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필승 전략

2025-12-21 · 유다서 1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오늘도 이렇게 함께 예배하러 오신 모든 예배자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네. 오늘의 설교는 유다서를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어 미리 유다서를 뭐 원데이 원바이블이나 아니면 메일 성경을 통해서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문이 굉장히 짧습니다. 유다서가 몇 장일까요?네 네, 한 장입니다. 유다서 전체를 다룰 텐데 한 장만 오늘은 다룰 것입니다. 어, 유다서는 이처럼 유다가 쓴 아주 짧은 편지입니다. 어, 여러분은 유다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네. 가 유다가 많이 생각나실 것 같아요. 제가 어 유다의 이미지를 좀 찾으려고 이렇게 어 검색을 했더니가 유다 사진만 엄청 나오더라고요. 어 그런 아마도 대부분의 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였던 주님을 팔아넘겼던 그 가른 유다를 어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편지를 쓴이 유다는 예수님의 그 제자 가른 유다가 아니라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유다입니다.이 이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죠. 그렇지만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그게 무엇일까요? 어,이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저는 이 속담이 떠올랐는데요. 증잠 밑이 어두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두 사람은 모두 어쩌면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어, 두고 있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가장 예수님을 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메시아와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함께 잠을 잤겠죠. 그러나 정작 그가 어떤 메시아인지는 잘 알지 못했던 거 같아요. 복음을 가장 가까이해서 들었을 것이고 복음대로 사는

삶을 가장 그 가까이 지청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 복음이 과연 무엇인가? 복음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우리는 왜 복음으로 살아야 하는가는 아직 잘 깨닫지 못했던 두 인물이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이 편지를 쓰고 있는 주님의 동생 유다가 가륜 유다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는 어 뒤늦게라도 진짜 복음과이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 돌이켜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우리 유다서 1장 1절 편지의 시작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는 이들에게이 편지를 씁니다. 유다에게 예수님은 어떤 형이었을까요? 어, 제가 상상해 보기로는 조금 변란 형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유다의 입장에서는 아니, 사역한다고 한참 가정을 돌보고 가정을 위해 헌신해야 할 그 형이 어머니와 동생들은 뒷전으로 어, 둔 채 뭔가 이렇게 밖으로 사역하러 다니는

그 형을 보면서 어쩌면 조금은 서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설교를 준비하며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더니 유다가 주님의 그까 가장 큰 형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변란 형이 누구였는지 사역하겠다고 그 3년을 밖에서 고금분태했던 그 형이 누구였는지 그가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어떤 복음과 진리가 담겨 있는지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자 이 유다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따르겠다라고 고백하는

이 회심의 결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회심은 성경에서도 참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어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회심이란 원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라고 어 정의하고 또 때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진짜 주인이셨던 주님이 진짜 주인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거죠. 주인 척하던 나는 원래 나의 자리였던 종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나도 원래 우리가 있어야 했던 그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 저는 바로 이 회심의 결단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유다에게도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는이 회심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유다가 편지를 쓸 때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인 나 유다는이라고 편지를 시작할 수 있어요. 그게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예수님과 그 어 사도들 또 그 동생들의 영향력이 컸던 그 초대교회 분위기에서 나 예수님의 친동생이야라고 하는 것이 유다가 사역하기에 훨씬 유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아요. 유다는 소개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유다에게 예수님이 그저 단순한 형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시고 자신은 그분의 종이 되는 자리에 재정립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여러분, 어쩌면 예수님의 동생이었던이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회심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그 인간성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유다는 회심한 이후에 예수님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로 철저히 인정합니다. 그가 지금까지 봐왔던 예수님의 어떤 인간적인 모습을 넘어서

아 이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이분이 진짜 나의 메시아구나라고 하는 그 신성을 온전히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와 요셉의 아들인 자신을 구분하고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에게는 어 많은 동생이 있었는데요. 혹시 몇 명이었을까요? 예수님에게는네 명의 동생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유다가 막내였어요. 그래서 유다는 자신을 소개할 때 그 예수님 다음으로 큰 형인 야고보의 동생이다라고 지금 소개하고 있는 거죠.

