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으로 함 여러분과 함께 한권의 책을 가지고 시리즈로 걸쳐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어 제목이 좀 반항적이면서라는 제목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과 말씀을 나눠 볼 텐데요 어 목사님과 뭐 맞춘 것은 아니지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책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설교로 준비한 책은네이 빨간 책의 교회 안에 거짓말이라는 책입니다 강렬한 빨간색과 입술을 가진 어 그런 표지를 가진 책입니다이 책에는 교회 안에 서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12가지의 거짓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 아마 신앙생활을 그래도 꽤 몇 년 해보신 분들은 어 살면 3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목차를 가장 먼저 살펴봤는데요 12가지가 대가 제가 다 들어봤던 어 말들이라고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어 많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아 이것은 당연히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내용들인 거 같습니다 어 금요 기도의 설교를 통해서 12가지를 전부 다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신앙 그리고 복음에 대해 익숙한 거짓말들을 다시 한번 찾아내고 조금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런 마음을 담아서 옆 사람과 함께 인사해 볼까요 거짓말에 속지 맙시다 다 네 우리의 거짓말이 깨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네 오늘 나눌 메시지는 예수 믿으면 복받아요 아는 메시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 많은 기독교인들이이 말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저도 전에는이 문장을
그렇게 크게 의심하지 않고 살았던 거 같아요 예수 믿으면 당연히 복받는 거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제 친구가 저에게 던진 한마디 질문 때문에 어이 말이 조금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 저는 회심하기 전에도 잘 만들어진 모태 신앙 자녀였다 약속을 잡는 건 제 일상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늘 교회 일정이 아주 빡빡하게 있었거든요 어 그거에 불만을 품은 한 친구가 어느날 제게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 대체 너는 왜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뇨 그래서
제가 속으로 생각해 봤어요 난 대체 왜 열심히 다니지 아니 나는 교회를 왜 니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 천국 가려고 예수 믿음 복 받는데라고 제가 아주 전형적인 기독교인에 답을 했습니다 어 사실 그 당시에는 제 안에 있는 답이 많지 않았어요 그냥 남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그 어른들이 그런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뱉은 말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가이 답을 듣더니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무슨 복 그래서 넌 뭘 받았어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도 몰라 순간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대답이었습니다 제 대답을 드는 친구가 그냥 그게 뭐야라고 이렇게 싱겁 다는데 웃고 넘어갔지만 저는 그날 집에 가는데 웃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으로 제 안에 진지한 어떤 질문이 생겼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남들보다 무가 더 받았거나 아니면 내가 뭔가 더 가지고 있는게 없는 거예요 제 삶이 복을 받았다고 하기엔 지극히 그냥 형범 그 자체인 거예요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평균의 삶이다
하는 그 삶보다 저의 삶이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난 대체 예수를 왜 믿는가 나는 교회를 왜 다니는가는 질문이 제 삶에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떤 반항심이 올라오기도 전에 저는 잘 만들어지 못해 신앙인이었다 아기 어려웠던 질문을 덮고 살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왜냐면 내가 질문해도이 교회를 안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거예요 부모님 때문에 다녀야할 것 같은 그 생각에 저는 이 질문을 모르는 척 그리고 또는 나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런 마음으로
넘어갔던 기억이납니다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어 생각을 했던 또 질문을 가졌던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이 순간에도 그것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이 책을 바탕으로 과연 이 말이 진짜인가 아니면 거짓말인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클리셰라 말을 아시나요 클리셰는 보통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데요 지겹고 예측 가능한 어 뻔한 설정 표현 상황
또는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프랑스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여러분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전쟁 영화에 산 남자가 어떤 사진을 보고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공이 와서 이렇게 물어보죠 너 뭘 보니 그러면 그 남자 그 사진을 보 자 이렇게 대답해요 아 내 여자친구야 이러면서 말을 하죠 그러면 이제 그 남자는 전쟁 중에 죽는 거예요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정해졌어요 그 친구 운명은 그런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죽어가면서 그 사진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그 주인공에게 말하죠 무언가 꺼내 주면서 이거를 미선이에게 꼭 전해 줘 하고 그는 그렇게 전사합니다 보통 이런 뻔한 설정들을 우리가 클리셰라고 하죠 이것 말고도 막장 드라마라고 하면 꼭 나와야 하는 어떤 출생의 비밀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꼭 여자 주인공은 가난해야 하고 남자 주인공은 재벌 3세 본부장이어야 하는 어떤 그런 뻔한 설정들이 바로 클리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클리쉐가 한국 교회 안에도 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증 클리쉐 말입니다 마치 너무 가난하고
병들고 한없이 온갖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신데렐라 성도가 백마탄 예수님을 만나서 팔자 고치고 많은 재산을 얻고 가지고 있던 병을 고치고 자녀가 명문대에 가는 그런 뻔한 결말에 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에 우리 간증들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뻔하디 뻔한 간증 클리셰는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높은 조회수와 높은 좋아요에 팔려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느새 우리는 그 뻔한 이야기에 어느새 물들어서 왠지 그럴 것 같은 그래서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기 반복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부 영화를 누리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남들보다 가난하게 살아서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때가 되면 승진도 때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병에 걸려도 기적적으로 살아나야 한다라는 어떤 그 소망함 어떤 그런 큰 꿈이 기독교인들 안에는 있는 거 같습니다 또는 내 자식이 스카의 명문 대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수도권 대학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부모님들이 교회와
