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갈보리산 위에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겨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리세 웃은 길을 얻기가 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별류가 바기 험한 십자가 붙들게 멸시함을 받은 주의 십자가를 멸시함을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 양이 영광 보이고 험한 십자가 범한 십자가에 주가 달리시고 험한 십자가에 주가 힘길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사하시며 주가 흘리신 보혈리세
아멘. 아멘. 새우승일은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니 열류관기까. 지하라 험한 십자가 붙들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양 주가 예배하신 나의 보양에 나를 부르실 그날 날까지 아멘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지고 내가 죽고 충성하웃을 얻기 같으 주님의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겠습니다. 주의 십자가 사랑하니 빛난 별육관 받기까지 빛난 별류관 받기까지 아멘 범하 십자가 다시 한번 고백하겠습니다. 새우승일을 얻기까지 채우승을 일을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별류관기 험하신
우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백하겠습니다. 배우 승리를 얻기까지 새우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별류관기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어,이 시간 우리 마음을 두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어, 사랑의 하나님, 저희가 어, 예수님께서 왜 이곳에 오셨는지 다시 한번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고 또 사랑이 많으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왜 주님을 이곳에 보내셔야만 했는지 깊이 깨달아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
마음을 추구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곳에 멈추지 아니하고 하나님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최후 승리를 얻는 그날까지 나의 삶을 늘 겸비하며 주님 닮아가기에 최선을다는 자가 될 수 있겠다는 나의 결단과 함께 우리이 시간 함께 나의 마음을 들리며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기억하여 주시고 하나님 부족하고 여자 가리 자기 없는 우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귀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실제로 그것들을이고 하나님 나의 나의 삶을 주인인 것처럼 행사하며 하나님 그렇게 살아간 내가 얼마나도 말씀이 하나님 아버지 주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곳에서 한국에 하나님 신발을 박을하고 하나님 도함을 주어서 만든 사람 나의 삶이 그렇다는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이 시간에 대한 성령하 나를 들어 주시로 말미암아서 나의 나온 시간 사용하신 아버지 도와주시고 주님을 다기 위하여 나의 삶을 사용하며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자를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시기를 구원하 주여 주시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님을 높이며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길 수 있는 특별 세명예배 4일차 시간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곳에 온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주께서 돌보시고 하나님 이대 하루를 지키시며 오늘도 말씀으로이 하루 가운데 우리가 묵상할 것을 주셔서 아버지를 기억하며 생각하며 사랑하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오늘
우리 특별의 마지막네 4일차네 하루가 짧아졌는데 예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어 굉장히 좀 짧은 느낌도 드는 거 같은데요네 우리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우리 좌우 있는 분들과 함께 좀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예배하면 기쁨입니다. 네. 네. 우리 그래도 이번에 또이 특새 기간에 어 우리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조금 왔는데 오늘 좀 이들을 위해서 잠깐 기도하는 시간 갖고 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초등학 초등부 대회 뭐 청수년부
청년들도 잠깐 앞으로 이렇게 나와 주시면 우리 잠깐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잠깐 어 반주자님 반주해 주시고네 나와 보세요. 우리 성종 형제도 나오고네 우리 여기네 나오고네 어떤 의미에서 어른들보다 더 열심히네 우리 함께 섬기고 나오는 우리 이렇게 귀한 다음 세대 이렇게 있는데요. 예 쭉 이렇게서 주시고네 우리 작가들을 위해서 여러분 한번 같이 기도해 주면 좋겠습니다. 어, 오늘도 이들이 여기 왔다가 이제 학교를 가는 그런 어, 시간이 될 텐데
어, 하나님 이들이 하루 지키시고 분명히 더 피곤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더 행복한 어, 하나님 가운데 있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또 이들이 부모님을 따라서 또 혼자 홀로 힘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예배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데 하나 이대의 삶에 지켜 주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좀 손에 뻗어서 한번 좀 기도해 주실까요?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이곳에 우리 귀한 우리 아이들 또 우리 청소년들 우리 청년들 나올 수도 하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함께
도와주사 아버지 이들을 지키시고 오늘 이들이 함께 예배하면서 나아가 주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하여 주옵시고 아버지 이들 정말 하늘 간에서 복된 그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들간에 있는 하나님 예배하는 마음들에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고 아버지 위로하여 주옵시고 아버지 함께 도와주시사 주님 아버지 아버지 인도하시고 주여 함께 하시사 아버지 뜻 안에 오늘도로 있을도 주여 인도하시사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하루가 아버지 예배으로 시작하여서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버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칠 수 있는 그런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이들 붙잡아 주옵시고 이들을 사랑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이들의 예배하는 이 마음 아버지가 마음 될 수 붙여주사 하나님 높임 받으시고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주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오 하나님 도와주 있습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이곳에 있는 우리 귀한 청년들 청소년들 우리 아이들 아버지 주님께 사랑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예배하는
