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2026-03-01 · 요한복음 5장 17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네”를 작곡한 김도현 사역자의 곡인데요. 어느날 늦게 퇴근하여 집에 온 후, 흥얼거리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도 일하시네” 그랬더니 옆에서 유하가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밤 11시가 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이 말씀을 하셨던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거든요. “안식일에 왜 일하느냐?”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여러분, 안식일에 일하는 것.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셨습니까, 안 하셨습니까? 와우~ 어렵죠? 결국 여기서 말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은 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시간의

십일조와 같이 안식일만큼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앙인들이 주일을 위해 여러 결단을 하죠. 미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가운데 ‘칙필레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기독교 신앙이 중심이라서 일요일에 문을 닫아요. 그런데도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 최상위 브랜드입니다. 왜냐면 모든 평일의 장사도 최대한 성경적인 방식으로 해나가려고 애쓰는 기업이거든요. 미국 내에서 브랜드 신뢰도가 가장 높은 기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하셨단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도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6일이 아니라 7일 창조이거든요. 안식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창조세계가 망가진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뭘 하신다고 했죠? “새 창조”입니다. 다른 말로 구원 사역, 회복 사역입니다. 새창조의 사역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시간 속에서 펼치고 계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든 어떤 날이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새 창조의 사역’, ‘만물을 충만케 하는 사역’, ‘구원의 사역’입니다. 이것은 멈춘 적도 없고, 쉬는 법도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사람을 연구해 보니까, 사람이 ‘목적’이 사라지면 게을러집니다. 제가 보면, 크리스천의 삶이 여러 단계를 거쳐서 발전합니다. 우선 세상에 속한 상태가 있습니다. 이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목적이 있어요. 이때는 게을러요, 안 게을러요? 안 게으릅니다.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한 상태이거든요. 이때는 죄를 지어도 열심히 짓습니다. 그런데 회심을 막 해나가면서 육체의 욕심들을 정리해 나가고 하나님을 알아갈 때, ‘욕심’이 사라지는 시간을 거쳐요. 이때는 마치 ‘해탈’한 것과 같은 시간을 거치기도 합니다. 마치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놀라운 영광을 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 모세도 애굽의 왕궁에서 더 열심히 살았어요.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고 뭔가를 하려는 욕심이 가득했었죠.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키는 그 과정에서 목적을 잃고 맙니다. 그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비전을 품기 전까지 그는 목적이 없는 방황을 했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있을 때 바빴어요. 애굽의 위협적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위해서 바쁘게 살았다고요.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 나오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방황합니다. 목적이 없으니까 불평도 찾아왔죠. 성경의 패턴을 보면, 늘 크게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삶. 하나님께 나아오는 과정. 하나님께 속한 삶. 회심의 과정에서, 회심 초기까지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목적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입니다. 이전의 목적(성공, 욕망)은 훨씬 많이 내려놨어요. 그런데 새로운 목적,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나의 비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자칫 또 다른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애매한 중간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반드시 ‘새로운 삶’에 걸맞은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명상’을 합니다. 욕심 가득한 내 삶에서 한걸음 벗어나는 단계이죠. 비워내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비워냄이 우리의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묵상’을 합니다. 세상의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해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명상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욕심 없이 만듭니다. 묵상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세요? 사람을 뜨겁게 만듭니다. 가슴

뛰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세상의 소욕, 나의 욕망은 줄어들었지만, 이제 그 자리에 성령의 소욕, 하나님의 비전이 찾아오면... 전보다 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크리스천 라이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잘 보면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함께 그 일을 하자고 부르십니다. 우리를 복음의 수혜자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동역자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수혜자는 나의 구원 외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꿈도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평생 가나요? 내가 거지인데, 어떤 좋은 사람이 나를 구제해 줬어요. 그 감격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과.... 그 사람이 나를 자기의 아들로 삼아서 그 좋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그 좋은 일을 함께 해나가며, 그 기쁨을 누리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이 삶의 의미를 알면, 하루하루가 소중하죠. 여러분, 제가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자랐는데... 이걸 몰랐을 때, 삶을 얼마나 무의미하게 보냈는지 몰라요.

세상의 욕심은 일찍 사라졌는데... 거기서 딱 멈추고 나니 너무 공허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삶이 느리게 갔어요. 그러니 뭐라도 붙들고 살아야 해서, 저도 게임에 빠져 살기도 하고요. 즐거움을 쫓아서 살기도 하고요. 인정받기 위한 여러 사귐에 수많은 시간을 쏟으며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발견하고, 그 일에 내 몫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죠. 내가 시간을 잘 쓰면, 몇 명의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목사로 사는 것도 완전히 다른 삶이 있어요.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만 하면서 밥벌이로 사는 삶도 있겠죠.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또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는지, 지금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면.... 허투루 살 수 없죠. 저희가 미얀마팀이나 대만팀이나 이번 선교기간에 매일 묵상을 했습니다. 마침 저희교회의 올해 핵심 사역도 말씀 묵상이고, 미얀마의

선교사님이나, 대만의 일심교회나 모두 말씀 묵상이 생활화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제가 이번에 선교 기간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실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레벨이 달라. 그러니까 너희는 그냥 요렇게 살아.”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으셨어요.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놀랍게도 너무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맡기셨어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새창조의 사역’,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주인 삼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교회들’, ‘성도들’을 향해 똑같은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리고 너희도 일하라.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가끔 저에게 “왜 이렇게 일을 자꾸 만드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또 때로는 어떤 사랑으로 저에게 그 말을 하는지 알지요. 그러나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내가 보았는데, 내가 아는데... 어떻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은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번 선교를 통해서 끝과 끝의 환경에 있는 2개의 교회를 보았습니다. 아시아 최빈국인 미얀마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센터. 아시아의 최고 선진국에서 40년 동안

복음으로 세워진 우리보다 더 형님 교회. 주어진 환경, 주어진 상황은 모두 달랐지만, 우리가 보고 경험한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곳에 주님이 일하고 계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민족과 열방을 넘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는 목격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이곳에서도 계속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미얀마와 대만과

한국. 그리고 모든 열방과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여러분이 회심하는 것을 위해 계속 힘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회심 후 방황하지 않도록, 함께 꿈을 꾸며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초청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사하신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삶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저도 일할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위해 일합시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