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네 반갑습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에 나오신 여러분들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이 시간도 주님을 어 높여 드리며 찬양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이 시간 함께 찬양하 때 어 우리 박수 치시면서 신나게 힘드시겠지만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문들아 문드라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 들라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왕 한번 더 찬양합시다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 가시 영광의 왕이시요 영광의 왕이시요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 의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문들아 머리 들어라 문들아 머리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라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 들라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 영광의 왕 신여 영광의 왕 신여 당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의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을 왕계 만세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우리 한 번 더 영광의 왕 니신
영광의 왕 신요 하나고 능하신 주로다 전생의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우리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우리 시간 마지막으로 왕께 만세 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다 찬양 위대하신왕 다 찬양 한 번 더 다 찬양 위대하신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아 우리 이시 위대하신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며 나아갑시다 할렐루야 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며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며 그들의
땅을고 라 아버지여 아버지여 고쳐 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소서 주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하니 땅 새롭게 하소 무릎 꿇고 다 겸비하여 무릎 꿇고 다 겸비하여 주께 기도하리 주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리 주님의 자비로 주님의 자비로 죄를 사하며 주님의 자비로 임하소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고쳐 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하이 땅 새롭게 우리이 시간 마지막으로 찬양합시다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아버지여
고쳐 주소서 이 나라 주의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 아멘 우리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이 시간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서 고쳐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삶을 새롭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이러한 마음 담아서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이 시간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우리가 정말 주님의 자비로 정말 주님 우리를 고쳐주시옵소서 주께 기도하며 나아갑니다이 시간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나아갑니다 작고 나약한
우리의 기도를 주님이 시간 들어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의 예배를 주님 님 주님께 망다 드리오니 주여 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주 주님 주님의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주님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 예배 가운데 주님의 눈과 귀를 맞추시고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겠다 약속하셨으니 이곳에 모여서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에게 주의 음성을 주옵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하나님의 따스한 눈빛과 사랑의 품으로 우리를 안아 주옵소서
주님이 시간 그런 마음을 갖고 그런 기대를 갖고 우리가 한걸 주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말씀하실 때 우리가 듣기 원하오니 주이 시간 우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제가 아까 5시 5분까지 아 오늘은 사람이 별 다 구나라고 했는데네 오늘또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셔서 또이 넷째날 함께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자 있는 분들과 한번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예비하면 기쁨입니다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네 계속 주기도문 시리즈를 보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하나의 좋은 훈련으로 남아서 아 이제 오늘 목요일인데 목 한 했으면 하는 기도 그것이 있다면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 주목할 부분은 마태복음 6장 12절에 오는 주기도문의 부분인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가 리에게 은자를 사 것같이를 주시옵이 분입니다이 기도는 주기도문에 있 관계라는 것이 사실 너무 중요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을 지지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게 되는 여러 이유 가운데도 결국은 관계의
문제가 제 많은 것 같습니다 이한 관계 어려움은 그러나 우리에게 늘 있는 일입니다 이때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다면의 삶에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야되는이 주기도문 가운데 이 부분을 다루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용서의 문제 이것 다름에 있어서 여러분 안에도 약간의 두려움과 또한 긴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 물론 그런 삶이 없으면 좋겠지만 내 삶에서 어쩌면 내가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 대해서 아직 자신이 없거나
혹은 두려움이 앞서는 그런 경우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 우리가 어떠 것보다 오늘 한번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을 향해 한번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이 기도가 우리에게 특별히 더 고민을 안겨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 기도가 우리에게 죄지 자 사준 것 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의미상 우리가 주변 사람을 용서해준만큼 하나님께 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의 삶을 살고 있으니 주님 저를 그와 같이
서십시오 기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한편에 내가 그 주님의 용서받기에 충분한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도는 치라는 단어가 이미 있습니다 이 늘에서 이어 것같이 이루어지고 했던 부분이에요 가치라는 것은 이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내에서 이와 유사한 부분이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6장이 주기도문이라면 18장에 용서의 주제와 가치라는 것이 함께 등장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그 비유는 바로 음의께이는서는
문의 원래 의미 또한 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준 것같이 우리의 빚을 사여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신 주기도문이 마태복음에 한번 누가복음에 한번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죄라고 되어 있고 마태복음에는라고 되 있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것은 아마도 아라모 건데 아라에서 죄와 빚이 같은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곧 빛입니다 헬라어로 스인 복음서에서는 마태는 이걸 빚으로 그리고 누가는 죄로 나눠서 기록했으나 한국어로 벌면서 의역이 들어가서