자신이 경험했던 형제 큰 형 예수가 있지만 유다는 이제 예수님을 더 이상 형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있다라는 유다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유다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회심했기 때문에 회심하고 나서 그 예수님과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어떤 직접적인 그 시간은 좀 부족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고민들이 그 안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100% 온전하게

믿어지지 않는 것들, 뭔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 여전히 유다의 마음 안에 있었을 수 있죠. 여러분, 그렇지만 유다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온전히 인정하기 시작해요. 여러분, 자기 자리를 되찾는이 자리의 재정립이 재정립에는요. 반드시 온전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인정은 회심한 이후의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회심을 고백하지만 신앙생활 하다 보면 누구나 다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왔던 나의 삶의

경험과 그 삶의 경험 속에 쌓여온 그 지혜와이 성경이 말하고 하는 진리가 충돌하는 순간 우리는 경험하게 되죠. 여러분, 그럴 때 우리가 정말 회심한 사람들이라면 나의 경험과 그 지혜를 내려놓고 주님의 진리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100% 다 이해되지 않고 다 느껴지지 않는 어떤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에도 그분의 주권과 섭리와 일하심을 우리는 믿음으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다는 온전한 인정을요.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만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하고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그 고백이 진짜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읽었던 편지의 그 첫 문장에도 보면요. 유다는 지금 초대교회 공동체의 편지를 쓰고 있는 거거든요. 실제로 유다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그분을 따르는 한 제자로서도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한 이 초대교회 그 공동체 안에 지도자가 되어서 이제는 예수님처럼 자신도 교회를 세워가고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한 사람을 그 복음으로 세워가는 그 일에 헌신하는 것에 앞장서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유다의 이러한 변화처럼요. 회심에는 반드시 삶이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이전간은 다른 삶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어쩌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어떤 공동체 지도자가 되거나 어떤 리더가 되는 것은 어 사실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다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다 성도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우리 모두 다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 삶에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는 이제 우리 각자가 붙들고 고민하고 씨름해 봐야 하는 것이죠. 어,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가정 안에서 또는 어,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자 안에서, 내가 공부하고이 학교 안에서 나는 어떻게 제자로 살 수 있을까? 과연 어떤 방법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먼저 그 나라와 그를 구한다고 하는 그 삶을 과연 나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때로는 엄마의 신분으로 때로는 학생의 신분으로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해요. 이것이 바로 회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유다라고 하는 이 인물의 한 고백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던 회심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읽어 볼까요? 자리의 재정립, 온전한 인정, 삶의 변화. 네. 원래 나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것. 그리고 주님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삶이 그 고백에 맞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잘 작동되고 돌아가고 있을 때 아, 우리가 회심한 사람으로서 잘 가고 있구나를 점검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나는 과연 회심한 자로서 잘 가고 있는가?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를 점검하고 그것을 어 잘 보완해서 우리는 중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여기까지 이제 편지의 인산말이 끝났습니다. 자, 이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어 살펴볼 텐데요. 어,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편지가 어, 되게 짧기 때문에 메시지가 아주 명료하고 단순합니다. 여러분, 유다의 편지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정리하면 이걸로 정리할 수 있어요. 싸워라. 여러분, 대체 유다는 뭘 싸우라고 하는 걸까요?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여러분, 원래 유다는 이 내용을 쓰려고 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그 공동체에게 그 공동체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의 기쁨,이 풍성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나누는 어떤

그런 기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를 하던 도중에 유다에게 어떤 소식 하나가 들린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었냐면 유다가 지금 편지를 보내려고 하는 그 공동체 안에 어떤 위급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거죠. 그것은 단순히 경계하고 어 주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 공동체가 직접 맞서 싸우기까지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급히 편지의 내용을 바꾸죠.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몇몇

