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번주 배는 마가복음 말씀으로 같이 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어디 14 장어 중반부터 어항 께 봤는데 오늘 말씀은 43조 부터 52 전까지 말씀에 보려고 합니다 4 천주 토 12절 말씀에 제가 뭐 읽어 드릴 테니까요 잘 듣고 내가 지구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에 대해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뭉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구호를 짜이 듯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 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갈아 하였는지 라 이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섞어 내 곁에 서 있는 자 중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d 에이스 장의 좀 외 쳐 그 귀를 떨어 드리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을 때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아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이 홑이불 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 가다가 무리에게 잡힘 의 배후 니 부 를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이라 함 n5 내일까지 말씀에 같이 보고 싶습니다 어 예수께서 그의 3주가 말씀하고 계시는 어제 우리 받지만 깨어 있으라 기도하라 말하지만 어 기도 하지 못하였고 이제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이제 때가 되었다 말씀하셨죠 바로 그때 유다가 가롯 유다가 칼과 몽둥이를 가지 사람들과 함께
그 옷의 나타났습니다 유다는 미리 세워둔 계획 대로 예수님께 다가와서 입맞춤을 합니다 땀이 나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 것 혹은 리키 표류 볼을 가볍게 되는 것 이것은 어 제자들이 그의 스승에게 존중의 표하는 존경을 표하는 그러니 4 방법이었습니다 유다 행인의 중동 지방에서 아마 뭐 가볍게 볼수있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사 잃었을 것입니다 우리 촉매가 아시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에서 성도 자네도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화 1 무런 표현들은 이제 그렇게 어하는
일상적으로 보이는 인사 행위라고 우리가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가 로 안타깝게 이 순간에는 예수님의 향한 대 반에 표시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해 지상 들과 썩 듯이 한 무리와 속이 관능과 장로들에게 서 타 송 된 물이란 것은 성전 경비병들의 의미합니다 어유 안 보고 말씀하 뜨는 거기에 일부로 마의 군대도 섞여 형 보았지만 대부분의 무리들은 이제 대지 사항 물이 이제 유대인 에서 이제 파견한 그런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가
대부분 이었을 것입니다 제사가 스승과 만났을 때 입맛 추가한 오신 자연 소닉 인데 이것을 통해서 서로가 이제사 이내에 맞추고 있었던 것이죠 아 저사람이 바로 예수 구나 이렇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성정 경비병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할 거 나 혹은 2시간 하체가 이제 어두운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분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가려고 사람들이 이 시기에 달려들자 베드로가 나서 줘 요한복음 에서는
칼로 대장의 중에 길을 배워 버린 사람이 베드로 였고 종의 이름은 말고 였다 이렇게 소개 합니다 만 오늘이 왔던 마가복음 과 마태복음 에서는 그 무리 중에 하나가 나타나 서서 그 길을 떨어져서 타라고 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누가 오고 가유 항목에서는 오른쪽 기 이렇게 또 표현하는 그러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에서는 예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는데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폭력으로 썩어 스 대항하는 것에 대해서 금 하셨으며 자신의 검과 뭉치로
체포 로 자대 그 또 귀가 짤린 자 마저 치료 이고 회복시켜 주는 그러한 모습이 있습니다 48 절에서 보면 마치 예수님의 강도 잡는 것 같이 잡으러 왔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사실 예수님은 은밀하게 행동하는 남들이 보이자 더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혁명과 나 강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잡으로 나온 사람들은 마치 강도를 붙잡아 가는 것처럼 행하였다 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지막 주간 내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하셔서 숨어 개지 않았습니다 성전
해서 성소 뜰에서 나와서 얻으러 내어 가르치 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로 예수님을 잡아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예루살렘 성서 안에 모인 사람 중에는 예수님의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한 유월절 기간에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가운데에 잡아가는 것은 자칫 어 뭐 밀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적한 밤에 인적이 드문 이곳에 와서 강도를 몰래 체포해 가득 움직여 따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우 계획적으로 예수님의 언제 해야 될까 아마도 계획을 짜서 움직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성경은 예수님의 강도 처럼 자간이 1주차 사실은 구약의 예언의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경의 예언은 이룬다는 것은 이사야 53장 아마 12절에 말씀을 성취한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거기 보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이번 이라 라고 기록하고 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렇게 잡혀 가는 것조차 하나님의 그 주권 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버리고
