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3과 /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어떻게 시작할까? / 강정규 목사

2022-03-18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풍성한 삶의 첫걸음을 나누는 세 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설교의 내용을 잠시 기억해 봅시다. 우선, 누구에게나 영적 탄생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인생 여정이라는 말을 쓰듯이, 영적 생명에게도 영적 여정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를 하나님이 이 영적 여행에 초청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일꾼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고, 사랑을 우리와 나누고 싶으셨습니다. 죄로 인해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다시 부르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서 방황하고 공허한 삶을 사는 것을 바라만 보시지 않고 그분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그분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순간을 우리는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에게는 이 거듭남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썩어지는 이 세상의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거듭남은 내 감정으로 체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 죄를 대신 지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가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의 첫 번째 특징은 믿음(Belief)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무엇을 믿는지, 어떠한 사실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지 그 믿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다음 네 가지 내용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생을 지으신 주인이라는 것. 2) 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았기에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져 죽음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 3) 이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 대신 받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길을 여셨다는 것. 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깨졌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거듭난 자의 두 번째 특징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우리 삶의 변화(Behavior)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여기고 살다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배워나가면, 우리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더욱더 온전해집니다. 물론 이 변화에 있어서 각기 다른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속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 변합니다. 대표적으로 바울과 같은 사람이 그러하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변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즉 나의 영적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Belonging)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통해 깨지고 상한 세상을 치유하시며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거듭난 자가 변한다는 것은 마치 씨앗이 세월이 지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출발점이 있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의 특권을 누리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것이 거듭남의 축복과 특권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과 금요예배 때 나눴던 찬양 가운데 <토기장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너의 눈을 만들면서 너에게 눈을 못 뗐지.” “너의 첫 심장 소릴 들은 그날을 잊을 순 없지.” “너를 다 빚은 그날에 누구에게 널 맡길지, 한참을 돌아본 후에 너를 보낼 수 있었지.” 이 찬양의 가사들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 느껴지기도 하죠. 또 대부분 부모가 되어 자신들이 경험한 생명이 탄생하는 그 경이로운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할 것입니다. 동물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걷기도 하고, 태어난 후 비교적

빨리 혼자 커나가는 개체들도 있지만, 사실 인간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기를 낳은 후 방치하면 혼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젖을 먹여주어야 합니다. 또 따뜻한 엄마 품이 있어야 아이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적 특성인데,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젖’과 영적인 ‘품’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음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태어나 생명의 숨을 쉬기 시작한 사람 중에, 이런 젖과 품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람이나 공동체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죽지는 않더라도, 태어난 후 성장하지 못한 채 그저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기는 했으나 그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자라지도 못한 채 생존만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즉 모든 신자를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눈에도,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거나 죽어가는 영혼이 발견되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0:10b)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에

힘입어 생명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단지 천국 입장권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져 있는 오늘의 삶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풍성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품에서 젖을 먹으며 성장하여 어린아이가 되고 청소년을 거쳐 장성한 청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성장도 영적 아이에서 영적 청년을 거쳐 영적인 부모가 되기까지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평생에

걸쳐 우리의 영적 생명이 성장하며 풍성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 어떻게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영적 성숙에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기초는 늘 근본입니다. 기초를 무시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고, 공부에도 진척이 없으며, 관계도 깊어지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이 왜곡되거나 정체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이러한 근본과 기초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갓난아이 시절부터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정서적으로도 채움을 받지 못했다면, 그 영향력은 그의 삶 전반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기초가 있습니다. 먼저 음식이죠.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을 잘 구분하여 먹지 않으면 나이가 들기도 전에 성인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음식’을 ‘건강한 방식으로’ 먹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의 양식은 말씀입니다. 즉 성경이 우리의 영적 양식입니다. 갓난아이가 좋은 양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엄마의 품입니다. 엄마의 품에서 때에 따라 필요한 양식을 먹으며 성장해 갑니다. 엄마의 품에서, 또 조금 더 크면 가족들이 함께 밥상에 앉아서 삶을 공유하며 식사를 합니다. 그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매일 식당에서만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안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눈을 맞추며 교제를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말씀의 양식을 먹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이 바로 ‘예배’이고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마주하고,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말씀’의 양식을 먹으며 자라갈 수 있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찾듯이, 우리는 말씀을 향해 나아가서 말씀을 내 삶에 담아야 합니다. 이때 사실 많이 도움이 되는 것이 ‘암송’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것도 말씀을 대하는 중요한 방식이지만, 내 삶에 그 말씀이 정말로 가깝게 있으려면 암송을 해야 필요한 때 꺼내어 먹을 수 있습니다. 암송이 제일 좋지만,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좋은 말씀을 기록해두고 언제든 꺼내어 보십시오. 저는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꿈에서라도 생각나 것이 있으면 잠깐 깨었을 때 메모를 해둡니다. 제가 다른 이의 설교를 들을 때는 되도록 필기를 하면서 듣습니다. 필기자료는 항상 모아두고 생각날 때 찾아볼 수 있도록 합니다. 제 설교도

