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오늘 좀 이렇게 인사하면서이 예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좀 이사해 볼까요? 때문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 네.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됐는데요. 오늘 저희가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냐면 십자가 기도에는 저희가 고난 주간 특새 때 함께 했던 말씀들을 토파보기 식으로 또 나누고 또 거기에 대한 결단의 사들도 나누고 앞에하고 뒤에는 또 오늘 몇 가지 찬양을 함께 더해서 오늘 십자가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만 같이 노래하고 되시기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어쨌든 오늘 고난 주간이고 십자가 기도회니까 우리 십자가에 대한 찬양을 먼저 한번 같이 고백하며 나아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찬양할 때 저희 중에는 누가 솔로 하더라도 개치 마시고 그냥 힘차게 같이 찬양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십자가 오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주으신 주님의 내 생명네 오 놀라운 십자가 오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인 내 생명 명네 주 달려
죽은 주 달려죽 그시 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의 속 한 욕심을 헛된 된 줄 알고 허리 2절로 찬양합시다. 죽으신 구주 죽으신 구주 밖에는 사랑을 맑게 하소서 보혈의 보혈의 고미어 교만한 마음을 교만한 마음을 버리 아멘 온 놀라운 십자가 온 놀라운 십자가 오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의 생명네. 오 놀라운 오 놀라운 십자가 오 놀라운 십자가 나를 위해 죽으신 주인의 생명네 아멘 못박퀴 순발 못박힌 소보니 큰잡이 큰잡이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가시로 만든
멸관 우리를 위해셨네. 우리를 위해 쓰셨. 아멘. 온놀라운 십자가 온 놀라운 십자가 온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인의 생명네 더 놀라운 놀라운 십자가 오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인의 생명내 혼놀라운 혼놀라운 십자가 온 놀라운 십자 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인의 생명네. 오 놀라운 십자가 날 위해 죽으신 주인 생겨네 온세 세상 만물 가셔도 주 은혜 못다 같겠네 놀라 가운 사랑을 받나 몸으로 몸으로 재을 삼게네. 아멘. 이 십자가가 우리에게 준 능력이
사랑이 참 놀라운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이 자리에 모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십자가 요정을 따라가 볼 텐데 아 그래도 이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가기 전에 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양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셨고 무엇을 하고자 하셨는지를 좀 찬양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을 가장 잘 담아낸 찬양이이 찬양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좀 생소할 수도 있는 어 그런 찬양입니다. 아 아마 들어보신 분도 있을 거고요. 찬양 하나하나의 가사를
따라보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안에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신지 우리 그것을 함께 찬양으로 고백하며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사랑에게 나스리라. 명하신 하나님 사람들 교만하여 하나님의 꿈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당신의 역사 속에 한민족하시고 세상 위한 목의 근원 원 삼으신 하나님 그들도 반역하여 하나님의 꿈을 팔고 거음 외치지만 하나님 나라 역사의 강물을 따라 오늘도 흐른다. 하늘로 흐른다. 모든 세상 속에 생명의 참빛으로
사랑의 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세상은 십자가에 하나님의 꿈을 복받고 거절했지만 그 아래 주 메시아 교회를 세우시고 땅 끝까지 그 복음을 전하게 하셨네. 하늘 아버지의 품 하나님의 나라 교회여 일어나 함께 가자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역사의 강문을 오늘도 흐른다. 하늘로 흐른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하나님 나라 이미 오신 약속의 나라 약속의 나라 찬양하라 하나님 나라 고도시 완전한 나라 아멘. 선포하라. 선포하라 하나님 나라임이요. 평화의 나라 평화의 나라 찬양하라.