마음을 이들에게 주셔서 예배하면서이 하루를 시작하오니 주님 이들의 삶에 곳곳 하나님 함께 동행하심을 깊이 누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학교에 가서도 또 일이 필요한 곳에 있을 때도 하나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예배하는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그런 귀한 아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어 그래서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오늘도 저의 돈을 다테 털어 갖고네 간식비를 잠깐 마련했는데네 어 우리 귀한 친구들 우리 혹시 아 나는 4일 동안 다 왔다 다 왔다 다 왔다. 어 4일 다오 세 명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네. 세 명은 두 배로 해드리도록 이렇게 하겠습니다. 네. 아, 너무 귀한 거 같아요. 예. 진짜 우리 아이들이 또 이렇게 예배함으로 네. 나가서 감사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마지막 4일차
아 함께 볼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17절부터 27절까지 오늘 매일 성경 본문을 갖고 마지막 메시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제까지 말씀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어쩌면 뜻을 같이 유대 민중들 어쩌면 민중들이이 예수님의 적대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었죠. 또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최후선으로 판단한 빌라도 이들의이 불리한 연합 속에서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이 선언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지고 십자가 형벌이 행해진
장소인 골고다라는 고상에 가시게 됩니다. 당시 십자가는 골고다까지 죄수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세로 틀은 이미 형장에 있었고 가로틀을 짊어지고 간 것으로 보통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날 십자가 형을 당하는 사람은 총 세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운데 서시고 양 옆에 두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가운데 있는 십자가는 바라바의 자리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끝까지 이 일을 아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이거는 너희의 문제고
너희의 요구다라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하는 빌라도의 태도로에 보여 주고 있는데요. 바로 그의 그 이야기를 한번 말씀을 통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과서 십자가 위에 시니 나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오신 곳이 가까으로 많은 위에 이에와 로마와 라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들이 자들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지 말고 자친 유대인의 왕이라 하니와 대하되 내가 쓸 것을 벗다 하니 네. 여러분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셨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저렇게 지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네. 저거는 제가 썼는데 네. 저는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에 라틴어를 보면서 쓴 건데 아 이날 사실 저기에는 지금 라틴어만 있지만 세 가지 언어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읽을 수 있게 쓰여 있었습니다. 세계 언어는 뭐였냐면 유대인들이 보통 쓰는 히브리어 아라머라고 하죠. 히브리어가 있고 그다음에 로마 정부가 공식 언어로 쓰고 있는 로마어 라틴어죠. 그리고 또한 당시에 로마가 다졌던 세계는
사실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에 어 영 영향을 받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지역의 공용원은 헬라어 그리스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언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것입니다.이는 성경의 세계 관해서는 모든 나라의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관에서 땅끝은 로마 전역을 의미하는 거였고 즉 땅끝까지 어 전파될 수 있는 모든 나라의 언어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저 십자가에 다 예수를 보면 아 그가 나사렛 예수 유대일인 왕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의 의도는 나쁜 거였어요. 의도는 전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저거 자체가 기분이 나빠서 이것은 우리의 인정이 아니다. 그래서 뭐라고 바꿔 달라고 합니까? 자칭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바꿔 달라고 하지만 빌라도가 냉정하게 답합니다. 나 쓸 것 썼다. 여러분 빌라보도가 왜 냉정하게 답했을까요? 왜 냉정하게 답했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땐 삐졌어요. 마음이 상했어요. 어제 일 기억하시죠? 마음이 상했어요. 어쩌면 자신의 의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나도 협조하지 않는 유대인들의이 방해 가운데 이게 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오기와 내가 너희보다 권위가 있는 사람이야라는 정치적 힘겨루기의 결과로 그냥 그렇게 유대인들의 의도를 조금 들어 주지 않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까이 모든 것이 굉장히 역설적이에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시며 어 왕이 되셨다라는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실제 그 일이 이런 식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정작 지금 자기 백성이라고 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였지만 그 십자가 못 박았지만 황제를 숭비하고 있는 로마의 총독에 의해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셨고 더나가 하나님 나라 왕으로 등극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조롱하려고 그 명패를 붙였지만 요한복음은 바로 그 조롱과 수취의 자리에서 예수님 왕되심이 더욱 허이 드러났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이 십자가 밑에는
두 부류의 또한 사람이 있었다고 요복음 기록하고 있는데요.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군인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처단하는 집행자들입니다. 십자가 형을 집행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이제 주어진 이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습니다. 사형 집행자들이 죄수의 옷을 나눠갔는 것은 일종에 전리품과 같이 취하는 관래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거에 대한 대가를 그에게서 받는 것처럼 뺏는 것처럼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취합니다. 지금 우리 현대 입장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의 옷은 어 그 꽤 그래도 어쨌든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옷을 여러 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다 보니까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군인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거옷과 속옷에 모두 취했다는 것은 여러분이 예상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알몸 상태로 가장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통상 십자가 형이 가지는 의미였습니다. 로마에게 십자가형의 의미는
