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풍삶첫 8과 - 기도와 말씀의 삶을 어떻게 온전히 누릴까? / 강정규 목사

2022-08-05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느덧 풍삶첫 8과를 다룰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시작하고자 결단한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지 그 첫걸음에 대해서 쭉 다뤄왔습니다. 마치 씨를 뿌려서 싹이 나는 순간이 ‘회심’이라고 한다면, ‘풍삶첫’은 싹이 건강하게 잘 자라가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배우고 공급을 누리며 하나님께 속한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도표로 쉽게 표현해보면 이렇습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먼저 ‘만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와 만나거나 복음을 전해주는 누군가와 만남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서 ‘복음’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그러고 나서 ‘회심’은 나의 결단입니다. 회심은 중요한 결단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향해서 뭔가를 많이 알거나 온전하게 알기에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삶을 살아보기로 결단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회심 이후 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곧 거듭남이라고

표현하는데, 거듭난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죠. 대체로 회심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어느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택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사귐’을 누리게 하십니다. 마치 사람과 사람이 사귐을 누리며 친밀해져 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와 주십니다. 그 하나님과 우리는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제가 ‘사귐’이라는 단어에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을 종종 합니다. 사귐은 한순간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함께 깊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도 그렇습니다. 또한 사귐에는 ‘앎’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알아감 속에 관계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는 알아가며 그분과 더욱 가까운 존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고 싶으셔서 ‘말씀’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저는

성경이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것을 완전하게 표현하기에는 언어적 한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만약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짜장면’을 소개해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말로써 설명하여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차원 밖에 계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침투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그분을 만나고, 그분께 속한 새로운 삶을 맛보면... 그것이 너무 좋아서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표현으로 그것을 기록합니다. 수천 년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경험하였고, 그 모든 놀라운 일에 은혜를 입은 자이자 목격자와 증인이 되었던 것이죠. 그들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기록하였고,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총체적인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일하심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모두 한가지 복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실(FACT)로서 객관적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누리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도’는 주관적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쌓아가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한다면, 그저 그분께 나아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대화이고,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기도자. 대화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대화는 하면 할수록 서로 관계가 깊어집니다. 교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도 또한 일방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나의 필요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필요도 내가 바라보고, 내 이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장 좋은 대화법의 모델로 ‘주기도문’을 다뤘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무엇을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어떤 부분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신다면 풍삶첫 7과까지의 내용을 소화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와 말씀의 삶을 어떻게 온전히 누릴까?’에 대한

부분입니다. 다섯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과 기도 성경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차원이 다른 존재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가능하게 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고,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시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그러한

관계 맺기를 우리와 계획하셨습니다. 풍성한 삶이란, 하나님이 처음 인간에게 주고 싶으셨던 삶의 모습을 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가 누릴 수 없게 된 그 삶을 다시 죄를 넘어서 누리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내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잃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원래 모습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원래 모습을 설명해주시고, 그것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 각자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은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지적 설명이나 개념에 불과하다면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시며, 자신을 경험시켜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반응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이고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원래의 모습, 즉 죄악 이전에 주고자 하셨던 삶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온전하게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들, 믿음으로 반응한 자들은 이제 말씀을 먹고, 사랑을 받고, 기도로 소통하며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풍성한 삶의 시작입니다. 2) 성령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자들, 거듭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찾아와 자리 잡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신비한 일을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확신하여 말하는 것은 거듭난 모든 자들이 이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진리가 주관적 경험이 되기에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리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진리를 떠나지 않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지켜 보호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며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깨닫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이끄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우리를 꾸짖기도 하십니다. 또한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를 잘 모를 때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하여 기도하신다고 말합니다(롬 8:26). 바울은 성령의 임재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보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고후 1:22)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도행전에서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논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방인에게 임하자 사도들은 그 일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성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와, 성령 하나님이 늘 함께하며 베푸시는 도움으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풍성한 삶’을 배우며 누려가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인간의 악함과 약함 속에서, 그리고 그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역사적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

감히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이 풍성한 삶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하셔서, 실제로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삶은 오직 하나님 때문에 가능합니다. 3) 교회 공동체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회심하여 거듭난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하신지 잘 아십니다. 그것은 공동체입니다.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서 복음 안에 회심하는 결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즉 싹을 피었다고 할지라도,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자라갈 공동체가 없는 경우입니다. 즉, 공동체는 싹이 자라갈 토양과 같습니다. 사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추구합니다. 외로움에 매우 취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동체’를 진정으로 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극단적 개인주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많은 이들이 원하지만

