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하박국 1~3장 / 박예진 전도사

2024-12-06 · 하박국 1~3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하박국은 어 12건의 소선 선지서 중에 여덟 번째 책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분량이 총 세 장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책이라고 할 수 있죠. 하박국의 저자가 누구일까요? 네. 답이 적혀 있습니다. 하박국의 저자는 하박국입니다. 어, 하박국은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요. 우리가 얼마 전에 열왕기를 배웠던 것을 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남유다에는 선한 왕 탑 2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죠. 누구였을까요? 네, 다윗이 들린 거 같고요. 네.

히스기아와 요시야 왕이었죠. 하박국은이 중에서 두 번째 요시야 왕의 통치 후반기부터 또 여호야김 왕의 통치 초반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로는 우리가 어 잘 얼마 전에도 봤던 예레미야나 또 스바냐 나옴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남유다의 마지막 등불 또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요시야 왕이 죽게 됩니다. 그가 죽고 나자 남유자는 이전보다 더 무질서하고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차게 되었었죠. 요시야 왕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속해서 계승하긴 합니다. 하지만 애굽이나 바벨론과 같은 이런 강국에 의해서 왕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습니다. 주변 강대국의 속국이 되기도 하는 그런 암담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요시야가 죽은 이후에 계속됩니다. 하박국은 바로 그 암담하고 절망적인 시대를 살아가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어요. 화박국서는 지의 응답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박국이 하나님께 무언가 질문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 답을 주시죠. 어, 여러분, 어, 여러분이 선지서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선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가 듣고 그가들은 것을 백성에게 대어하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보통 선지서의 일반적인 형태예요. 그런데 그런 면에서 하박국서는 조금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선지자의 목소리가 백성보다는 비교적 하나님께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도 마치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논쟁 또는 사람의 항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물었던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오늘 저는 이

질문을 조금 더 쪼개서 세 가지의 질문으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어요. 하나님 왜 악을 그냥 내버려 두시나요?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부르쳐도 듣지 않으시고 외쳐도 그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그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벌어지고 아픔과 시기가 붙을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야고 공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의는 행하니 공가되고 알았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나눴듯이 지금 하박국의 시대는 질서가 완전히 깨져 버렸어요. 그래서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바라본 그 남유다 사회는 폭력과 불이 악행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백하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세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현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하나님이 시대가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박국이 단순히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사회를 그냥 비판하거나 아 왜 대체이 시대는 대체이 나라는 왜 이렇져 버렸을까요?

왜 이토록 엉망징창일까요? 불평만 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는 남유다가 이렇게까지 타락한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이자 선지자로서 진단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4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율법이 헤의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율법이 헤의해졌다라고 하는 것은 어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마음이 좀 느슨해졌다. 뭔가 옛날 같지 않다.이 정도의 어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요. 해의하다라고 번역된이 단어의 원어는 사실 마비됐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지격하면 하박국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하나님이 사회가 율법이 마비되었고 그래서 공의는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유다 사회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마비되어서 지금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가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공의 정의도 시행될 수 없죠. 정의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이라고 그들이 입술로는 고백했지만 전혀 그들의 삶에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박국은 그가 마주했던 그 땅의 도덕적 타락, 어떤 사회적 타락의 원인을 영적 타락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이 백성이 이렇게 무질서하고 혼란과 혼돈 속에 처하게 되었다라고 진단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는이어서 그가 진단한이 문제를 해결할 뿐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자신이 처한이 상황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서 그가 탄식하며 묻습니다. 주님은 왜 그대로 보기만 하시나요? 대체 언제까지이 땅을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이 상황을 모르시지 않을 텐데 다 보고

계실 텐데 대체 왜 개입하지 않으시냐고 그가 묻는 것이죠. 왜 하나님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시나요? 이들의 악행을 왜 보고만 계시고 허용하십니까? 주님 왜 방치하고 계십니까? 그가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어, 이런 하박국의 표현을 우리가 읽을 때 어, 좀 거칠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강하게 말한 그 표현 안에는 하나님께서 제발 뭐라도 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 하나님의 도움 아니고는 도대체 이걸 해결할 수 없다는 그 절박함과

다급함이 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가 하나님 제발 보고만 계시지 마시고 뭐라도 좀 해 보십시오.이 땅 이대로 내버려 두실 겁니까? 주님 일하여 주십시오라고 호수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하박국은 어쩌면 모두가 길을 잃은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깨어서 길을 찾고자 S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그는 타락하고 악이 넘쳐나는 그 남유다 속에서