사람들이 몰래 숨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받을 심판을 옛날에 미리 적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로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거리로 만들고 오직 한 분이신 지배자요 우리의 주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이 말씀의도 있듯이 어 유다가 발견했던 그 문제는 무엇이었냐면 그 교회 안에 그 공동체 안에 숨어든 몇 사람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신앙의 침입자가 지금 발생한 겁니다. 이들이 새롭게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 공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어 이들이 뭔가 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 거 같다라고 발견된 것인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적어도 지금이 교회 안에 겉으로는 괜찮은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건하지 못한 그런 신앙의 침입자들이 지금 생겼다는 것이죠.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거였어요. 죄의 자유

이용권. 어,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말 그대로 이 침입자들은 죄에 대해서 너무 자유로웠다는 거예요. 죄짓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했기 때문이었어요. 하나님의 그 은혜를 오해해서 아, 이제는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나를 목숨까지내어 주실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구원은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살아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내 마음대로 살아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아라는 그 잘못된 오해가 죄의 자유 이용권이라고 하는 굉장히 큰 문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이들은 돈과 성의 영역에 대해서 어 괜찮아 우리 하고 싶은데 해도 돼라는 어떤 그런 오해들이 있었는데요. 어 제가 이전에도 몇 번 나눴지만 어 이번 학기에 그 학교를 다니면서 고린도 전후서의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사역했던 그 고린도 교회 그 지역 안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더라고요.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돼. 아니,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쓰지도 못해. 내 성 왜 사용하면 안 돼라고 하는 그런 오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당시 곳곳에서 이런 오해와 문제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바울이 너희 몸이지만 그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잖아. 그래서 음행하는 것은 몸의 죄를 짓는 거야.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아주 강력하게 책망합니다. 그리고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죠. 유다서의 유다도 바울과 똑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유다가 그 강력한

바울보다 더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분이신 지배자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여러분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지금 죄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이 죄의 자유권을 주장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아. 주님 나를 버리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향해서 아니 너희는 구원받지 못했어. 너희의 모습을 보니 너희는 회심하지 못했어.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구원받았고 주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짜 그렇게 믿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했겠죠. 여러분, 우리가 구약을 성경을 살펴볼 때도 이스라엘의 반복된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에게 있는 다윗 언약과 성전만 믿고 마음대로 살아도 나는 괜찮아. 나는 주님의 백성이니까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앞서 계속 살펴봤던 역사서와 모든 그 구약 안에 있는 문제점이었잖아요. 지금 신약의 시대에도 그 문제가 있었다고 지금 유다가

꼬집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앞에서 봤던 것처럼 회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유다가 봤을 때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 이 침입자들이 정말 자기 자리를 찾는 그 자리에 재정립이 일어났다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그 마음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니까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종의 자리에 내려갔기 때문이죠. 정말 주님을 온전히 나의 메시아 그리스도를 인정했다면 여러분

이들은 주님께서 나에게 메시아가 되시기 위해서 정말 나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뤄야 했는지를 기억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답게 회심한 사람다음 그 삶의 변화 아 내가 더 이상이 은혜를 받고 이렇게 살 수 없어라고 하는 삶의 결단이 따라왔어야 하죠. 여러분,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는 조금도 주님을 주인으로 따르고자 하는 이 회심의 노력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다는 지금 그 교회 공동체를 향해서 이런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 이런 침입자들과 힘써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라고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다가 원래 쓰고자 했던 편지가 있었는데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듣고 나서 바로 편지의 내용을 바꿨죠. 이처럼 유다가이 문제에 대해 어 대처할 수 있었던 좀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이 문제가 일어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그 공동체를 향해서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그렇다면 유다는 이 문제를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유다가 너무 지도력이 뛰어나서 그랬던 걸까요? 왜냐하면 이 내용들이 이미 다 성경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미 예수님과 또 그의 사도들이 이미 경고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다는 것을 성경 속에 있는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어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이 공동체가 충분히 다 알고 있고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설명을 하는 거예요. 첫 번째는 출애굽 1세대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여러분, 출애굽은 단순히 노예 생활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요. 엄청난 구원의 상징인 사건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구원을 받은 즉 추의콤한 이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했을 때 그분의 뜻과 뭔가 거슬리는 그런 행동들을 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다라는 것을 유다는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반역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데 이것은 창세기 6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거였어요.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나서 어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이야기가 연결되죠. 마지막 에피소드인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탐욕과 성적 타락의 그 끝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이 결국 불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유다가 알려 주고 있어요. 여러분, 유다는 패턴이 비슷한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요. 지금 두 가지를 공동체에게 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마치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 발생한이 침입자들과 같은 이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늘 존재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창세기 10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셨다라는 것이죠.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유다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공동체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거예요. 어, 여러분 혹시

