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하나님 나라를 사라 / 강정규 목사

2023-03-03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가난’에 대한 키워드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들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표현이 때로는 불편해도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 우리가 이 ‘가난’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우리의 편의대로 생각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의 특징과 왜 가난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무소유나, 빈곤자로 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나라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면 무조건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압니다. 그보다는 세상의 어떤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추구하는 삶의 태도이며, 더 나아가 내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 상태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프토코스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

설교에서는 구약 이스라엘 전체가 프토코스로서 살지 않고,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신앙적 실패를 다뤘고, 그 결과 그들은 언약적 심판에 이르러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땅을 잃어버리고 포로로 끌려가는 가난에 이르게 되었던 것을 보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포로기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인 프토코스의 마음을 갖게 하는 기간이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이들을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통합적인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이 많아도

다른 것이 가난하여, 그로 인해 하나님을 의존하기도 합니다. 주어진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이에 반대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며,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물질적 의미가 많이 담긴 ‘부/가난’을 대표 키워드로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 중 돈이 가장 강력한

신앙의 라이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 돈은 라이벌이 되기 쉽습니다.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진짜로 의지할 때, 돈이 주는 유혹과 위협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마치 돈이 ‘유사 전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개척학교에 갔는데, 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 간혹 앞에서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라고 설교를 한 뒤, 내려와서는 ‘우리교회는 지하라서

안 된다, 우리교회는 뭐가 없어서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과연 진짜 하나님이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유목민족으로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은 어차피 아무것도 가진 것도, 의지할 것도 없었기에 그때는 그들이 하나님만을 더욱 바라보기 쉬웠다면, 가나안 땅에서 부와 안정을 맛보기 시작한 그들은 물질을 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구약에서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것이죠. 그들은 그 땅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아무리 어렵고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해도 행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위기는 종종 성공에서 옵니다. 안정에서 옵니다. 평안에서 옵니다. 광야에 사는 삶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사는 것이 우리에게 신앙적으로는 위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복은 나의 환경의 어떠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과의 친밀함, 하나님이 진짜 주인 되신 삶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가끔 성도들 안에서도 이 문제에 깊이 걸려있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전능하다고 하고,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다른 것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말하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은 환경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가 무조건 안 좋은 환경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초점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점이 거기에

있지 않아야, 부한 상황에서도 비천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동일하게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힘써야 합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생긴 능력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모든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능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고백하고 있고, 저는 이 고백에 합당한 삶이 프토코스라고 믿습니다. 풍부하면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삶을 점검하며 더욱 나눌 것을 찾고, 비천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부하든 궁핍하든, 하나님 안에 사는 비결.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러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성도들이 잘되기를 기도할 때, 한편에서는 ‘경제적 성공이 그들에게 도리어

화가 되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진짜 프토코스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면, 저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많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가 커져간다는 것은 위험에 직면해 가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작기에 안전한 측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흥 속에서 우리는 더욱 겸손하고 더욱 온유와 두려움으로 살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나눌 초점은 하나님 나라를

얻는 법입니다. 지난 시간까지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이라면,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실제로 얻고 누릴 수 있는지를 오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얻는 방법을 이미 모두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 비유가 그 해답이 될 것입니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과 같으니’라는 형식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보화 비유와 진주 비유는 쌍둥이 비유입니다. 먼저 보화 비유의 특징은 ‘돌아간다 – 판다 – 산다’가 모두 현재형 동사입니다. 즉 이것은 현재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진주 비유는 ‘간다 – 판다 – 산다’가 모두 과거형입니다. 이미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즉,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먼 미래에 있을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났고, 현존하고 있는 일, 즉 우리가 지금 당장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미 그 나라를 누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우선 하나님 나라는 ‘보화’와 ‘진주’에 비유됩니다. 이것은 그만큼 고귀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발견’해야 합니다. 존재하고 있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발견했다면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법을 시장의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주인께 나가서 하나님 나라를 사야 합니다. 두 비유 모두 끝이 ‘산다’는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매우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 나라’에 매겨진 가격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살려고 그 가격표를 봤더니 뭐라고 써 있는 것입니까? ‘All in’이라고 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으려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지불해야 이 나라를 얻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값은 ‘모든 것’입니다. 두 비유 모두 공히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고 나와 있죠. 저것이 하나님 나라를 얻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다른 부분입니다. 어쩌면 짜릿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원리 가운데 모든 것은 대부분 정찰제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물건을 사려면 가격이 정찰제로 매겨져 있습니다. 그럼 누가 유리합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