어떻게든 그들의 악행을 끊어내고자 어떻게든 망가져 버린 이 사회의 정애를 다시금 회복시켜 보고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질문하고 실름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이러한 하박국의 모습을 오늘날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땅도이 사회도 어 어떤 부분에서는이 타락한 남유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거 같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지만 사실 우리가

이 교회에 방만 나가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 정말 조금도 힘이 없습니다. 사실 뭔 세상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하나님을 모르는 나의 가족들 또는 나의 친구들 그들과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느낄 수 있거든요. 아 이들과 내가 바라보는 것이 다르구나. 이들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구나 하고 우리는 종종 느낄 수 있습니다.이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나눴던이 말씀들 우리가 따르고자 추구하고 서로 도전하고 격려하는이 가치관들이 여기선 너무

당연했는데 우리의 학교, 회사, 우리의 일상 가정에서는 사실 당연하지 않을 때가 더 많죠. 마치 나 혼자만 특이한 사람인 거 같고 나 혼자 유난 떠는 그런 유별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말씀은 마비되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우리가 때로 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게 참 힘들구나라고 고백하는 것이겠죠. 말씀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며 살려고 하니까 우리는 자꾸

부딪히고 부데끼고 힘이 듭니다. 세상은 정말 마비가 된 것처럼 꿈쩍도 안 하는데 왠지 나 혼자만 거기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롭고 낙심될 낙심되고 그저 한 숨만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하박국에 계속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 공의가 왜곡되었다라고이 공의 정의에 대해서 외치고 있죠. 여러분,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정의가 존재합니다.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요. 법이나 규율, 제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삶에서는 때로는

정의가 실현되기도 합니다. 뭐 사회 정의 구양과 같은 일들이 종종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서 회자가 되기도 하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잘 살펴보면 어쩌면 우리는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를 더 많이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약자에겐 한없이 엄격한데 강자에겐 한없이 가벼운 손방망이 처벌을 볼 때 있는 사람들 가진 사람들이 법이나 제도를 교묘에 이용해서 자신들의 부름배를 더 채우고자 욕심을 부를 때 우리는 하박국처럼이 땅에도 정의가 왜곡되었다라고

느낄 수 있죠. 꼭 어떤 뉴스에 나오거나 신문에 나오는 그런 큰 일들이 아니라고 해도요. 우리는 우리의 직장이나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크고 작은 부당함, 부조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하는데요. 저의 직장에서 가끔 아 진짜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될 때가 있거든요. 제 친구들이나 어떤 지인들 통해서 들려온 이야기를들을 때 아 진짜 그거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이렇 우리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또 부당하고 어떤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할 때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해요. 마치 제가 아 진짜 이거 아니지 않아?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화를 냈듯이요. 그래서 때로 우리도 하박국처럼 욱하기도 하죠.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박국은 욱하는 감정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유다의 문제를 그는 진단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해결자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죠. 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여러분, 이번 주에도 우리나라에 큰

일이 하나 있었죠. 그 일을 계기로 저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또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 같아요. 어 제가 저는 그날 밤에 꿀잠을 자 가지고 몰랐거든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세장이 한번 뒤집혔다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어 근데 뉴스나 기사를 찾아보는데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 어우 만만치 않더라고요. 유튜브를 보는데 아 사람들이 성이 잔뜩 났다는 거를 그냥 대충 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제 주변에서 이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뭐 욕하는 친구도 있고요. 또 비판하는 좀 정치의 어떤 의견을 드러내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다들 그릇된 모습에 대해 분노한 이유 때문이겠죠. 그리고 저도 제 친구들과 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네. 나는 그래도 그리스도인인데 나는 저들과 무엇이 다르지?이 같은 상황을 대하고 있는 나는 저 친구들과 다르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뭘