하나님 나라 고도식 고도시 영원한 우리 목수로표 한번 기뻐하라 기뻐하라 하나님 나라 오시 약속의 나라 약속의 나라 찬양하라 하나님 나라 고도시 완전한 우리가 선포하며 나갑시다. 선포하라 선포하라 하나님 나라 오신 평화의 나라 찬양하라 하나님 나라 곧 도시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하나님의 하나님 나아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루고 싶었던 그 세계가 우리의 죄로 인해서 망가지고 깨어졌지만 그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또 그것을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그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 가장 중요했던 사건 우리 예수님의 사건을 우리가 오늘 좀 토파복 형식으로 요한복음 18장 12절부터 하나하나 같이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오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어 토파복이라고 하는 것은 더듬어가며 살펴보다라는 의미이고 우리 교회에서 이전부터 몇 번이나 뭐 요한복은 토파보기를 한 적도 있고 또 다른 것 토보기 한 적도 있기 때문에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러
계실 때 가론유다가 데려온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붙잡히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장면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무력하게 끌려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잡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서 먼저 나서서 물을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에고에임미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메시아적 정치성을 들어갈 때마다 사용하시는 요한복음의 굉장히 중요한 문구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체포당하실 때도 신문 당하실 때도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요한복음은 이 예수님과 어쩌면 렌즈를 교차 편집한 것처럼 베드로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대세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그 거기에 따라갔던 베드로에게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 그때 베드로가 내가 그니라 말하는게 아니라 나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성을 물을 때 내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베드로는 그의 정체성을 당신이 예수께 속한 자이냐라고 물을 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오늘 예배하러 나왔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막상 두려움 앞에 서면이 고백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해가 발생하면 때로는 사람들 시선이 무서울 때면 우리도 삶에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내가 예수를 따르는 자가 아닌 것처럼 나는 아닙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가 몸으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저는 이 베드로를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떤 분은 참 이해가 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제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래도 예수님을 지켜보겠다고 따라왔습니다.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언쳤냐면 그에게 아무리 진심이 있어도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 안에 진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 주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진짜 있는데 그러나 내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란 것을 베드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날 베드로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내 결단을 지켜 나갈 수 없구나. 난 약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사실 아셨고 그의 부인도 알고 계셨고 실패 후에 너무나 속상해 하는 그의 눈물도 아셨습니다. 그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는 매우 속상했죠.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부인한
그에게 세 번의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다시 허락하십니다. 왜냐면 주님은 실패보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진심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실패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주님을 부인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예수에게 찾아가서 다시 물으실 것입니다. 그래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여러분이 꼭 주님 제가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비록 실패했지만 제가 주님을 얼마나 따르고 싶은지 주님 아시죠? 주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부족해서 자꾸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사랑하는 거. 주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내 부족함 가운데 숨는게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그런 마음으로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그 마음을 함께 고백하며 이제 찬양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예수 흠도 죄도 없는 당신이 깊이 감쳐두 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속죄의 재물되어
저주받은 나무에 달리셔 네. 예수 참 사랑과 평화의 주님 소망 없이 멀어진 우리를 하나님과 온전히 화목케하기 위해 십자가로 막힌다. 나 허무셨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은 못 받았습니다. 신이 행하시니 모든 약속을 다 있고 십자가의 예수를 매달았네. 내가 예수를 당신은 부인했습니다. 내가 당신은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지고 아버지께 인도하시는 내가 예수를 못 박았으 이제 주님께 고백합시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내가 예수를 당신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행하시니 흔들리지 않는 사랑 깨지지 않는 약속 붙들겠네. 내가 예수를 내가 예수를 당신 바라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갚을 수 없는 갚을 수 없는 사랑 아버지께 인도하시니 내가 예수를 사랑합니다. 아멘. 우리도 부인할 때 있지만 내가 언제나 예수를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네. 이렇게 예수님께서 어 제사장의 집에 끌려가셔서 밤새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예수님은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려가시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는 반드시 빌라도의 사형 선고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만 빌라도에게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유월절을 위해 정결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정결을 향한 그들의 열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뻔뻔하기 그지없는 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나스의