기출 문제라는 말 다 아시죠? 아마 어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마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공부를 이제 시키다 보면 알게 되죠. 기출 문제는 그동안 시험에서 자주 출제되었던 그 기본적인 문제들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이것을 족보라고 부르기도 하죠. 어, 저도 학생 때 어, 학원을 다니면 시험 기간마다 그렇게 기출 문제집을 정말 여러 권을 찾아서 어, 풀었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 풀어 볼수록 아무래도 좋은 성적을

받기가 쉬워지니까요. 어, 근데 그때 제가 다니던 학원에 어, 굉장히 유능한 수학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이이 말씀을 되게 자주 하셨어요. 얘들아, 이거 숫자만 바꿔서 똑같이 나올 거야. 여러 번 풀어야 돼. 이거 반복해서 풀어야 돼. 이거 숫자 받고 똑같이 나온다라고 이런 말씀하시더라고요. 여러분, 그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시험 대비를 하면서 그 데이터가 쌓이셨겠어요? 그래서인지 정말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그렇게 딱 집어 준 문제들은 정말 그 시험에

나오는 거예요. 같은 유형의 문제가 숫자만 바꿔서 출제되는 경험들을 저는 학생 때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유다가 지금 앞에서 이 공동체를 향해 설명하고 있는 이 세 가지 에피소드는 마치 이 기출 문제집과 같은 거예요. 숫자만 조금 바꾸고 출제된 그 시험 문제들처럼 지금 시대와 사람과 상황만 조금 바뀌었을 뿐들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이 똑같다라는 것을 유다가 지금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공동체도 그 시대와 공동체만 바뀌었을 뿐들이 공격당하고 있는

그 문제의 본질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이 어 사역하실 때 또 예수님의 사역을 해서 사도들이 사역할 때 그들은 초대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많이 경고했었어요. 성도 여러분 이거 상황만 바꿔서 똑같이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 지키려고 하면 그 공동체 안에 자꾸 공동체 혼란스럽게 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미리 대비하십시오. 마치 저의 수학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대비를 시켰던

거죠. 아마 유다는 그 이야기 들었던 것을 진짜 기억하고 대비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동책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 성도 여러분 이거 주님이 나온다고 했던 문제잖아요. 사도들이 다 가르쳤던 문제지 않습니까? 당황하지 말고 성경에 이미 나와 있는데 우리는 대처하면 됩니다라고 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여러분 이처럼 유다는 마치 시험에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다 알고 대비했던 사람들처럼 공동체에 이제 더 나아가서

이 싸움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 것인지 그가 대비했던 그 전술들 싸움의 전략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왜 싸워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거였어요. 이것이 싸움의 이유를 아는 것이 유다의 첫 번째 전략이었죠.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인의 길을 걸었으며 삭을 바아서 발람의 그릇된 길에 빠져들었으며 고라의 반역을 따르다가 망하였습니다. 지금 유다는 또다시 세 가지의 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합의할 수 없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서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그 명백한 이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죠. 유다가 싸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침입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그 사람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 믿음의 길을 잘 걷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었어요. 유다는 대표적으로 새 인무를 지금 제시하고 있죠. 먼저는 가인입니다. 여러분 가인이 누구의 형이죠?네 아벨의 형이죠.