유리합니다. 쉽게 말해 아파트를 사려고 하니까 5억입니다. 그러면 5억 이상을 가진 부자는 그것을 살 수 있고, 5억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뭐라고 써있냐면, ‘당신이 가진 것을 다 내면 살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100억을 가진 사람은 100억을 내야 하고, 100만원을 가진 사람은 100만원을 내야 합니다. 이 순간 이것을 소유하는 원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거꾸로 된 나라가 됩니다. 세상의 원리는 부자에게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다릅니다. 누구나 다 팔아야 합니다. 그 원리를 적용하게 되면, 포기할 것이 많은 사람이 더 불리합니다. 그러하기에 부자로 사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얻기에 더욱 불리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가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소유로서 부자일지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포기의 실제성도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 갈등 앞에서 결단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취소시킬 수도 없죠. 주어진 말씀이니까요. 그래서 역사 속의 타락한 교회들은 이 말씀을 가르치기에 부담을 느낍니다. 왜냐면 부자들이 교회에 왔다가 이 말씀 때문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부자가 있으면 좋겠는데, 부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말씀에 변형을 가한 흔적들이 교회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든 일단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도록 만들어 부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1) 낙타를 줄이는 해석 방법 ‘카멜론’(낙타)이 원래 ‘카밀론’(밧줄)인데 성경을 필사해 가면서 달라졌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후대의 몇몇 사본에는 카밀론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2) 바늘귀를 늘리는 방법 성문 옆에 있는 쪽문을 바늘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좀 힘들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낙타가 짐을 풀고, 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차주면 간신히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즉, 가진 것을 좀 포기하면 들어갈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여러분. 느끼시겠지만 성경은 우리의 의도대로 해석할수록 엉성하고 어설픕니다. 진리는 그런 것입니다. 지금의 이 시대에도 대형교회가 성공으로, 이 땅에서 부유한 이들이 축복받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상과 다르지 않은 속성들이 교회를 지배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이 더 크고 영원하고 값진 것처럼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러지 못한 삶에 좌절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부자가 돈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오로지 은혜로 들어갑니다. 모두가 자신의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막 10: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막 10: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막 10: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막 10: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결단을 하고 주님을 택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은 못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의 본성으로는 절대 계산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님이 정말 내 안에서 나를 새롭게 하셨을 때입니다. 왜 성경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회심한 사람들이 모인 초대교회 공동체의 실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까요? (행 2: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행 2: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행 4: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행 4: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행 4: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행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오늘날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불가능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나라는 매우 실제적인 변화이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면 결코 내 본성으로는 행할 수 없는 일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 시대를 살면서 고민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시대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금 내 삶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말씀을 마주하며 고민해야 합니다. 목회적으로 교회 공동체적으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하나됨과 공동체의

깊은 연대, 공동체 안의 돌봄을 위해서 계속 고민하고 일을 추진해 갈 것입니다. 적어도 제 꿈은 ‘우리 형제는 우리가 돌본다’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망해도 두렵지 않을 공동체를 모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며, 저는 우리 안에 한 성령이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의 성숙도에 맞게 일하여 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모두에게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각자의 소유를

다 팔아서 교회에 바치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이비나 하는 짓이죠.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가끔씩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기도 합니다. 사이비가 아니라 신실한 사람들 안에서도요.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일 뿐, 저는 그런 것을 요구할 마음도, 그렇게 가르칠 생각도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직접 마음 주시겠죠. 그보다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이 말씀 안에서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소유권 이전’ 다 팔라는 것은,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 교회에 소유권 이전을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모두 소유권 이전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단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소유권을 이전해야 할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주권은 왕에게 있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왕이라고 하는 것은 말뿐인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모든 소유에 대한 주권을 갖습니다. 저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신 교수님은 늘, 우리에게 지갑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이전되었는가의 문제는 가장 실제적이고 정확한 것이라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지갑의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지갑의 주인이 이제 하나님이시기에, 지갑에서 돈을 쓸 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십일조를

하면, 그것도 수입이 많은 사람이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면 믿음이 좋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9/10의 돈에 대한 소유권을 물으십니다. 그것에 대해 하나님 뜻 안에서 사용하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재정을 사용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기초 습관은, 돈을 쓸 때마다 기도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재정원칙을 세워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는 최대한 적게,

남에게는 최대한 많이 쓰게 될 것입니다. 돈을 내 중심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가치관의 혁명!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세상과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제자는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이전했으므로 가난한 자처럼,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