집에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 살기가 가득한 미움으로 불법 재판을 버렸던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죠. 진리는 말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삶으로 증명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처럼 거룩한 진리를 말하고 있더라도 삶이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했던 그들처럼 어쩌면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혼자 서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
빌라도가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요.이 질문에 예수님은 이처럼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요.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예수님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어쩌면 제자 베드로가 앞서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방법대로 칼을 꺼내 들었을 때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를 나물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로만 진리를 말했던 그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진리를 실제적인 삶으로 살아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따르고 힘들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그들처럼 비겁하게 숨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셨던 그 나라의 진리대로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모습을 살아내셨습니다. 어쩌면 세상과 예수님이 이렇게나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진리의 차이에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왕의 모습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자 했던 왕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좋게 여기는 진리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강하고 화려하며 다른 제국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왕을 원했으나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꺼이 약함을 자처하며 종의 섬김을 보여주었고 찍어 누르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찍김을 당하여 승리하는 그 세상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 빌라도가 한 번도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요?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요.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소.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 진리가 예수님 바로 자신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나는 길리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여러분 예수님은 그분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삶은 진리를
담아내는 증언이 되었습니다. 진리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만나는 것입니다. 진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정보나 이론이 아니라 주님 그분 자체가 바로 진리다라고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진리를 알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진리이신 주님과 더 깊은 사귐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다라는 것은 단순히 그분만의 사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예수님의 그 뒤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빌라도처럼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요? 그런 그들에게 우리의 말 한마디 우리의 선택 하나 우리의 태도와 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예수이자 처음 만나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이신 예수를 보여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주님을 따라 진리의 증언자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의 무릎에 답이 되어 살아가 주십시오.
진리이신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셨다면 우리의 삶 또한 진리를 담아내는 증언의 그릇이 될 것입니다.이 이 시간 이런 마음을 담아서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나를 택하사 잃어버린 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게 하시네. 어둠을 밝히며 차가운 마음 녹이는 진리에 비쳐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시령이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가신 길을 나도 걸어가게. 하소서. 보내소서. 보내소서. 시련히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다시 일을 나도 걸어가게. 우리 목소리로 고백합시다. 보내소서. 보내소서. 시련이 찾아올 때도 주님의 눈물 기억하게 하소서. 보내소서. 주께서 가신 길을 나도 걸어가게 하소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그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라 진리의 직원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네. 우리 세 번째 메시지는요. 요한복음 18장 39절부터 19장 16절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의 종교자들의 신문을 받으신 후에 이제 로마의 총도
빌라도에게 보내집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게 나와 있는데 예수님께서 기존의 질서를 흔들고 있고 자기들이 세운 어떤 자기들 세계를 깨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죽이고 싶지만 예수님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당시 유대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형 같은 죄의 처벌은 로마의 승인 안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자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가 그들이
원했던 것이 십자가 영이었는데 십자가을 당한다는 것은 로마에서 어 로마의 반역제 가장 극형으로 죽이는 것이었고 유대 사회에서는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받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그러한 프레임을 어 씌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신문에 봅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솔직한 마음은 나는 이 사람에게 죽어야 될 만한 어떤 죄도 찾지 못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이제 예수님과 자신을 거리를 두고 자기가이
판결을 내리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종종 빌라도를 믿음의 사람이나 좋은 사람으로 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보면 빌라도가 지금 예수님의 무죄를 말하고이 판결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였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진짜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서 판결을 낼 수 있지만 그는 그거보다 내가 이런 판결했을 때 어떻게 나올까? 이렇게 판결했을때 어떻게