경험하지 못하는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대부분 한 걸음 다가섰다가 상처받고 두 걸음 물러나는 것이 깨어진 세상이 우리에게 안겨다 준 경험이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에 익숙해진 삶을 살아가고자 결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죄 이전에 계셨고, 그분의 존재 방식 또한 공동체적입니다. 인간 또한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즉,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회복된 우리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점진적으로

그들이 깨달아 회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듭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곧바로 ‘교회’를 세워갑니다. 이것은 모두 연결된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그리스도께 속한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참된 예배로 이끄시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이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거듭남의 중요한 표지 중 하나는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이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풍성한 삶’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탄생을 하면, 하나님의 가족 안에 들어와, 먼저 가족이 된 영적 부모나 청년에게서 풍성한 삶을 봅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아이를 잘 보살피며 잘 자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함께 가족됨의 기쁨을 경험하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교회를 주신 이유입니다. 4) 진리에 기초한 나눔 건강한 공동체에 속하였다면 적어도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현대적인 삶에 적절한 형태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일 예배를 통해 선포된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기초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각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양식으로

받지 않는 사람은 결단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말씀을 삶으로 가져가 적용하여 지키고자 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종교생활이 될 뿐입니다. 죄가 자기중심성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자기중심적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고도 자기중심적으로 다시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팸 모임을 합니다. 팸 모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공동체적 삶을 경험하기 위함인데, 특별히 팸예배는 말씀을 삶으로

가져가 적용하며 살기 위한 훈련을 하는 시간입니다.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또한 바르게 그러한 삶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팸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반대로 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려면 우리에게는 동지들이 필요합니다. 함께 고민하며 최선의 순종을 드리는 모든 자들이 동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고 깨달은 말씀을 공동체 속에서 나눔과 격려를 통해서 구체적인

각자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기독교 모임마다 소그룹과 나눔 모임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모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모임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말씀이 중심에 없는 모임은 대부분 친교로 가다가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말씀과 복음이 우리 나눔의 중심에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면, 그 모임은 좋은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 모임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나누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자 하는 삶과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중심으로 나눌 때도, 우리의 태도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을 함께 나누고 격려할 때, 서로를 가르치려는 자세가 아니라 진실하게 나누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깨닫거나 배운 지식을 가르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은

나눔을 위한 시간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질문을 하는 부분은 각자 생각하는 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으면 가르치지 마십시오. 간혹 팸 리더나 혹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이 부득이하게 가르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눔의 방향이 맞지 않아서 교정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삶을 나누되 말씀을 중심에 두지 않고 나눌 경우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나눔이 보다 진실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노력하고 좋은 나눔의 방법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소개했지만, 풍삶첫 8과에서 3C 나눔법이 나옵니다. ‘상황(Context) – 도전(Challenge) – 변화(Change)’ 이렇게 나누기 위해 힘써 주십시오. “저는 이러저러한 상황에 있었는데(Context),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러저러하게 도전하셔서(Challenge), 이렇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Change).” 공동체 속에서는

성경 지식이나 신학적 해석 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간섭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말씀과 상관없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말고, 최대한 삶과 말씀을 연결시키는 나눔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꼭 이 나눔 시간을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말씀을 듣고 나면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위한 3C를 정리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매일의 묵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자신이 듣고 깨닫고 순종한(또는 순종하려는) 말씀, 곧 나에게 하신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누는 자나 듣는 자 모두 함께 성장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되지 않으면 바로 말로 표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주부터는 팸예배 시간에 먼저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함께 더 좋은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의 팸예배를 더욱 소중하고 건강한 나눔으로 채워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로 정리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중구난방이 되거나, 요점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글로 적고 적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나눔을 갖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 역시 공동체 속에서 배우고 함께 누려야 합니다. 함께 주기도문의 형식에 맞춰 기도하기를 훈련해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 기도 시간에도 단지 그 사람의 기도 제목만을 받아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비추어 그 마음을 갖고 기도하는 법을 훈련하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영적 아이는

배워가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5) 사랑 마지막 키워드를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주셨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말씀과 기도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방법입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오래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게 하셨지만, 외로운 나그네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나그네들’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삶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진실한 애씀이 있고, 팸예배를 통하여 그것을 함께 나누며 격려하고 은혜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주님이 주고자 하는 풍성한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을 함께 걷는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합니다. 각자에게 주신 공동체를 사랑하십시오. 세상 모임처럼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거나 혹은 정반대로 얼마나 힘든지를 자랑하지 마시고, 그 삶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을 묵상하고 고백하십시오. 그 주님 안에

함께 있는 서로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사랑하는 여러분의 모임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을 기뻐하고 누리시고 증언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5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