하나님께 분노한 그 마음 때문에 아벨 예배자를 죽이는 사람이 바로 가행이었습니다. 두 번째 제시된 발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고용된 주술사였어요. 그가 이스라엘을 어 저주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실패하게 돼요. 그러자 그는 다른 방법,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의 함정을 파서 백성들을 유인하고 멸망의 길에 빠지게끔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공동체가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도록 함정을 판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세 번째로 제시된 고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라는 출애굽했던 세대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모세에 대한 반역을 앞장섰던 사람이었어요. 자신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부추여서 죄를 짓도록 주도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꼭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도 이 악한 세력들이 우리를 걸고 넘어지려 넘어지게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좋은 신앙을 갖고 있으면 갖고 있을수록 더 치밀하게 우리를 겨냥하고 더 지요하게 우리를 노려서 공격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성도들을 향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한다면 힘써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유다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유다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두 번째 전략은요.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입니다. 이제 싸움의 대상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대상을 정확히 알고 겨냥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우리 신앙의 침입자들, 경건하지 못한 그 반역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내 옆에 앉은 옆 사람일까요?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 하나님을 거스린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어,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말씀은 가장 먼저 어, 나 자신을 향해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드리밀기 전에 이거 네가 좀 들어야 할 거 같아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잘 듣고 그 말씀을 나에게 견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겨냥할 첫 번째 우리 싸움의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욕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본능으로 아는 것 바로 그 일로 멸망합니다. 이들은 불만에 쌓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요 자기들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허통을 떨다가도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매게 아첨을 합니다. 어 여러분이 방금 읽으신이 메시지를요. 어, 조금 더 현대적으로 번역한 메시지 성경에 의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침입자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깔보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만 하고 짐승처럼 본능의 의지해 살다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맙니다. 이들은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자들로서 가장 큰 빵조각을 움켜 잡으려 하고 허풍을 떨고 자기들을 출세시켜 줄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짓거립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실 때 어떠십니까?이 모습과 우리는 전혀 일지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겐 정말 이

모습이 단 하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 회심했다라고 고백하고 또 이제 함께 주님을 예배하겠다고 나와 있으면서도 어쩌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거 내가 잘 이해되지 않고 내가 뭔가 잘 공감되지 않는 것은 쉽게 무시할 때가 있고 그것에 대해서 가볍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회심을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따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거는 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있을 때가 있죠. 불평과 불만이

우리 입술에도 자주 걸리는 거 같습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볼 때 여러분의 입술에는 감사와 기쁨이 더 많이 걸리셨나요? 불평과 불만이 더 많이 걸리셨나요? 때로 우리는 또 내 나와 내 자녀가 가장 큰 빵조각을 집게 하려고 했을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기 모인 우리는 대놓고 그렇게 안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은근히 뒤에서는 이왕이면 내가 이왕이면 우리애가 더 좋은 것을 취했으면 더 좋은 것을 경험했으면 더 좋은 자리에 갔으면 하는 것이 다 우리에게 있는 솔직한

마음일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결단하고 변화하는 것은 자꾸만 망설리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유익을 위한 것, 나의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처하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줄 믿습니다. 언제나 말씀의 칼날은 나를 먼저 향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아멘. 유다가

또 싸움의 대상으로 어 이야기하고 있는 두 번째 존재들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이 사람들은 분녀를 일으키는 자들이며 성령을 받지 않고 분능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평안에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아멘. 유다는 이 공동체 안에서 성령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분열을 일으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이 비슷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경험이 비슷해서 그런 걸까요? 교회가 하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각자가 우리 모두가 성령님을 따를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생김새도 다르고 자라운 환경, 생각, 경험한 거, 느끼는 거 모두가 다릅니다. 나는 좋게 여겼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난 이거 별론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인 거죠. 가장 가까운 부부도 절로 하나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이렇게 다른 우리가

이 교회 나가 그냥 교회 등록했다라고 하나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우리가 만약 하나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맞췄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성령님께 우리를 맞추어서 그분을 따라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유다가 지금 경고하는 것은요.이 신앙의 침입자들은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성령님께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교회에 하나될 수가 없고