나올까? 여기에 대한 생각이 늘 가득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은 앞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유대 사회 전체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죽인 자로서 사형집행자로서의 어떤 지위를 떠하는 것은 그에게 정 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머리를 씁니다. 유월절에 특별 사면이라는 관래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서 예수에게 죄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예수에게 따르는 자들도 있으니 예수를 내보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가 이 너희의 왕 유대인의 왕을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빌라도가 예상하고 다른 소리가 들려옵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그 앞에 모여 있는 법정에 있는 군중들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십시오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대신에 그들이 놓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바라바는 강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근데 사실 다른 복음에서도 보면 그는 밀란과 살인의 연로된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단순 강도 살인범이 아니라 로마를 대항해서 버리는 어떤 밀란이나 이런 데서 주동해서 밀라 그 로마의 협조한 관리들을 죽이거나 했던 폭력적인 저항 운동 세력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빌라도에게도 아이 바라바에게도 누군가는 저 사람은 나하고 뜻이 맞아라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예요. 어떤 이들은 바라바가 오히려 로마에 맞서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유대인들은 로마의 집배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자가 메시아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해 줄 것처럼 믿었던 그래서 종료나무까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셔서 외쳤던 그 기대주 예수님은 오셔서 로마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가르침은 원수를 사랑하라. 칼을 버리고 평화를 외치고 로마의 지배보다는 죄와 악에 대해서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것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우리 로마로부터 구원해 줄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보다 바라바가 더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구원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 여러분. 오늘이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로 생각해 봐야 될 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그 자체보다 내가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서 나에게 일하여 줄 그런 구원자를 원할 때도 참 많은 거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 순종하기보다 나에게 있는 어떤 거를 빠르게 해결해 줄 해결자를 원합니다. 때로는 바라와 것처럼 진리보다 나의 안일를
더 원합니다. 거룩보다 성공을 더 원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얼마든지 빌라도가 될 수 있고 우리도 얼마든지 거기 모여는 군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더 충격적인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빌라도가 마지막까지 못습니다. 그럼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요. 그때 모여 있던 사람들 거기에는 대제사장도 있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 사람이 왕이라고요? 우리에게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발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배신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왕을 거부하고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만 충성하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역시 우리의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입술로는 주님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나의 삶에서는 내가 세상에서 중요하게 힘, 돈, 인정, 안전, 성공 여기에 더 충성할 때가 많습니다. 내 삶을 바꾸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라고 나의 충성 고백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도 우리에게는 가이사가 왕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요한복음의이 재판정은 2,년 전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 오늘 우리 안에서도 다시 한번 주님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물으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예수님이 왕이신다라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 정말 마음의 충성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선택 속에서 나의 모든 생각 속에서 나의 어떤 고민거리와 걱정 속에서도
정말 주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 금요일 밤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가? 나는 정말 예수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가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님을 세상의 왕이 아니라 참되신 왕을 선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우리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아프시는 그분의 크신 사랑을 노래합시다.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들을 위하여 아들을
재물로 로 삼으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재물되 실때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 가슴을 하나님 가슴을 독생자 주셨것만 인간들 부족한 원망할 때 얼마나 아프실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심령을 자신을 주셨것만 사람들 부인하며 욕할 때 자신을 주셨건만 사람들 부인하며 욕할 불리한 판결 속에 예수님은 결국 군중들의 외침을 이기지 못한 비겁한 빌라도에게 의해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가 처형이 행해지는 골고다까지
향하시는데 십자가를 매고 그 길에 가십니다. 당시 십자가 영을 받는 죄수는 형장까지 십자가의 가로틀을 짊어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때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붙은 한 문구를 아주 중요하게 보여줍니다. 빌라도가 패서 붙입니다. 여기 붙여 있죠? 한번 읽어 볼까요? 네. 네. 그렇습니다. 네. 이거 라틴어로 쓴 건데요. 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기였습니다. 지금 여기는 하나의 언어소였지만 히브리어와 유대인들이 쓰는 히브리어와 로마인들이 공식
쓰는 라틴어, 로마어. 그리고 그 당시 로마 전역, 유럽 전역에 쓰고 있는 공용어인 헬라어로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참 역설적입니다. 사실 조롱하려는 문구입니다. 네가 유대의 왕이에 유대 지자들은 자신들의 왕이라고 적혀는 저 글기가 모마 땅에서 빌라도에게 따집니다.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달라. 그러나 빌라도는 말합니다. 내가 쓸 것을 썼다. 이것은 빌라도가