가장 수치스럽게 로마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어 죽이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높은 장대에 매달아서 전시하는 것으로서 보고 있는 모두에게 로마에게 대항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수치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일을 행하는 군인들 주변에는 또 한 무리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랑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제자 요한과 여인들입니다. 물론 군인과이 제자 외에 무리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적어도 두 부류의 의미
있는 집단이 있었다면이 요한과 여인들도 그 한 부류였습니다. 한번 그 내용을 말씀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십자가에서 어 모아의 아 마리아와라 마리아가네 여기에 여인이네 명이 나오는데 예수의 어머니가 따라왔고 아 그다음에 어 이모라고 하는데 살로메라고 불리는 이모 어 아마도 대부분의 학자는 요한의 어머니일 거라고 추정합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요한이요.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이 이분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이렇게네 사람입니다.
어 아마 성경을 볼 때 가장 헷갈리는 것이 마리아가 너무 많아서일 텐데요. 성경에 있는 마리아는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이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온 여섯 명의이 마리아를 헷갈릴 수 있는데 이 중에 가장 우리가 기억해야 될 마리아는 총 세 명입니다. 일단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죠. 그리고 또 누가 있습니까? 네. 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 의해서 귀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치유를
경험한 후에 예수를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여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의 무덤에 가장 먼저 찾아가서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하고 전하고 알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에서이 요한과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을 굉장히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자랑하는 제자네 사랑하는 제자라고
표현한 것이 요한이라고 보고 있는데 우리에게 요한이 이 십자가 옆에도 있다라는 것은 앞선 베드로의 사건과 대조되면서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째서 요한은 베드로처럼 추궁당하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을까? 아, 우선 베드로라는 캐릭터가 주변에 너무 각인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어 설명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베드로가 생각날만큼 그런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이었죠. 아 특별히 그는 예수님이 잡혀 있던
밤에는 칼을 휘들르며 대제사장의 종에 귀를 자르게도 했기 때문에 이미 얼굴이 찍혀 있는 위험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 심한 어떤 그런 검열과 추궁을 당했다라고 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에게 요한은 유명하지만 성경상에서 요한이 드러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늘 있지만 덜 눈에 띄는 인물이었던 거죠. 또한 그가 대제상장 가문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신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보장과 보호가 되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잘 읽어 보시면 베드로와 요한의 대조하고 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이 근데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장면에서 단순히 누가 더 용감했냐는 아닙니다. 어떤 제자가 끝까지 남는가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선 적어도 요한복음은 베드로와 요한의 캐릭터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좋아합니다. 주님 내가 하겠습니다. 내 끝까지 가겠습니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저도 그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또 한편에서 이런 생각하게
합니다. 끝까지 남는 사람은 자기 의지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시끄러운 열심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요한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한 섬김으로 있어야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갑진 것인가 하는 것을 요한복음이 장면에서 보여 주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고백과 시끄러운 열심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보다는
정말로 주님 안에서 거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한 섬김으로 우리가 주님 곁에 있다면 그것이 주님께 더 큰 어떤 위로와 또 주님께 돌려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에게 앞에 있는 요한의 존재는 가장 강력한 위로였을 것입니다. 여한 19장 26절 27절 한번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자 과자를 주시고 어머에 어머니 사람이 어다 하시고 그의 제자에게는이 내 어머니시다 그는네 그 요한에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 살롬을 자매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까 이했듯이 그래서 이모라고 표현된 거죠. 그렇다면 요한과 예수님은 이종사촌 관계입니다. 그러하게 어머니를 그에게 부탁하는 장면은 우리의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그런 인간적인 의미보다 영적인 의미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효도를 말하고 싶은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담겨 있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한을 한 가족으로 묶어 준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세우시는 것입니다.이는 이미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강조하고 추구해 왔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말씀에서 여러분 기억하시겠지만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읽어 볼까요? 시작.이 이시되 내 어와 내 동지 하나님의 뜻을 원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 어머니라.네 네.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예수님께 이루시는 예수님의 공동체 즉 교회 하나님의