자꾸만 분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어, 저희가 어제 사역자 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줄 아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용납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나 여러분, 교회라고 하면 동시에 하나됨의 일치 또한 추구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에서 읽었던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이미 한로 묶으셨고 우리가 그것을 지켜내는 거, 연합하는 것을 참 기뻐하시기 때문이죠. 우리는 모두 어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로 딱 뭉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서로의 의견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또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 삐걱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적어도 우리가 정말 교회로 모였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령님 뜻 안에서 어떤 것을 결정하고 어느 방향으로 이제 나아갑시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그 의견과 내 생각이 조금 다를지라도 내가 느끼는 것이 좀 불편하다고 할지라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이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러나 만약 성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의 본능을 따라 살아갑니다. 내 마음을 따라 살아간다는 거예요. 성령으로 하나되기 위해서 나를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나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대로 그것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어쩌면 이 공동체 안에 있는 이 침입자들이 내가 이제부터이 교회를 무너뜨려야지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령과 반대로 내 마음대로 내 본능대로 따라 행한 그 결과가 결국에는 그 공동체의 균열을 일으키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참 무서운 말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성령님께 집중하는 것을 놓치면 어쩌면 나도 순간 그 교회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것을

경계하고 주의하고 믿음으로 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할까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털로 삼아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십시오. 또 어떤 불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 주십시오. 또 어떤 불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동정하되 그 살에 닿아서 더렵혀진 소고까지도 미워하십시오. 유다가이 편지를 통해서 내세우고 있는 싸움의 세 번째 전략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싸움의 방법 그 실제적인 전술를 제시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을 잘 살펴보면요. 유다는 지금 분명 앞에서는 거룩하지 않은 자들, 성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 하나님과 반대되는 그 교회 침입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정작 싸움의 방법을 제시할 때는 그 내용들이 다 성도들을 향해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유다가 제시하는 싸움의 전술은요. 그들을 공격하고 누군가를내어 쫓고 그런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된 사람들을 더 바르게 세워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다가 제시하는 첫 번째 전술은요. 가장 거룩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복음 위에 스스로를 잘 세우는 거였어요. 먼저 나를 잘 세우는 거였다는 거예요. 성령을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스스로를 잘 지켜내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그 소망함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 여러분, 그런 것들을 통해서 먼저는 너희 자신들을 잘 세워 가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왠지 우리는 믿음의 싸움을 싸웁시다라고 하면 굉장히 특별한 어떤가를 결단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무언가를 보여 줘야 할 것 같고 내가 뭔가 남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뭔가 그런 부담감이 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유다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요. 그와

반대예요. 오히려 지극히 기본에 충실하라고 유다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회심했다고 해서 특별한 존재가 되는게 아니죠. 사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다 너무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지만 평범한 주부일 수 있고 평범한 직장인일 수 있고 평범한 어 학생일 수 있습니다. 유다가 말하는 믿음의 싸움은 그런 평범한 성도들이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싸움이라고 유다가 가르치고 있어요. 여러분, 이런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 싸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내 마음과 상황과 감정과 상관없이 예배의 자리를 꿋꿋끝이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싸움입니다. 귀찮아도 피곤해도 매일 하루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고 너무 바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틈을내어 기도하고 찬양하고 주님 앞에 머무르는 것이 믿음의 싸움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이 싸움을 하기 위해서 원데이 원바이블도 하는 거고요. 매일 성경도 하는 거고 양육도 하고 텐텐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우리의

전술이기 때문이죠.이 기본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복음 위에 나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나를 머물러 지키게 하고 또 주님을 기다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우리는 고민해야죠. 나는 어떤 신앙의 기본기를 내 삶에 적용할 것인가? 나는 오늘부터 무엇을 내 삶에 도입해 볼 것인가? 여러분, 무엇을 도입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힌트를 하나 드릴까요? 내년부터 우리가 매일 성경을 하기로 했죠. 다 오늘 뺀데 가셔서 메일 성경 전기 구독부터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싸움을 대비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다음으로 유다가 제시한 또 두 번째 방법이 있어요. 나를 먼저 잘 세운 다음에는 이제 다른 사람을 도와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서로를 세워 가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유다는 공동체 안에서 의심하는 사람들 또는 믿음만 조금 주저하고 결단을 머뭇거리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들을 궁휼하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리고 또 불속에 빠져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 잘못된 길로

