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교회마다 ‘전도팀’이라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희 교회는 ‘전도’를 위한 모임이나, 특별한 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요즘에 부쩍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여 설교를 하지만, 사실 개척 후 3~4년 정도는 ‘전도’에 대해서 강조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소화할 만큼 아직 우리가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척 후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슬로 처치’였죠. 개척 후 3개월 정도에 썼던 ‘슬로 처치’라는 글의 중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귐의교회는 달리지 않습니다. 저도 질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복음을 들고 달려야 할 때가 있을 것이고, 무언가 해야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글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데, 하나님 나라를 어찌 나눌 수 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닌데, 하나님 나라를 어찌
세상에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우리의 마음들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확실한 고백이 자리 잡고, 우리 교회 안에 그것이 경험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며 그렇게 5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아니 더욱 전하기에 힘써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우리가 걸음마를 해나가는 단계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르기 위해 필요하다면 걷고 뛰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2022년이 되면서
조금더 색다른 시도들을 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이 바뀌거나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그것들을 향해 드디어 한걸음 나아가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영적 성장에도 ‘아이 – 청년 – 부모’의 때가 있듯이, 우리 교회도 이제는 탄생하여 조심스럽게 자라가는 교회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교회에 주신 사명들을 따라야 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제 우리교회가 늘 마음에 품어야 할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꼭 교회로 누구를 데려와서 등록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복음 안으로 초청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요즘 저에게도 이것에 대한 도전도 많고, 주시는 마음도 많은데... 새가족반에서 오늘 다룰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두 번째 주제 또한 ‘전도’입니다. 뭔가 제게는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때입니다. 아마 개척 초기에 새가족반을 하면서 이 주제를 다뤘더라면 저는 이 부분을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조용히 다루며 넘어갔을 것입니다. 이제 막 모이기에 힘쓰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주제를 대하면서, 이제는 이 주제에 대하여 우리가 깊이 다뤄봐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에 대한 세미나를 듣다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사명이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나는 전도의 은사가 없어.” 이 이야기는 전도는 마치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예배팀은 그럴 수 있습니다. 음악에 조금 관심과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섬기는 분야가 예배팀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은사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교회가 사명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전도가 왜 중요할까? 첫째,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부모의 말을 평소에 듣지 않더라도, 유언에 대해서는 새겨 듣고 준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승천하시며 이 땅에 남긴 최후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주님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죠. 사복음서와 사도행전까지 주님이 주신 명령을 차례로 살펴 보겠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a)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눅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전하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모두 전도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을 먹이고,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이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도 하고 ‘선교’라고도
합니다. 이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구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2가지 견해인데.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도’로, 국외에서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복음을 전해서 자기 교회 교인으로 만다는 것을 전도로, 어느 교회에 출석하든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을 선교로 칭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선교’라는 단어와 ‘전도’라는 단어의 뜻을 물으면 대부분 모를 것입니다. 선교(宣敎)
: 宣 베풀 선 敎 가르칠 교 - 종교(宗敎)를 선전(宣傳)하여 널리 폄. 전도(傳道) : 傳 전할 전 道 길 도 - 도리(道理)를 세상(世上)에 널리 전(傳)함. 좀 더 성경적인 단어를 둘 중에 택하자면 ‘전도’일 것이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의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예수께서 열어주신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나 선교나 모두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그것이 지역이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는 사람에게 예배를 세워가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둘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전도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그 사실을 망각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절망하거나 좌절하기 쉽습니다. 만약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늘 확인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은 흔들림 없이 굳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이들은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이 주신 명령을
따르는 것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의 삶을 살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늘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15년 동안 사회생활을 했다. 그 15년 가운데 4년은 직장생활을 하였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사업을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직장생활이나 사업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리며 수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늦게 시작한
목회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목회는 교인이 많아지는 만큼 더 힘들다. 그런데도 나는 목회 현장에서 늘 말할 수 없이 큰 보람을 느낀다. 말씀 안에서 교인들의 삶이 변하고,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새로워지며, 허물어져 가던 가정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날마다 목격하면서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게도 이와 비슷한 고백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을 보내고 제가 밤에 쓴 글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요즘에 너무 큰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모태신앙으로 목사의 자녀로 평생을 예배하며 살아왔다. 또한 부교역자로 9년, 이미 담임목사로 5년을 살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경험하는 은혜가 심상치 않다. 언제나 은혜는 반전이다. 가장 어려운 순간, 그 안에서 놀라운 반전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은혜인 것 같다. 2004년 내가 경험한 진정한 회심도 그랬다. 그해 나는 가장 철저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 그 무너짐이 계기가 되어 성령님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2021년
목회가 참 버겁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금씩 지치기도 했다. 상심도 컸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다시금 은혜를 부어주셨다. 작년 한해, break out이 일어난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 굉장히 많다. 그것이 기점이 되어 갑자기 전체적인 교회 안의 영적 흐름이 달라졌다. 늘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이것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은혜이다. 요새 교회의 예배를 참여하면, 너무 좋다. 예배팀이 인도해가는 찬양시간에 회중으로 서서 예배를
드리다보면, "예배라는 순간이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배가 정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목사로서 살아가면서 예배의 특권을 잃어버린 시간들이 많았다. 예배는 의무이고 사역인 경우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요새 나에게 있어서도 예배는 특권이고 누림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그렇다. 설교를 준비하고 전하는 그 시간은 부쩍 내가 하나님과 더 친밀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준비를 하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먼저 은혜를 누린다. 설교를 전하는 시간 내내 그분의 마음들이 깊이 느껴진다. 이 은혜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요새 더욱 알려주고 싶다. 초청하고 싶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분이라고. 복음이 우리를 진짜 살게 한다고. 그 은혜를... 지난 주일에 이 글을 쓰고 나서, 오늘 주제를 대하니 제 가슴이 더욱 두근거립니다. 목회. 이재철 목사님도 힘들다고 하시는데, 저라고 어찌 안 힘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이상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주님 안에서 경험하는 은혜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자꾸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은혜로 들어오라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명령이고, 그것이 주님을 가장 깊이 경험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동의가 되셨다면, 그럼 이제 우리는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하겠죠. 순종의 사람은 방법을 찾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하는 내용을 먼저 경험하고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어도 그들은 쉽사리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쉽게 있을 수 있는 다른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자신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살핍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점이 확인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성경말씀에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장소와 형편에 따라 전도의 방법이 달라질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삶이 곧 전도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합니다. 아시다시피 저와 아내가 풍성한 삶의 기초라는 양육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뜻깊은 시간입니다. 아내와 복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그 시간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아내가 문뜩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나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아내는 2022년을 시작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누군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혹시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것, 해보시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퇴짜를 맞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을 통해 누군가의 삶의 주인이 바뀐다면... 그리고 그가 계속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을 선물한 사람이 될 것이며... 주님의
유언을 따르며 경험하는 큰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 안에서 새로워진 삶이 정말 소중하다면, 그것을 마음껏 누리시고, 여러분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이것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며 꼭 전하기를 다짐해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그런 귀한 다짐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반드시 여러분의 그 결심과 행함의 과정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