유대의 시도에게 부리고 있는 고집 내가 너희보다 위야라는 수싸움에 불과합니다. 결국 이러한 나쁜 의도 가운데 조롱 가운데 붙여진 명패지만 요한복음은 사실은 여기서 놀라운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그분이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의 왕이 되기 위해서 오셨고 왕이 되기 위해 십자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 방패는 그 거짓과 그 죄악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진리였던 것입니다. 자기 백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우리 왕이 아니다라며 거부하지만 아이러니아의 로마 총독에 의해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온 세계 가운데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그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죽었고 유대인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유대인의 왕은 예수를 죽여야 되는 이유였고 예수님에게 유대인 왕은 내가 죽어야 되는 이유였습니다. 누군가는 오늘 우리 중에서도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이
사실 즉 회심의 고백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 나의 왕까지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를 잘 도와주는 분이면 좋겠다. 예수님이 굳이 내 왕이고 내가 그분 밑에 있다고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고해야 되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예수님이 왕이라는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이제 내 인생을 맡깁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이제 내 인생이 당신 것이니 당신이 돌보시고 제가 따르겠습니다. 그 왕 아래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 오늘 우리도 물어야 됩니다. 내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또한 요한복음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앞에 있는 두 장면을 보여줍니다. 한쪽에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이죠.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서 나누어갔습니다. 죄수의 마지막 소유까지 마치 전쟁의 승리자가 누리는 전리품처럼
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옷도 속옷도 다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조롱의 대상이었고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냥 자기들의 놀리감, 자기들의 어쩌면 욕구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근데 십자가 아래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바라보며 끝까지 그 곁을 지키고 싶어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들과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들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은 이용의 대상이고 어떤 사람 예수님에게는 나에게 위험이 있더라도 끝까지 내가 지키고 싶은 분입니다.이 질문이 우리에게도 주어지죠.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예수님께서 내가 뭔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분입니까? 내 문제를 해결해준 수사입니까? 아니면 내가 끝까지 따르고 싶은 내가 곁에 있고 싶은 주님이 저기 가신다면 주님이 이 사람에게 가신다면 나도 거기로 가겠습니다라고 하고 있는 나에게 그런 존재입니까?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나 하시는데요.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을 마지막으로 형성하는 이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자기 육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보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아 이분이 너의 어머니시다. 예수님이 지금 극심한 고통 가운데 계십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시점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는 자기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고 싶은 그 일을 해 나가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머니를 부탁하는 장면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전에 가르침에서 계속 드러나듯이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에서도 너희가 가족이다.너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된다. 그때 너희가 내자라고 한다.라고 하셨던 것처럼 십자가 앞에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제 혈연을 넘어서는 공동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된 공동체 그것을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때부터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를 모셨다.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가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십자가 앞에서 모여 있는 우리도 주님의 그런 마음 가운데 주님의 그런 사랑 가운데 주의 그런 비전 가운데 나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서로 다른 우리를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주님을 나의 왕으로, 아버지로,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묶어 주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아래에서 한 가족이 된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에게 다시 한번 그렇게
고백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피가 말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피가 예수님의 피가 당신과 나를 당신과 나를 가족으로 가족으로 묶어주셨습니다. 묶어 주셨습니다. 아멘. 아멘. 네. 그래서 우리는 예수 피 때문에 아무 관계 없는 예. 현우와 제가 어 형제라고네 고백하는 것입니다.네 네. 오늘 이렇게 가족된 여러분, 주님을 끝까지 따르고 싶은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지금 말했던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도 아니라 주님을 어쩌면 필요로만 쓰는 사람도 아니라 내가 주님을 진짜로
왕으로 인정하고 주님을 끝까지 따르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오늘 이밤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럼 우리 다시 한번 그 마음을 가지고 이제 나아가야 될 때입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셨던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고 주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있음을 고백하고 그로 인해서 나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함께 고백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이밤에 우리 영광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그런 마음으로 함께 같이 찬양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놀라우신 그 주님의 사랑을 한번 우리가 찬양하며 나가기 소망합니다. 찬양하시겠습니다. 크고 놀라운 사랑 하늘 호좌 버리신 주는 실로이셨지만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 네. 자기 몸을 미워. 자기 몸을 비워 종의 모습을 다 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네. 증할 수 없는 그 사랑을 예배합니다. 