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1과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 / 강정규 목사

2022-03-04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저희 아버지는 부흥강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도 부흥강사 느낌이 나는 목사님들이 많으셨고, 저희 교회에서 모임이나 행사를 하며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기도원 이런 분위기들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 만난 신학생 친구의 물음이 처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에게 뭐가 제일 중요한 덕목인 것 같아?” 문제는 객관식이었는데, 보기는 3가지였습니다. 1) 지성 2) 영성 3) 인성. 저는

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했습니다. “영성이지.” 당시 제가 말했던 영성이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적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그 무엇보다 ‘성령의 불’을 받아서 목회를 해나가는 것 아닌가? 이것이 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미숙한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제 대답을 듣고 난 친구는 “난, 3가지가 모두 똑같아”라고 치사하게 답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그 친구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지금 저에게 물으면 저의 대답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질문이나 보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지성이 곧 영성이요, 영성이 곧 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분 짓거나 개별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지성이라는 것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인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착하고 바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성령님이 우리 삶에 주인 되셔서 일어나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과 영성과 인성은 각각 따로 갖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삶에서 반드시 함께 자라가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가장 영적인 삶, 성령이 충만한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성훈련이란 곧 지성훈련이요, 곧 인성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바로 그 삶을 향해 함께 자라가고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좋은 공동체에는 그 성장과 그 여정을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때로는 밀어주고 끌어주며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제 꿈은 바로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함께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성과 영성과 인성이 함께 아우러져 자라가는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루고 싶습니다. 공동체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특별히 제가 맡은 중요한 사역이 설교 사역이죠. 건강하게 자라가기 위해서 무엇을 붙잡고 가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주일에는 벌써 4년째 치열하게 <매일성경> 묵상과 동행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교를 추구하며 세운 목표는 말 그대로 성경 전체를 우리가 만나보기 위해서입니다. 설교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설교의 본문에 대해 편식을 하게 됩니다. 일단 제가 잘 아는 본문을 우선하여 설교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본문을 설교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본문을 설교하기 쉽습니다. 매일성경은 6년이면 성경 전체를 묵상합니다. 즉, 우리의 설교도 그 흐름에 맞추어 가기 때문에, 2024년까지 성경 전체를 큰 걸음으로나마 설교로 만나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설교를 통해서만 만나는 것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설교 외 시간에 말입니다. 성경 묵상 혹은 바이블 클래스 등의 성경공부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묵상을 독려하고, 신구약

파노라마를 열기도 했고, 신구약 중간사 등의 세미나도 진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시간에 성경에 대한 개관과 배경 및 역사를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노력이죠. 우리의 진리의 토대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 외에 다른 한 가지 가르침이 더 필요합니다. 바로 양육입니다. 양육은 성경공부와는 조금 다릅니다. 성경공부는 말 그대로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한 가르침을 해나간다면, 양육은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도와주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지금 크게 2가지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대일 양육입니다. 지금도 주 3회~4회 정도는 여기에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2팀을 하면 정말 진이 쏙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신앙을 찬찬히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전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목사로서 예배 시간 외, 여러분에게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을 수 있는 제 나름의 섬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대일 양육은 동시에 여러 명을 진행하지 못하므로, 일찍 양육이 끝나면 잊어버리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경험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죠. 그래서 공동체적 양육도 병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한 번의 설교 기회인 금요일에 진행하는 설교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금요기도회도 매일성경을 본문으로 설교했으나, 2020년 10월부터 “우리는 사귐의교회입니다”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신앙에 도움이 될 주제들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6월부터

양육과 관련된 내용을 책을 통해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청년아, 때가 찼다>라는 책이었습니다. 6주 동안 다뤘죠. 그리고 두 번째 책이 지난주까지 다뤘던 <새신자반>입니다. 28주간 다뤘죠. <새신자반>이라는 제목처럼, 신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다룰 세 번째 책은 우리가 현재 일대일로 진행하고 있는 양육교재와 연결된 책입니다. <풍성한 삶의 첫걸음>입니다.