가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아래 새로운 가족이 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가족, 하나님의 가족은 혈연 중심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수님께 속한 존재가 되었는가? 우리의 표현을 말하면 회심 중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한 주인으로 나의 아버지로 왕으로 진짜 인정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며 동시에 우리에게는 형제 자매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교회 옆에 있는 분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안에 같은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다락방에 모인 그 예수님 제자들을 향해서도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의 피로 못낀 가족 공동체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혈보다 깊은 사랑으로 묶긴 공동체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된 공동체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제 십자가 위에서 거친 숨수리와 함께 이 마지막 부탁을 하십니다. 요한은 바로 그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때부터 바로 그 순간부터 예수님의 피 아래에 묶인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시작됐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고 싶은 교회의 시작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이게 오늘의 묵상 본문인데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이 설교를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이 말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우선 첫 번째 예수님은 유대인 유대인의 왕이기에 죽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왕으로서 죽습니다. 예수님의 죄목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사명, 신분, 정체성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왕이라고 해서 죽이고 이제 누군가는 그를 왕으로 인정할 때 살 것입니다. 세상은 그 왕을 거부했지만 믿는 자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그가 우리의 왕임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문제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는 회심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냥 날 도와주시는 분이면 족하지 왜 굳이 나의 주권까지 그분에게 양도해야 한단 말인가? 왜 굳이 나의 왕까지 되셔야 한단 말인가? 어,
이것 때문에 누군가는이 회심의 장벽을 넘어올 때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라는 곳에 버거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이제 전과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여러분에게 왕이신 예수는 어떤 의미이고 나는 지금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까? 혹은 오늘 살아가시겠습니까? 도어지는 십자가 아래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서 있습니다. 한쪽에는 예수님의 옷을 전리품처럼 나누어
갔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트로피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끝까지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여인과 제자들이 있습니다. 같은 십자가 아래서 있지만 누군가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고 누군가는 예수님을 지키고 있습니다. 병사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입니다. 요한과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위험을 무릎 쓰고 끝까지 따르고 싶은 자신들의 전부입니다. 다시 한번 묻는다면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의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한 수사 아닙니까?
아니면 내가 전부를 들여서 따르고 싶은 나의 그런 주인 나의 전부입니까? 오늘이 십자가에 우리 앞에 우리도서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고백하면서 우리의 고백이 주님 주님이 나의 왕입니다. 주님이 나의 전부입니다. 내가 주님을 힘써 따르겠습니다. 나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지만 주님 따르게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하루 주의 힘써 따르겠습니다. 우리 그런 마음으로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가 복음이 되고
우리의 존재가 주님께 위로가 되는 그런 하루 그런 모든 사람들로 드려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같이 찬양하고 오늘 기도하러 기도하고 싶습니다. 우리 크고 놀라운 사랑 찬양할 때 주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어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우리 그런 마음으로 함께 이 찬양 같이 고백하겠습니다. 크고 놀라운 사랑 크고 놀라운 사랑 하늘 보자. 버리신 주르실로 왕이셨지만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네. 자기 몸을 비워.
잘 몸을 비워 종의 모습을 갖추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에게 구원이 주셨네. 증양할 수 없니 증할 수 없다보다 더 깊고 하늘보다 더 넓은 그 사랑 어떤 날로도 조연낼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나를 살게 하네 이네. 아멘. 한번 더 찬양합시다. 크고 놀라운 사랑. 크고 놀라운 사랑 하늘 보자. 하늘 보좌 버리신 주. 그들실로 그실로 왕이지만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네. 자기 몸을 비어 자기 몸을 비어 종의 모습을 갖추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에게
구원이 네. 아멘. 증량할 수 없는 증량할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보다 더 깊고 하늘보다 더 넓은 사랑 어떤 날로도 표현할 수 없니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나를 살게 하네. 나를 살게 하네. 아멘. 무엇으로도 무엇으로도 가힐 수 없으니 하늘을 보내신 하나님 사랑 나의 모든 삶 내 생명 맞춰 오직 주만 살리라. 증할 수 없는 그 사랑 바다보다 더 기쁨보다 더 믿게 살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니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랑 하나님 아버지 사랑 우리 위한 우리 위한
그 같이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의 하루가 주님의 왕되심을 고백하고 왕되심에 들어가며 드러내며 내가 정말로 십자가 앞에 머물렀던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의 삶에도 십자가가 있지만 그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그 십자가를 감당하며 그 십자가 앞에 머물러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그 삶을 삶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쫓아갈 수 있도록 주여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 그런 마음으로 같이 주머 기도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