다 정리해두고 공부한 자료나 모든 정보들은 정리해둡니다. ‘블로그’ 기록들도 그러한 일환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 꺼내어 볼 수 없는 정보와 자료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정말로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기도는 진실한 소통입니다. 저는 대표기도를 할 때, 특별히 날 것 그대로의 기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조금 어설프더라도

남의 기도문을 가져와 대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백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면 은혜가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을 하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울 것입니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전한 마음으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전하면 됩니다. 무슨 내용이 되었건 마음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 영적 소통의 시작입니다. 가끔 기도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을 원하는 것이

사실인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기도를 합니다. 아닙니다. 기도는 일단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하나님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것이나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정말로 그분과 내 삶을 나누고 싶은 태도여야 합니다. 정말로 내가 믿고 신뢰하는 분께 조언을 구하듯, 그분 앞에서 내 의견을 나누고 교정받을 수 있는 마음이면 됩니다. 어쨌든 솔직하십시오. 때로는 잘 느껴지지 않더라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느낌은 결국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느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성경이 말해주는 진리입니다. 성경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어차피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일상이 기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 안에서도 일상적으로 대화도 하지만, 때로는 함께 대화의 시간을 특별히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과의 시간은 피조물인 인간이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아가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려는 특별한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시간들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내 삶에 그러한 시간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대부분 그 시간을 잘 지켜내지 못합니다. 저는 일부러 시스템 안에 저를 던져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설교와 예배 준비 외에도 별도로 성경을

더 연구해야 함도 알고 있고, 때로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바쁜 삶을 살다 보면 다른 일에 시간을 다 쓰거나, 혹은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강의도 피곤하고 바쁘더라도 등록해서 들으려고 힘씁니다. 꼭 필요한 모임은 멤버십으로 참여하여 배워가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교회의 예배 시간이나, 그 외의 개별적인 하나님과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결단하고, 내 삶에서 그 시간을 지켜내야 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풍삶기를 하면 10-10-10이라는

훈련을 합니다. 하루에 세 번 10분씩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점심에 10분, 마지막 잠들기 전에 10분을 하나님께 보내고자 하는 결단입니다. 그 시간에 묵상을 할 수도 있고, 성경을 읽을 수도 있고, 찬양을 할 수도 있고,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조차 안되면 출퇴근 시간의 사용에 대해 결단하십시오. 오가는 차편에서 그 시간만큼은

다른 것을 듣기보다 성경을 듣고, 설교를 듣고, 찬양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걷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걸을 때는 보통 저도 설교를 듣거나, 오디오 성경이나 찬양을 듣습니다. 일단 내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을 만들고 지켜내는 것이 현대 사회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좋은 습관을 만드십시오. 혼자가 안 되면 팸 별로, 기관별로 함께 해보십시오. 서로가 약속하고 함께 그 시간을 서로 지켜주는 것입니다. 저도

너무나 부족했지만, 그래도 이제 어느덧 개척의 선배가 되어서 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러 오시는 목회자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제가 제일 답답하게 여기는 상황은 무엇이냐면, 실행이 동반되지 않는 계획만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럼 늘 단호하게 말합니다. “일단 해보십시오.” 무엇이든 해봐야 계속 늘거나 혹은 보완점을 찾거나, 아니면 내게 맞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보고, 일단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지는 영적인 공급을 경험하십시오. 진정으로 영적 성장을 원한다면, 발걸음을 내디뎌 보십시오. 작은 한 걸음이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따로 내어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 마음과 결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한 것에 자신의 마음과 시간을 드리는 사람만이 소중한 것을 얻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생명입니다. 생명에는 영적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를 돕는

분으로 각 사람에게 보내어 주시고, 이러한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주일예배, 금요기도회 등 1주일에 1~2회의 예배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삶은 건강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은 의무이거나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특권입니다. 그 시간을 하나님과 보내기 위한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게 주시는 마음대로 바로 결단해보십시오. 오늘을 넘기면 지금 주시는 마음에

반응할 기회도 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첫걸음을 떼야 다음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인격적 관계는 늘 시간과 함께 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높고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도 첫걸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결단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