더 하고 있을까? 또는 뭘 덜 하고 있을까?이 이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제가 제 친구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에 제가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 저도 부조리한 현실을 겪을 때 또는 정의가 무너진 그런 일들을 마주할 때 욱하는 마음은 저도 늘 있었어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하박국은 오늘 그렇지 않았다고 성경이 보여주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호소하고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아 하국 한 사람 그렇게 외쳐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남유다 그 전체가 그렇게 타락의 길로 내려달리고 있는데 하박국 한 사람 그렇게 소리 질러봤자 뭐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단은이 생각을 오늘 우리에게도 계속 심어 주는 거 같아요. 나 한 사람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 혼자 이런다고 누가 알아 주기나 하나? 어차피 세상은 어차피 그들은 다 똑같을 텐데. 그래서 우리가 불리한 것에 눈 감고 힘을 빼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적어도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하박국은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선택을 합니다. 비록 혼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그 몫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불리에 눈감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왜 내버려 두십니까?이 이 부당함을이 불리함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셔야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요. 무너진 정의를 볼 때 부당하거나 부조리함을 경험할 때 분노해요. 화내고 이거 잘못됐어.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라고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도 똑같이 그런 감정을

느끼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그 깨어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또 정의로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일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분노의 감정이 하박국처럼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상에 그 깨어짐을 끌어앉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을 묵상과 설교에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선지자는 그분의 공의로우신 성품과

전능한 주권을 행하시도록 호소하였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행동을 촉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불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요 불리로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시다. 내가 이 부르짖음에 참여할 곳이 너무 많지 않은가? 불의 앞에서 욱하지 않는다면 나는 설량한 사람이 아니라 불량한 사람이다. 세상을 향한 또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의 이러한 호소를 주님이 들으십니다. 그리고 대답해 주시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는 사고 성급한 민족이어서

천하를 주름 잡고 돌아다니며 남들이 사는 곳을 제것처럼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공명을 휘두러 오는데 공명을 앞세와서 포로를 모할처럼 많이 사자가 할 것이다. 하박국의 이야기를 다들은 하나님께서 맞아 너희가 참 이렇게 많이 타락했지. 그래서 내가 남유다의 죄악을 심판할 거야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니아 사람 즉 바벨론을 사용하시겠다고 대답해 주세요. 그러자 이 답변을들은 하박국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해요. 그리고 하나님께 두 번째 질문을 던지죠.이어서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는 눈이 맑으심으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헤어를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주님만이라. 하박국이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왜 하필 바벨론입니까?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 유다 땅에 있는 의인들을 신원해 주시고 악인들은 벌하셔서 그 남유다의 정의를 또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워 주시도록 기대했어요. 그런데 적어도 그 방법이 바벨론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남유다에도 악함이 있었어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그런 모습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박국도이를 알고 있었고 인정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유다를 그들보다 더 악한 이방 민족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시겠다는 그 주님의 계획이 휩살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13절에 보면 하박국에 알고 있는 하나님은 악을 참지 못하시고 폐역을 보고 그냥 계실 수 없는 분이라고 그가 고백하죠.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악하고 더 폐역한 바벨론은 그냥 두시고

오히려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치시겠다고 하시니까 하박국의 입장에서는 주님 이거 모순된 거 아닙니까? 아 전 이해되지 않습니다라고 할 만한 거죠. 왜냐면 적어도 하박국이 생각했을 때는 남유다가 아무리 악해도 아 물론 이 백성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만 아무리 잘못했어도 바벨론보다 아니잖아요. 바벨론보다 우리가 낫잖아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바벨론에 비하면 남유다는 착한 백성이라고 그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시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슬이나 다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마시고 돌아떨어져 내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 주의 오른손에 느린 심판의 장이 내게 이것이다. 더러운 욕이 내 영광을 가릴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서 저는 폭력이 이제로 들어갈 것이다. 내가 짐승을 장인하게 주었으니 이제는 그 사람에게 너를 덮칠 것이다.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땅과 성과에 사는 주인에게 폭력을 물어게 됩니다. 어, 남유다와 아, 남유다의 폭력과 악함에 대해서 심판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바벨론을 향해서도 같은 경고와 같은 말씀을 하시죠. 바벨론, 너의 폭력과 악함을 내가 심판할 거야. 하박국은 자신들이 바벨론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나 바벨론이나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세요. 악에 대한 심판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남유다나 바벨론이나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아침부터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근데 그때 율법 학자와 바리새인 몇 사람이 한 여자를 끌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간음이 뭐죠?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부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간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그 죄를 짓다가 그 현장에서 적발돼서 잡혀온 거예요. 얼마나 수치스러운 죄이며 얼마나