학원 사이에서 등하 녀가 예수 잘 믿고 공부 잘하는 건 오케이 그런데 예수만 잘 믿고 공부 못 하는 건 not 오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런 바람들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인 거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는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욕심 때문에 점도 보고요 사주 풀이도 하고요 부족도 쓰고 때로는 굿도 합니다 아주 큰 거금을 들여서 말이에요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뭘 할까요 예수를 믿습니다
마치 부적이나 굿 대신 예수를 믿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내가 기대했던 것들 내가 원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혹은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게다가 오히려 아 나는 예수 믿는데 이렇게 사는데 쟤 안 믿는데 더 잘 사네 이런 생각이 들면 기독교인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그중 누군가는 주님을 떠나가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에 저처럼 이런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이럴 거면 난 대체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처럼 이런 혼란을 겪은 인물이 성경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시편 73편의 등장하는 시인 아삽 있니다 아삽은 어 예수를 잘 믿다가 주님을 잘 따르다가 신앙의 위기를 만났어요 자신이 알고 있던 하나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삶이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느꼈거든요 너무 더 다르다라고 생각한 거예요 아삽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정보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신앙관에 의하면 자신과 같은 신앙인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훨씬 잘 살아야 하는데 그가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하고 정결한 사람에게 분명 선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마주한 현실 그가 둘러보고 있는 그의 일상 속에서는 오히려 거만하고 악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더 승승장구 잘 살고 있는 모습 어요 그래서 아삽은 그 모습을 보고 믿음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라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근데 여러분 혹시 우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여러분 신앙생활 하시면서 이런 질문 던져본 적 없으신가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지키며 아등바등 사는 나보다
상사에게 아부하고 비열한 새치기를 쓰는 내 옆 직원이 더 잘 나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도 믿음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위기를 마주합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 보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악은 더 큰 악으로 갚아 버리는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솔직히 우리는 더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혼란스러워지고 내 삶의 노력은 무엇이지 나는 왜 예수 믿게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거지 이렇게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경은 아사도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외에도 시편 7편을 보면 아삽이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더 잘사는 악인들을 보며 혼란을 느끼는 내용들이 4절부터 15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 책을 신 영국 목사님께서이 내용을 21세기 버전으로 바꾸셨는데 너무 잘 바꾸셨고 그래 제가 그 내용을 한번 그대로 가져와 봤습니다 제가 읽어볼 테니 귀를 쫑긋 세우고 한번 잘 들어보세요 그들은 불리하게 번 돈으로 온갖 좋은 것을 먹고 좋은 데를 다니며 피부관리까지 받으니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구나 그들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특별 과로 학교 성적 하구나 가한 자들의가 름 문이라고 비웃으며 그들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생활 점을 찍는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하나 그 하나님은 정의 하나님이 아니라 수호천사 요슬프 요과 같은 그들을 위로하고 복기 위한 그들만의 신이나 그들은 일하지 않아도 여기저기 사놓 부동산값은 세만지면 알아서 스스로을 운다 로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어떠세요 여러분은 21세기 버전 아사베 시에 조금
공감이 가시나요 저는 번역이 참 잘 되었다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했습니다 아삽은 악인들 즉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성공과 편리하고 여유 가득한 삶을 보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정직하고 열심히 또 성실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했던 것이 무의미한 허사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따라 의롭게 사는 것이 과연 진짜 가치 있는 것인가 무의미하지 않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졌다는 거예요 복을 받아도 예수 믿는 내가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덜 더 잘 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아 이럴 거 내가 왜 믿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삽은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 끝에 아삽이 고백할 수밖에 없던 것은 아 나에게는 답이 없구나 나는 스스로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구나 하는 절망이었습니다 본질적인 질문 앞에 그가 섰을 때 아삽은 자신의 한계를 느낀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아만 아니라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는 것만 이해할 수 있고 그것들만 해석할 수 있어요 지극히 유한한 존재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꿈을 꾸는 것도요 자신이 보았던 것만 꿈꿀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드라큘라를 본 적 없는 사람은 꿈에 절대 드라큘라가 나올 수 없대요 이처럼 우리는 상상이 가득한 꿈조차도 내가 본 것만 꿈꿀 수 있는 내가 경험한 것들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이 인간 모두가 가진 한계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근데 유한한 존재였던이