량할 수 없는 그 사랑 바다보다 더 깊고 바다보다 더 넓은 그 사랑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나를 살게 하는 은혜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으리.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사랑. 나의 모든 삶 내 생명 마쳐. 오직 주만 위에 살리라. 증할 수 없는 증할 수 없는 그 사랑 바다보다 더 힘고 하늘보다 더 넓긴 사랑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나를 살게 하니다. 증량할 수 없는 그 사랑 바다보다 더 기고 하늘보다 더 넓은 길게 사랑 어떤 말로도 표현할 주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우리를 위한 그 사랑 아멘 아멘 우리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묵상 본문은 아주 짧았는데요. 여보 19장 28절 30절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말씀은 일곱 개인데 가상치원이라고 부르죠. 그중에 세 개가이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조금 전에 나왔던 어머니를 부탁하셨던 장면입니다. 그리고이어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의 흐름대로 보면 지금 막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요한과 마리아에게 형성하시고 그것을 창조하신 직후의 내용인데요. 한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내 어머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웃슬 대에다가 깨어 예수의 입에 갔다 되었다. 네. 28절 보면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라고 하셨는데 모든 일이라고 하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계획하고 목적하신 바입니다. 이제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신 것까지로 예수님은 자신에게 바뀌진 모든 사역이 다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이제는 사명의 완수에 다가섰다는 것을 아십니다. 마지막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이는 구약에 나오는 시편 69편 21절의 말씀 그들이 쓸계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 식초를 마시게 하였다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요한복음을 기억하시겠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물과 관련된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스스로 생수가 되어서 영혼의 목마음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생수를 주시는 분이 이제는 목마음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일을 위해 사용된 그의 몸이 이제는 극한의 목마음으로 육체의 한계 가운데 다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찬양 가운데 공감하시대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그의 육신의 그가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나오는 것은 물을 최고급 포도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그분의 사역 마지막에서 신 포도주에 받아마시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신포두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숨을 거두셨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예수의 마지막 있음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저는 어제까지 한 형제와 풍삶초라는 양육을
했습니다. 제가 풍삶초를 마무리할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이 시간을 통해 이해한 풍성한 삶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나서 자연스럽게 저의 이야기도 합니다. 저에게 풍성한 삶은 하나님이 없던 나의 삶을 지배하던 세상의 가치들에서 제가 벗어나게 된 것이고 예수님 안에서 만난 새로운 가치를 붙들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게 된 새로운 삶 그 안에 주어진 행복들을 말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제 삶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저에게 줄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그것을 제가 이제 새로운 삶 안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 원하시는 것이구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의 풍성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을 누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내가 내 삶을, 내 에너지를, 내 시간에 무엇을 위해 써야지 진짜 남는 장사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내가 발견한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위해 내 시간을 쓸 때, 내 삶을 사용할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또 그를 위해서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것에 사용되어지고 있는 저의 삶을 을 나날이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은 내가 끝까지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누리고 하나님 원하시는 의미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면 저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제상을 제 삶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했다고 느끼며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록 저의 삶이 담아내는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사명의
그릇은 예수님을 비하서 너무 작으나 그러나 저도 소망하는 것은 제 삶에 주어진 주님의 뜻에 충분히 살았다고 고백하고 저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저의 삶의 끝에는 이제 나를 아시고 반겨 맞아 주실 아버지의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삶이 가장 귀한 일에 사용되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반겨 맞아 주실 분께 나아가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온모로 따 순종의 길 그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순종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 순종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일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의 십자가로 인해서 죄로 인하여 멀어졌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연결되었고 죄로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졌으며 죄의 권세 아래 갇혀 있던 우리를 완전하게 구해내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값을 지불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가 다 이루신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감당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십자가의 보혈 의지하여 주님께 아버지께 다시 우리에게 주시던 그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원수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과 함께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이 시간 우리가 그 고백을 함께 선포하며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아멘.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음 주의 보여. 그 어린 양의 매우 중한로다.