가는지도 모르고 막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그 사람들을 거기서 끌어내어 구원하는 일을 도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다는 동정하되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이 동정은 그냥 불쌍하게 여기라는게 아니에요. 어유, 저 사람들은 저 잘못된 길을 가네. 불쌍하다. 이런 마음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너무 긍휼하게 여겨서 그들이 그 의심에서 벗어나고 그 죄악된 함정에서 벗어나서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도라는 의미입니다. 공동체 안에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있다면 너희 서로를 잘 세워가고 도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 또 하나 있습니다. 유다는 그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동정하되 그 살에 닿아서 더럽혀진 소고까지도 미워하십시오라고도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어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는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쓰라는 거예요.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죄 자체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죄에 닿아서

더럽혀진 그 속옷까지도 미워하는 심정으로 죄는 미워해야 해. 밀어내야 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도 어땠죠?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지 않습니까? 죄인들은 자꾸 내 곁으로 우리 곁으로 와라고 품으시면서도 동시에 죄는 밖으로 철저히 밀어내셨습니다. 회복시키시고 고치시고 친구가 되어 주시면서도 꼭 놓치지 않으셨던 것이 돌아가면 다시 죄를 짓지 말거라. 돌아가면 다시 돌아가지 말거라고 그는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마치 그런 것처럼 그 예수님을

따르는이 공동체도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조사아 왜 저러는 거야? 왜 말씀 듣고도 변하지 않는 거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려고 자꾸 긍휼의 마음을 쏟아 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동시에 잘못된 것, 죄악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어, 여러분, 어쩌면 어, 너무 아픈 말이지만 오늘 우리 공동에도이 유다서가 말하고 있는 경건하지 못한 침입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들과 싸우는 방법은요. 그들을

공격하는게 아니에요. 그들을 더 사랑으로 품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올바른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꾸 권면하고 도와야 합니다. 우리로 하면 양육도 하고 우리 같이 팬모임도 해보자. 이런 거 같이 말씀 읽어보자. 자꾸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럼에도 끝내 돌이키지 않고 만약 어떤 죄의 길을 걸어가고 말았다면 여러분 교회는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를 오히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죄에 대해서 책망도 아프지만 해야 될 수 있고 때로는 아프지만

그를 징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해서 다시 회복시켜서 우리 함께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 보자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방법은 먼저는 나를 복음 안에서 잘 세워가고 또 다음으로는 혹시 아직이 신앙 안에서 어떤 어려움을 직면한 어떤 죄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최선을 다의 사랑으로 돕고 그들을 그곳 가운데서 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우는 믿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어, 이제 말씀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어, 유다서는 오늘 우리에게 계속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믿음의 싸움을 싸워서 이기라고 말하고 있죠. 그것도 그냥 대충 싸우라고 말하지 않고 힘써 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누구를 변서 싸워야 할까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싸움은 오늘의 나와 싸우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오늘의 나부터 내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비교적 스스로에게 참 관대하죠. 남에게는 굉장히 어 철저한 거 같은데 나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해요. 그래서 나의 문제에 있어서는 빨리 합의하고 나의 문제에 있어서 빨리 타협하곤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성경은 제발 그러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성경은 너 자신과 힘써 싸우는 것부터가 믿음의 싸움의 시작이야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지 않으려는 나. 진리인 줄 아는데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하면 슬쩍 피하고

싶은 마음에다. 결단은 자꾸만 머뭇거리지만 내 유익 앞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결단하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그런나. 성령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대로, 내 감정대로, 내 경험대로, 내 본능대로 살아가려는 나. 그래서 교회에 연합 하나됨을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균열을 일으키고 자꾸만 혼란에 빠뜨리는 자리에 있는 나. 여러분,이 그 나 자신이 오늘 내가 힘써 싸워야 할 가장 큰 대상입니다. 새 사람으로 우리가 바뀌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붙들고 늘어지는 그 옛사람의 본능이 우리가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가장 친밀한 침입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어 안타깝게도 우리가 힘써 싸운다고 해도요.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말씀 듣고 결단하셨던 거 이번 한 주간 다 지켜내셨나요? 우리는 그 한 가지 결단도 지켜내기가 너무 힘든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 누구도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그 싸움 앞에서 있는 그 공동체에게이