이 책은 풍성한 삶 시리즈의 두 번째 단계 교재이기도 합니다. 첫 단계가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이고, 이제 저희 교회에서 16명 정도가 이 훈련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복음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을 다시 점검하며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영적 여정’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삶의 시작일 테죠. 저희는 복음을 모르던 사람을 대상으로 이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에게 있었던 과정을 다시 선명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 예수를 따르기로 한 사람이 ‘영적 아이’이죠. 바로 영적 아이의 첫걸음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 <풍성한 삶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은 나눔과 훈련을 다짐한 사람들이 <풍성한 삶의 기초>를 진행하게 됩니다. 불신자에서부터 시작하면 3단계를 모두 나누는 것이 유익하지만, 이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삶의

첫걸음>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희도 이것을 금요기도회를 통해 공동체 메시지로 다루는 것입니다. 대상과 목적을 고려한다면 <새신자반>과 큰 틀에서 비슷한 책입니다. 새신자반을 마친 후, 제가 이것을 다시 한번 다루는 것은 일단 새신자반이 실제적인 신앙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제법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일설교처럼 성경 본문에 집중하는 원론적인 가르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금요기도회 시간만큼은 조금 더 분명하고

실용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기도로 나아가기에 더 유익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신자반>과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저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양육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삶초를 경험한 분들에게는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이고, 경험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예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풍성한 삶’ 시리즈를 양육교재로 사용한 것은 무엇보다도 저희 교회의 신학적 기반인 ‘하나님 나라’에 기초한 양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내용이 이미 우리 교회에서 그동안 해왔던 설교와 일치합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들으며, 주일설교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이고, 우리의 스승이 하나이며, 복음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신자반>은 1994년에 나온 책이라면, <풍성한 삶의 첫걸음>은 2017년에 초판이 나온 요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하거나 시대적으로 필요한 신앙의 요소를 잘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책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책을 요약하기보다는 책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책의 내용과 흐름은 같지만, 세부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는 우리 교회의 실정과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맞는 영의 양식으로 모든 설교문을 작성할 것입니다. 이 책은 10과로 구성되어 있고, 가급적 우리도 이 흐름을 따라서 설교를 진행할 것입니다. 1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 2과. 거듭남의 신비와 축복 3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어떻게 시작할까? 4과. 인격적인 하나님, 어떤 분이신가? 5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어떻게 누릴까? 6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도, 어떻게 누릴까? (1) 7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도, 어떻게 누릴까? (2) 8과. 기도와 말씀의 삶을 어떻게 온전히 누릴까? 9과. 생애 첫 간증, 그리고 증인의 삶 10과. 세례, 그 사랑 깊은 언약 오늘은 1과의 메시지를 짧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1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 풍삶기의

예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군인 중에는 특전사와 같은 특수부대도 있습니다. 해병대 같은 곳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육군훈련소에 있는 훈련병들은 군인인가요, 아닌가요? 그들도 군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군인이 되었다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해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더 훈련된 그리스도인이 있을 것이고, 이제 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에 대해서 어떠했는지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유명한 모태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모태신앙의 최대 약점은 Before와 After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변화의 차이를 경험할 어떤 계기가 또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이 모두 있죠. 하지만 때때로 첫걸음을 내딛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신앙생활을 해나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혹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첫걸음을 다시 배우기 위해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그중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잘못 이해한다면, ‘어떠한 의무’를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성경읽기, 기도, 예배, 전도 등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듣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것들을 꼭 ‘해야’ 한다고 배우기도 하죠. 하지만 어떻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데, 단순히 그것을 ‘해야 한다’라고

듣다 보니, 당연히 못 합니다. 그러면서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만 느끼게 되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늘 기도와 말씀 생활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더욱 깊은 단계에서 경험하면 할수록 기도와 말씀 생활,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지를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경우 성도들에게 이것은 부담감 혹은 죄책감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신앙생활이 기쁨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뿐인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신앙은 기쁨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을 잘 돌봐주지 못하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주일 예배만 근근이 출석하는 정도의 삶을 살거나, 심하면 다시 믿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혹시 신앙생활이 부담되어 늘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빠진 사람이 내 주변에 있거나, 혹은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 순례의 여정에 있어서 첫 단추를 잘못 낀 데에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모르는 채로, 또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잘 배우지 못한 채로 영적 여정을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세상살이에 수많은 의무 조항을 새롭게 추가하여 종교생활의 의무까지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았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얼마나 소망이 없는지 깨닫고 이제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더욱 좋은 삶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해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마 11: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를 지치고 피곤한 삶에서 해방시키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새로운 종교적 의무를 어깨에 메어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 멍에를 메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배우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수고와 무거운 짐과 달리, 예수님의 멍에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쉼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일꾼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다못해 우리 안에서도 어떤 일의 기술자들은 초보자를 데리고 일하기보다 혼자 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에게 일을 도울 일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가고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의무감이 우선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여행의 첫걸음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영적 여행을 잘 걸어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 동안에 모든 영역에서 성장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진단을 해보았고, 또 참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중요한 진단이란, 내 신앙생활의 여정은 건강한 토대 위에 잘 걸어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리스도인이 되고 더 인생이 피곤해졌다고 느끼고 있거나, 의무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오늘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기쁨을 소망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