아삽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이 본질적인 문제이 진솔한 질문을 가지고 무한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나아갔을 때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도 얻을 수 없었던 그 답을 그는 얻게 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습니다 아삼이 스스로 답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헤매 때는 답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그는 답을 찾게 됩니다 어 성소에 들어갔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갔다는 표현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아삽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삽의 지혜로는 절대 깨달을 수 없었던 것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일까요 아삽이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과 인생을 그가 주님의 임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때부터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많은 변화들이 생기죠 그런데 그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의 시각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상 가지고 바라보면
그리스도인 럼 바보같이 사는 사람들이 없죠 여전히 신은 나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조력자에 불가할뿐 절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변화되어 세상과 나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풍성한 삶이라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자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은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 전에는 그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 가기 시작해요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죽음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러분 사람은 모두 죽죠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끝에선 죽음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땅에 튀어난 모든 인류가 다 경험해야 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인데 이상하게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죽는게 어떤 느낌인지 어떤 감정이 드는지 우리는 왜 죽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과연 그 죽음 그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아무도 몰라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인데 생각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별로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 죽음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서워하고 최대한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아삽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죽음 이유를 발견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에 볼 수 없는 것을 그가 보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악한 사데 잘 살지이 사람은 만한데 왜 계속 승승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주님의 눈을 가지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가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라 하고 가 하실 때에 하 없이 하 아삽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다가 죽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던 아삽 이것을 보지 못했을 때는 그런 세상의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아 내가 미련하게 사는 거 아닌가 저렇게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혼란 혼란에 빠져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이것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것이 아님을 그가 깨닫게 되었을 때 그가 비로 주님 앞에 다시 고백하는 거죠 아 주님 사실 이게 끝난 것이 아니었군요 내가 이렇게 무의미하다고 혼란스러 할게 아니었군요 진짜 의미 있는 삶이 제가 살아가는 삶이었고라고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이 땅에서 굉장히 부분적으로 이루어지죠 완전하지 않아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도 아처 악인이 더 잘사는 것처럼 보이고 어 죄를 지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고 나면 그때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그 심판이 유보 되었을뿐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그것이 아예 없는
것이 아라는 방금 읽은 말씀처럼 결국 악인들은 멸망에 이르고 끝장을 맞이하여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세상과 달리 하나님을 따라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은 마침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는 그날에 멸망하거나 끝장나 사라지지 않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성은 오 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 내 옆에 있는 악인이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가든 전혀 그런 것에 개이치 않고 믿음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주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알게 되었거든요 주님의 인자에서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주를 따라 살 수 있는 겁니다 어 그런데 여기까지만 들으면 누군가는 아 분명 좋은 말인데 그러면 우이 땅에 사는 동안에 정말 아무것도 못 누리고 그냥 아무 복도 못 받고 이렇게 죽는 건가 죽음 이외에 살만 바라봐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74편 아삽이 하나님의 임제
속에서 발견한 복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읽겠습니다 시작 도가 무엇을 하가 마이 다 하나님 언제나 내 마음에 시요 내가 받 모에서 모이라을 하는 사람 할 것입니다 앞에서를는 사람은께서 하 것니다 하나님께 까는 것이 나에 내가 하나님을 나 삼고 주님께서 이신 모든 아삽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짜 복이고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진짜 복이라는 것을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던 것 가지던 것이 부러웠지만 이제는 자신이 주님과 함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왜냐면 하나님 그분 자체가 우리의 받을 목 전부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질문해 볼까요 여러분 예수 믿으면 복나요네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라보는 복과 님이 바라보시는 복이 다를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복을 받지 했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나는 과연 어떤 시선을 가지고 그 복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 이렇게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이제
