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할렐루야. 아멘. 저희 분위기가 굉장히 다운됐는데 저희 고난 주간이라 또 저희가 같이 어 약간의 뭐 무거운 마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침 일찍 모여서 함께 예배할 때에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같이 예배를 좀 준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네.이 이 시간 함께 같이 찬양하시겠습니다. 같이 박수 치시면서 함께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만왕 만왕 내 주께서 왜 고쳐하겠나 이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을 연기 주 십자가 주 십자가
못 받김을 속 죄하 만인가? 그 긍휼함과 은혜에 말할 수 없음 볼 때에 나의 마음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 내 눈 내 기쁨 영원하도다. 우리 같이 3절 고백하겠습니다. 늘 울어도 늘 울어도 그늘에 수 없네. 나 주님께 만쳐서 주의 이름.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마음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데 참 내기 우리 한 번 더 같이 고백합시다.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마음에 끈꽃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간데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아멘 아멘 M.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니 성도 대답하였다. 너는 기억하고 있나?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항도를 그가 회개하였을 때 나 너랑 받았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 주님의 영소서. 주인도 따라 사랑할 동안 사랑과 충성 내오리다. 3절 같이 고백하겠습니다. 걱정 근심 어두운 늘 걱정 근심 얻은 늘 너를 둘러 엎을 때 주께 내 영 맡기겠나 최우 승리 믿음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물처럼 선뜻해하리라.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영소서. 주 이름은 너 따라 사랑할 동안 사랑과 충성 내 우리 한번 더 같이 고백하겠습니다. 의 심령이라 우리의 심령 주의 것 주님의 영소서. 주인도 따라 사랑할 동안 사랑 충성 내 오리하 우리이 시간 같이 한번 기도하기 원합니다. 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러 가시기 직전 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어보신 것처럼 지금 우리들에게도 지금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지 예수님이 물어보실 때에 우리가 방금 찬송으로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그 길을 선뜻 따라간다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어, 그 길이 정말 어렵고 어, 세상은 그 길을 옳지 않은 것이다 얘기할지라도 어,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어,이 시간 우리가 같이 고백하며 기도하기 원합니다.이 시간 기도하실 때에 우리가 같이 소리 내어서 뭐 너무 큰 소리가 아니어도 좋지만 어,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하며 나아가겠다고 함께 기도하시면서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 아버지 하나님 함께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간들을 부르실 때에 우리들이 그 길에 갈 수 있냐고 모르실 때에 하나님 우리들이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되도록 하여 주는 것 정말 힘든 길이지 않다고 할지라도 하님들은 그것과 다 따라가겠다고 마음에 하나님 주님는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가지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들 우리들의 마음을 주시며 우리들 함께 주기 원합니다. 우리 시간 주님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침에 우리가 함께 모여서 이렇게 하나님 예배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곳에 모여서 우리 때는 이 특새의 기간 동안 우리가 더욱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의 이 기도가 우리의 하루를 바꾸는 그런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우리 오늘 첫날 이렇게 함께 하시는 분들 반갑습니다. 네. 우리 오늘 함께 여러분과 같이 보고 싶은 말씀은 오늘의
메일 성경 묵상 본문에 해당하는 요한복음 18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제 어 아시겠지만 매일 성경 본문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절기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복음 본문도 그 묵상 본문에 해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시피 가론 유다에게 가론 유다와 함께 온 사람들에 의해서 대제사장에게 가게 됐던 것을 요한복음은 이 앞부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요한복음을 잘 보면 예수님이 무력하게 끌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잡으러온 리들에게
당당히 나서 이렇게 물으세요.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그러니까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지 아십니까? 내가 근해요. 어 그러니까 오히려 너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서 내가 그 사람이다. 이러니까 예수님 위함 앞에 잡으러온 사람들이 물러서서 엎드어졌다라고 성경이 표현할 정도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닥친 위기 앞에서 당황스러웠던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칼을 꺼냅니다. 그리고 닥치 대로 휘둘릅니다. 네. 그 결과 그 대장의 무리 가운데 하나였던
말고의 귀를 자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시죠.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네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친히 결박당하시고 무리에 이끌려 안나스의 집으로 갑니다. 요한복음이이 안나스가 누구인지를 소개하기 위해 그 해의 대지 대지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고 그렇게 명시해 줍니다. 안나스가 원래 대지사장입니다. 어 아시겠지만 대지사장은 한 명뿐이에요. 근데 성경에 보면 가끔 대제장들이라고 나오는 것은 전직 대장과 현직을
