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아멘. 비도 오고 어 비가 와서 나오고 싶다가도 안 나오셨을 수도 있는 그러한 날씨 가운데 그래도 우리가 기도로 아침을 깨울 수 있음에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침을 주님께 기도로 그리고 주님의 그 길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주님께 귀한 예배와 주한 기도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찬양의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그 주님의 보혈을 기억하며 찬양합시다. 내 주의 보혈은 내 주의 보혈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신 주 날로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한 더 찬양합시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2절로 함께 찬양합시다. 약하고 주해도 주께로 나가며 힘 주시고 내 주함을 꽃씻어 주시 아멘 내가 주께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소서. 3절로 찬양합니다. 날 오라 하시는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과 평안함 다 주려하니 내가 주께로 내가 주께로 지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4절로 갑니다. 복받아 살길을 얻었네. 아멘. 한없는 넓고 그늘에 불어주 한없이
넓고 한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한없이 한없이 넓고 큰 은혜 들어 주소서. 아멘. 내가 주께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내가 주께로 내가 주께로 고백합니다. 지금 가오 주님과 함께 걷길 소망합니다. 십자가의 무열로 날시사 한번 더 찬양합니다. 내가 주께로 내가 주께로 지금 여우니 십자가의 보혈로 시어 주소서. 아멘. 우리가 이 찬양을 했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또한 이 길 가운데 우리에게 흘려주실 그
보혈을 기억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어제 들었던 그 말씀처럼 베드로가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고백했지만 그 연약함에도 그래서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 연약함이 저희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몰아하지 않으시고 우리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이 시간 우리가 이 예배를 통하여 이 특새 기간을 통하여서 주님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시간이 되어 달라고 아버지 우리의 고백을 주님께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목소리 높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찬양 가운데에이 시간 기도하는 모든 시간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 드림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연약함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그 주님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한 어찌 넓고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주님께 다시 한번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께로 가오니 주님 베풀어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옵소서.이 이 시간 고백하는 우리를 주님 기억하여 주셔서 이 시간을 주님께 온전히 올려 드립니다. 함께하여 하나님 오늘도 이른 아침에 나와 주님을 찾습니다.이 이 시간 뭐 몸은 피곤할 수 있지만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더 간절히 사모하며 주의 말씀을 깊이 바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네. 우리 조금 어색하지만 옆사람과 한번 인사하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굿모닝. 네. 다소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네. 이렇게 아직 헤더우 뜨지 않은 시간부터 예배하시고 또 일상으로 나아가신 여러분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네. 오늘의 설교의
제목이 진리를 만나다인데요. 어 오늘 여기 모이신 여러분은 진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 진리의 의미는 참된 이치, 참된 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기독교나 또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죠.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진리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자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각자가 생각하는 참된 것, 옳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 요즘에 SNS나 또 인터넷 뉴스
등을 보면 같은 사건인데 그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게 맞다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다. 이게 옳다라고 말하고 있죠. 각자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그 참된 이치, 진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도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어, 무엇이 진리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의 그 간극을 좁히기란 쉽지 않았죠.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그 진리의 종류가 더 다양해지는 거 같아요. 기술의 발전, 정부의 발전으로 우리의 세상은 보다 더 넓어졌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 다양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생각들, 더 많은 진리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죠.이 이 다양하고도 방대한 진리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다름과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 너의 생각은 그렇고 나의 생각은 이래. 너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해. 저는 그 태도가 아주 틀렸다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 그 다양성은 다양해졌을 수 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것을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진짜 참된 진리란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2,년 전에 빌라도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가 이렇게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요? 어제는 예수님이 잡히신 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 즉 안나스의 법종으로 끌려가 신문을
당하신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오늘의 본문에서는 안나스의 그 법정에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법정으로 장소가 전환됩니다. 밤새 대제사장의 집에서 예수님을 신문하던 이들은 이른 아침 해가 밝아오자마자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조로 끌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빌라도의 사형 선고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유월절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약 이들이 이방 사람이었던 빌라도의 관저에 들어갔다가 혹시라도 부정하게 될까 봐
