 네. 앞으로 다 쭉 나와서 쭉 예. 쭉 이렇게서 주십시오. 쭉. 네. 이쪽으로도서 주시고. 네. 어우. 네. 거기 조심하십시오. 네. 십자가 조심. 네. 가까이. 네. 네. 어. 어유. 네. 더 우리 예서 오세요. 네. 더 오세요. 더. 네. 어우. 네. 정말 이들이 여기 거의 1 그죠? 어 너무 어 정말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아네 우리 좀 잠깐만들을 위해서 조금 기도했으면 좋겠는데 손은 좀 뻗으셔 갖고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 시간 잠깐만 기도할
텐데 어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이들을 주셨고 또 이들이 뭐 어쨌든 이 새벽에 이렇게 같이 예배한다는 과세가 너무너무 귀한 일이고 아 그래서 이 하나님 이들을 잘 세워 주시고 오늘이 하루를 지켜 주시고 이대 삶을 동행하여 주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잠시 1분 정도만 한번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함께 도와시사 정말 소중한 아이들 정말 소중한 우리 청년들 하나님 정말로 우리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아버지 이기까지 정말 이들을
하나님께서 이곳에 세워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이들에게 기름 부어 주옵시고 이들과 함께 하여 주옵시고 이들이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합니다. 주여 도와주옵시고 주여 붙들어 주옵시고 아버지 함께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들의 마음 가운데 이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 하나님의 예배하는 법을 알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이대의 삶이 얼마나 얼마나 귀한 것인지이 시간 알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인도하시기 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시기 원합니다. 아버지 붙어 주옵시고 아버지 힘을 주옵시고 주님 아버지 오늘도 이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되는 삶을 이들이 고백하고 경험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소서. 어 하나님 우리 교회에 주신 이 소중한 청년대 우리 청소년대 또 아이들 하나님께서 오늘이 시간이 예배 가운데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정말로 세대가 점점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하나님과 어쩌면 외면하고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런 하나님께서
언제나 소망의 싹을 주셨고 특별히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그런 소망의 싹으로 잘 자라가서 우리의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어 제가 요즘에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성결대에서. 네. 그래서 네. 어,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격려하고자 드리려고 합니다. 네. 차 인사네 십자가 조심하십시오.네 네. 저도 어제 가다 찍혔습니다. 네. 월요일 날. 네. 네. 어, 오늘 이제
말씀 같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 오늘 말씀은 20장 7절 3계명입니다.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너는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네. 아멘. 어, 우리가 오늘 첫째날 봤던 말씀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자. 아, 둘째는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님 답게 예배하자. 내 방식대로 내가 주인되지 말자. 예배. 이런 마음에 뜨면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오늘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삼계명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름이라는 것은 중요하죠. 이름은 인격, 권위, 임재, 뭐 약속 이런 것을 다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이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주어진 우리가 보셨을 거예요. YH WH라고 보여지는 어 이렇게 음음역으로 한 그 영어 글자로 어 사실이 글자가 예자분 고대부터 이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주어져 있는데 이게 자음밖에 없거든요. 자음네 글자인 거예요. 그래서 이거가 뭐라고
불렀을까? 그래서 두 가지 설이 흔히 있는 거죠. 여호와 아니면 야외 뭔지 잘 모릅니다. 왜냐면 안 불렀기 때문이에요. 이름을 쓰릴 때도 어쩌면 그 필사할 때도 몸을 정결케 하고 그 이름을 썼다고 할 정도로 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 어떤 존경심, 경외감 이런 것들이 있었죠. 어 그래서 그 이름을 안 부르다 보니까 한동안은 그 이름에 어 뭐 정말 이게 뭐라고 불렀을까라고 해서 후대는 그냥 여호와 야외 이렇게 이제 우리가 모음을 만들어서 아 그렇게 부르게 된 것입니다.