교회 다닌 친구가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나는 그래서 이걸 점검할 때 이렇게 물어봐 뭐라고 물어보는데 내가 과연 돈보다 예수가 좋은가 여러분 여러분에게 오늘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돈보다 예수가 더 좋은가 내 건강보다 예수가 더 좋은가 내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 나는 예수가 더 좋은가 하고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해서 돈 잘 벌고 유명해지고 자식이 승승장구하고 나를 오래 괴롭히던 그 지병이 고질병이는 것으로 어 우리가 복을 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복은 복의 품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트에서 어떤 물건을 살 때 품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식당에서 사장님이 나에게 서비스로 콜라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거예요 이처럼 앞서 말한 것들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사는게 복받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다 주어지는 것들은 아닙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실 수도 있고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이런 복은
사품이자 서비스이니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품 안 받고 서비스 안 받아도 내가 꼭 받아가야 하는 복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하나님 그분 자체인 줄 믿습니다 깨어져 있던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가 회복되어 가서 아주 친밀한 사이 아주 깊은 사이가 되어가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의 하나님이 되셨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우리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우리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품 가짜고 진짜를 버리지 마십시오
서비스로 준 콜라만 벌컥벌컥 마시고 헛배 부른 채 돌아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 제가 얼마 전에 어 유튜브를 보다가요 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어요 어 배우 신하균 씨가 나온 그 회차였는데 이런저런 토크를 하다가 중간에 MC 이런 질문 을 던졌습니다 어 만약 배우님 옆집에 신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딱 하나의 소원만 들어 줄 수 있다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나요 저는 그 질문을 듣고 혼자 속으로 머리를 아주 빠르게
굴렸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 내가 가장 좋은 거를 요구하고 얻어 내야지라는 생각으로 막이 생각 저 생각 해 봤어요 뭐 달라고 하지 이거 해 달라고 할까 이 해결해 달라고 할까 어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신하균 씨의 대답을 듣고 어 저 스스로가 굉장히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툭 뱉어요 이사가지 마세요 라고요 저는 이 배우가 예수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 잘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그의 대답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순간 아 내가 뭘 받아야 좋을까고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의 대답은 아 뭐 안 줘도 돼요 그러니까 이사가지 말고 내 옆집에 계속 살아요라고 하는 답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옆집에 오는 것을 넘어서 그 정도를 뛰어넘어서 오늘 우리 삶 한 가운데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네 속에 살 거야 내가네 삶 속에 같이 살 거야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우리는 그 TV 예능 슈에 나온 어떤 배우의 대답보다 못하게 주님을 대할 때가 참 많은 거 같아요
반가운 손님 귀한 손님만 초대해도 아 뭐 들고 오지 마세요 가져오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이 오신다는 그 복음을 들었을 때 아 주님 그래서 뭐 들고 오시는데요 오셔서 뭐 해 주실 건데요라고 먼저 묻는 거 같아요 그런 태도로 주님을 대하고 있을 때가 너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적어도 여기 모인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 세상과는 뭔가 다른 삶을 살겠다 꿈꾸 들이라면 아 주님 뭐 안 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그냥 오셔서 저랑 같이 계시기만
하세요 저랑 같이 놀아여 제 삶에서 저에게서 이사가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짜 복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복으로 받은 우리의 삶에는 과연 어떤 익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몫이 되시고의 복이 된다는 것은을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복이 되셨으니 아 이제 우리 삶에 함께 거하시고 계시니 내 삶에 이제 문제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예수를 믿어도 삶의
문제가 있고 현실의 무거운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때때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세상과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라면 만나지 않았을 고난을 만나기도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자기의 몫이 된 사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진짜 자신 누리는 복이 된 사람은 그 문제들이 점점 작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족하기 되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죠 여러분 족이란 표현을 사용했던 바울의 삶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을 얻어서 그의 형편이 더 나아졌나요 문제가 사라졌나요 아니요 성경을 보면 오히려 그는 예수 믿고 예수님 만나고 인생이 더 망했어요 폭삭 주자 앉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세상 모두가 아 저 사람 복받았어라고 말했던 그 모든 조건들을 오물처리 단숨에 버립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해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그가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놀랍죠 나는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지에서도 스로 법을었습니다 나는 천하게 갈 줄도 알고게 갈 줄도 압니다 르거나 들리거나 하거나 하거나 또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있는 기을었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 분에서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네 바울은 스스로 만족하는 법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요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이죠 이 말은 바울이 이 