큰 죄예요.이 죄가 얼마나 큰지 율법에서도 어 가음한 사람은 발견하면 돌로 쳐 죽여라고 기록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죠.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물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도를 던져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가음하지 않은 사람이 돌로 쳐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너희 중에 가음보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돌로 쳐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죄 없는 사람이 쳐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죄의 무게가 똑같다라고 말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예수님 앞에서 더 나은 죄인은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목숨으로 그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이죠. 사람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 내가 가음한 여인보단 낫지. 나는 기껏 해 봐야 거짓말 몇 개밖에 안 하고 살았어. 내가 그래도 뉴스에 나오는 저 사람보다 낫지. 나는 그래도 법은 잘 지키잖아.라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다 같은 죄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여기 서에는 저부터가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우리는 쉽게 무의식적으로 판단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 또는 아 내가 저 사람보다 좀 못한 거 같아라고 무심결에 생각할 때가 있죠. 어, 부끄럽지만 저는 예전에 이런 실수를 참 많이 하고 살았던 한 사람 중 어,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어, 제가 죄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는 그래도 나는

조금 더 나은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하박국처럼 제 기준에 나쁘거나 악한 것을 보면 뭐 저기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좀 착하지, 나는 선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100%로 긍정하지도 않았고 100% 부정하지도 않았어요. 그래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나도 죄인일 순 있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도덕적으로 나름 바르게 살았고 법을 어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의

큰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나 정도면 좀 덜 죄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저의 중고등 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어이 죄와 복음에 대해서 좀 바르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우리가 어 자기 중심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된 거죠. 그런데 그걸 바로 이해하니까 아 저는 100% 죄인이 맞다라는 것이 100% 긍정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교회 안에 있었지만 모태

신앙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무시한 채 살아온 저나 하나님을 무시한 교회 밖에 불법을 저지른 그들이나 성경이 말하는 이 죄 앞에서는 똑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박국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이와 비슷합니다. 사박국은 자신들을 기준으로 바벨론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행동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셨죠. 하나님은 지금 하박국수를 통해서 그것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의 의로움이 기준이 될 수 없고 나의 악함도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성경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하박국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 주가 거룩한 성전에 있다. 온 땅은 내 앞에서 잠잠해라. 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한 그 주권 앞에서 너는 잠잠해. 너는 이거에 대해서 뭐 말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죠. 그리고 하박국이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을 던지죠. 아 하나님 그러면 여기까지 얘기해가 되는데 그러면 의인들은 어떻게 하나요?

이 악한 세상에서 의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박국이 질문을 던진 거예요. 그래 남유다에는 아직 남아 있는 의인들이 있었거든요. 하나님께서 바벨론 들어서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거 네. 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남아 있는 의인들도 있는데 그들도 같이 심판 당해야 합니까? 이들은 어떡하죠?라고 라고 그가 질문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대답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이 무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했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질지라도 기다리라.지 않고 반드시 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는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리라. 남유다는 심판을 피할 수 없을만큼 이미 타락한 상태였어요. 임계점을 이미 한참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남은 자들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은 바벨론의 심판 가운데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죠. 그런데 문제는 지금 당장 그 구원이 더디게

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이 사람들이랑 같이 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게 항상 문제죠.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세요. 바벨론의 종말이 속히 임하고 반드시 임할 거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줘. 그리고이어서 또 하나를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단다. 신약의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서 인용되고 있는 그 말씀이 사실은 하박국에서 먼저 나옵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신실함 또는 충성됨을 의미하는데요.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실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끝까지 충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 문제에 대한 해결이 지금 당장 여기서 이루어지길 바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구하죠. 어, 여러분도 그러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의 응답, 해결 또는 어떤 구원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참 더디다고 자주 느끼게 됩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때로는 빨리 개입하셔서 나의 힘겨운 시간들을 그냥 빨리 지나가게 하셨으면 좋겠는데

제가 그동 그동안 경험했던 경험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런 분은 아니신 거 같아요. 마치 비디오에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더디고 느리게 그 시간들이 흘러가게 하시는 거 같습니다. 저도 머리로는 하나님의 시간과 어 인간의 시간,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힘든 건 힘든 거예요. 분명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그분의 섭리가 있을 거야. 기다려야지. 잠잠해야지. 머리로는 생각이 돼요. 그런데 지금 당장 슬프고 억울하고 괴로운 건