죄로 통일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이를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갚아야 될 것을 갚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까 빚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즉 죄의 속성 가운데는 의무 불이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라고 하면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용서에 대한 비유에서 만달란트 백데나리온 능 매우 구체적인 경제 단위를 사용하십니다 즉 죄는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땅히 내가 해야 하는 거 마땅히 갚아야 하는 것을 갚지 않은 경우처럼 매우 실제적인 부분이다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비유에 나오는 어쩌면 이 사람이 먼저 갚아야 되는 돈 나온 것은 일만 달인데 여러분 몇 번 설교 통해서나 풍도이 비유가 오니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만 달란트는 약 15만 년에서 20만 년 정도를 해하지 모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즉이 비유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애초에이 사람이 어 갚아야 됐던 그 금액은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 갚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의미함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 코 내스스로 갚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비는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의 가장 성은 자기 중심성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어 쫓아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가 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그것을 상 갚어에 하나에 대한 하나에 대한 신 리 청산하고 없 걸로 칩시다
다시 관계를 맺자고 할 능력이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므이 비에서 왕이 긍휼히 여서 불쌍한 마음을고 그 빚을 주는 것는께서를 하셨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이 용서받은 자가 자기 동료에게 받아야 될 빛도 나오는데 백데나리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우습게 여길 수 없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일치 품사 있니다 하루를 10만 원 일당을 잡으면 천만 원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 가지 천만 원을 떼먹고 도망갔습니다 용서하기가 쉽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아 여러분
지금 당신이 기독교인인데 그거 하나 용서 못 하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기에 저도 너무 두렵습니다 이것을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아 용서할게 넘어가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근데 이 부분만 보면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용서받은 은을 생각했을 때이 비유의 요구가 우리에게 어쩌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까 하루 일당 10만 원으로 계산했다면 1만 달란트는 얼마가 되는지 아십니까 1만 달란트는 조입니다 내가 만약에 지금 6조를 벌었다면 아마 그것을
가정한다면 그때는 천만을 용서해줄 수도 있을 것니다 이 비유 핵심은 하나님께 내가 받은 용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비로소 형제와의 관계 안에서 용서를 실행할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현실적으로 축소해서 얘기한다면 저에게 뭐 천만 원쯤 막 너무 힘들다고 얘기한 성도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돈이 없는데 막 사정 사정해 대출을 해 줬어요 그래서 빌려줬어요 대출해 근데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갚을 수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제가 아 그럼 대출 내가 겠다라고
대신 그냥 신앙생활 잘하며 그리스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달라고 권면하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제가 오려 그 대출을 갚기 위해 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돈을 렸던 그 성도가 바로 그 주간에 교회 다른 성도가 5만 원을 자신에게 빌렸는데기에 안 갚는다고 어떻게 끼을 지 냐면 막 그 성도를 막 모욕을 주고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 일을 보고 뭐라고 하겠어요 아 지금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했는데 어떻게 당신이 이럴 수 있느냐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비유는 재정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죄와 용서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느끼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우리에게 놀라운 못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성경의 죄는 하나님의 권에 대한 도전이자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습게 여긴 것은 그 존재를 우습게 여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헤세드 내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임없이 은혜와
사랑주의 원하시고 죄를 지은 것이 우리지만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시는 분이고 스스로 대신 감내하는 아까 일만 달란트란 곳이 어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어이 크기가 감히 잘 안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아 왕이라면 그 정도 탐하는 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이 비유를 보면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시이 비유가 주어지는 시대 팔레스타인과 유대 지역에서 전체에서 1년치 걷는 세금이 8 달란트 있습니다 즉이 시대이 비유를 읽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왕이라도 일만 달란트를 어 어쩌면 하는 것은 왕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 손해를 감수하고 빚을 감해 주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죄를 감해 주기 위해서 그분은 우리가 치를 수 없는 그 가를 스스로 하고 우리에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시키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스스로 파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그 용서가 우리가 뭔가를 어쩌면 해볼까 나도 따라갈까라는 마음 먹게 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이전에 하지 못한 어떤 모습들도 해나가는 사람으로 그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가 주변에서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깨어진 세상에서 상한 마음으로 살 때는 우리는 사랑할 여력조차 없습니다 나도 지금 죽겠거든 근데 주님이 그런 나를 품으시고 사랑하시며 내 안에 있는 상처가 아물고 내 텅빈 마음이
채워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경험하는 사람은 자신도 주님을 따라서 그렇게 해볼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먹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워보면 자녀가 나에게 아픔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픔을 받아주면서 내가 막 그걸 받아내면서 힘들죠 근데 내 자녀니까 사랑하면서 받아 준다고요 근데 그때 우리가 비로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린 시절 내가 젊은 시절 부모에게 했던 잘못들이 떠오릅니다 아 그러면서 그전에 내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사랑도 떠올리게 될 때가 있어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보는 거죠 그리고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그 자녀를 바라보면서 너도 내가 지금 너의 모습을 받아주고 있는 이 사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고 있다는 것을 너도 나중에 네가 너의 자녀를 키우면 그때 너도 느낄 수 있겠지 나도 그랬던 것처럼 너도 지금 모를 수 있겠지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모르는 거 같이 아 용서하라는 것은 영적으로 아주 어릴 때는 어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부모에 내 자료 품는 것조차 어렵지만 품는 것처럼 뭐 누군가를 품고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저도 목사로서 꽤 오랫동안 훈련해 온 것이 어 상처를 견디는 훈련이든 어쩔 수없이 리더는 상처를 피할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알죠 너무 잘 알죠 누군가 그냥 무심고 내뱉지만 결국 그것이