도망 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이 예수님의 샤 들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더 기억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 b 아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를 때의 모습 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초청 앞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러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계속 정화 야 날 따르라 있을 때 그냥 지금 이제 있는 어떤 것들을 다 버리고 즉각 예수님을 따랐던 이 모습에서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있었다는 것인가 어쩌면 자신의 삶을 걸고 예수님의 따랐던 사람들이라고 올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그 자신들이 지켜본 예술이 여정이 이제 뭔가 의 설명에 나아갈 때는 때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진행되어 갈수록 제자 자아낸 자신들의 욕망과 야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마음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들 가운데 누가 큰지 다투기 예수 였으며 새배 대해 아들인 야구 보어 요한이 예수 님 주님이 왕이 되시고 도 우리에게 좌 우 편 자리를 주십시오 라고 잘못된 청탁을 하였고 그 사실을 안 나머지
열 제안은 동일하게 분개 합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있던 그 야심이 그리고 동일 했다는 것이죠 만약에 야 예수 중 따른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니야 그러면 붕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그 마음이 있었는데 아 저것들이 먼저 선수 철학가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 헛된 기 들에 걸고 있던 제 아들은 이제 그리고 한데 유다가 배신 해서 예수님께서 붙들 있는데 숙제로 없이 아무런 저항 없이 붙들려 가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제 예수님을 주고 2방 쳐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이들이 왜 2방 했을까 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신문 과정 그리고 처형 까지 가는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죄목은 정치범 취급을 당했는데 정치 봄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죄목 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돌아가는 상황을 예수님 제 아들이 근처에 있으면서 바라보면서 아 예수님 곁에 있으면 나도 함께 화를 당할 수 있겠다 라고 느끼면서 도망쳤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굉장히
눈치가 빠르고 4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 행위에 대해 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일까지 이야기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아 ice 잡혀 가신 자면 제도 망함 이 줘 그러나 마가복음의 는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하지 않은 독특한 내용의 두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아 모자익 얻으면 2 14장 51조 52 전인데 한 청년이 시작해 가질 때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배에 혼 니브 아주 얇은 이불 하나 를 두르고 예수를 따라 가다가 무리에게 잡힘
에 배 훈 리브를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한다 5식 마가복음 0 나오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봐야 될 것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해석은 아마도 이 청년이 마가복음의 기록한 막아 였을 것이다 라는 해석입니다 암 아이재아 들의 10 1 지자 가르친다는 배신 했으니까 11 지자 에도 망하면 기록함 기록하고 나서 사실 그때 자신도 아 이렇게 도망하여 따라 4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자신도 다른 자들과 별반 다르지 알았다 라는 것이 겸손하게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 속입니다 그러나 뭐 거기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여러 날 그러면 이 청년의 이 정체가 어떤 것인지 학점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해서 적어도 이 청의 누구인가 보다는 이 상황에 대한 재구성해 보면 이러한 관점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청년 n 자 무의 자다가 예수님을 지금 체포 하라고 사람들의 움직였다 라는 수식을 듣고 황급히 어제 옷을 다 갖춰 입을 틈도 없이 예수님께 얼른 가서 도망 시라고 개 세바
4까지 뛰어올라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왔을 때 이미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가시 된 상황이 었으니까 그 뒤를 함께 따라가다가 이제 2세 황제가 지금 정치범으로 이끌려 가고 있고 제가 된다 도 방 하였고 이 사태의 심각성 알아 처리 청년은 어 2000의 펜 씨의 아마도 벗으 몸으로 그대로 도망하여 따 이렇게 이 상황을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체포는 주변 사람에게 매우 심각할 말한 상황이었고 때로는 이 청년이 알몸으로 라도 도망쳐야