함께 통틀어 이야기하는 겁니다. 안나스가 원래 대재상자가 갖고 있다가 그의 첫째 아들 엘르살에게 물려주는데 엘르아살이 2년 만에 가야바에게 넘깁니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당시에 대장 가야바였던 건데 어쨌든 이 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가장 어른인 안나스가 가장 권위가 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안나스의 집으로 예수님을 데려간 것입니다. 어 어떻게 보면이는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보자면 불법 심판과 불법 감금입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자마자 그 소식을 알고 또 다 도망쳤습니다.이는 이는 예수님과 함께 반역의 무리로 취급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나 이때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 딱 몇 명 있습니까? 두 명 있어요. 두 명은 도망치지 않았어요. 아마도 한 사람은 이 요한복음의 저자였던 성경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요한이었을 거예요. 그 또 한 사람 누굽니까? 베드로였어요. 요한과 베드로는 안나스의 집으로 갑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해왔던 말이 있기 때문에 얼떨결에 따라왔을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해왔던 말이 뭐죠? 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이 얘기를 계속 해왔으니까 어쨌든 스스로도 믿지 못할 두려움이 있고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서 거기까지 갑니다. 한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도와 또 제자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자는 제상과 자랑하는 자라서를 따라 제사의 시간들에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가 자 사이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직기 한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드리고 들어가. 네. 여러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시죠? 아마도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은 요한이라고 보통 보고 있고 그니까 베드로와 요한 그래도 예수님을 가장 열심히 따랐던 두 사람이 어 예수님의 그 간금한 곳에 따라갔던 것입니다. 근데 요한은 좀 특이했어요. 요한은 인맥이 있었다고 해요. 요한는 인맥을 이용해서 이미 대제사장의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밖에서 어쩔 머뭇거리던 베드로를 보고 요한이 다시 나와서 문재기 한녀에게 아 나하고 같이 여기 온 사람이다라고
가면서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던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찰라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당신도이 사람의 그 예수님 말하는 거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이에 베드로가 난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얼교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안에 들어간 베드로는 어디에 자리잡아야 될지 몰라갔고 이렇게 하다가 그들 날이 추웠기 때문에 대세상의 종들과 경비병원들이 숯불을 피우고 불을 째고 있는 곳에 떠들어서 무리
중에 한 사람처럼 거기에 있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고 있을 때 성경의 렌즈는 예수님을 향해서 어 이제 기록됩니다. 당시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지의 응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 이 순간에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해요. 나는 드러내놓고 세상에 말하였다. 나는 모든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숨어서 은밀하게 말한 것이 없다. 그러 말을 하였는지는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말한 것을 다 알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경비병 한 사람이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리면서 대재상에 그게 무슨 말릇이냐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 향해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 말에 만약에 잘못이 있으면 무엇이 잘못인지를 증언하라. 내가 옳은 말을 했으면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이렇게 예수님이 어쩌면 이야기하고 있는 그 부분을 성경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렌지가 이번 베드로에게 갑니다. 예수님이 신문에 바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던 그때 불을 찌고 있던 베드로를
향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도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두 번째 추궁의 베드로는 부인하며 나는 아니다라고 다시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 겟세마네에서 아까 왔듯이 유다가 이끌고 온 사람들에 의해서 어 체포당했던 그 순간에도 나사렛 예수를 찾는 그 사람들 향해서 내가 그다라고 말하셨던 예수님 여기서 썼던 내가 그다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애곡 에이미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낼 때마다 사용했던 단어예요. 반면 그분에게 난 속해
있다. 난 그분의 제자다. 난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베드로는 네가 예수께 속한 자가 아니냐라고 했을 때 뭐라고 대답했냐면 나는 아니다.이 대비를 지금 요한복음은 보여주고 있어요. 매우 의도적으로. 예수님 한 번, 베드로 한번. 예수님 한번 베드로 한번 하면서 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진리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한 반면 베드로는 계속해서 부인하고 멀어져가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귀를 잘렸었던 말고의 친척으로 예수님을 체포하러
함께 갔던 사람이 말합니다. 네가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세 번째 이 추궁하는 사람의 정체는 요한복음만 기록하고 있는데 이제 그 동상까지 왔던 또 베드로가 칼을 이러서 자기 친척에 귀가 잘렸던 걸 본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이번에 베드로는 더욱 단호하게 부인해야 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이 세 번째 부인에서 예수를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했다고 기록합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온 위기 공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살의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 그가 부인했던 그 순간 닭이 물었습니다.이는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이 당시가 겨울철이었고 겨울철의 닭이 3시에서 5시 새벽이 정도에 우는 것을 감안하면 예수님이 잡혀온 시간과 봤을 때 예수의 신문은 굉장히 길었고 베드로의 부인도 아마 그 시간이 상당하게 흘렀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부인하는 순간 예수님과 시선이 마주쳤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막 저주하며
부인했던 그 순간 곡 들었을 때 내 부인하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거죠. 예수님과 눈이 마주신 그 순간 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통곡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이 베드로의 에피스로 봤을 때 어떤 이야기가 어떤 마음이 좀 드십니까? 저는 이 장면에 묵상하면서 베드로에 대해서 조금은 변호하는 마음이 제게는 있어요. 어떤 거냐면 그래도