어쩔 수가 없어요. 나 그래도 하나님 따라서 열심히 살아온 거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왜 이런 고난을 내가 당해야 하지? 하나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시지? 왜 나에게 말씀하지 않으시지? 하국과 같이 우리가 그런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여전히 믿음으로 살면서 기다리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고 지금 당장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서 가끔은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느껴지지만 내가 일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않겠니? 나를 끝까지 신뢰하면서 살아가 보지 않겠니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왜일까요? 구원의 날이 반드시 임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어, 여러분은 가끔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그때는 이해가 안 됐어요. 그 당시에는 하나님이 그냥 침묵하고 계시는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광야에 혼자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아무리 울어도 나한테는 관심 없으신 거 같고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해도 나를 돕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한참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하나를 깨닫게 되는 경험들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이 그때 이거 하고 계셨구나. 하나님이 지금을 위해서 그때 그렇게 하셨던 거구나 하는 그런 경험이요. 그래서 우리가 지나고 나면 돌아보면 결국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고백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우리는 그게 자주하죠. 여러분 지난 한해를 돌아보시면 여러분 늘 항상 살만하고 마음 편하고 뭔가 다 행복하고 그런 순간들만 있으셨나요? 아니었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제가 지난 1년 동안 참 나눔을 많이 했는데요. 제가 나눔을 대짚어 보면 여러분 모두 행복한 것보다 힘든 걸 훨씬 더 많이 나누셨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연말이 되면 항상 한해를 돌아보면서 뭐라고 고백하죠? 그래도 돌아보니 은혜였더라. 그래도 돌아보니 주님이 도우셨더라. 그래도 돌아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셨더라. 여러분,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늘 그렇듯 기다리고 그저 버티고 참고 이런 것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 힘겨 오늘을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그리스도인답게 버틸 수 있는 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우리가 믿을 때 가능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바국이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 앞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유명한 고백을 하죠.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들었으므로 내 상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주였도다. 우리가 우리를 치어 올라오는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에서 있는 것이며 내 몸은 내 청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 무성치 못하며 모든 열매가 없으며 강난의 소축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위의 양이 없으며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며 하나님의 그 답변을 다들은 하박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죠.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우리를 칠 걸 생각하면 그 깃에 당당하게 하나님 뭐라도 해 보십시오라고 이렇게 말했던 하박국도 두려워서 무서워서 내가 뼈가 떨립니다. 하나님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마지막에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다고 고백하죠. 그는 끝까지 신실한 의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이 하박국의 하박국의 고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의인의 모습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박국의 어 이름 뜻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껴안다, 끌어앉다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 껴앉는 어떤 걸 끌어앉는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그가

먼저 끌어앉았던 끌어앉았던 것은 백성의 문제, 그가 몸담고 있는 그 공동체의 문제를 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비되고 그래서 질서와 공의가 무너진 나라와 백성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가 그 고발을 통해서 원했던 건 하나님 이들 다 망하게 해 주세요. 쟤네 다 없애 주세요. 벌해 주세요라고 하는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이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라는 것이 그 하박국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박국 1장을 잘 읽어 보면요. 그 일장이 기록되기 훨씬 전부터 그가 백성들의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외쳤다라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하박국 그는 하나님을 또 그분의 말씀을 끌어앉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해되지 않고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을 떠나가지 않아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든 깨나 보겠다고 실름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고 이해시켜 달라고 나아갑니다. 어쩌면 하박국에 하나님의

대답을 다 들었어도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100%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유한한 인간이 무한 하나님을 다 이해한다는 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하바구 3장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혹 이해되지 않아도 여전히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과 그분의 섭리를 다 모른다고 해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만큼 그 말씀을 껴안고 그가 하나님을 경험한만큼 그 하나님을 껴안고 신뢰하며 신실한 믿음으로 기다리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끌어안고 보이는 안담한 현실에서 믿음을 껴안고 살아갑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껴안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소망해요. 우리가 보기 하나님이 마치 아무것도 하고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그런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대답하세요. 내가 보이지 않지만 나의 정의를 나타내고 있단다. 내가 나의 정의와 나의 공의와 나의 사랑을이 온 땅에 나타낼 거란다. 또 때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삶을 주님이 다 보고 계시면서도 우리의 힘듦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버거울 때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대답하세요.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일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지금도 일하고 있어. 그러니 믿음으로 조금만 더 버텨 주지 않겠니? 더딘 거 같지만 속히 그리고 반드시 분명히 내가 너의 삶에 임할 거란다. 여러분 하복국처럼 하나님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여러분 힘겨운 여러분의 삶도 다시금 끌어앉고 깨어진 나의 주변도 내가 조금 더 힘을 내서 끌어앉아서 하박국처럼 끝까지 그리스도인 답답게 하나님의 백성의 명예를 지켜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