자족이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거나 내가 어떤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정말 그는 하나님 때문에 내가 이제 어떤 처지가 되더라도 난 진짜 괜찮아요 나는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나는 주님이 계시 만족할 수 있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었고 하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우리가 품이라고 말했던 그 복이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어졌다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고백을 드립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하나님 그분 자체가 복이 된 사람은 자족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그거는 세상 사람도 똑같아요 건강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성 있지만 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던 것들이 주어지지 않을 때 또는 내 품에서 떠나갈 때 주저않고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에 개이치 않고 아 나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괜찮아요라고 고백하는 사람 자족의 비결을 배우는
사람은 주저앉지 않아요 계속해서이 땅에서 힘을내어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죠 도 괜찮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누리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 같이 모여서 이 설교를들을 때는 뭐 고개도 끄덕이시며 그것이 쉽지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면서이 복을 계속 배우고 누리는 걸 연습해야 해요 예배드리면서 배우고 연습해야 해요 어 제가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 일을 하잖아요 바둑을 둘 때 지켜야 하는 규칙 예절 자세 등등 아주 많은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배운 대로 곧잘 따라옵니다 학기초에 좀 빡세게 잘 이렇게 잡아 놓으면 1년 동안 아이들이 배운 대로 잘합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위기가 찾아와요 언제일 것 같으세요 뭐이 중에도 이런 같은 업종에 종사하신 분들이 계시는데 공감하실 모르겠습니다 바로 연휴 다음 날입니다 아이들이 분명 잘했던 거예요 눈 감고도 했어요 자동 반사 버튼 누르면 띡
나오는 행동들이었지만 놀다가 오잖아요 그러면 다 까먹고 유천에 다시 옵니다 그리고는 또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떠들고 흐트러진 자세로 엉망 진창의 하루를 보내게 돼요 왜 그럴까요 유천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거 할 때는 그게 습관된 것처럼 보였거든요 다 규칙대로 생활할 때는 그렇게 사는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갔을 때 유치원 규칙 안 지켜도 되고 규칙대로 하라고 계속 가르친 선생님도 안 계시고 다 같은 규칙안에서 생활했던 친구들도 없어 보니까 다시 그 본성대로
돌아간 거죠 말갈 량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그럼 그렇게 본성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다시 유 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다시가 다시 배우면 돼요 사실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바둑 시간에 이런 자세로 하기로 했지 이런 규칙 지키기로 했지 다시 알려주고 다시 연습하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금방 그대로 생활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분명히 깨달은 것 같았거든요 이렇게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우리 같이 살아보자
할 때는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서 말씀이 에 들리지 않는 회사에서 같이 이 삶을 살아내자 격려해 주이 자매의 형제가 없는 내 집에서 내가 홀로 운전하는 곳에 있을 때 우린 다시까 먹는다고요 그러면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거죠 나만 빼고 모두가 사품 쫓아서 전력 질주하고 있는 거 같으니까 아 나도 좀 뛰어야 되나라는 충동이 다시 우리를 찾아옵니다 모두가 서비스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으니까 나도 왠지 하나 받아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도
다시 찾아옵니다 그럴 때 여러분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다시 배우는 것처럼 다시 연습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때마다 다시 배우는 거예요 다시 연습해 보는 거예요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서 깨닫고 시각이 바뀌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본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말 시절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나의 시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계속해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는 것 진리대로 순 하 사는 거 하나님을 진짜 나의 복으로 누리며 사는
것은 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깨달았으니까 나 한번 변화해 봤으니까 그것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계속 시간을내어 기도해야 해요 주님 앞에 우리의 질문을 가지고 아처 나아가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읽히지 않아도 일단 책상 앞에는 훈련 일단 내 성경을 듣는 훈련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귀찮더라도 해요 여러분 그러니까 퇴근하고 이렇게 피곤한 시간에 모여서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거잖습니까 그렇게 계속 배워가는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고 그것을
진짜 자기의 것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전 여러분이 그렇게 진짜 복을 받고 진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배팀 올라와 주시고요 어이 시간 혹시 복에 대해서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면 또는 아 나 분명 저거 알았는데 어느 다 까먹고 또 내 본성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달라고 고집 피우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이 시간가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나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시간 주님의 임지 안에서 우리가 다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을 만나죠 어면이 순간에도 있 예수 믿는 거 정말 잘한 선택일까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거라 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아삽이 그랬듯이 리도 주님 임 안으로 깊이 들어가 진짜를 발견할 수 있기를니다 욕심은 나의 시선이 아니라 보이는 것 수 있는 나의 경이 아니라 품을 자인 포장하고 있는 상 간이 아니라 무한의으로 가을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도 오늘 아처 오직 주님만이 나의 몫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상급이고 나의 트로피 나의 영광이고 나의 전부입고
고백할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