아예 주님을 따르길 시도도 하지 않고 도망쳤던 다른 열명의 제자보다는 어쩌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쫓아왔던 베드로가 저는 몇 배는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큰 오명은 베드로에게 갔어요. 더 큰 배신을 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안 해서 아무 욕도 안 먹는 아니 덜 먹는 다른 제자들보다는 제 눈에는 제 마음에는 베드로가 나왔다고 전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아, 내 삶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저에게 회심 이후에 청년 시자부터 강하게 있었습니다. 뭐라도 해 드리고 싶다. 그렇게 살려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때로는 무무한 어떤 일례도 힘써 왔습니다. 그런데 저의 삶에는 아이러니하게 온몸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도 많습니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그분의 마음이 지금 무엇인지 알면서 때때로 어떤 부분에서는 온몸으로 부인합니다. 그것이 저의 어쩌면 본체 하나도 강하지 않은 저의 내면이기 때문이 곱니다. 베드로는
두려웠고 주님과 함께 죽겠다는 그의 의지는 진짜 위기 앞에서는 힘을 잃었습니다. 그의 굳은 다짐과 그의 각오는 위기 앞에서 한없이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진짜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이 세 번의 부인 앞에 진심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괴로울 수 있는 것이고 저는 진심으로 괴로울 수 있는 베드로의 이 마음이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넘어질 것이 뻔히 알기 때문에 나는 실패할
것이 뻔히 알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아무런 약속도 아무런 결단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넘어지다도 늘 내 진심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저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이에요.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어요. 베드로의 진심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약함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 번을 부인하고 떠나갔던 베드로를 찾아 나서집니다. 일부러 베드로가 실패했던 것과 나중에 부활한다 이후의 장면이 21장을 보면
요한복음 베드로가 실패했던 그 날 밤이 떠오르게 숯불을 똑같이 피워놓고 베드로가 세 번을 부인했기 때문에 다시 세 번을 고백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렇게 예수님 또한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베드로를 회복시키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음 앞에 베드로가 뭐라고답지 아시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왜 이렇게 얘기했을까요? 내 몸은 주님을 거부했어요. 내 몸은 주님을 외면했어요. 근데 내가 주님을 진짜 사랑하고 있는
것은 거짓은 아니에요. 그래서 주님 제 마음만큼은 주님께서 아실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아셨어요. 그래 주님은 오늘 이곳에 모여 있는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서 많이 쓰는 표현처럼 회심의 고백에 담겨 있는 주님 제가 주님이 원하는 삶을 주님이 주인된 삶을 살겠습니다라는 그 고백의 마음에 담겨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그래서 회심했는데 내가 이 세 결단했는데 주일마다 나는 이렇게 결단하는데
살지 못하고 자꾸 넘어지는 내 연약함을 아십니다. 여러분 반복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나는 어차피 못 하니까 결단도 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이렇게 하니까 마음도 먹지 않을 거야. 매번 내가 속으로 모임에서 어떤 모임에서 나눠봤자 난 지키지 못하니까 난 그냥 하지 않을 거야. 그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아닐 거예요. 나의 핑계이고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에게들 우리를 그 자리에 묶고 돌려는 악의 거신말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무려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 말씀하십니다. 넘어졌을 때 나를 여전히 사랑하느냐? 나를 진짜 사랑하느냐? 그러면 나의 길에 가자. 오늘이 아침 우리가 모였습니다. 오늘이 예배로 우리의 하루 시작합니다.이 아침에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께 내 마음을 드리고 또 내가 지금 혹시 넘어져 있다면 주님이 날 찾아와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주님의 그 물음 앞에 다시 한번 응답하고 주님 내가 주님 원하는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하루. 그래서 오늘
하루에 또 넘어지라도 다시 주님께 서서 아버지께 나아가고 그렇게 내 삶을 드리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그런 마음으로 함께 찬양하고 우리 함께 어 기도하는 자유 기도로 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이 본문에 대한 같이 곁다 찬양할 텐데 내가 예수 못 박았습니다. 우리 함께네 나와 주시죠.네 네. 우리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도지도 없는 예수 응도 죄도 없는 단신이 깊이 감쳐드 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속죄의 재물되어 저주받은 나무의 에 달리셨네. 내가 예수를 내가 예수를 당신을 부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파았습니다. 신이 행하시니 모든 약속을 다 있고 십자가의 예수를 맨날 알았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박았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지고 아버지께 인도하시는 내가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 우리 2절로 시작합시다. 예수 참사랑과 예수 참사랑과 평화의 주님 소망 없이 멀어진 우리를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님과 온전히 아목케 하기
위해 십자가로 막힌다. 허우셨네. 아멘. 내가 예수를 내가 예수를 당신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다시 못 받았습니다. 신이 행하시니 모든 약속을 나 있고 십자가의 예수를 매달았네. 내가 예수를 당신의 의인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지고 아버지께 인도하시는 내가 예수를 못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때로 날마다 베드로와 같이 잘못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후반부처럼 우리가 이제 주님을 고백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신 당신이 행하신 흔들리지 않는 사랑 깨지지 않는 약속했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하시네. 내가 예수를 사랑 한번 봅시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보 내가 예수를 당신을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 당신이 행하시니 당신이 행하시니 흔들리지 않는 사랑 깨지지 않는 약속 붙들겠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 아버지께 인도하시 우리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며 같이 기도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