어 그런 걱정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은 당시에 가장 중요한 절기였고 정결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하냐면 예수님만 빌라도에게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결을 지키기 위해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요한복음은 이들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주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은 얼마나 이들이 뻔뻔한 위선자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방금 전까지 이들이 무엇을 하다왔죠? 아침이 밝기 바로 전까지 이들은 밤새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불법 재판을 버리다가 왔어요. 거짓 증인들을 매수했고 예수님을 오직 죽음이라고 하는 그 독착지로 몰아가기 위해서 그들끼리 짜고치는 재판을 진행하다 왔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그들의 살기가 가득한 그 마음에서 비롯된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조금 전까지 그렇게 어 일을 벌렸던 그들이 지금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정결법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그 사소한 정결법까지 신경 써가며 지키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가장 원하셨던 그 계명 사랑과 정의는 무참히 짓밟고 있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죠. 겉으로는 거룩함을 말하며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진리를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어,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교회 안에서는 신앙적인 말을 하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그럴 듯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삶의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 오늘 우리가 이 유대인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진리는 말로 증명되지 않고 삶으로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의 거룩한 진리를 말하고 있어도 삶이 따라가지 않는다면, 삶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를 따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했던 그들처럼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진리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이어서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라도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요. 빌라도의 질문은 어 아마 정치적인 질문에 가까웠을 거예요. 만약 예수님이 정말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로마 제국을 향한 반역이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이 빌라도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빌라도에게 역으로 다른 질문을 던지십니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요.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요.
쉽게 말하면 이게 빌라도 너의 생각이냐 아니면 남의 말이냐 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빌라도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 그 자신이 정말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귀찮은이 상황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것인지를 말입니다. 빌라돈 예수님의 이 질문에 회피하는 반응을 보여요.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요. 당신의 동족과 대제자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어.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빌라도의
대답은 이건 유대인 너희 민족의 문제야. 나는 상관이 없어. 나는 그냥 이 일만 처리하면 그만이야 와 같은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빌라도에게이 예수라고 하는 사람은 그에게 그다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의 삶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진짜 왕인지 누구인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이 이 빌라도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이어가시는데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 나의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야 할 것이 그러나 사실 아 것이 아니라 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요 예수께서 당신이 말대로 나는 왕이요 나는지를 정하기 위하여 떠났으며지를 하기 하여 상하 주의 속한 사람은 내가 말의 주의 지 유대인들의 고발처럼 정말 예수가 로마의 반역자인가 아닌가에 관심이 있던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거듭해서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시죠. 만약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예수님도 세상의 방법대로 유대인들과 싸워서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으셨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어 어쩌면 여기서 나오는 예수님의 부하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제자 베드로가 앞서 예수님을
지키려 칼을 꺼내들었을 때 오히려 그를 나물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로만 진리를 말했던 그 유대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셨던 그 진리를 실제적인 삶으로 살아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따르고 힘들고 때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유대인들처럼 거짓 뒤에 숨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던 그 나라의 진리를 그대로 행동하시죠. 여러분, 어쩌면 세상과 예수님이 이렇게나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진리의
차이에서 왔을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왕의 모습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왕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좋게 여기는 진리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그 진리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더 강하고 화려하며 다른 제국을 얼마든지 찍어 누를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왕을 원했습니다. 그들의 배를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왕과 진리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 뿐이었죠. 굳이 약함을
