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치유 : 구원의 실재 / 강정규 목사

2023-06-02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13번째 설교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 ‘구원의 현재성’에 대한 부분을 다뤘습니다. 오늘도 이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설교는 김세윤 교수의 저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제는 같고, 설명의 표현 양식이 조금 다를 뿐, 본질상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 그냥 아무 능력도 없이 임했다는 것이라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이것이 이미 임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미 임했기에 이미 하나님 나라는 깨어진 세상을 치유하고 충만케 하는 그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너무 좁은 의미로 이해해서, ‘천국’과 ‘구원’을 말하면, 그깃이 모두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로 인식하고 있다면 선물을 받고도 그것을 풀지 않은채 보관하여 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현재적 측면을 잃어버리면, 저는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다 놓쳐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현재성을 끊임없이 말해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씀이 이 부분이죠. (눅 11: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눅 11: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눅 11: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어 치유하시니, 반박자들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논리를 반박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편다는

표현을 인용하여, 초월적인 하나님이 인간의 세상 역사에 간섭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초월자 하나님이 이 땅에 개입하시는 방식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치유됩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 본문의 참된 의미는, 예수께서 초월 하나님께서 내재하시어 작용하시는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사단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이 땅에 사탄의

통치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미’와 ‘아직’이라는 표현을 도표화 할 때 늘 보는 그림이 있죠. 하나님을 잃어버린 깨어진 세상의 주권자는 사탄이었으나, 예수께서 사탄의 나라에 침투하여 사탄을 쫓아내고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며, 궁극적으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탄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결정지은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제가 이번 하나님 나라 시리즈 4강에서도 나눴던 ‘D-day’와 ‘V-day’의 예화이죠. 2차 대전을 경험한 신학자들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연합군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날, 작전명 암호 D-day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입하여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전쟁이 그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거의 1년 동안 전쟁은 지속되다가 독일의 항복을 받고 전쟁을 끝내게 되는데 그날을 V-day라고 불렀습니다. 이 경험을 비유로 써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D-day의 승리요, 예수님의 재림할 때 있을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박멸함은 V-day의 승리라고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축귀와 치유사역을 통해 사람들을 고치신 일은, 사단의 나라에 침투하여 죽음의 통치를 깨드리고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실현해나가는 일이므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치유는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제화이고, 예시입니다.

구원의 실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파송할 때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고, 축귀와 치유 사역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을 때 이렇게 말씀하시죠.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선포된 곳에는 반드시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보면, 깨어진 세상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죽음 이후가 아니라, 현재적으로 나타나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은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복음이 약속하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실제화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복음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느릴 수 있으나, 반드시 회복과 치유라는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치유를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질병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현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치유란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으로부터의 회복과 관련된 모든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우리의 인생과 삶의 환경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을 결핍과 고통의 문제들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죄의 대가로 주는 죽음의 현상들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심리적

문제들, 관계적 갈등, 경제적 빈곤, 정치적 억압, 심지어는 자연의 재해로도 나타납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이 우리의 현실에서 현재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실존의 모든 영역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온전케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가져온 깨어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단의 통치 아래서 인간은 자신의 결핍성을 해결하기 위해 이웃에게 자기주장하고 이웃의 자원을 착취합니다.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였고, 구약의 애굽이나 신약의 로마의 사회 구조였습니다. 약육강식, 힘의 지배. 피라미드 구조. 죄 아래서 인간은 항상 갈등을 낳고, 갈등이 가져오는 모든 고난들을 겪으며, 약육강식의 불의와 압제를 낳게 됩니다. 누구는 너무 가난하여

비인간화되고, 누구는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됩니다. 구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샬롬)를 이웃과도 누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공동체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함께 실행하기에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이루어내고,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며,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갈등의 관계들도 건강하게 해결하여, 관계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가장 많이 하신 치유는 사실 이런 치유였습니다. 죄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웃과의 샬롬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른 표현으로 ‘풍성한 삶’,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되찾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왜 성경이 하나님 나라를 다루면서 수없이 ‘물질’의 문제를 다룹니까? 하나님

통치의 반대는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실존적 불안에서 재물을 많이 쌓아 그것으로부터 내 삶의 안녕과 행복을 얻으려는 태도가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실존적 불안은 사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그분으로부터 분리되어 느끼는 결핍성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그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 돈을 많이 벌면 안보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사랑하는 태도는 곧 사단의 통치를 받고 있는 가장 절실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이 가장 위험한 우상숭배라고 말하며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결론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들도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태도, 더욱 의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에게 샬롬이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현재적 구원을 누리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 ‘하나님에게만 의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입니다. 김세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사단의 통치 아래 맘몬이즘(물질 숭배)의 우상숭배에 빠져 남을 착취함으로써 남에게 고난을 가져다주고 자신도 고난받는 세리 삭개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그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한 사건을 누가는 예수의 죄인들에 대한