어떻게 보면 속상하게 하는 말들이 또 누군가는 그렇게 내뱉으면서 풀리기 때문에 꼭 참고 받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그렇듯 어쩌면 영적 부모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래서 많이 무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아주 작은 거 하나에도 막 신경 쓰이고 잠도 안 올 때도 있고 이런 것이 인간인 거 같아요 용서하는 것 어렵습니다 용서 안 되는 것 당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능력이 어쩌면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넓지 않아요 그래도 내가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나를 누군가 용서해 줬을 때 내가 그 용서의 사 받았을 때 그때는 조금 쉬울 수 있고 내가 나의 자녀를 용서하기 쉬운 이유는 아까 듯이 내가 을 나도 고서 성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것이 아니 지금도 용서받고 있다는 것이 잘 상 때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하는 어떤 것들을 내주에 있는 나보다 아직 연약한 사람을 향해서 혹은 내가 필한 서는것 내가
그 사랑을 주께 갚을 수 없고 우리 주께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내가 군가를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군가를 용서해 가는 것이 주님께 받은 그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주님을 향해서 하 군가 향해서 내 사랑과 용서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 우리가에게 죄를 사 것같이 죄를 사고라는는 꾸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우리에게 죄인 형제자매를 용서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죠 우리가 인간에서 야 내가 너를 봐서 한다라고 말하듯 주님 제가 주님 때문에 이 일을 하겠습니다 말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변에 누군가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행한 일을 가지고 주님은 나에게 고맙다 말씀해 주시는 분입니다 용서하기는 결코 가볍지 않죠 당장 용서하기 쉽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시간을 좀 달라고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그 문제를 가져가서 그분께 내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우리 힘으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 예배를 다가 형제나 자매와 내가 불화한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돌아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으로 우리가 만약에 매일 혹은 매주 한 번이라도 우리가 이 기도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내 삶에 있어서 내가 풀어야이 부분에대해서 고게 것니다 로 기도하다가 하나님 제가 먼저 형제 자매와화하고 돌아와
예배 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문밖을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용서하기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용서받기에 대한 마음 또한 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나로 인해 실족한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또한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 용서를 구할 때 찾아가서 내가 당신을 싫어했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옛날에
이렇게 용서에 대해서 수련할 때 설교를 했는데 자 여러분 지금 용서를 여러분이 구해야 되거나 용서해야 될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해 더니 한 형제에게 줄이 쫙 선 거예요 그러니까 그 형제가 자기가 그날 사실 너무 힘들었다고 나중에 얘기를 했던 억 납니다 아 내가 당신을 싫어했는데 용서해 주라고 뭐 직접적으로 얘기해야 될 때도 있지만 뭐 그렇게 꼭 표현해야 되는 것이 꼭 지혜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어요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지혜가 없으면 상처를 줄 수도 있죠 그보다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곧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방법으로 뭐 작은 선물이라도 전하거나 마음을 표현함으로 사실 내가 그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꼭 기도하십시오 내가 상대방에게 직접 피해를 주었다면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내가 할 수 있다면 그 피해를 회복해 주는 데까지 힘써야 합니다 누군가는 말로 그냥 미안해 하는 것으로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 화해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까
듯이 실제적으로 손해를 감수하셨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속에서 우리가 알고 모르고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또 내가 용서 행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주신 매 특별한 모습들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를 통해서 비로소 자유를 누립니다 용서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같습니다 영적 성장에서 사실 많은 사람이 용서하지 못함으로 그 성장이 막히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장에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사랑으로려 치유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또 여러분 사랑하기 때문에가 해는 그 모든 상을 하나님은 반시 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용서를 통해 우리는 주님을 배워가고 용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갑니다 그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설교가러 율법이 되지
않기를 원해요 내가 해야 어떤 법적인 니라이 아니라 은을 하의 사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이 하나님 원하시는 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작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저는 이 설교가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 리에게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용서가 있는 곳에 하나님나라는 강하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라의 샬롬은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그 관계 안에서 그 샬롬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가 이 기도를 붙잡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하에 내 모든 것 다내려놓고 나 잠자니 주를 복사해 그 놀라우신 은혜를 치 없는 주의 사랑 강물되어 흘러러 내 영혼에 자유한 주시네 날 새롭게 하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유게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삶의 모게 하니 다 하나님의에 하나 나님의 그을 아를 내 모든 것 내려놓고 나 감히 주를 묵상하네 그 놀라우신 혜 끝이없는 주의 사랑 한물내어
흘러흘러 내 영혼에 자유한 주시네 날 새롭게 하 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게 하멘 하나님 사랑 사랑 날 매복에 아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게 하네 하나님 사 랑 그 사랑 나를 내게 하멘 우리 시 같이 기도하고도록 함께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