대신 그렇게 써 놓고 그것을 읽을 때는 돌려서 말했어요. 그래서 여호와 야외라는 하나님이라를 직접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이렇게 불러 돌려 불렀죠. 아도나이는 오늘날 말하면 주님로드 이런 뜻입니다. 아 이름이 이름을 대한는 것은 그 이름이 이름을 가진 존재를 대한 뜻이기 때문에 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우리가 인격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시는 장면은 그분의 존재성을 알려주시는 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모세에게 이름을 알려주신 장면이 있었죠. 그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이름 자체가 어쩌면 나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적 임재의 표정이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가 머무는 표정이었는데 예를 들어서 신명기 12장을 보면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순서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 내 이름을 둔 곳이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이름이 갖고 있는 임재성을 또한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려고 자신을 알리시고 언약 백성들에게 자신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근데 이 이름을 오늘 망령되게 하지 말라.이 이 망령되다라는 표현이 좀 확 와닿지 않으니까 망령되다는 뜻은 헛대히 가볍게 거짓으로 남용하여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서 우리가 존중하라는 명령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이나 자신의 목적을
위한 어떤 도구화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 욕심과 체면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입술로는 내가 하나님을 부르면서 삶으로는 부정하고 있는 이런 태도가 있다면 또한 이름을 헛대히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고이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된 광판 나를 위한 어떤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이제 많이 나오는 것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는 거. 네. 아 이거 하나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할게 이런 얘기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마라.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하는 것은 진중한 태도예요. 그게 아니라 아주 사수한 거 하면서 너 못 믿어. 아 내가 하나님 이름 걸고 약속할게.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의 욕심을 합리하기 위해서 또한 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어. 어 우리가 물론 이 얘기 어떤 부분에서 조심스럽게 쓸 필요가 있죠. 그러나 그냥 내 욕심과 나의 어떤 것을 설득해 내기 위해서 하나님 이름을 갖다 붙이지 말라는
겁니다. 신앙적 언어를 입에 담으면서 삶으로는 부인하는 위선도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흔히 범하는 남용이 있다면 아까 입술의 남용은 가볍게 말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 외국어에는 이런게 되게 많잖아요. 네. 외국어는 뭐 지저스 이러고 뭐 있잖아요. 뭐 오마이갓 뭐 이렇게 해서 감탄사나 농담 분노속인 어떤 말 이런 거에 하나님 예수님이 끼워 놓는 것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그쪽은 문화 자체가 더욱 그랬으니까. 어,
그렇지만 한국에는 당연히 미국만큼 그런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아, 그러나 종종 너무 의미 없는 어, 내뱉는 표현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된다. 물론 이 얘기가 우리 뭐 어른들이 주여, 주여 하는 것처럼 어, 그것이 자주 찾거나 이런 것 다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 중에 어떤 날은 아버지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이름을 부르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주여 이 한 마디가 삶에서 필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 한 마디를 이렇게 내뱉는 거는 너무 좋은 것이고 필요하지만 어, 그러나 너무 가볍게 그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거나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내 중심이 무엇인가는 한 번쯤은 점검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이름을 부를 때 필요한 것은 진심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당연히 주님의 이름을 잘 불렀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힘든 순간마다 내도 안 될 때마다 그냥 내가 마음속도 아 주님 정말
이 한 마디 안에 우리 반응 많은 거 당겨 수 있거든요. 그렇게 찾는 건 너무 기뻐하실 거예요. 근데 그렇지 않게 가볍게 그냥 그렇게 하는 것들은 우리가 조금 아 내가 정말 하나님과 어떤 동행을 하고 있나 잘 봤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아 두 번째 남용은 하나님으로 아까 내 뜻에 포장하는 경우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성경에 있는 내용을 말씀할 때 이런 표현을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아 우리가 그냥 나에게 있는
어떤 생각들을 말할 때 혹시 너무 쉽게 내가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 있습니다. 우리가 뭐 연애할 때 직장에서 뭐 사역 결정할 때 뭐 어떤 여러 가지 뭐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어서 온를 누구한테 말하거나 이렇게 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돼. 이렇게 해야 돼라고 하면서 아 또한 역사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가 우리가 어 범했던 전쟁과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전쟁하는 경우가 참 많았단 말이에요. 이런 것들이 어차피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다 못해 그 인도가 영국에 굉장히 오랜 지배 받이 기독교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도의 길에 걷고 있는 예수라는 책에 보면 어 인도 사람들은 어 기독교라는 단어 자체가 거부감이 드는 거야. 기독교 하면은 하드 그들이 내세우는 것이 뭔가 하나님의 이름 내시오고 하는 거니까 기독교라는 단어만 들으면 뭐 거부감이 드니까 어 영국에 갔던 그 인도에 갔던 영국
선교사의 스텔린 존스라는 선교사가 그 인도 사람을 가장 먼저 가르쳐야 됐던게 기독교와 예수는 다른 거다. 너무 슬픈 얘기 아닙니까? 어 기독교와 예수는 다른 거야. 너희는 지금 기독교만 알고 있어서 진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래. 진짜 예수님이 이런 삶을 사셨어. 이게 한때 우리 어 기독교라 것을 키워서 내세운 국가들이 했던 수많은 잘못 때문에 일어나 이입니다. 크게는 그렇고 작게는 나의 삶이 혹시 누군가에게 내가 자꾸 하나님의 이름을 뭐 들목이 말하지만