만큼 긴박한 어그 일이 그 밤에 그 새벽에 일어 났다 라고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우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말씀이 우리에게 오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럼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속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 까요 첫째 u 다행히 그 배반의 입맞춤 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예수님의 적극적으로 배신 합니다 제자들이 축적으로 배신했다 면 유다는 적극적으로 배신 했죠 왜 그럴까요 그는 예수님이
가까이에 있었으나 예수님의 위해서 이미 시작된 도래한 이미 초청하고 있는 열려있는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는 아마도 이 아지도 경험하지 도 못했기 때문에 것입니다 그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 하였고 아내가 예수를 따라가는 히 소망이 없겠구나 아무 의미가 유익이 없겠구나 이렇게 여겨 벌인 결과 그는 예수님의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이 땅의 임했고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는 그 나라를 이해하고
있고 경험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도 예수를 따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며 내 삶에서 그 하나님 나라 또 예수님의 다른 이래 들어오는 배제한 치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우리가 점검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두번째 베드로는 칼을 뺀 해요 다른 이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그가 예수님의 3년 동안 따라 냈지만 진정으로 예수 원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예수님이 추구하는 곳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검으로 상대방을 내리치는 것이라
말씀의 검으로 자신의 내면에 그릇된 욕망과 그릇된 어떤 부분들을 잘라내고 드러내는 것 이것이 어스 메그 낸 몰랐습니다 내 바깥에 조까 싸우려 하다가 그는 오히려 슬 패한 것입니다 우리의 언제나 싸움은 밖에 있는 곳에 나 사시는데 내면의 있음에 기억해야 됩니다 내 안에 내 마음이 바뀌고 내 마음이 다시 되어져야 합니다 호 시리즈가 내 마음에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에 말씀의 검으로 진리의 검으로 도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이 말씀의
칼라 디 만약에 다른 일을 행하고 있으면 아 그사람 이래야 되는데 누가 이래야 됐네 오히려 사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내의 안에 있는 곳에 향하고 있다 라는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한 청년이 홑이불 만드는 채 예수님은 었지만 그도 그 새벽에 따라가 정도로 열정적 였지만 브라 끝내 따르지 못했다 라는 거 그런데 그 도도 망하고 같다는 곳에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십자가의 길을 따를 만큼의 결정적인 믿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벗은 청년의
그도 방 신 알몸의 수치를 예수님께서 사실은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에 오르 심으로 대신 당하셨다 라고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걸 마실 좀 십자가는 우리 뭐 영화에서는 예수님께 좀 기후가 2편 오셨지만 십자가는 발가벗은 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높이 달아서 죽임 으로 것도 오랜 시간 걸쳐서 출발 면화 가장 수치스럽게 또 유대인에 법에 따른 가자 저주 스럽게 죽이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들어 여러분 사실 진정한 수치는 십자가를 의 진행 되어 있는 것인가
십자가를 외면하고 도망치는데 있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겠다 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 의 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나는 어떻게 그 길을 끝까지 따를 수 있을까 그 길을 따르게 있어서 내가 감내하고 내가 순종하고 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은 어떤 것인지 어쩌면 우리가 이 아침에 기도로 불어야 될 것입니다 준비 되게 행하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이 그 길에 끝내 가신 이유가 제자들의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러셨다 라는 것을 깊이
묵상 하다 보면 주님이 가신 길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아 주님의 그 사랑이 나를 향해서 오늘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내 안에 그 중에 마음을 담아서 오늘 그 길에 우리가 조금 더 용기 내어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과 기도로 열어가는 여러분의 하루안에 그런 주님과의 동행이 겸 되고 채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우리 지나지 제가 마무리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는 그런 시간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자유로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올 도리에 같이 보여서 2배 할 수 있도록 다행히 우 선배들의 마음에 발걸음을 도 인도 여신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오네 3기 말씀이 부부 you're 말씀에 새기며 하루를 열어갑니다 주님이 우리의 하루를 주께서 지켜 주옵시고 아버지의 뜻 안에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세움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주어 부드러워 줘서 감사 d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