자처하고 종의 섬김을 기꺼이 보여주었으며 찍어 누르기보다 오히려 찍김을 당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들의 배를 불리기보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결핍과 진짜 허계를 채우는 진리를 가르치는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답변에 빌라도가이어서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왕이요. 그리고 이 질문에 예수님은 비로서 그렇다라고 대답하시죠.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분의 나라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참된 왕이라는 답변입니다. 그리고이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빌라도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여러분, 예수님은 당신이 왕이요라고 묻는 그 빌라도에게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증언하고자 하셨던 그 진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요한복음은 앞서 이미 그 답을 알려 주었는데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여러분, 예수님은 그분 자체가 진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은 그 진리를 드러내는 증언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빌라도가 물었던 것처럼 여전히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요한복음이 그 답질문에 답하는 것은 진리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머리로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진리를 어떤 정보나 지식처럼 대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우리조차 설교를 듣고
아는 말씀이 많이 쌓여가고 신앙적인 지식을 많이 습득하면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냐 만약 그렇게 쌓인 것들이 단순히 우리 안의 정보로만 머은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삶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주님과 인격적인이 만남이 꼭 필요합니다. 진리는 정보나 이론이 아니라 주님 그분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짜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 진실한이 관계가 시작된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알지 못해도 삶이 변화하기 시작하죠. 우리가 얼마 전 들었던 그 세례자들의 간증처럼 말입니다. 물론 배우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힘써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힘써야 할 것이 있다면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과 나는 어떻게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은 아침부터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또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이유가 나의 신앙을 신앙의
지식을 채우기 위한 것 또는 교회 사는 어떤 것을 그저 참여하는 것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인격적으로 더 알아가고 더 깊은 사귐을 맺기 위해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지만 그 질문의 답이 자기 바로 앞에서 계셨음에도 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진리를 따른다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진리를 죽음까지 밀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리가 눈앞에 있었으나 진리를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 오늘 우리도 얼마든지 이런
함정에 빠져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채 교회만 다니는 그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죠. 여러분은 진리를 머리로 이해한 사람들이십니까? 아니면 삶으로 만난 사람들이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예배와 기도는 유대인들처럼 형식으로 지켜지고 있는 종교 생활입니까? 아니면 진리신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입니까? 오늘이 새벽에 주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빌라도처럼이 진리를 그저 지나치지 마십시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다라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사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도 그분처럼 진리의 증언자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진리를 만난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그 진리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그런 그들에게 오늘 여러분의 말 한마디, 여러분의 선택 하나, 여러분의 어떤 태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만나는 예수님, 처음으로 만나는 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모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모르는 그들에게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에 물음에 답이 되어 살아가 주십시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지식이 아니라 관계로, 정보가 아니라 존재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이렇게 진리를 살아내고 진리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네.이 이 시간 함께 결단의 찬양 부르시면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고난으로도 또 그분의 죽음으로도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리를 살아내는 증언자의 삶은 전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에도 때로는 억울함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도이 길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어 진리의 증언자 답답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이 시간 우리 이런 마음 담아서 함께 고백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나를 택하사 주님 나를 택하사 잃어버린 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게 하시네. 어둠을 밝히며 자가운 마음이 진리의 빛나게 하소서.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주님 나를 택하사 잃어버린 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게
하시니 어두움을 밝히며 자가운 마음이 진리에 비천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보내소서. 시련이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소서. 주께서 가신 길을 나도 걸어가게 하소서. 우리 처음부터 다시 고백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택하사 주님 나를 택하사 잃어버린 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게 하시네. 어두음을 밝히며 자가운 마음이 주리에 빛나게 하소서. 보내소서. 보내소서. 시련히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가신 일도 거나게 하소서.
보내소서. 보내소서. 시련히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가신 길을 나도 걸어가게 하소서. 같 고백하겠습니다. 보내소서. 시련이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가신 일을 나도 걸어가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처럼 이제는 이 땅 가운데 우리를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시련이 찾아하고 고난이 따르고 불편함이 따르는 그런 길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라 그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이 시간 주님 내가 그런 진리의 길을 따라가는 작은 예수로 살겠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진리의 증언자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세상의 질문에 답이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하는 마음 담아서이 시간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