어 사실 그게 내 의도와 내 마음인 거라서 오해를 어 일으키거나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너무 하나님 이름을 내 마음에 갖다 쓰는 것이 아닌지 우리가 그런 분에서 겸손하게 어 저는 당연히 이것도 모든게 잘못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 믿음을 찾고 구하고 그 보면서 아 이게 하나님이 우리 원하시는 것이다라는 거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내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또 그것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필요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까 얘기했던 부분을 연장에서 말하면 삶의 남용이에요. 예배 때는 내가 정말로 수님 수없이 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주님 이렇게 고백하고 부르고 있지만 정말 주님이 나의 삶에서 그런 주님이 되시기를 원하고 그렇게 바라고 있는 것인가? 혹시 내가 오늘 이렇게 평일인데이 평일이라 부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내가 예배 때는 주일 주님이라 부르지만 혹시 내 삶에 너무 다른 것들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내 삶의 모습과 위배될 수 있다는 거죠. 아, 적어도 완벽하진 않더라도 늘 진실하게 아, 내가 이렇게 예배로 시작하는만큼 내가 예배 때마다 주님, 하나님 나의 주인님 고백하는만큼 정말로 그 고백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마음으로 내가 나의 삶에서 애쓰고 있다면 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저는 그 삶이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이 어떻게 시작하시는지 아시죠? 하나님의
이름 부르고 그다음에 앞부분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어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의 가치를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름받는 거 이것은 단순히 입으로 찬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자의 합당한 삶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그 이름이 거룩하게 될 수 있도록 그의 합당한 삶을 살아라까지가 죽기 담겨 있는 이름에 대한 신학인 거예요. 그러 볼 때 십계명 상계명은 망령되지
망령되게 하지 말라라는 하지 말라라는 언어를 쓰고 있지만 주기도문은 이걸 바꿔서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라. 거룩히 여김 받들도록 너희가 살아내라. 사실 이것은 같은 이야기인 거예요.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가 영화롭게 해드려라. 우리가 누군가에 가서 내가 누가 보내서 왔습니다. 이래서 현우가 누군가서 아 제가 목사님이 보내서 왔습니다라고 하는 순간 이제 현우가 하고 있는 말과 현우가 하고 있는 행동은 보낸 자를 드러내는
거예요.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 드러나는 거.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종귀한 여김을 받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이 삼계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 21절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어요. 근데 또 마태복음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 또한 있습니다. 주님 부르는 거 중요합니다.
오히려 저는 여기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난 그 이름 안 부 안 불러야 돼라고 해서 안 부르면 어 그것 또한 잘못된 거예요. 우리 주님 찾아야 됩니다. 불러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는 기억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을 다해서 아 주님 내가 정말로 하나님 뜻을 드러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통해서 높아질 수 있도록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답답게 나의 삶을 드리기 원합니다.
살기 원합니다. 이런 우리 안에 거룩한 욕망, 거룩한 갈망함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쁨 받으시고 그것이 저는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정말 삶으로 예배하는 그런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 정리해 보면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명령, 주님이 주시는 뜻,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부르십시오. 주님을 부르십시오. 이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즉 주님을 부를 수 있는 자가 된
주님과 관계 맺은 자답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이 시간에도 그리고 오늘 하루 중에도 그렇게 주님을 찾고 주님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사람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에 있는 자답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고 삶의 순간순간에서도 주님 아버지하고 찾을 수 있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 관계 없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단절된 자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된 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주셨음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혹시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을 가볍게 여긴 마음이 있다면 이 시간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뜻에 혹시 포장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모습이 있다면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늘 정직하게 하나님 마음을 분별하고 어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더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배 안에서 내가 부르고 찾은 그 이름대로
나의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시고 나의 삶을 통해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나를 세상의 사명 가운데 보내신 주의 이름이 높아질 수 있도록 내 삶으로 주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그 고귀한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