구원(곧 치유) 사역의 예로 부각시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삭개오는 하나님과의 화평, 그리고 이웃과의 화평으로 그 구원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은 제거되어, 이제 그는 화평과 자유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게 됩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치유’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들에서 고난이 제거되고 우리의 삶이 온전케 됨이 하나님의 통치가 가져오는 구원이요 치유입니다. 이 구원과

치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일어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실제적인 삶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모르거나, 구원을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정도로 오해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어서 복음을 듣고도 삶의 주인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명료하고 간단합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묘해서 목사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설교를 해도, 그 마음을 공격해서 교회의 어떤 필요를 위해서 헌금을 강요한다는 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들로 하여금 헌금에 대한 설교를 더 못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정말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한 설교보다 그저 위로하고 축복하는 선한 역할만을 하도록 저와 같은 설교자 또한 유혹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저 목회자를 위로자의 역할만 하며 자리 유지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그런 풍조를 보면 참 무섭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헌금을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의지하고 있거나, 여러분이 물질의 주인 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헌금해서 망하는 사람, 하나님께 헌신해서 어려움을 겪는 인생이 있다면 반드시 돌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형제 안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가 당연히 돌보고 책임져야죠. 제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가르침과 동시에 여러분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 갖고 있는 꿈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함께 열심히 살아가도 두렵지 않은 공동체. 내 형제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기에, 나는 주님 안에 자유하게 주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그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개척 때부터 제가 꿈꾸는 사귐의교회 공동체의 모습이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사단은 교활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스스로 말씀을 잘 찾아보십시오. 성경은 늘 우리에게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참된 복음 안에서, 참된 치유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 어느 것도. 이것은 아무리 오해받더라도 제가 전해야 하는, 어느 한순간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문제를 통과 못 하면 우리에게 참된 회복과 자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여 가져오는 현재적 구원을 여러분은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눈이 열려서, 자신의 상처와 콤플렉스가 사라지는

것, 자신의 존재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내면을 치유하여 참된 자기 사랑을 하는 것, 가족이나 타인과의 갈등의 문제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안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관계들에서도 치유가 일어나는 것,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구원의 사건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위정자들에게 국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증진하는 정치와 행정을 펴도록 일하시고, 그로 인하여 개인과 사회에도 치유를 가져오십니다. 성령께서는 특히 설교자의 ‘복음

선포’를 사용하여, 낙담한 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를 주고, 남을 착취하는 삶을 살아가던 모습을 회개시켜 이웃을 사랑하게 하며, 위정자들이나 사업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일하도록 하여 사회적 샬롬을 확대하는 그런 치유를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면 우리의 세상에 치유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 구원의 현재화입니다. 이 땅의 현재적 삶에서 풍성한 삶을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삶을 마친다면, 저는 그것은 정말로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힘써 이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이고, 그것이 제가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 깨어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가서 복음을 나누려는 이유입니다. 또한 그 복음을 위해 결단한 회심자들을 목양하여 끝까지 여러분이 그 구원의 여정 안에서 살아가며 치유되어 가는 온전함을 누리도록 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복음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실제적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 설교를 정리하며 저는 여러분과 중요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오다’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하는 행위를 표현할 때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다’ 혹은 ‘하나님 나라를 받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말할 때, 현재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다’ 혹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다’라는 표현을 예수님은 쓰시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동사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은혜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이루고, 인간이 확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의미로 ‘이루다’, ‘확장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고, 그 단어를 쓴다고 하여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만약 우리의 노력으로

뭔가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나라에 참여하여 그 하나님의 왕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결국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몇몇 선교단체에서 사용하는 ‘백 투 예루살렘’과 같은 표어를 반대합니다.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앞당기자’는 구호들이 그런 선교단체에서 빈번하게 사용됩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초월 세계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서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힘과 지혜를 모아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를 ‘받는 것’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세계 밖에 계신 초월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 세계 안에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초월적이고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깨어진 우리의 세계를

고칠 수 있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초월성과 전능성을 갖고 계시지만, 그의 세계에서 고고히 앉아 계시고, 그래서 우리의 세상으로 들어와 주시지 않았다면 애초에 구원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능자이고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상 안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셨기에 우리가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초월자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이 세상의 고통과 결핍으로부터 해방하여 하나님 나라로 우리의 삶을 이전하시고, 먼저 그렇게 구원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온 열방을 죄와 죽음의 ‘사단의 통치’로부터 의와 생명의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서 우리는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은혜를 수납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구덩이에 빠져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갈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내어주신 그분을 따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의 힘으로 뭔가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의 주인 되심을 온전하게 인정하고 나를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의 통치를 날마다 인정하며 성령의 일하심에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내 안에 주시는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내가 무엇을 했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나의 예배요, 또 성령께서 내 안에서 나를 회복하시며,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주를 예배하는 우리가 먼저 그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복음의 수혜자가 되고, 더 나아가 그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우리에게 맡겨진 이 세상, 이 시대 안에서 맡겨진 사명을 다하는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