우리 죄를 시키고 우리 죄를 시키고 다시 혼전케하는 예수 피밖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우리 정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피를 같이 함께 고백합시다. 우리 정결케하여 친구되게 하시네. 예수 피밖에 예수의 피밖에 없네.서 찬양합시다. 주 보혈 감사해. 주 보혈 감사해. 주의 보혈 감사해. 예수 피밖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우리 한 들고 같이 고백할까요? 주 보혈 감사해. 주열 감사해. 주 보혈 감사해. 주의 보혈 감사해. 주의 보혈 감사해. 예수 피밖에. 아멘. 예수의 피밖에
없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 그 어린양의 매기주 아멘 우리 그 주의들에 의지하며 한 번 더 나갑시다. 주의 보혈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음 믿으 그 어린 아멘 매우 귀중한 피로다. 귀중한 우리 한번 주의 보혈 주의 보혈 능력이 있도나 주의 피 우리가 믿습니다. 믿어 주의 보여 그 어린양의 우리가 이제 우리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주의 스타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아버지 하시를 바라 나아갑니다. 주님이 우리 왕이심을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고 부인하고 아버지 하나 두려움 떠 있지만 아버 하나님께서 내 마음 우리가 오셔서 하시는 모든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 긍휼과 아버지 놀라신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 우리를 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하신 그 하나님 능력 가운데 나가오니 주여 하나님과 남께 도와주옵시고 아버지
우리가 도사 아버지 시간 주님 장에서 우리가 그 고백 나갈 때 내가 주의 목는 삶이 이 아니요 아버지 새로운으로 나갈 수 있 믿고 오 하나님 더 이상 주가 우리 찬 더 이상가 우리를 주니다 오 하나님 도하 우리 그 생활 부니 주의 보 주의 보혈 능력 아멘 십자가의 보혈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일하심을 믿습니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우리 죄의 소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아멘.
우리 시간에는 24개 좀 마무리해 가는 시간인데요. 우리가 두 가지 찬양을 좀 하고 싶은데 오늘 첫 번째 찬양은 아까 처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주신 그 복음을 다시 한번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 가운데 행하는지 주님 그것을 믿고 제가 그 복음을 저의 것으로 받아 고백합니다. 우리 그런 마음으로 함께 찬양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하늘보다 하늘보다 높으신 주 사랑. 바다보다 넓으신 주 사랑. 나를
향한 크고 높으신 사랑 어때고 어된 그 모든 것 내게서 멀리 거두셨네 나의 순치 한번 도할까요 찬양되 하늘보다 높으신 하늘보다 높으신 주 사랑 바다보다 넓은 신 주 사랑 나를 향한 크고 높으신 사랑 어때고 어때서 내게서 멀리 거의 나의 수치 찬양되었네 영원히 감사드리 주님의 주님의 그 은혜 날 찾아 주신 그 사랑 오 주님 내 전부 사랑해요 경배해요 나 주 위에 살리 영원토록 신실하을 전하보다 하늘보다 다 높으신 주 사랑. 바다보다 넓으신 주 사랑. 나를 향한 크고
높으신 사랑. 어때고 어 그 모든 것 내게서 멀리 거두셨네. 나의 수치 찬양되었네. 영원히 감사드리니 주님의 아멘 날 찾아주신 날 찾아주신 그 사랑 주님 내 사랑해요. 사랑해요. 경배해요. 주 위에 살리 영원토록 신시하신 주 사랑 영원히 감사드리 영원히 감사드리 주님의 그 은혜 날 찾아주신 그 사랑 오 주님 내 사랑해요 사랑해요 경배 해요. 나 주 위해 살린 영원토로시 아멘. 우리 그 사랑을 하며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어쩌면 그 이상 우리를 사랑신 그 하나님의 변함 없으심이 시간 오래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찬양할 수 있니 나의 입술 나의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이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그 은혜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크신 은혜를 노래하며 나아가는 이 모든 하나님이 주신 그 선물가 있지 않나 주신 그 주님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주을시는 주님 주님 주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나만 모든 것들 수 있게 하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영생을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영생으로 얻 아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아가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영생으로 얻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역세 아멘 우리 찬양을 켜고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영생이 아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영생으로 어드리 아멘 이 영원히 감사드리