믿음의 싸움을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필살기, 필승 전략을 하나 어 이야기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고 여러분을 흠미 없는 사람으로 자기의 영광 앞에 기쁘게 나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 곧 우리의 구주이심이여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험과 주권과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 전에와 이제와 영원까지 있기를 빕니다. 아멘. 여러분, 유다가 그 공동체에게 제시한 싸움의 필살기는 다른 무엇도 아니라

주님이었어요. 그리고 사실 이것이 유다가 계속해서 편지를 통해 말하고 있는 그 싸움 전략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엔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붙들고 지켜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흔들리고 넘어지지만 그런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흠없이 완전하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 주님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셔서 그 주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승리하길 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말씀과

기도로 우리를 복음 위에 세워 가야 합니까? 왜 우리가 성경 자꾸 묵상하자고 하고 자꾸 기도하자고 하고 자꾸 모여서 예배하자고 하는 걸까요? 그것은 어떤 우리가 더 거룩한 어떤 모습을 갖추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필살기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방법이기 때문인 거예요. 어, 저의 동생이 어릴 때 게임을 참 많이 했는데 동생이 게임하고 옆에 잘 보고 있으면 어떤 그 필살기를 쓰려면 그 앞에 막 작은 것들을 막 길을 모아야 하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이

삶에서 하는 굉장히 지루한 거 같고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따고난 거 같은 그 일들 텐텐 원데 원바이블 메일 성경 기도하는 거 여러분 이런 것들이 다 그 길을 모으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내가 위기를 만났을 때 나의 신앙의 침입죄를 내가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우리는 꺼내 써서 주님 도와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능력을 저에게 부어 주십시오라고 꺼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잠시 흔들릴 순 있겠으나 그 뿌리를 뿌리를 아주 뽑지는 못합니다. 주님이 붙들고 계시니까요. 여러분, 이러한 신앙의 기본기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기본을 꾸준히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 믿음의 싸움을 힘써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 싸움에서이기는 필승 전략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새로운 해가 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음 한해를 바라보면서 어떤 삶의 전략들을 세우고 계십니까? 혹시 아직 세우지

않으셨다면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예배하는 시간을 먼저 세우십시오. 여러분을 지켜내는 그 전략들을 먼저 세우십시오. 혹은 나는 이미 계획을 세웠습니다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 그 계획표 안에 여러분의 그 삶의 전략표 안에 과연 나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그 전략들은 잘 세워졌는지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시간을 꼭 가지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을 내년 한해도 또 앞으로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어 저도 내년에 시간을 바라보면서 또 새로 맡겨진

그 사역을 바라보면서 내가 준비할게 무엇일까? 해야 될게 너무 많은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 유다서를 보면서 제가 다 내려놓고 가장 먼저 결단했던 것은 아, 내가 나를 위해서 나에게 맡겨진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이 시간만큼은 꼭내어 기도해야겠다.이 시간에 다른 약속 안 잡고 내가 기도해야겠다라고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저를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지킬 거라는 것 저는 알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 이러한 것이 우리가 주님을 붙드는 우리의

싸움의 방식이고 마침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우리의 필승 전략입니다. 이제 예비티 올라와 주시고요. 우리 잠시 눈을 감고 함께 묵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믿음의 길 되게 그럴 듯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좁은문, 좁은 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좁은 길을 걸어갈 때 너무나 많은 싸움의 대상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대상은 자꾸만 그 좁은 길에서 더 넓고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나 자신일 것입니다. 흔들릴 수 있지만

끝까지 주님 저희 길을 가고 싶습니다. 주님 저의 필승 전략이 되어 주십시오. 저 끝까지 이 길 걸어가서 주님께서 저에게 부어 주신 그 믿음의 승리를 저도 함께 누리게 해 주십시오.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