주님에게 아멘 날 찾아주신 날 찾아주신 그 사랑 주님 날 찾아오셨습니다. 나의 전부가 되어셨습니다. 사랑해요 경외해요. 주위에 살리 영원토록치하신 주 한번 영원히 감사드리 영원히 감사드리 주님의 그 은혜 날 찾아주신 그 사랑 오 주님 내 사랑해요 사랑해요 경배해 나 주 이제 내가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영원토록시한 집주 사랑해져리 아멘 고백하며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믿는 자들 영생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라 아멘 우리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이 주셨고 그 하나님께 우리를 새로운으로 청하여 주었습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를 새로운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고하며 나아갑시다. 아멘. 남네 다시 사신 독생자 남믿네. 아멘. 우리가 믿습니다. 남 믿네. 우리가 주님을 믿습니다.
나 믿네. 오 다시 사신 독생자 다시 사 다시 독생자 남네 남네 남민네 남네 다시 다시 사신 독생자 남네 남네 남네 남네 남네 아멘 영광없 올려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 일이 우리에게 일어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 오늘 예배 마지막 찬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나의 주가 되신 그 주님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같이 고백하고 나아가겠습니다.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고하 합니다.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이 전보다 더욱 사랑하 아멘. 우리 2절은 잠님들이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한 서 형제님들이 고백하겠습니다. 그다시 주은오니 더 사랑하나 아멘. 우리 함께 3절로 고백합니다. 내 평생에 내 평생의 힘세 그 의수의 통을 들기 길리이라. 숨질 때까지 숨질 때에까지할 말씀은 이전보다 더 사랑하 이전보다 더 이보다 더 사랑합니다. 우리 같이 함께 기도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숨실 때까지 주님 제가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베드로와 같은 실패를 맞이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때에도 나와 함께 하실 주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나의 연약함보다 크신 주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주 제 삶을 다해서 제가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덕을 전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며 그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우리의 그 마음을 주님께 시간 고백하고 결단하며 함께 기도하면서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여 아버지 시간 우리가 길 가운데 다시 한번 나의 주님께 나 주 것의 뜻 아버지 하나
마을 수 있도록 사랑하 주의 그 마음이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마음이 주님든 마음 주의 찬양 하나님을 내가 보다 더 하다 더 주의 찬양 주님 그런 나의 그런 나의 신생이 될 수 있도록 우리 4절로 찬양하며 나갑시다. 그 영광의 나라 나 들어가서 풍성한 에늘사 하리 금열유하시고 금열유관고 나 찬송할 만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보다 더 이보다 더운 사랑 한 번도 이전보다 더 이보다 사랑합니다다. 아멘. 하나님.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진 그 자리에
두지 않고 하나님 우리 그 삶에서 다시 한번 우리 부르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기 위해서 모든 것에 감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그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 시간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우리가 주님께 드리고 싶은 우리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된 그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주님과 끝까지 동행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입니다. 다른 것은 나의 삶, 나의 삶에
다른 것은 주요 나의 왕이요, 나의 일순이요. 그렇게 삼지 아니하고 내 사랑과 충성을 주님께 드리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 이시가 주님께 올려 올려 드리오니 주님 받으시고 주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이곳에는 우리 모두가 어제보다 오늘도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아멘. 어제보다 오늘도 오늘보다 내일도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아멘. 더욱더 주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모든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니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끝까지 동행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